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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이야기

[위로의 음악] 솔베이지의 노래

작성자구포|작성시간15.09.24|조회수217 목록 댓글 2
  

 

Grieg가 작곡한 '솔베이지의 노래'는 좀 특별합니다. 존경하는 장모님이 젊어서 자주 들었던 노래이기 때문입니다. 차마 '즐겨' 들었다는 말은 못하겠습니다. 젊어 그토록 사랑했던 사람을 일찍 저 세상으로 떠나 보내야 했던 분이 어떤 심정으로 이 노래를 들었을까 짐작이 가니까요. 솔베이지의 노래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가을이 또 가고 겨울이 가고

봄이 또 오고 여름이 오고

그래도 나는 기다리노라...

 

'솔베이지의 노래'를 들을 때마다, 돌아 오리란 약속도 없이 돌아 올 수 없는 곳으로 가버린 걸 뻔히 알면서도 기다리겠노라고 허튼 맹세를 하셨을까요? 몇해 전 봄날에 바람이나 쐬자고 교외로 차를 몰고 드라이브를 간 일이 있습니다. 서울을 빠져 나가던 길에 차창 밖 푸른 하늘 저 멀리에 뜬 흰 뭉게구름을 한참 바라보시던 장모께서 뒷좌석에 함께 탔던 작은딸에게 느닷없이 이런 질문을 혼잣말처럼 하였습니다. "아빠가 이렇게 늙어빠진 나를 알아볼까?" 처음에는 웃자고 하시는 소린가 했습니다. "아빠는 아직도 청춘일텐데..." 그 후로 이어지는 젖은 목소리는 농담이 아니었습니다. 뭐라고 위로의 말씀이라도 드렸어야 했는데, 아무런 대답도 못드리고 잠시 침묵이 흘렀던 일이 있었습니다. 天上은 우리와는 다른 세상이니까 그 세상의 방법으로 서로를 알아 보시겠지요?

 

‘솔베이지의 노래(Solveig’s Song)‘는 유명한 노르웨이의 대문호 헨릭 입센이 쓴 희곡 ‘페르 귄트(Peer Gynt)’를 위한 극 부수 음악 형식으로 Grieg가 작곡한 23곡 중에 들어있는 한 곡입니다. 희곡 ‘페르 귄트’의 무대는 19세기 초, 노르웨이의 구드브란스달(Gudbrandsdal) 지방입니다. 그곳에 살았던 스무 살의 청년 페르 귄트(Peer Gynt)는 수다스럽고 허풍이 심하기로 유명한 젊은이었습니다. 부잣집 외아들로 태어났지만, 그의 아버지가 재산을 탕진하고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어머니 ‘오세’와 함께 그는 가난한 생활을 꾸려 나가게 됩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홀어머니가 들려주던 옛날 민속설화에 흠뻑 빠져 살았습니다. 그는 점차 나이를 먹게 되면서 남의 이야기를 자기가 한 일이라고 떠들고 다니는가 하면 어렵고 힘든 일에 부딪치면 슬쩍슬쩍 피해갈 궁리만 했습니다. 그래서 마을에서는 나약하고 소심한 거짓말쟁이로 소문이 나 아무도 상대해주려 하질 않았습니다.

 

그러나 단 두 여자만은 예외였습니다. 그를 끔찍이 아끼고 사랑하는 어머니와 그의 말이라면 무조건 믿고 따르는 천사같은 마을 처녀 솔베이지가 바로 그들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머니가 죽고 나자 페르 귄트는 약혼녀인 솔베이지를 홀로 남겨둔 채 이 세상의 그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이곳저곳 떠도는 방랑길에 오릅니다. 그는 게으르면서도 미래의 영예를 꿈꾸는 공상가답게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 여러 가지 모험을 감행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남의 부인을 빼앗기도 하고 중국의 험준한 산에서 마왕의 딸을 만나 함께 지내는가 하면 아프리카에서는 추장의 딸과 청춘을 즐기던 끝에 한 때는 거부가 되기도 합니다.

 

갖은 고생 끝에 돈을 모아 10여 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오던 그는 산적을 만나 돈을 다 빼앗깁니다. 간신히 목숨을 건진 페르귄트는 솔베이지를 차마 볼 수 없어 다시 먼 이국땅으로 떠나 걸인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던 중 고향이 그리워진 페르귄트는 늙고 병든 몸으로 터벅터벅 돌아와 어머니가 살았던 오두막의 문을 열었습니다. 빈 집일 것만 같았던 그 오두막에서 이제는 백발이 다 된 연인 솔베이지가 그를 반갑게 맞아줍니다. 한평생 그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던 옛 여인의 무릎을 베고 누워 페르 귄트는 그녀가 불러주는 자장가 소리를 들으며 편안하게 눈을 감았습니다. 솔베이지도 노래를 부르며 페르 귄트의 뒤를 따라 갑니다.

