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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년전 오늘 이시간, 나는 명동파출소 철창에서 구리스마스 이브를보냈다.

작성자호뱐청솔|작성시간23.12.25|조회수246 목록 댓글 6

 
 
 

그러니까 1965년  겨울 크리스마스 전날  크리스마스 이브 한 밤중에  일어난일이다.
당시 몇달전 학생 신분으로 한국양봉협회  제2매장에 알바생으로 저녁 5시부터  근무하는  학생신분이었다.
12월 25일 크리스마스 전날인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 바로 이시간이다.
당시는  일년중  통행금지가 없는 유일한 날이  크리스마스 공휴일 전날인 크리스마스 이브 전야.
전부들 마음이 들떠 해방감을 맛보고 마치 자신을 위한날인것 처럼 개선장군같은 기분들을 맛보던 날이다
 
통행금지..
전부들 통행금지가 주는 심적 압박감은 엄청컸다.
통행금지 때문에 술 먹다가도 11시 반이면 서둘러 집에가느라 다들 바뻣다.
술집 근처에 자리잡은  여관은 이때만 기다리느라고  문을 활짝들 열어놓고 취객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무교동. 관철동. 명동. 등  시내 번화가는 특히 통행금지에  민감하였다.
12시가 넘으면 전부  경찰을 피해가느라 이리저리 숨느라 마라톤 선수가 돼고 택시는 다불, 따다불하던 시절
그랬으니 통행금지가 없는 크리스마스 전날  이브가주는 해방감과 행복감은 엄청컷다
 
나도 기다리고 기다리던 크리스마스 이브에 친구들하고 명동간다는 생각만으로 마음이 들떠 행복감에 이런저런 설계를했다.
그날. 그라니까  1965년 12월 24 일   크리스마스  이브전야.
나는  저녁때
" 사장님.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라 밤에는 손님이 안올것 같은데요!"
" 자식,  너도 친구들하고 놀고 싶으냐?   너도 마음이 들떳구나?  그래 9시 지나면 문닫고 집에가."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평소 이따금 찾아오는  친구들에게 미리 10시에 이곳으로 모이라는 연락을 주었기에
나는 사장님의 말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기다렸다.
10시가 돼어 친구들 3명하고  우리는 명동으로가서 명동한구석에 자리잡은 주막이 있었다.
식탁이라고는 6개. 우중충하고 좀 어둡고 꽤제제한 분위기가  번쩍뻔쩍한 주위의 분위기와는 안 어울렸다.
보리밭의 작곡자 윤용하와 당시의 시객들 문인들이 자주 어울리는  목로주점이있었다.
우리는 그 목로주점에 들어가 1차를 기분좋게하고 나왔다.
2차는 주위 통닭집에서 생맥주와 통닭으로 2차를하고 기분이 좋아 떠들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하며 나왔다.
그때가 한밤중인 1시 좀 지났을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터졌다.
좁은 골목길을 서너명이 비틀거리며 떠들고가다 옆을 지나가는 젊은놈들하고 시비가 붙어 거기서 패싸움이 벌어졌다.
서로 치고박고  , 찢어지고 터지고 피가나고 난장판이었다.
누가 신고했는지 명동 파출소 경찰 서너명이 와서 우리를 연행했다.
 
명동 파출소,
아는사람들은 알것이다.
그래도 좀 넓은 파출소다.
다른 취객들도 몇명이와서  취조를받고 훈방으로 풀려가고 있었다.
우리모습을 본  파출소장인가 좌우지간 책임자인 경찰이 우리를 보고는 
"야  너희들 왜 싸우고 지랄들이야.
크리스마스날이 술먹고 싸우라고있는  날이야?
이놈들보니까  학생들 같은데.
너희들  교회다니는 놈 손들어봐?"
가만히 보니까 나하고 또 한놈이 손을 들었다.
너의 두놈.  이쪽으로 서.
나는 속으로 "아마 교인이라고 봐줄라나보다",하며 기대를하고 얼른 그 옆으로 섰다.
그랬더니 " 교회다니는놈들이 가라는 교회는 안가고 술이나 쳐먹고 싸움질이야,?" 하더니  지휘봉같은 기다란 막대기로 
등어리를  서너대 때리더라.
그리고는  다른줄에 있는 친구들에게는  " 이놈들아. 교회도 안다니는 놈들이 여기는 왜 와서 싸움박질이야.?" 
하며 역시 세대씩 때렸다.
교인이라고 한대를 더 맞았다.
가만히 있었으면 매라도 덜 맞지.
 
당시는 3공화국,
길거리에서 머리가 길면 파출소에 끌려가 머리도 깍아주던 시절.
미니스카트 퍼지는 초기라 치마가 짧으면  자로 재던 시절.
인권이고 학생이고 민간인들한테 갑질이 대단하던 군부 독재시절.
 
나중에 안 일이지만 우리네명과 경희대 체육과 3명.
우리 7명은  파출소 구치장에 무릅꿇고 않아서 새벽 4시까지 새벽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그해 그 크리스마스 이브.
내 70이넘도록  파출소 구치장을 구경한것도 그때가 처음이고 크리스마스를  철장에서 보낸것도 그때가 유일하다.
무슨 객기로 술도 못하면서 어울려 싸움박질이나하고  소리를 지르면서 다녔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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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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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호뱐청솔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3.12.25 그래요
    그때 우리는 그랬지요,
    그것도 큰 제과점은 비쌋고좀 작은제과점이 좋았어요
    그때의 들뜬마음은
    지금도 크리스마스이브에는 똑같이 느껴요
    메리 크리스마스
  • 작성자더세븐 | 작성시간 23.12.25 이런저런 명목을 걸어 잡아들이기도 잘하고
    훈방제도라것도 있어 나오기도 했던
    그시절.생각하면 많은 일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하얀성탄절 복된 시간 되세요~~
  • 답댓글 작성자호뱐청솔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3.12.25 메리크리스마스
    더 세븐님,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크리스마스 이브는 소년기로 돌아가 마음이 설레입니다
  • 작성자공주.. | 작성시간 23.12.25 참 까마득한 시절 이야기 입니다.
    통행금지 .교복.패싸움 파출소 ㅎㅎ
    추억 여행 잘 했읍니다
    화이트 데이
    해피 뉴이어
  • 답댓글 작성자호뱐청솔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3.12.25 메리크리스마스
    공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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