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류상태님의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책을 놓지 못할정도로 집중해서 읽었고 연거푸 읽게 되었습니다..
책내용의 과격함과 파격적인 내용, 그리고 기독교 교리를 송두리채 흔드면서 자신만만해 하는
그 오만한 떳떳함에 놀랐습니다..
물론 대한민국 기독교가 안고있는 모순과 구조적인 병폐부문은 잘 정리했고 신앙인이라면 누구나
다 곱씹어볼만한 부문이라고 인정합니다..
대충 요약해보면 그것은 2005년 대한민국 대형교회들이 갖고있는 공통적인 교회가 갖는 기술적결함을 의미하는 것이겠지요..
책 내용은 크게 한국교회시스템의 (특히 대형교회들의) 문제점, 기독교 교리가 정당한것인가,
기독청년들에 대한 선배교역자로서의 충고, 지승호님과의 인터뷰내용 이렇게 4가지로 분류해볼수 있겠더군요..
지역교회로서 그 지역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수있는 봉사와 사역이 있는 교회의 역할과 만약 당신이 지역목회자라면 도서관을 마련해서 동네사람들에게 개방하여 신앙의 불편함없이 누구나 함께 할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교회는 참 좋은 아이디어라는것을 느꼈습니다..
맹목적인 목사의 권위와 신도들에게 강요하는 헌금과 십일조가 아니라 참된 의미의 헌금이 되야한다는 생각들 모두 십분 동의할수 있는 다시금 저희 교회와 저를 돌아볼수있는 시간을 주었던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청소년부 사역을 담당하고 있는 저에게 "깨어라 기독청년이여"라는 꼭지의 내용들은 참신해서 참 좋았습니다..
류상태님의 안식일과 십일조, 그리고 술담배, 제사와 전통문화에 대한 단상들은 저의 평상시 가졌던 그것과 거의 흡사하여 제 생각과 논리를 다시금 정리해볼수 있어 좋았습니다..
그런데..그런데 말이죠..
목회생활을 20년 이상 하셨다는 분이 성서에 대한 그런 의심을 넘어서 하나님과 종교의 의미조차 구분하지 못하는것을 보고 많이 놀라고 서글펐습니다..
서글펐던 이유는 님의 책 내용에 차라리 성서에 관한 교리에 관한 내용을 빼고 출간했으면 더 많은 신앙인들에게 호응을 얻었을것인데 수천년간 이어왔던 기독교의 교리를 내가 공부해보니 이게 아니더라..다름을 인정하자라는 식의 멋진 궤변으로 좋은 기독교비판서가 될수 있을것을 최악의 기독교서적으로 뒤바꿔놓았다는 점입니다..
외람된 말씀이지만 대광고 교목실장으로 강의석군과 함께 정의를 위해 싸웠던 당신의 멋진 모습이 이제 노점상으로 하루하루 생계를 걱정해야하는 현실적인 입장이 되고보니 어떻게든 책 내용을 이슈화 시켜서 책한권이라도 더 팔아야하는 절치부심끝에 내린 악수가 아니였냐는 안타까움입니다..
이 책을 읽으며 앞이 캄캄했습니다..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기독교를 예수를 가르치는 선생님으로 있는 학교가 아직도 많이 있다면 어쩔것인가...
그냥 솔직히 강의석군을 비호하다 학교에서 받은 상처가 너무컸고 실직을 당해서 자기파괴심리에서 될대로 되라는식으로 써내려간 글로밖에 보이지 않다고 말씀드리면 님의 표현대로 저의 비판이 이성과 분별력을 상실한것일련지 모르겠으나 나가도 너무 막나가버리셨습니다..
지금 류상태님이 보시는 사회는 학교 교목으로 안정적인 교사의 직위가 아니라 40대후반에 실직후 사회에대한 그리고 기독교에 대한 협오감이 앞을 가리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학자적양심이란것 참 웃깁니다..
얼마전 한 대학교수가 "일제의 지배는 우리에게는 더할나위없는 축복이였다"라는 글을 기고해서 사회적 지탄을 받은적이 있습니다..그분의 논리가 학자적양심이 그글을 쓰는 동력이였다고 했습니다..
신학자적 양심으로 책을 쓰셨나요..?
