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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와 사회

예수님은 나의 구세주! 나는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구원받았습니다. (이 돌님을 위하여)

작성자산들|작성시간12.03.29|조회수266 목록 댓글 4

이 돌님의 질문 중 꼭 한 가지는 대답을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기독교인들 뿐 아니라 안티님들 중에서도 비슷한 의문을 가진 분들이 많으리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박쥐 산들의 속을 들여다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니 기대하십시오!^^;;)

 

나는 진정으로

"예수님은 나의 구세주! 나는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구원받았다!" 라고 지금도 고백한다.

 

그 이유를 자세히 설명해주고 싶지만 요즘 글쓰기가 쉽지 않다.

오랫동안 글을 놓고 있어서 그런 것 같다.

 

하여 비록 옛글이고 어느 교회에서 했던 설교문이지만

이 문제에 대한 내 입장을 자세히 풀어놓은 글이기에

어줍잖은 설명 몇 줄보다 나으리라 생각하여 여기 올려놓는다.

 

관심 없는 분들에겐 긴 글로 부담을 주어 죄송하며

그냥 통과해 주시기 바랍니다.

 

 

 

겟세마네 <마가복음 14:32-36>

새길교회. 2006.04.02.

 

 

그들은 겟세마네라고 하는 곳에 이르렀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기도하는 동안에, 너희는 여기에 앉아 있어라" 하시고,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가셨다. 예수께서는 두려워하며, 괴로워하셨다. 그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 마음이 괴로워 죽을 지경이다. 너희는 여기에 머물러서 깨어 있어라." 그러고서 조금 나아가서 땅에 엎드려서, 될 수만 있으면 이 시간이 자기에게서 비껴가게 해 달라고 기도하셨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바,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모든 일을 하실 수 있으시니, 내게서 이 잔을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내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십시오."

 

 

[연약한 인간으로 오신 예수님]

 

예루살렘 입구에 있는 겟세마네는 하나님과 대화하기 좋은 한적한 동산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거기서 땅에 엎드려 이렇게 간절히 기도드렸습니다. "아바,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모든 일을 하실 수 있으시니, 내게서 이 잔을 거두어 주십시오." 어찌나 간절히 기도하셨던지 같은 사건을 기록한 누가복음에는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방울 같이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이 잔'이란 고난의 잔이며 십자가의 잔입니다. 사람으로 오신 주님이기에 다가오는 고통 앞에서 두려워하시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래서 가능하다면 그 고난의 잔을 피할 수 있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신 것이지요.

 

이 기도 때문에 예수님께 실망하신 교우님이 계시지는 않는지요? "예수님께서 좀 더 의연한 모습을 보여주셨으면 좋았을 텐데."라는 마음이 들지는 않으십니까? 실제로 죽음을 앞두고 초연한 모습을 보여준 위인들이 역사에는 수없이 많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사형을 앞두고 제자들이 피신하라고 간청했지만 악법도 법이라면서 의연하게 독배를 마셨다지요.

 

그런데 하느님의 아들이신 우리 예수님이 십자가를 앞두고 "내 마음이 괴로워 죽을 지경"이라며 제자들에게 기도를 부탁하는 나약한 모습을 보이고 계십니다. 또한 하나님께 죽음을 면하게 해달라고 이렇게 매달리고 계십니다. 이런 예수님의 한없이 연약한 모습은 우리를 충분히 당황스럽게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렇게 연약하신 예수님이 참 좋습니다. 물 위를 걸으시는 예수님보다,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시는 예수님보다, 지금 이 기도를 드리는 예수님이 너무너무 좋습니다. "예수님도 이처럼 연약하실 때가 있었구나. 그러니 내가 연약할 때 나를 얼마나 잘 이해해 주실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예수님은 용감하고 굳세기만 한 성인군자의 모습으로 오신 것이 아니라, 이처럼 연약한 보통 사람의 모습으로 오셨네요. 그래서 저는 더욱 더 예수님이 좋고, 예수님을 따르고자 하는 용기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지금부터 27년 전인 1979년 봄, 그 때는 제가 대학 졸업반이었습니다. 학부를 마치면 신학대학원에 갈 것인지, 저의 아버지께서 권하시는 대로 경영대학원에 갈 것인지를 놓고 고민하며 기도했던 적이 있습니다. 여느 한국의 기독교인처럼 저 역시 보수적인 신앙공동체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기에 평생 복음을 전하며 사는 것보다 더 가치 있는 삶은 없어보였습니다.

