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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게시판

망상

작성자굽은솔|작성시간13.10.21|조회수75 목록 댓글 1

바다나 호수 등, 물가에 서면 황금빛 햇살이 수면 위로 여울져 나에게

로 이어진다. 마치 찬란한 빛이 나만을 향해 비추는 것처럼 보인다. 산

이나 건물 등 높은 곳에 오르면 모든 사람이 다 내 발 밑에 엎드리고

나는 세상의 맨 위에 군림한 것 같다. 무대 위의 멋진 여가수는 줄 곳

나만을 응시하며 나만을 위해 노래를 부르고 있다. 공연히 아무 쓸 데

없는 환상에 빠져드는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헛것은 달콤하고 즐겁

다. 이른바 발양망상이다.

 

자기 자신을 온 세상의 중심이고, 주인공인 것처럼 과대평가 한다. 험

한 세상을 향해 외로이 일대일로 맞서 있노라니 자기중심적 이런 망상

에 쉽게 빠져든다. 좋든 나쁘든 나와 무관한 일을 내게 유리하게 해석

하여 쓸데없이 우쭐해지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 아닐 수 없다. 불교의

[ 천상천하유아독존 ]은 이 세상에 나만큼 잘 난 사람은 없다. 라는

뜻이 아니고, 단지 한 생명의 존귀함을 강조한 말일 뿐이다.

 

별다른 뜻이 있을 리 없는 사소한 리플 몇 마디가 내게 보내오는 특별

한 신호가 아닐까 하여 달콤한 망상에 빠진다. 보통 남성이 여성에게

호의를 베풀면 여성은 그냥 고맙게만 받아들인다. 그러나 여성이 남성

에게 친절을 베풀면 남성은 그걸 성적인 호감으로 왜곡, 특별한 신호

로 접수하려 든다고 한다. 나 역시 예외가 아닌 것 같다.

 

신언서판을 다 갖춘 훌륭한 위인을 만나면 꼬리가 내려간다. 비까번쩍

한 외제차 트렁크에 비싼 골프채를 싣고 다니는 부자 친구를 만나면

풀이 죽는다. 입신양명하여 한손에는 명예를 한손에는 권력을 쥐고 있

는 분들을 보면 힘이 빠진다. 큰 덕을 갖춘 훌륭한 분의 논리정연하고

유려한 문장을 대하면 기가 죽는다. 공연히 내 스스로 무너져 내리고

오그라들어 형편없이 왜소해진다. 쓰디 쓴 미소망상이다.

 

자기 자신을 별 볼 일 없는 못난 존재라고 과소평가한다. 무엇 하나

내세울 것이 없는 티끌처럼 하잘 것 없는 사람이니 당연하다. 가진 것

도 없고, 배움도 부족하고, 내놓고 자랑할 거리가 하나도 없으니 마음

이 아프다. [ 독보건곤수반아 ] 나는 드넓은 이 세상을 오직 나 자신

만을 벗하여 외롭게 살아간다. 다음은 내가 젊은 날 써본 [ 고독 ]이

라는  짧은 글이다.

--  날 뒤따르는 발자국소리가 들려 돌아보니 내 발자국 소리, 내 동행은 나뿐,

     누가 날 부르기에 두리번거렸으나 아무도 없어, 노상 날 찾을 이는 나뿐,

     내미는 손 마주 잡으니 또 다른 나의 손, 파리한 찬 손,

     마주보고 아는 체 하는 얼굴은 거울에 비친 나, 그의 얼굴.-----

 

내가 게시판에 써 올린 넝마처럼 허름한 글들을 보면서 그 볼품없고

허약한 모양새가 딱해 괴로운 망상에 빠진다. 좀 더 나은 글을 써보

려고 애를 쓰나 마음만 앞선다. 첫째는 머리가 나쁘고, 둘째는 게으른

탓이다. 멍청함은 노력으로 극복이 되나 게으름은 백약이 무효다. 난

겨우 한 톤 흙을 파고 금을 바란다. 백 톤, 천 톤을 파도 나올까 말깐데......!

물론 만 톤을 파면 다이아몬드가 나온다. 결국 나의 게으름이 내 미소망상

주범이다.

 

나는 시도 때도 없이 발양과 미소, 두 망상 사이에서 오락가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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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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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삭제된 댓글입니다.
  • 답댓글 작성자굽은솔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3.10.22 저로선 온유님의 댓글이 천군만마와 같습니다.
    표현을 하자면
    [ 누가 날 부르는 것 같아 돌아보니, 온유님이시더라! ]입니다.
    친절하신 댓글에 항상 감사드립니다.

    옛 이야기 한 토막입니다.
    한 아가씨가 한사코 결혼을 마다하다가 결국 혼례를 치렀습니다. 후에 친정에 와서 언니에게 물었습니다.
    [ 결혼생활이 이렇게 즐거운지 몰랐어요. 이 멋진 제도를 만든 사람이 누구래요? ]
    [ 아마도 주나라 주공이겠지! 근데 그건 왜 물어? ]
    [ 너무 고마워서 짚신이라도 한 켤레 선물하고 싶어서요. 호호호! ]
    그 신부의 감사의 념이 제가 온유님께 느끼는 감상과 비슷한 것 같습니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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