정말 나중에 지옥에 떨어져 고통에 울부짖는대도 양심에 꺼리낌이 없는 당신이 만난 하나님은 그런분인가요..?
성경내용을 그렇게 자의적으로 해석하게 되면 세상에 믿을 것은 자기 자신밖에 없게 됩니다..
예수는 휴머니스트였으며 사람들이 서로 잘먹고 잘살고 행복하기를 원하시는 분이라면 이제부터 주일날 교회를 갈게 아니라 친구들과 술한잔 걸치고 여행을 다니며 우정을 돈독히 하고 절에가서 몸과 마음을 수양하고 가끔은 이슬람친구들과 꾸란을 읽으며 라마단때는 메카에 가서 성지순례를 해보며 유연한 사고방식과 착한 마음씨를 기르는데 최선을 다해야겠군요..
성경도 자기고백언어이니 있는그대로 믿을게 아니라 당시 기록했던 사람들의 문학적 상상력을 예찬하며 몰몬경과 꾸란을 비교해가며 문학적 수사를 분석하는 재미도 솔솔 하겠군요..
지난주 청년부 수련회를 갖다왔습니다..
수련회 도중 부흥집회가 있었습니다..
제가 맡고있는 고2반 한영혼 영혼들에게 축복과 감사의 기도를 뜨겁게 올리며 모두 부둥켜안고 울었습니다..
자주적으로 생각하는 능력을 박탈당한 영혼의 울음이 아니라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신 소중한 이성과 분별력을 반납해서 억울한 울부짖음이 아니였습니다..
제 맘속에 살아계시며 우리모두의 영혼을 붙잡고 끝까지 함께하신다는 성령님의 말씀의 감사함과 놀라운 축복에 그만 울음바다가 되고 말았습니다..
내가 학교에 있던 직장에 있던 불의한것을 보고 참지않고 왕따를 당하더라도 결국은 함께 하신다는 주님의 목소리에 울었습니다..
한국과 미국교회에서만 기독근본주의 사상이 남아있다고 말씀하셨는데 기독순복음주의가 그렇게 나쁘고 오만하고 배타적인 것이라면 서구 유럽에서 자꾸만 줄어드는 신자수와 무신론자들..그리고 모든것을 인간본위로 생각하며 창조주인 하나님을 그저 있을법한 존재로 여기는 그런 사람들이 인간의 원형을 되찾고자하는 고결하고 순결한 운동으로 보여지나요?
최소한의 신학자적인 양심은 없으신가요?
님께서 끊임없이 주장하는 이론중에 기독교교리를 가지고 있으면 수구적이요 배타적이며 독선적이라는 주장인데 그러면 님께서 가지고 있는 다원주의 신학관은 진보적이며 개혁적인 역동적인 신학관이라는 말씀이신데..
우리가 흔히 말하는 보수와 진보 구분은 여기서는 온당치 않습니다..
왜냐하면 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안식일을 인간의 편의대로 조절하든지 제사때 절을 하든 교회가 세금을 내든지간에 기독교교리만큼은 절대 양보할수 없는 절대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절대진리를 논외로 쳐두고 교회개혁을 위해 세금을 걷는것이 좋은가 나쁜가라는 논제나 재정공개여부등의 현안을 두고 토론하고 의견을 나누는 과정에서 배타와 독선, 진보와 개혁이란 단어를 사용해야지 근본을 흔들면서 나는 개혁을 원한다고 하는게 어불성설아닌가요..
예를 들면 1+1=2 라는것이 사실인데 꼭 그것만이 사실이라고 보지말고 3과 4도 될수 있음을 인정하자고 주장한다면 수학이란과목이 왜 필요하며 어린학생들은 혼란함에 해매일것입니다..
모르겠습니다..새로운 이론이 등장하고 고차원적인 미적분을 동원해서 1+1이 결국은 3이였다는것을 A4용지 수백매를 다 써가며 증명해보일수 있다면 이제부터 1+1은 3이 되는 세상에서 모든것을 다시 시작할수 있을것입니다..
류상태님의 주장을 보면 "1+1은 3인지는 모르겠으나 하여간 2라고 주장하고 가르치는것은 지독한 배타주의요 독선이자 아집이다" 라는것과 똑같습니다..