 

당시에 저는 버스를 타면 버스 안에서, 강의시간이 되면 교수님이 들어오시기 전의 조각 시간을 이용해서 미친 듯이 전도에 몰두하던 열렬신자였습니다. 그러나 평신도로서 복음을 전하며 사는 삶과, 목사가 되어 하느님의 일을 직업으로 갖는 것과는 매우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목사가 되면 철저하게 예수님처럼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삶을 제가 감당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묵상하며 기도하다가 이 말씀을 만났습니다. 절망감과 두려움에 사로잡혀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시는 겟세마네의 예수님, 그 예수님이 저에게 얼마나 큰 감동과 용기를 주셨는지요. "예수님도 이렇게 약하실 때가 있었구나. 그렇다면 내가 약해질 때도, 내가 좀 잘못을 해도 크게 야단치시지는 않겠구나. 오히려 더 잘 이해하시고 더 잘 도와주시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목사의 길을 갈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갖게 되었습니다.

 

그 때 저에게 목회자의 길을 갈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아주신 분은 물 위를 걷는 기적의 예수님이 아니라, 수천 명을 먹이고 병든 자를 일으켜 세우시는 위대한 예수님이 아니라, 심히 고민하여 피땀을 흘리며 기도하시는 겟세마네의 예수님이었습니다. 저에게 예수님은 그런 분이었습니다. 우리와 똑같이 연약한 성정을 갖고 계신 예수님, 그래서 연약한 우리들을 너무도 잘 이해하시고 사랑하시는 예수님입니다.

 

살다보면 힘들 때도 있겠지요. 그 때 예수님처럼 기도해 보세요. 하나님께 투정도 부려보세요. 제가 만난 하나님은, 유창한 기도보다, 담대한 믿음의 기도보다, 비장한 헌신의 기도보다, 솔직한 기도를 좋아하시는 분이었습니다.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 뜻대로]

 

다시 겟세마네로 돌아가 보지요. 지금 우리가 겟세마네에서 만나는 예수님은 한없이 연약한 예수님, 살려달라고 부르짖는 예수님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거기서 멈추지는 않으셨습니다. 고민과 좌절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이어서 기도하십니다.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날이 밝으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셔야 할 처절한 상황이었지만, 피하고 싶고 도망가고 싶지만, 심히 고통스럽고 겁도 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원대로 하옵소서." 라고 의탁하시는 주님의 이 겟세마네 기도는, 진정 믿음의 기도가 무엇인지,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제 마음 깊이 새겨주었습니다.

 

믿음이란 무엇일까요? 하나님 믿어서 고난 없애고, 하는 일마다 잘 되고, 그래서 잘 먹고 잘 사는 것일까요? 진정한 믿음이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기 위해 기꺼이 고난을 받아들이는 것, 그러나 고난에 쓰러지지 않고 고난을 넘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고결한 삶에 도달해 가는 것이 아닐까요? 예수님은 분명히, 두 개의 선택 사이에서 갈등은 하셨습니다. 어렵고 힘들지만 하나님의 뜻을 선택할 것인가,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고난을 피해갈 것인가? 갈등은 하셨지만 주님은 결국 하나님의 뜻을 선택하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잠시 죽음으로 영원히 사는 길]

 

사순절을 보내고 있는 지금, 우리가 어떻게 해야 이 사순절을 의미 있게 보낼 수 있을까요? 사순절에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겠다며 손과 발에 못을 박고 십자가 사건을 재현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우리 자신을 쇠사슬로 묶고 못 침대에 누워 보면, 예수님께서 당하신 처절한 고통이 어느 정도였는지는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과연 그런 이벤트성 체험을 원하실까요?

 

