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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복음서

기도외에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다

작성자이동복|작성시간11.05.19|조회수1,490 목록 댓글 5

기도외에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다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막 9:29)


많은 교회나 목회자들이 이 말씀을 참으로 다양하게 이해하고 활용하는데 대해 참으로 놀라움을 금치 못합니다. 대부분의 교회들이 이해하는 이 본문은 ‘기도만 하면 안될 것이 없다’는 식의 메시지가 대부분입니다. 게다가 이 말씀의 바로 앞부분이 경련을 일으키는 귀신(사실은 더러운 영)들린 아이를 쫒아내는가 못하는가의 문제를 가지고 제자들이 예수께 와서 왜 예수님은 하신 일(더러운 영, 마귀를 쫒아내신 일)을 제자들 자신은 못했는지에 대해 대답하신 말씀이 바로 막 9:29이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이해하는 이 본문이 기도하면 귀신도 나가고, 병도 고치고, 기적적인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진다는 말씀으로 하신 것이라고 이해하는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에는 사실 쉽사리 알아차리기 힘든 내면적인 예수님만의 의도가 있으셨습니다. 게다가 그 의도는 비밀리에 가려져 알기가 어렵다든지, 특별한 계시를 통해 알게 되는 그러한 비밀이 아닙니다. 다만 성경의 말씀을 면밀히 연구해 보면 누구나 알게 될 수 있는 그런 말씀의 의도라는 점에서 너무나 많은 목회자들과 교회들이 원어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연구하거나 면밀히 조사해 보지 않았다는 말이 됩니다. 교회를 오래 다녔다는 사람들, 설교를 하는 목회자들조차 이 말씀의 의도를 피상적으로 이해하며 가르치는 것을 보면서 참으로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너무나 많은 복음서에서 기록된 예수님의 말씀을 문자그대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예를 들면 “무화과 나무의 저주, 믿음이 있으면 산을 옮길 것이라는 것, 믿고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받으리라, 믿는 자들에게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등이 그 대표적인 것들입니다. 그래서 오늘의 본문의 해석이 예수님의 말씀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해 이해의 바른 방법과 해석의 모형이 될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마가복음 9장 앞부분에서부터 이해를 요구합니다. 이 본문은 공관복음에서 함께 다루어져 기록이 되기 때문에 반드시 공관복음을 함께 보는 것도 필수적입니다. 우선 마가복음의 처음부분은 변화산의 이야기가 기록됩니다. 그곳에서 세 명의 제자들만이 동참을 하였는데, 그들은 마태, 마가복음에 의하면 잠을 잤습니다. 예수님이 두 명의 선지자 (모세와 엘리야)를 만나고 있었을 때 자고 있다가 눈부신 광경을 보고 깨었던 것같습니다. 두 명의 선지자가 예수님과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을까요? 그들은 한번도 만나보지 않았던 그 선지자들이 모세와 엘리야라는 것을 어찌 알았을까? 그것은 분명 그들의 대화를 듣고 알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무슨 내용을 나누었는지에 대해서는 누가만이 언급을 하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별세’(세상을 떠나심, 죽으심)라는 것이었으며 누가는 단지 그것을 십자가에 죽으심이라고 표현하지 않고 ‘승천할 기약이 가까이 왔다’(눅 9:51)고 쓰고 있습니다.


그 사건이 있고나서 산에서 내려와 처음으로 발생한 사건이 바로 그 더러운 영에 사로잡힌 소년을 고쳐 달라고 그 아이의 부모가 아이를 제자들에게 데리고 온 것입니다. 이제 문제는 예수님의 대답으로 말씀하신 내용이 두 제자와 마가의 내용이 매우 다르다는 것입니다. 누가는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너희를 참으리요 네 아들을 이리로 데리고 오라 하시니” 라고 기록되었습니다.

마태는 누가의 내용에 다음과 같은 내용을 첨가합니다. 마가와 마찬가지로 제자들이 질문합니다. “이 때에 제자들이 조용히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우리는 어찌하여 쫒아내지 못하였나이까” (마 17:19)

이 질문에 대해 마태복음은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마 17:20) 마가복음의 기록은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막 9:29)였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여기서 생각을 해야 하는 것은 마가복음에 나와 있는 이 본문의 내용은 다른 두 복음서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므로 비교하여 대답을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세 복음서에서 이 더러운 귀신을 쫒아내는 사건에서 주님의 말씀의 의도는 거의 분명해 졌습니다. 믿음의 문제입니다. 능력의 문제가 아닙니다. 막 9:29절을 능력의 문제로 접근하면 이미 서두에 말씀드린 그러한 해석을 내리기 쉽습니다. 기도만 하면 무슨 일이라도 이루어진다는 식의 해석말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이 말을 하신 것은 지금 제자들과 이 아이의 아버지의 믿음이 적음을 꾸짖고 계시며 믿음이 있다면 어떤 일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주님이 “어떤 일”로 예를 든 것은 산을 명해 옮겨지라는 명령을 해도 된다는 것이며 못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문자대로는 우리가 어떤 일도 믿음이 있다면 할 수 있다는 뜻이 되겠지요. 그러나 주님의 마음속에 있는 어떤 일은 무엇이겠습니까? 주님은 하나님의 뜻만을 위해 살고 하나님의 영광과 그 나라를 위한 것만을 생각하시고 그것을 위해 죽으셨습니다. 따라서 주님이 의도하시는 어떤 일이란 하나님의 나라와 의와 영광에 국한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막 9:29의 “이런 류”라는 말의 상황은 바로 더러운 영, 마귀를 쫒아내는 것이었습니다. 마귀와 사탄은 하나님의 나라와 정면으로 도전하는 대상들입니다. 이들이 제거되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다는 증거입니다. 따라서 막 9:29절의 말씀은 기도를 통해 바로 그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하며, 마귀와 사탄의 권세가 제어된다는 의미로만 해석을 해야 합니다.