 

가을이 또 가고 겨울이 가고

봄이 또 오고 여름이 오고

그래도 나는 기다리노라

어느 날인가는 기어이 돌아올 그대 위해

언제까지나 기다리겠다던 맹세를 지키며…

 

페르 귄트는 쇠도르프의 이 농장에 실재했던 인물이라고 합니다. 입센은 1867년 <페르 귄트>의 원고와 함께 그가 출판사에 보낸 편지에서 “페르 귄트가 실제로 살아 있었던 사람이라는 것을 알면 귀하는 흥미로울 것입니다. 그는 구드브란스달에 지난 세기 말이나 금세기 초에 살았으나 아스비오른슨의 <노르웨이 민화집>에 나오는 것 외에 그의 일생에 관해 알려진 것이 없습니다” 라고 썼습니다.

노래를 들으시려면 상단의 배경음악은 잠시 꺼주세요.

Edvard Grieg: Solveig's song (Peer Gynt)
Solveig: Christiane Karg, soprano

 

Grieg는 노르웨이 제2의 항구도시인 베르겐(Bergen)에서 1843년 태어난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이다. 아버지는 스코트랜드 사람이었고 어머니는 노르웨이 사람으로 뛰어난 피아니스트이었다. 그는 피아니스트였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릴 적부터 피아노를 배웠고, 같은 베르겐 출신의 유명한 피아니스트 올레 불(Ole Bull)의 인정을 받아, 그의 권유로 15세 때인 1858년에 독일 라이프치히(Leipzig) 음악원에 유학하여 작곡과 피아노를 공부하였다.

 

1862년 졸업 후 고향 베르겐으로 돌아온 그는 거기서 작곡가와 피아니스트로 정식 데뷔했다, 1870년에 리스트의 초대로 로마를 방문하게 되는데, 이때 그리그의《피아노협주곡》(1868)을 연주한 리스트는 그를 매우 극찬하였다.

 

다시 노르웨이로 돌아온 그리그는 오슬로 음악원 부원장, 필하모니아 협회의 지휘자 등을 겸하면서 작곡에 몰두했으며, 사촌누이동생이자 소프라노 가수인 니나 하게루프(Nina Hagerup)와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다. 그는 안데르센의 詩에 曲을 붙인 가곡《나 그대를 사랑해》를 그녀를 위해 작곡하여 유명해졌고, 그들은 결혼해서 오슬로에서 생활하였다.

 

1874년 31세 때 노르웨이 정부로부터 지원받는 연금으로 안정된 생활을 하며 작곡과 연주에 전념했다. 1885년부터는 베르겐에서 조금 떨어진 요정의 숲 ‘트롤하겐(Troldhaugen)’에 집을 짓고 쇠약해진 몸을 요양하면서 전원생활을 즐겼다.

 

51세 때인 1894년에 그리그는 미국을 방문하여 3개월 동안 30회에 달하는 연주회를 열어서 미국인들에게 그의 존재를 알렸다. 1898년 그리그는 고향인 베르겐(Bergen)에서 음악제를 개최하였다. 이를 준비하면서 건강은 더욱 악화되어 1907년 9월 4일, Bergen의 한 병원에서 지병인 결핵으로 64세를 일기로 생애를 마쳤다. 그리그의 열정을 다한 음악제는 지금까지 ‘베르겐음악제’로 이어지고 있다.

 

그리그는 섬세한 서정적인 음악가로 오페라나 교향곡과 소나타(Sonata) 형식의 대작은 작곡하지 않았으나 예외로 세계 4대 피아노 협주곡으로 꼽히는<Piano Concerto in A minor Op.16>(1868)와 홀베르크 모음곡<Holberg Suite Op.40>은 가장 사랑받고 있으며 특히 입센의 희곡을 위한 부수음악으로 작곡한 <페르 귄트>는 가장 유명한 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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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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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ryu denver | 작성시간 15.09.24 나도 이 노래 좋아하는디. 바이올린의 높은 음색이 참 애절하고, 처연하다고 할까.
    고딩 음악 시간에 선생님이 이 노래를 틀더니만 무슨 노래인지 아느냐고 하길래, 내가 맟추고 우쭐했던 기억이 나누만.
  • 답댓글 작성자구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5.09.28 암튼 명문 오고는 달라도 다르다! ㅎㅎ
    난 음악시간에 '박연폭포' 부른 것밖에 생각나지 않네. 시민회관에서 무신 합창대회 준비헌다고... 재미 하나 없이! 첫 도입부부터 소릴 냅다 지르라고...ㅋ
    고딩 때 솔베이지 노래를 알았으니 꽤나 음악분야에 성숙했나보군! 경자누나 영향이었던가?
    그나저나 미국엔 추석에 송팬이라도 맨들어 먹나? 며느리도 보았으니... 모여 포도주라도 허겠지? 잘 지내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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