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이 현재의 팔레스타인 지역 고대에는 가나안 지역에 원래부터 살았던 민족이 아니라는 것에는 모든 역사학자들이 동의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어디에선가 이동해 와서 가나안 땅에 정착하였고 후에는 왕국까지 건설하였습니다.
저는 그 경로를 한번 추적해 보려고 합니다.
물론 성경의 내용도 함께 사용할 것입니다.
이집트의 왕조에서 15-16 왕조(BC 1630~1540경)를 힉소스 왕조라고 부릅니다.
힉소스란 말의 기원은 '외국 땅의 통치자'를 뜻하는 이집트어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AD 1세기)가 인용한 마네토의 서술에 나옵니다. 마네토는 새로운 통치자들을, 신을 두려워하지 않고 감히 그 땅을 빼앗은 침략자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아시아 계열의 이 왕조의 통치를 이집트인들은 받아들였으며, 이 왕조는 이집트의 남쪽만 차지하였고 북쪽은 방임하였습니다.
같은 시기에 제17왕조는 테베에 중심을 두고 있었습니다.
이 시기에 셈족 계열인 하비루들이 이주해오기 시작합니다.
이 단어는 이집트뿐만이 아니라 메소포타미아에도 등장하는데, 그 뜻은 '먼지를 일으키는 사람들'이라는 의미의 유목민족에 대한 묘사입니다.
BC 18세기에서 13세기에 걸친 기간 동안의 아마르나 서신들(Amarna letters : 시리아-팔레스틴의 군소국왕들이 이집트왕궁에 보낸 외교 서신)에서 하비루(Habiru)의 분란을 일으키는 행동에 대처하기 위해 병력을 증강해 줄 것을 요청하는 내용이 계속해서 등장합니다.
유대인들은 이 하비루의 한 종족입니다.
그들은 야곱의 혈손들로서 처음에 70명이 이집트에 이주하여 살게 되었습니다.
그들을 이집트로 이끈 요셉은 그들이 고센 땅에 정착하여 살게 합니다. 고센의 다른 이름은 라암세스입니다(창 47:11).
요셉은 그들이 이집트의 중앙 정권에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막았습니다.
중앙 정권으로 진출하면 그들을 이집트로 인도하신 하나님의 목적을 벗어나게 될 것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힉소스 왕조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고센 땅에서 유목민으로서의 생활을 하였습니다.
야곱의 혈손들이 이집트에 와서 정착한 지 300여년의 기간이 흘렀을 때에 이집트에 새로운 왕조(제 18왕조, BC 1539~1292경)가 생겨나게 됩니다.
새 왕조는 힉소스 왕조를 몰아내고 통일된 이집트인의 왕조를 이집트 땅에 세우게 됩니다.
성경은 이를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나서 이집트를 다스리더니”(출 1:8)라고 적고 있습니다.
이는 요셉을 친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새 왕조가 생겨났다는 것입니다.
이집트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요셉 시대에 자신들의 모든 땅을 힉소스 왕조에게 바쳐야 했기에 요셉에 대해 친밀할 수는 없었습니다.
이제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새 왕조의 입장에서 보면 유대인들이 포함된 하비루들은 위험 세력입니다.
힉소스 왕조와 친밀한 그들이 힉소스 왕조를 재건하려는 세력과 공모하여 반란을 일으킬 수도 있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전과는 달리 억압하고 노동력으로 활용합니다.
멤피스의 아나스타시라는 파피루스에는 노동자의 벽돌 만드는 할당량이 적혀 있는데 노동자 40인의 대장은 80,000개의 벽돌을 하루에 바쳐야 했습니다.
그것은 노동자 한 명당 하루에 2,000개씩을 만들어야 하는 엄청난 양이었습니다.
이 숫자는 다소 과장된 것으로 보이지만 그 당시의 노동자들이 중노동에 시달렸음을 알려주는 증거는 될 수 있습니다.
성경은 새 왕조가 유대인들에게 국고성 비돔과 라암세스를 건축하게 하였다고 말씀합니다(출 2:11).
유대인들이 거주하던 고센의 다른 이름이 라암세스임을 생각할 때에 유대인들을 쉽게 통제하기 위하여 그 거주지를 성벽으로 둘렀다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노역을 하면서 약 100여년의 기간을 보내게 됩니다.