그렇게 본다면 님의 신학관은 유일신사상이 아니라 범신론에 가깝다고 해야겠군요..범신론적 입장에서 기독교교리는 엉터리겠죠..어줍잖은 성경이론을 엇붙이느니 그냥 차라리 나는 이슬람의 수피즘같은 신비주의자라고 고백하는것이 한결 깔끔하고 쿨할텐데..
성서의 언어가 객관적진술이 아니라 고백의 언어라뇨..
요한복음 14장을 다시한번 읽어보세요..
그게 어떻게 고백의 언어라고 치부할수 있나요..예수님께서 복음에 대해 직접 말씀하신 것이 진실이 아니라 그저 신앙고백의 하나였다니..
예수님은 과장법이 심하다 못해 좌중을 웃길려고 뻥을 치셨던 분인가요..
다윗과 골리앗에서 등장하는 골리앗의 키가 성경에서 말한대로 3미터에 가까왔다는 것을 두고 성경을 믿어야하나라는 의구심을 가지신 류상태님같은 분이라면 예수가 동정녀 마리아에게 태어난것을 어떻게 믿을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갖는게 지극히 당연하리라 봅니다..
또한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이 될수 있으며 예수가 자신이 하나님임을 말하고 제자들이 고백한것도 지들끼리 과대포장해서 한인간을 신으로 승격화시켰다는..머 그런 연장선상에서 볼수 있겠군요..
또한 죽은 사람이 어떻게 사흘뒤에 부활하며 제자들에게 모습을 보였겠으며 예수가 기적을 일으켰다는 각종 기적들...몹쓸질병을 손을 만지기만 해도 고쳤다는 성경의 기록 역시 그렇게 이해하시는 분이시군요..
이제 류상태님의 생각을 뚜렷이 알수 있을듯 합니다..
누구나 예수같은 사람이 될수 있으며 차기 예수후보는 교회를 다니지 않더라도 열심히 사회활동하는 시민개혁연대같은 시민단체에서 나올것이며 그 사람을 추종하는 사람들 역시 구원을 받고 옆에서 내조를 잘하면 신이 될수도 있다라는..
단군신화처럼 창세기역시 천지창조에 관한 고대원시인들의 설화가 창조신화가 된것처럼 신화라는것을 기록자의 신앙고백으로 얼마든지 미화시킬수 있다는 사실을..
지독히 독선적이며 배타적이고 수구적인 아집으로 똘똘뭉친 어투로 그러나 당당히 요구합니다..
많이 회개 하십시오..
최소한 님을 통해서 기독교를 예수를 접하게 될 많은 청소년들과 청년들에게 그들을 잘못된 길로 인도한 책임은 세상의 그 어떤 죄보다 무겁다는것을 아시길 바랍니다..
한국교회가 예수를 배반했다면 배반당한 예수에게 최후의 결정타로 비수를 꽂은 사람은 다름아닌 당신같은 사람입니다..
책을 놓지 못할정도로 집중해서 읽었고 연거푸 읽게 되었습니다..
책내용의 과격함과 파격적인 내용, 그리고 기독교 교리를 송두리채 흔드면서 자신만만해 하는
그 오만한 떳떳함에 놀랐습니다..
물론 대한민국 기독교가 안고있는 모순과 구조적인 병폐부문은 잘 정리했고 신앙인이라면 누구나
다 곱씹어볼만한 부문이라고 인정합니다..
대충 요약해보면 그것은 2005년 대한민국 대형교회들이 갖고있는 공통적인 교회가 갖는 기술적결함을 의미하는 것이겠지요..
책 내용은 크게 한국교회시스템의 (특히 대형교회들의) 문제점, 기독교 교리가 정당한것인가,
기독청년들에 대한 선배교역자로서의 충고, 지승호님과의 인터뷰내용 이렇게 4가지로 분류해볼수 있겠더군요..
지역교회로서 그 지역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수있는 봉사와 사역이 있는 교회의 역할과 만약 당신이 지역목회자라면 도서관을 마련해서 동네사람들에게 개방하여 신앙의 불편함없이 누구나 함께 할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교회는 참 좋은 아이디어라는것을 느꼈습니다..