주님께서 당하신 고난과 십자가 그리고 부활은, 기독교 신앙의 중심에 있습니다. 저에게도 주님을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제 신앙의 중심에 십자가와 부활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로 하여금 하나님 앞으로 인도한 그 십자가와 부활 신앙이 언제부터인가 저에게 부담으로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저는 교리적 대속신앙은 갖고 있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교리적 대속신앙을 십자가에 못 박지 않으면, 주님의 부활도 없고 우리들의 부활도 없으며, 허깨비에 의해 조종되는 무서운 갈등과 폭력이 우리 기독교와 지구마을의 미래를 덮게 된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한국 교회에는, 온갖 이기심과 탐욕에 젖어 살면서도, 온갖 못된 짓은 도맡아 하면서도, 예수님의 피로 구원받는다고 믿기만 하면 저절로 구원이 보장된다고 철석같이 믿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런 신앙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아무리 선하고 바르게 살아도,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움 없이 살아도, 교회에 나와서 예수님을 영접하고 주님의 피로 죄 사함을 받지 않았다면 지옥에 갈 수밖에 없다고 믿는 그런 독선적이고 배타적인 대속신앙은 이제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교리적 대속신앙은, 그렇게 믿는 사람을 교리의 노예로 만들어 자주적으로 살아갈 능력을 박탈할 뿐 아니라, 다양한 신념과 문화 속에 살아가는 이웃들의 삶과 문화를 공격하고 파괴하기에, 이제는 극복하고 넘어서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에게, 예수님께서 받으신 고난과 십자가가 의미가 있는 이유는 고난과 십자가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그 길을 선택하신데 있습니다. 아무리 힘겹고 고통스러워도 하늘 아버지의 뜻을 저버릴 수 없다는 그 선택 말입니다. 죽지 않고 살기 위해서는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비위를 거스르지 말고 적당히 타협하며 지내야 했지만, 정복자 로마의 정치체계에도 순응해야 했지만, 주님은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그건 잠시는 살아도 결국은 영원히 죽는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잠시 죽음으로 영원히 사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 선택이 저를 포함하여 주님을 따르는 많은 사람들에게 구원을 주었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주님의 그 선택이 영혼의 눈이 먼 자들의 눈을 뜨게 해주었고, 정신적 영적으로 장애를 겪으며 살았던 수많은 사람들에게 참 자유와 생명의 길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바로 그런 점에서 저는 주님의 대속을 믿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를 회피하셨다면 세상에 자유와 생명이 살아 숨 쉬는 부활의 세계가 열리지 못했을 텐데, 십자가를 마다하지 않고 기꺼이 지셨기에, 주님의 말씀과 삶이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며 부활하였던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주님의 아름답고 찬란한 삶과 말씀은 다시 살아나 세상을 뒤바꾸는 힘이 되고 생명이 되어 오늘날 우리에게 전해졌습니다. 그러므로 겟세마네 사건은 그 때 거기에서 끝난 사건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피와 땀을 흘리신 그 겟세마네는 시간과 공간을 넘어 지금 여기, 우리 앞에 다가와 오늘 이 말씀을 듣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이천 년 전, 너의 주님은 처절한 자신과의 싸움 끝에 하늘 아버지의 뜻을 선택했다. 너는 어떤 선택을 하려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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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산들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2.03.29 돌님! 그대의 고백과는 매우 다르지만, 나는 진정으로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또한 주님의 십자가 보혈이 나를 구원하였다고 이렇게 믿고 있답니다. "이건 성경과 다르기에 엉터리"라는 말 말고, 나를 비롯하여 모든 벗님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합리적인 반격을 기대하겠습니다. 만일 돌님의 주장이 옳다고 생각되면 기독교의식개혁운동 깨끗이 접겠습니다.^^
  • 작성자산들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2.03.29 그제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허병섭 목사님도 이런 예수의 십자가를 믿고 받아들이셨기에, 자신의 옛 자아를 십자가에 못박고 가난한 민중과 함께 먹고 사는 부활의 새로운 삶을 사셨습니다. 시대의 의인 또 한 분이 우리 곁을 떠나심을 애도하며...
  • 답댓글 작성자멧돼지 | 작성시간 12.03.30 이동철 (본명 이철용)씨의 작품 꼬방동네사람들 , 어둠의 자식들 속에나오는 공목사 아닙니까? 달동네(빈민굴)의 聖者라고 할 정도로 빈민들과함께 동고동락한 인물이라고 알고 있습니다.국졸학력 독종 깡패출신인 작가 이동철도 공목사에게 감화되어 공목사를 자신의 영원한스승으로 우럴어 본다고하지요.작가 이동철이도 그당시 현직 서울대학교 정치학교수와 맞붙어 이기고 국회의원까지 되었지요. 공목사 (허병섭) 이분이 김진홍목사와 동기?라든가...같이 빈민교회로출발 한사람은 정치목사? 재벌목사?로 우뚝섰지만 이분은 영원한 빈자의 정신적 지주로 자리매김했군요.연령적으로 아직 떠날때가 안되었는데 아쉽군요.삼가 명복을 빕니다.
  • 답댓글 작성자산들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2.03.30 맞습니다. <<꼬방동네 사람들>>에 나오는 공목사의 모델이 바로 허병섭 목사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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