성경은 왕조가 바뀐 후의 어느 시점에 태어난 모세가 80세가 되어서 이집트 탈출이 시작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목사님들이 이스라엘이 400년 간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을 했다고 말하는데 그것은 잘못된 이야기입니다.
제 18왕조의 5대 왕인 투트모스 3세 때에 많은 정복 사업을 성공적으로 펼쳐 이집트의 국력은 절정에 이릅니다.
바빌로니아·아시리아·히타이트가 모두 이집트의 권위를 인정하고 공물을 보내왔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투트모세 3세는 죽기 2년 전에 18세 된 아들 아멘호테프 2세(BC 1426~1400 재위)를 공동 통치자로 임명합니다.
이는 고대 세계에서 흔히 볼 수가 없는 아주 이례적인 일입니다.
이집트 탈출의 시기를 일반적으로 두 가지로 말하는데, 그 한 가지가 바로 BC 1450년에서 1425년 사이에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당시의 역사적 정황과 성경의 기록이 일치하는 시기입니다.
저는 투트모세 3세가 살아있으면서 18세 된 아들에게 권력을 이양하게 된 이유가 이집트에서 있었던 재앙과 홍해 사건의 여파로 보입니다.
이집트 탈출에 있어서 한 가지 유의하여야 할 것이 유대인들만 참여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18왕조에서 함께 고역을 하던 하비루들이 탈출에 동참하였습니다.
성경에서는 중다한 잡족이 함께 하였다고 기록되었습니다(출 12:38).
중다한 잡족은 이스라엘 12지파에 속하여서 함께 이스라엘을 형성하게 됩니다.
이집트 탈출 후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그 엄청난 수는 그러한 연유입니다.
물론 숫자는 변경의 여지가 있습니다.
1000으로 번역된 에레프가 그 당대에는 천이 아니라고 하는 주장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집트에 하비루가 있었고 그들이 18왕조에서 노예와 같이 고역에 종사했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입니다.
그리고 어느 시점에 그들이 이집트를 벗어나서 유랑하였다는 것도 역사적 사실입니다.
여기에서 이집트가 자체적으로 그들을 내어보냈을 여지는 없습니다. 전혀.
고대 세계에서 그들은 너무도 중요한 노동력이기에 집단적으로 미치지 않고서는 절대 불가능한 일입니다.
또한 많은 시간이 흐른 후에 유대인들이 가나안 땅에 정착하여 살았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비루가 창칼을 들고 고역을 시키는 이집트를 탈출할 수 있었다는 것은 그들 스스로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창칼을 든 이집트의 군사력보다 더 큰 능력의 개입을 통하여서만 가능합니다.
그들이 가나안 땅을 차지하고 정착할 수 있었던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미 가나안 땅에서 살고 있던 민족들이 집단적으로 미치지 않고서는 순순히 땅을 내어줄 리가 없습니다.
그들과의 전쟁은 필수이며 그 전쟁에서 이기고 땅을 차지하는 것은 하비루만의 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창칼을 들고 자기 땅을 수호하려는 가나안의 원주민들보다 더 강한 힘의 개입으로만 가능합니다.
개인적으로 유대 왕국에 대한 기록이라도 다른 나라의 문서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면 하는 생각이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현재까지는 그렇지를 못합니다.
브리테니커 사전의 다윗이나 솔로몬에 대한 내용도 성경의 내용만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반면에 성경에 기록된 이스라엘의 역사를 뒤집을 수 있는 어떤 기록도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현재까지는 성경의 기록과 몇 가지 역사적 정황 그리고 유추를 통하여 이야기할 수 있을 뿐입니다.
앞으로는 어떻게 될 런지 알 수 없습니다만 나름대로 정리를 해보았습니다.
그들은 어디에선가 이동해 와서 가나안 땅에 정착하였고 후에는 왕국까지 건설하였습니다.
저는 그 경로를 한번 추적해 보려고 합니다.
물론 성경의 내용도 함께 사용할 것입니다.
이집트의 왕조에서 15-16 왕조(BC 1630~1540경)를 힉소스 왕조라고 부릅니다.