맹목적인 목사의 권위와 신도들에게 강요하는 헌금과 십일조가 아니라 참된 의미의 헌금이 되야한다는 생각들 모두 십분 동의할수 있는 다시금 저희 교회와 저를 돌아볼수있는 시간을 주었던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청소년부 사역을 담당하고 있는 저에게 "깨어라 기독청년이여"라는 꼭지의 내용들은 참신해서 참 좋았습니다..
류상태님의 안식일과 십일조, 그리고 술담배, 제사와 전통문화에 대한 단상들은 저의 평상시 가졌던 그것과 거의 흡사하여 제 생각과 논리를 다시금 정리해볼수 있어 좋았습니다..
그런데..그런데 말이죠..
목회생활을 20년 이상 하셨다는 분이 성서에 대한 그런 의심을 넘어서 하나님과 종교의 의미조차 구분하지 못하는것을 보고 많이 놀라고 서글펐습니다..
서글펐던 이유는 님의 책 내용에 차라리 성서에 관한 교리에 관한 내용을 빼고 출간했으면 더 많은 신앙인들에게 호응을 얻었을것인데 수천년간 이어왔던 기독교의 교리를 내가 공부해보니 이게 아니더라..다름을 인정하자라는 식의 멋진 궤변으로 좋은 기독교비판서가 될수 있을것을 최악의 기독교서적으로 뒤바꿔놓았다는 점입니다..
외람된 말씀이지만 대광고 교목실장으로 강의석군과 함께 정의를 위해 싸웠던 당신의 멋진 모습이 이제 노점상으로 하루하루 생계를 걱정해야하는 현실적인 입장이 되고보니 어떻게든 책 내용을 이슈화 시켜서 책한권이라도 더 팔아야하는 절치부심끝에 내린 악수가 아니였냐는 안타까움입니다..
이 책을 읽으며 앞이 캄캄했습니다..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기독교를 예수를 가르치는 선생님으로 있는 학교가 아직도 많이 있다면 어쩔것인가...
그냥 솔직히 강의석군을 비호하다 학교에서 받은 상처가 너무컸고 실직을 당해서 자기파괴심리에서 될대로 되라는식으로 써내려간 글로밖에 보이지 않다고 말씀드리면 님의 표현대로 저의 비판이 이성과 분별력을 상실한것일련지 모르겠으나 나가도 너무 막나가버리셨습니다..
지금 류상태님이 보시는 사회는 학교 교목으로 안정적인 교사의 직위가 아니라 40대후반에 실직후 사회에대한 그리고 기독교에 대한 협오감이 앞을 가리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학자적양심이란것 참 웃깁니다..
얼마전 한 대학교수가 "일제의 지배는 우리에게는 더할나위없는 축복이였다"라는 글을 기고해서 사회적 지탄을 받은적이 있습니다..그분의 논리가 학자적양심이 그글을 쓰는 동력이였다고 했습니다..
신학자적 양심으로 책을 쓰셨나요..?
정말 나중에 지옥에 떨어져 고통에 울부짖는대도 양심에 꺼리낌이 없는 당신이 만난 하나님은 그런분인가요..?
성경내용을 그렇게 자의적으로 해석하게 되면 세상에 믿을 것은 자기 자신밖에 없게 됩니다..
예수는 휴머니스트였으며 사람들이 서로 잘먹고 잘살고 행복하기를 원하시는 분이라면 이제부터 주일날 교회를 갈게 아니라 친구들과 술한잔 걸치고 여행을 다니며 우정을 돈독히 하고 절에가서 몸과 마음을 수양하고 가끔은 이슬람친구들과 꾸란을 읽으며 라마단때는 메카에 가서 성지순례를 해보며 유연한 사고방식과 착한 마음씨를 기르는데 최선을 다해야겠군요..
성경도 자기고백언어이니 있는그대로 믿을게 아니라 당시 기록했던 사람들의 문학적 상상력을 예찬하며 몰몬경과 꾸란을 비교해가며 문학적 수사를 분석하는 재미도 솔솔 하겠군요..
지난주 청년부 수련회를 갖다왔습니다..
수련회 도중 부흥집회가 있었습니다..
제가 맡고있는 고2반 한영혼 영혼들에게 축복과 감사의 기도를 뜨겁게 올리며 모두 부둥켜안고 울었습니다..
