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독서<나는 이 도성을 보호하여 구원하리니, 이는 나 자신과 다윗 때문이다.>
▥ 열왕기 하권의 말씀입니다.19,9ㄴ-11.14-21.31-35ㄱ.36
그 무렵 아시리아 임금 산헤립은
9 히즈키야에게 사신들을 보내며 이렇게 말하였다.
10 “너희는 유다 임금 히즈키야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네가 믿는 너의 하느님이,
′예루살렘은 아시리아 임금의 손에 넘어가지 않는다.′ 하면서,
너를 속이는 일이 없게 하여라.
11 자, 아시리아 임금들이 다른 모든 나라를 전멸시키면서 어떻게 하였는지
너는 듣지 않았느냐?
그런데도 너만 구원받을 수 있을 것 같으냐?’”
14 히즈키야는 사신들의 손에서 편지를 받아 읽었다.
그런 다음 히즈키야는 주님의 집으로 올라가서,
그것을 주님 앞에 펼쳐 놓았다.
15 그리고 히즈키야는 주님께 이렇게 기도하였다.
“커룹들 위에 좌정하신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
세상의 모든 왕국 위에 당신 홀로 하느님이십니다.
당신께서는 하늘과 땅을 만드셨습니다.
16 주님, 귀를 기울여 들어 주십시오.
주님, 눈을 뜨고 보아 주십시오.
살아 계신 하느님을 조롱하려고 산헤립이 보낸 이 말을 들어 보십시오.
17 주님, 사실 아시리아 임금들은 민족들과 그 영토를 황폐하게 하고,
18 그들의 신들을 불에 던져 버렸습니다.
그것들은 신이 아니라 사람의 손으로 만든 작품으로서
나무와 돌에 지나지 않았으므로,
사람들이 그것들을 없애 버릴 수 있었습니다.
19 그러나 이제 주 저희 하느님, 부디 저희를 저자의 손에서 구원하여 주십시오.
그러면 세상의 모든 왕국이, 주님, 당신 홀로 하느님이심을 알게 될 것입니다.”
20 아모츠의 아들 이사야가 히즈키야에게 사람을 보내어 말하였다.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시리아 임금 산헤립 때문에 네가 나에게 바친 기도를 내가 들었다.’
21 주님께서 그를 두고 하신 말씀은 이러합니다.
‘처녀 딸 시온이 너를 경멸한다, 너를 멸시한다.
딸 예루살렘이 네 뒤에서 머리를 흔든다.
31 남은 자들이 예루살렘에서 나오고 생존자들이 시온산에서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만군의 주님의 열정이 이를 이루시리라.’
32 그러므로 주님께서 아시리아 임금을 두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이 도성에 들어오지 못하고, 이곳으로 활을 쏘지도 못하리라.
방패를 앞세워 접근하지도 못하고, 공격 축대를 쌓지도 못하리라.
33 자기가 왔던 그 길로 되돌아가고 이 도성에는 들어오지 못하리라.
주님의 말씀이다.
34 나는 이 도성을 보호하여 구원하리니
이는 나 자신 때문이며 나의 종 다윗 때문이다.’”
35 그날 밤 주님의 천사가 나아가 아시리아 진영에서 십팔만 오천 명을 쳤다.
36 아시리아 임금 산헤립은 그곳을 떠나 되돌아가서 니네베에 머물렀다.
복음<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남에게 해 주어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7,6.12-14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6 “거룩한 것을 개들에게 주지 말고, 너희의 진주를 돼지들 앞에 던지지 마라.
그것들이 발로 그것을 짓밟고 돌아서서 너희를 물어뜯을지도 모른다.
12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
13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이끄는 문은 넓고 길도 널찍하여 그리로 들어가는 자들이 많다.
14 생명으로 이끄는 문은 얼마나 좁고 또 그 길은 얼마나 비좁은지,
그리로 찾아드는 이들이 적다.”