힉소스란 말의 기원은 '외국 땅의 통치자'를 뜻하는 이집트어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AD 1세기)가 인용한 마네토의 서술에 나옵니다. 마네토는 새로운 통치자들을, 신을 두려워하지 않고 감히 그 땅을 빼앗은 침략자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아시아 계열의 이 왕조의 통치를 이집트인들은 받아들였으며, 이 왕조는 이집트의 남쪽만 차지하였고 북쪽은 방임하였습니다.
같은 시기에 제17왕조는 테베에 중심을 두고 있었습니다.
이 시기에 셈족 계열인 하비루들이 이주해오기 시작합니다.
이 단어는 이집트뿐만이 아니라 메소포타미아에도 등장하는데, 그 뜻은 '먼지를 일으키는 사람들'이라는 의미의 유목민족에 대한 묘사입니다.
BC 18세기에서 13세기에 걸친 기간 동안의 아마르나 서신들(Amarna letters : 시리아-팔레스틴의 군소국왕들이 이집트왕궁에 보낸 외교 서신)에서 하비루(Habiru)의 분란을 일으키는 행동에 대처하기 위해 병력을 증강해 줄 것을 요청하는 내용이 계속해서 등장합니다.
유대인들은 이 하비루의 한 종족입니다.
그들은 야곱의 혈손들로서 처음에 70명이 이집트에 이주하여 살게 되었습니다.
그들을 이집트로 이끈 요셉은 그들이 고센 땅에 정착하여 살게 합니다. 고센의 다른 이름은 라암세스입니다(창 47:11).
요셉은 그들이 이집트의 중앙 정권에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막았습니다.
중앙 정권으로 진출하면 그들을 이집트로 인도하신 하나님의 목적을 벗어나게 될 것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힉소스 왕조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고센 땅에서 유목민으로서의 생활을 하였습니다.
야곱의 혈손들이 이집트에 와서 정착한 지 300여년의 기간이 흘렀을 때에 이집트에 새로운 왕조(제 18왕조, BC 1539~1292경)가 생겨나게 됩니다.
새 왕조는 힉소스 왕조를 몰아내고 통일된 이집트인의 왕조를 이집트 땅에 세우게 됩니다.
성경은 이를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나서 이집트를 다스리더니”(출 1:8)라고 적고 있습니다.
이는 요셉을 친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새 왕조가 생겨났다는 것입니다.
이집트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요셉 시대에 자신들의 모든 땅을 힉소스 왕조에게 바쳐야 했기에 요셉에 대해 친밀할 수는 없었습니다.
이제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새 왕조의 입장에서 보면 유대인들이 포함된 하비루들은 위험 세력입니다.
힉소스 왕조와 친밀한 그들이 힉소스 왕조를 재건하려는 세력과 공모하여 반란을 일으킬 수도 있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전과는 달리 억압하고 노동력으로 활용합니다.
멤피스의 아나스타시라는 파피루스에는 노동자의 벽돌 만드는 할당량이 적혀 있는데 노동자 40인의 대장은 80,000개의 벽돌을 하루에 바쳐야 했습니다.
그것은 노동자 한 명당 하루에 2,000개씩을 만들어야 하는 엄청난 양이었습니다.
이 숫자는 다소 과장된 것으로 보이지만 그 당시의 노동자들이 중노동에 시달렸음을 알려주는 증거는 될 수 있습니다.
성경은 새 왕조가 유대인들에게 국고성 비돔과 라암세스를 건축하게 하였다고 말씀합니다(출 2:11).
유대인들이 거주하던 고센의 다른 이름이 라암세스임을 생각할 때에 유대인들을 쉽게 통제하기 위하여 그 거주지를 성벽으로 둘렀다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노역을 하면서 약 100여년의 기간을 보내게 됩니다.
성경은 왕조가 바뀐 후의 어느 시점에 태어난 모세가 80세가 되어서 이집트 탈출이 시작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목사님들이 이스라엘이 400년 간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을 했다고 말하는데 그것은 잘못된 이야기입니다.
제 18왕조의 5대 왕인 투트모스 3세 때에 많은 정복 사업을 성공적으로 펼쳐 이집트의 국력은 절정에 이릅니다.
바빌로니아·아시리아·히타이트가 모두 이집트의 권위를 인정하고 공물을 보내왔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투트모세 3세는 죽기 2년 전에 18세 된 아들 아멘호테프 2세(BC 1426~1400 재위)를 공동 통치자로 임명합니다.