자주적으로 생각하는 능력을 박탈당한 영혼의 울음이 아니라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신 소중한 이성과 분별력을 반납해서 억울한 울부짖음이 아니였습니다..
제 맘속에 살아계시며 우리모두의 영혼을 붙잡고 끝까지 함께하신다는 성령님의 말씀의 감사함과 놀라운 축복에 그만 울음바다가 되고 말았습니다..
내가 학교에 있던 직장에 있던 불의한것을 보고 참지않고 왕따를 당하더라도 결국은 함께 하신다는 주님의 목소리에 울었습니다..
한국과 미국교회에서만 기독근본주의 사상이 남아있다고 말씀하셨는데 기독순복음주의가 그렇게 나쁘고 오만하고 배타적인 것이라면 서구 유럽에서 자꾸만 줄어드는 신자수와 무신론자들..그리고 모든것을 인간본위로 생각하며 창조주인 하나님을 그저 있을법한 존재로 여기는 그런 사람들이 인간의 원형을 되찾고자하는 고결하고 순결한 운동으로 보여지나요?
최소한의 신학자적인 양심은 없으신가요?
님께서 끊임없이 주장하는 이론중에 기독교교리를 가지고 있으면 수구적이요 배타적이며 독선적이라는 주장인데 그러면 님께서 가지고 있는 다원주의 신학관은 진보적이며 개혁적인 역동적인 신학관이라는 말씀이신데..
우리가 흔히 말하는 보수와 진보 구분은 여기서는 온당치 않습니다..
왜냐하면 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안식일을 인간의 편의대로 조절하든지 제사때 절을 하든 교회가 세금을 내든지간에 기독교교리만큼은 절대 양보할수 없는 절대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절대진리를 논외로 쳐두고 교회개혁을 위해 세금을 걷는것이 좋은가 나쁜가라는 논제나 재정공개여부등의 현안을 두고 토론하고 의견을 나누는 과정에서 배타와 독선, 진보와 개혁이란 단어를 사용해야지 근본을 흔들면서 나는 개혁을 원한다고 하는게 어불성설아닌가요..
예를 들면 1+1=2 라는것이 사실인데 꼭 그것만이 사실이라고 보지말고 3과 4도 될수 있음을 인정하자고 주장한다면 수학이란과목이 왜 필요하며 어린학생들은 혼란함에 해매일것입니다..
모르겠습니다..새로운 이론이 등장하고 고차원적인 미적분을 동원해서 1+1이 결국은 3이였다는것을 A4용지 수백매를 다 써가며 증명해보일수 있다면 이제부터 1+1은 3이 되는 세상에서 모든것을 다시 시작할수 있을것입니다..
류상태님의 주장을 보면 "1+1은 3인지는 모르겠으나 하여간 2라고 주장하고 가르치는것은 지독한 배타주의요 독선이자 아집이다" 라는것과 똑같습니다..
그렇게 본다면 님의 신학관은 유일신사상이 아니라 범신론에 가깝다고 해야겠군요..범신론적 입장에서 기독교교리는 엉터리겠죠..어줍잖은 성경이론을 엇붙이느니 그냥 차라리 나는 이슬람의 수피즘같은 신비주의자라고 고백하는것이 한결 깔끔하고 쿨할텐데..
성서의 언어가 객관적진술이 아니라 고백의 언어라뇨..
요한복음 14장을 다시한번 읽어보세요..
그게 어떻게 고백의 언어라고 치부할수 있나요..예수님께서 복음에 대해 직접 말씀하신 것이 진실이 아니라 그저 신앙고백의 하나였다니..
예수님은 과장법이 심하다 못해 좌중을 웃길려고 뻥을 치셨던 분인가요..
다윗과 골리앗에서 등장하는 골리앗의 키가 성경에서 말한대로 3미터에 가까왔다는 것을 두고 성경을 믿어야하나라는 의구심을 가지신 류상태님같은 분이라면 예수가 동정녀 마리아에게 태어난것을 어떻게 믿을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갖는게 지극히 당연하리라 봅니다..
또한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이 될수 있으며 예수가 자신이 하나님임을 말하고 제자들이 고백한것도 지들끼리 과대포장해서 한인간을 신으로 승격화시켰다는..머 그런 연장선상에서 볼수 있겠군요..