묵상
몇 달 전에 있었던 일이 생각납니다. 청소년 자모회 어머니들이 주방에서 아이들을 위해 스파게티를 만든다고 하셨습니다. 이를 위해 양파를 열심히 썰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눈물을 흘리십니다. 양파를 썰며 생긴 화학 반응으로 자극성 기체가 만들어져 눈이 매운 것입니다. 옆에 약간 떨어져 있었던 저 역시 눈물이 날 정도였으니, 바로 앞에서 양파를 써는 어머니들은 얼마나 괴로웠을까요? 그런데 눈물을 흘리면서도 칼질을 멈추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계속 칼질을 해야 나중에 바라던 결과인 맛있는 스파게티를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눈이 맵다고 양파 써는 것을 포기하고 양파를 넣지 않으면 당연히 스파게티의 맛은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맛있는 스파게티를 위해, 또 아이들이 맛있게 먹기를 바라면서 눈물을 쏟으면서도 양파를 썰었던 것입니다.
주님께 나아가는 것도 이렇지 않을까요? 주님과 함께하는 길에 항상 기쁨과 행복이 충만할까요? 이 길에 갈등도 또 아픔과 상처도 가득합니다. 그렇다면 이런 고통과 시련이 있다고 곧바로 주님께 나아가는 것을 포기한다면 어떨까요? 주님의 은총 안에 머물 수 없고, 나중에 얻게 될 하느님 나라에서의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을 잃어버리고 말 것입니다. 따라서 눈물을 흘리며 노력해서 우리 자신 안에 거룩한 불을 지필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흔히 황금률이라 하는 가장 위대한 윤리적 가르침을 주십니다.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마태 7,12)
당시 유다교의 랍비들이나 동양의 공자 등 많은 사람이 “네가 싫어하는 일을 남에게 하지 마라.”고 가르쳤습니다. 이는 소극적인 형태의 윤리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를 적극적인 선행과 사랑의 명령으로 뒤집으십니다. 즉, 타인에게 상처 주지 않는 선에서 머무는 무관심을 넘어서, 자기가 위로받고 싶고 사랑받고 싶은 그 마음 그대로 다른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 행하라는 것입니다. 정말로 어렵고 힘든 길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이끄는 문은 넓고 길도 널찍하여 그리로 들어가는 자들이 많다.”(마태 7,13)
넓은 문, 널찍한 길은 세상의 가치관, 안락함, 그래서 다수의 사람이 가는 길입니다. 여기에는 이기심과 욕심이 가득합니다. 그러나 생명으로 이끄는 길은 좁은 문, 비좁은 길이라고 하십니다. 하느님께서 들어갈 자격을 엄격하게 제한하셔서일까요? 아닙니다. 이기심과 욕심이라는 무거운 짐을 진 채로는 결코 통과할 수 없는, 철저한 자기 비움이 요구되는 사랑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좁은 문, 비좁은 길을 선택해야 합니다.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는 문이고 길입니다. 그러나 그 뒤에 하느님의 은총으로 가득한 참된 기쁨이 있습니다. 어렵고 힘든 또 불편한 이 문과 길을 선택할 용기가 있나요?
오늘의 명언 : 감사하는 마음으로 걷다보면 어느 길이든 행복하지 않은 길은 없습니다(조지.E.베일런트).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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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앤지 작성시간 26.06.23 [ 묵상&기도]
끝내 자존심을 지키려는 그가 떠오른 아침입니다.
매사에 자존심이 소중하여 지탱하는 기둥처럼 여기며
무너지지 않으려 애쓰는 사람이죠.
그는 정작 고립된 무인도처럼 여겨져
경계와 분노에 익숙해져 있었지만
누구도 그의 자아에 다가갈 수 없었습니다.
주님,
선상에서 바라본 바다의 작은 섬은
제게 누군가를 떠올리게 했고, 다시
저를 바라보게 합니다.
믿음은
고립에 익숙하지 않도록
함께 하는 삶으로의 초대이기에
오늘도 사랑과 배려를 배우며
희로애락(喜怒哀樂)의 나눔이 고통의 형벌이 아닌
구원의 십자가임을 감사하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