만일에 이 말씀을 (예수님의 의도가 아닌) 우리의 일생, 일상생활의 문제 해결에 적용한다고 하면 예수님의 진리되신 말씀을 우리의 임의대로 사용하는 것밖에 더되겠습니까! 그것은 왕이신 하나님의 왕명을 신하나 하인들이 제멋대로 굴려 해석해 적용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위험하고 어처구니 없는, 중죄에 해당하는 것이 되어버립니다. 항상 제가 강조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의 일차 독자, 그리고 처음 그 말씀을 하신 분의 의도와 배경, 상황을 이해하지 않고 문자대로 활용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용, 도용, 악용하는 것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이차 독자인 우리들과 오늘날의 교회들이 적용할 때는 이 말씀의 원래의 목적대로 하나님의 나라와 믿음, 그리고 사탄의 세력의 제압에 우리의 기도를 하라는 말씀으로 적용해야 합니다. 기도하면 이 땅의 어떤 일, 우리가 원하는 어떤 것들이 이루어지거나 얻게 될 것이라는 인간적이고 비성서적인 해석은 금해야 합니다. 근본적으로 기도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거나 성취하기 위해 하는 주술이나 강청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과 섭리와 믿음을 알고 바른 삶을 살기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이 본문에서 제자들이 더러운 귀신을 쫒아내지 못한 이유는 믿음이 적은 탓입니다. 이 믿음은 자신의 삶과 행복을 위한 인간적인 믿음을 의미하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믿음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결국 예수님의 책망에서 나타난 것처럼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투쟁과 기도가 적어질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기독교는 이 세상의 환상이나 부푼 꿈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향한 도전과 투쟁입니다. 결국 이 본문의 결론인 막 9:29절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일과 사역에 있어 기도는 필수적이라는 주님의 말씀이 그 의도입니다. 기독교는 이 땅의 삶의 현실을 목표로 하지 않습니다. 영적인 투쟁과 영적인 생명에 관한 것임을 이 사건에서 여실히 드러내 보여 주셨습니다. 주님의 의도를 오해하는 일이 없게 성경을 이해하고 보고 연구하는 우리의 최대의 관심사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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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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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배완호 | 작성시간 11.05.19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향해 진리의 허리띠, 의의 흉배, 평안의 신발, 믿음의 방패, 구원의 투구, 성령의 검을 가지고 도전과 투쟁을 멈추지 않겠습니다. 승리하세요. 샬롬!
  • 작성자김반석 | 작성시간 11.05.20 그럼 지금 세상에 공중권세 잡은 사탄을 제어할 수 있는 것은 믿음의 기도란 말인데...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 확장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 사탄박멸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기도해야 하는데... 기독교가 하나님 나라를 향한 도전과 투쟁이라면 택함 받고 사명 받은 나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어떤 도전과 투쟁의 삶을 실천하며 살 것인지 고민이 뵙니다. 이번 마지막 특강의 주제처럼 전통 속에서 살것인가, 진리를 추구하며 진리 때문에 살것인가?!!!도 고민 됩니다. ^^
  • 작성자이동복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1.05.20 고민을 하지 않고 현실에 안주한다면 이 세상과 풍속을 따르는 자들과 연합하기가 쉬울 겁니다. 진리는 하나뿐이며,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많은 생각과 기도를 해야 겠지요. 무엇보다 성경연구가 중요하지요.
  • 작성자박진한(싱싱렙) | 작성시간 11.05.20 말 꼬리라고 웃지 마세요...ㅎㅎ
    목사님의 결론 부분에서... 제자들이 더러운 귀신을 쫒아내지 못한 이유로는 이라고 적으시면서 기록하신 내용중에 제자들이 귀신을 쫒아 내지 못한 이유중 변화산의 경험으로 마음이 흐트러져 있었다 라고 하셨는데.. 그것은 아닌것 같아요... 왜냐구요... 변화산에 올라간 제자는 예수님과 함께 내려왔고, 그때 산 밑에 있던 제자들이 귀신을 쫓아내지 못해 안절부절하고 있던 상황이었거든요... 그리고 그것을 본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며 귀신을 쫓아내신 것이 아닌가요...ㅎㅎ
  • 답댓글 작성자이동복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1.05.21 전도사님의 관찰이 맞습니다. 그 점은 충분히 맞게 보신 것입니다. 제 의도는 변화산에 갔다 온 제자들이 이 상황에서 나머지 제자들과 다를 바는 없었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들의 입장에서 그러한 이유가 가능할 것이라는 점을 쓴 것인데, 그 부분을 생략하는 것이 더 바를 것 같아 이후로는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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