또한 죽은 사람이 어떻게 사흘뒤에 부활하며 제자들에게 모습을 보였겠으며 예수가 기적을 일으켰다는 각종 기적들...몹쓸질병을 손을 만지기만 해도 고쳤다는 성경의 기록 역시 그렇게 이해하시는 분이시군요..
이제 류상태님의 생각을 뚜렷이 알수 있을듯 합니다..
누구나 예수같은 사람이 될수 있으며 차기 예수후보는 교회를 다니지 않더라도 열심히 사회활동하는 시민개혁연대같은 시민단체에서 나올것이며 그 사람을 추종하는 사람들 역시 구원을 받고 옆에서 내조를 잘하면 신이 될수도 있다라는..
단군신화처럼 창세기역시 천지창조에 관한 고대원시인들의 설화가 창조신화가 된것처럼 신화라는것을 기록자의 신앙고백으로 얼마든지 미화시킬수 있다는 사실을..
지독히 독선적이며 배타적이고 수구적인 아집으로 똘똘뭉친 어투로 그러나 당당히 요구합니다..
많이 회개 하십시오..
최소한 님을 통해서 기독교를 예수를 접하게 될 많은 청소년들과 청년들에게 그들을 잘못된 길로 인도한 책임은 세상의 그 어떤 죄보다 무겁다는것을 아시길 바랍니다..
한국교회가 예수를 배반했다면 배반당한 예수에게 최후의 결정타로 비수를 꽂은 사람은 다름아닌 당신같은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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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달달이 작성시간 06.03.26 Gets님! 도서관이나 서점에 가서 "찬란한 허구"라는 도서를 구해서 읽어보세요. 글구 류상태님의 말이 맞아요. 예수의 전력투구하는 사랑(하느님사랑+이웃사랑)외에는 제자들과 후세 신학자들이 창조해낸 것들입니다. 그러한 사랑을 하는데도 지옥에 가라한다면 즐겁게 갈 용의가 있습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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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faithcom 작성시간 06.04.20 소위 열린 사람들은 소위 근본주의자들에게만 닫힌 겁니까? 그쪽으로도 여세요. 그래야 열린 거죠. 글 쓴 분도 오해한 부분이 없지 않지만 그와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이 분의 글과 그 속에 담긴 마음을 오해하고 있네요. 그러면서 극단적인 언어로 '근본주의'라고 단정짓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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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눈깔사탕 작성시간 07.06.05 관용할수 없는 유일한건 불관용이라 하죠? 개신교 근본주의 교리는 불관용 그 자체인건 아실텐데요.. 예수님이 왜 유독 바리새인들에게는 관용을 베풀지 않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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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인샬라 작성시간 06.05.30 밀밭사이로 지나다 제자들이 배가 고파 밀을 따 먹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안식일날 했으는 안되는 일이라고 바난하지만 우리의 예수그리스도는 오히려 제자를 옹호합니다. 그러면서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는것이 아니요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다고 말씀과 아울러 인자가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하십니다. 밀을 따 먹는 행위는 율법과 전통과 이스라엘의 가치를 떨어 뜨리는 행위이며 위배되는 사건이지만 예수그리스도는 사람이 중요하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는 예수는 없고 온통 교리만 나와 있습니다. 이해와 용서가 필요할것 같은 교회가 오히려 교리라는 명목아래 죄인을 만들어 버립니다. ......많이 생각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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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알차게 작성시간 06.08.29 get라는 사람을 포함한 모든 기독교 근본주의자가(예수천국 불신지옥을 믿는 사람이니)알아야 할 것....서로 사랑을 실천하라는 예수가 과연 나를 믿지 않는다고 지옥에 보낸다는 말을 했을까? 또 하나는 만일 천국과 지옥이 있다고 해도 인간의 천국,지옥행을 판단하시는 것은 창조주 하느님이시지 인간이 자기 주관적인 선입견대로 저 사람은 예수를 믿지 않기 때문에 지옥간다고 인간이 스스로 판단하는 것 자체가 하느님꼐 대한 오만함...감히 인간 따위가 창조주 하느님을 제쳐두고 마치 자기가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듯이 어떻게 예수를 믿지 않는다고 지옥간다고 남을 판단한다는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