이는 고대 세계에서 흔히 볼 수가 없는 아주 이례적인 일입니다.
이집트 탈출의 시기를 일반적으로 두 가지로 말하는데, 그 한 가지가 바로 BC 1450년에서 1425년 사이에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당시의 역사적 정황과 성경의 기록이 일치하는 시기입니다.
저는 투트모세 3세가 살아있으면서 18세 된 아들에게 권력을 이양하게 된 이유가 이집트에서 있었던 재앙과 홍해 사건의 여파로 보입니다.
이집트 탈출에 있어서 한 가지 유의하여야 할 것이 유대인들만 참여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18왕조에서 함께 고역을 하던 하비루들이 탈출에 동참하였습니다.
성경에서는 중다한 잡족이 함께 하였다고 기록되었습니다(출 12:38).
중다한 잡족은 이스라엘 12지파에 속하여서 함께 이스라엘을 형성하게 됩니다.
이집트 탈출 후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그 엄청난 수는 그러한 연유입니다.
물론 숫자는 변경의 여지가 있습니다.
1000으로 번역된 에레프가 그 당대에는 천이 아니라고 하는 주장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집트에 하비루가 있었고 그들이 18왕조에서 노예와 같이 고역에 종사했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입니다.
그리고 어느 시점에 그들이 이집트를 벗어나서 유랑하였다는 것도 역사적 사실입니다.
여기에서 이집트가 자체적으로 그들을 내어보냈을 여지는 없습니다. 전혀.
고대 세계에서 그들은 너무도 중요한 노동력이기에 집단적으로 미치지 않고서는 절대 불가능한 일입니다.
또한 많은 시간이 흐른 후에 유대인들이 가나안 땅에 정착하여 살았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비루가 창칼을 들고 고역을 시키는 이집트를 탈출할 수 있었다는 것은 그들 스스로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창칼을 든 이집트의 군사력보다 더 큰 능력의 개입을 통하여서만 가능합니다.
그들이 가나안 땅을 차지하고 정착할 수 있었던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미 가나안 땅에서 살고 있던 민족들이 집단적으로 미치지 않고서는 순순히 땅을 내어줄 리가 없습니다.
그들과의 전쟁은 필수이며 그 전쟁에서 이기고 땅을 차지하는 것은 하비루만의 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창칼을 들고 자기 땅을 수호하려는 가나안의 원주민들보다 더 강한 힘의 개입으로만 가능합니다.
개인적으로 유대 왕국에 대한 기록이라도 다른 나라의 문서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면 하는 생각이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현재까지는 그렇지를 못합니다.
브리테니커 사전의 다윗이나 솔로몬에 대한 내용도 성경의 내용만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반면에 성경에 기록된 이스라엘의 역사를 뒤집을 수 있는 어떤 기록도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현재까지는 성경의 기록과 몇 가지 역사적 정황 그리고 유추를 통하여 이야기할 수 있을 뿐입니다.
앞으로는 어떻게 될 런지 알 수 없습니다만 나름대로 정리를 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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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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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산들 작성시간 08.01.14 일단 옳고 그르고를 떠나 사람이 가진 진실성 자체는 인정할 수 있지 않을까요? 오히려 그 바탕을 인정하고 대화할 때 더 호소력을 갖게 되지 않을까요? 이 분이 겉다르고 속다른 위선자들과는 다른 사람이란건 충분히 느껴지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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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눈깔사탕 작성시간 08.01.14 네. 그부분은 인정합니다. 역시 저보다는 안목이 많이 넓으신듯.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제가 슬프다고 한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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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산들 작성시간 08.01.14 그래요. 그게 참 슬픈 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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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신중히 작성시간 08.01.14 저는 슬프지 않습니다. 그가 정직하고 강직한인물임은 인정하지만 그가 진정한 목사가 되지 못하고 먹사에 머물러 있는 것은 본인의 책임이기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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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自由人 작성시간 08.01.15 첫번째 문장에서...<이스라엘이 현재의 팔레스타인 지역 고대에는 가나안 지역에 원래부터 살았던 민족이 아니라는 것에는 모든 역사학자들이 동의하고 있습니다. >... 정말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