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서상으로 4호 전차를 설명할 순서지만 이번 글이 아니면 북아프리카 전역에 대해서 설명할 기회를 타이밍상 놓치게 될 것 같아서 오늘은 북아프리카 전역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북아프리카 전역에서 투입된 독일 3호 전차에 탑승하고 있는 이태리 장교와 기갑병들)
(아프리카 군단을 소재로 한 디오라마)
더 얘기가 전개되기 전에 몇가지 용어에 대한 올바른 개념 정리를 좀 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네요. 모두 아실거라 생각됩니다만 그래도 노파심에.....
우선 "추축국"이라 함은 대전 초기 히틀러와 무솔리니라는 전무후무한 끔찍한 독재자들의 결탁으로 만들어진 동맹국 관계를 의미합니다. 사실 "추축"(Axis)라 함은 독일과 이태리를 두축으로 권련이 집중되어 전유럽과 소련을 포함한 인접 대륙을 지배한다는 야욕에서 시작된 관계입니다. 후에 히로히토 일본왕과 군부의 망상에서 시작된 일본 제국주의와도 연결되어 독일-이태리-일본의 동맹을 가리켜 주축국이라 일컫게 되며, 이들의 야욕을 분쇄하기 위해 모인 연합국들의 상대되는 의미가 됩니다.
(유럽 대륙과 북아프리카 전역을 불바다로 만들었던 장본인들,
히틀러와 무솔리니.... 사실 히틀러는 이태리의 무능한 독재자
무솔리니를 애시당초 그렇게 신뢰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북아프리카 전역"이라 함은 1940년 7월부터 북아프리카 지역에서 벌어진 영연방 연합군과 추축국(독일-이태리)의 전쟁이 발발한 지역을 의미합니다. 이 북아프리카 전쟁에서 정작 시작을 했던 이태리는 무능함으로 얼마 안되어 주연에서 밀려나게 되고 롬멜이 지휘하는 독일군이 본격적으로 참전하게 되자 초반에 롬멜은 "사막의 여우"라는 별명을 얻으면서 역사에 길이 남을 승리를 기록하게 되지만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영연방 연합군의 맹장 몽고메리 장군과 앨 알라메인 2차 전투에서 결전을 치룬 후에 패배하게 되면서 1944년 자살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끝없는 추락을 시작하게 됩니다.
(2차대전 통털어 가장 뛰어난 전략가이며 맹장이었던 롬멜은 미국의 조지 패튼, 영국의 몽고메리와 함께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전설을 만들게 됩니다. 하지만 북아프리카 전역은 그에게 영광을 안겨준 동시에
그가 파멸에 이르게 된 불행의 시작이 된 곳이기도 합니다.)
무솔리니의 야망으로 시작된 북아프리카 전쟁
1940년 6월 프랑스 점령에 성공한 히틀러의 오직 두가지 관심사는 서쪽으로 영국 본토 정복이요, 동쪽으로는 광활한 곡창지대와 광물 자원을 보유한 스탈린의 소련을 정복한다는 목표였습니다. 이런 와중에 예상보다 너무 쉽게 프랑스와 폴란드를 점령하고 나니 조그만 섬나라 영국은 금방이라도 히틀러의 손아귀에 들어올 것처럼 보였습니다. 무솔리니는 승승장구하는 히틀러를 보면서 이대로 앉아있다가는 자기가 눈독 드리고 있던 영국 식민지였던 이집트마저도 히틀러의 영국 정복과 함께 독일의 영토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사실 히틀러가 유럽 대륙을 정복하는 것처럼 중동 아프리카 대륙은 자기 차지가 될 것이라는 망상을 하고 있었고 히틀러의 성공을 보면서 자신도 그만 못할 이유가 없다는 확신을 갖게 됩니다.
(독소전쟁 중 소련군에게 수류탄을 던지는 독일 보병)
1940년 7월부터 무솔리니는 자신이 북아프리카군 사령관으로 임명한 로돌포 그라치아니 원수를 리비아로 보내고 이집트에 주둔하고 있는 영국군을 몰아내고 이집트를 손아귀에 넣으라고 독촉하게 됩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라치아니 원수는 히틀러 휘하에 명장들처럼 뛰어난 전략가도 못되었고 무능하기까지 한데다가 도무지 의욕이 부족한 인물이었습니다. 하지만 무솔리니의 성화에 결국 이집트로 진격하게 되는데 독일군의 전격전과 같은 날카로운 공격이 아니라 느릿느릿 굼뜬 공격을 진행하다가 공격을 시작한지 3개월 정도 지난 9월에 이집트 국경에서 130km 전방까지 전진한 후에 돌연 공격을 멈추고 정지합니다. 이유는 무솔리니의 막무가내의 성화로 공격은 시작했지만 원활하지 못한 보급 물자의 공급이 차질을 빚은 내부 요인이었습니다.
(리비아 주둔 이태리 사령관 로돌포
그리치아니 원수, 무능한 이태리 군의
상징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
당시 영국 본토가 독일에 의해서 무참히 폭격을 당하면서 2차대전 최대 규모의 공중전으로 기록된 "영국 본토 공중전"(Battle of Britain)이 시작되어 이집트의 영국군들은 본국으로부터 제대로 지원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태리 군이 알아서 공격을 멈춰준 것이 너무나 고마운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이집트 주둔군 사령관이었던 웨이벌 아치볼트 장군은 금쪽 같이 주어진 시간을 치밀한 반격 작전을 수립하고 전열을 가다듬는데 사용하게 되는데 1940년 10월이 넘어가자 영국 본토에서도 독일과 치룬 대규모 공중전에서 승리를 거두게 되자 비로서 이집트 주둔군에게 보급 지원이 어느 정도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독일의 북아프리카 전역 참전
(영국 본토 공중전(1940.7.~10.) : 영국 상공에서 벌어진 영국 공군의 스핏파이어,
허리케인 전투기들과 독일의 메서슈미트 전투기의 치열한 공중전은 영국 공군의
승리로 끝을 맺게 되었지만 독일 폭격기의 런던을 포함한 영국 주요 도시에 대한
공습으로 엄청난 사상자와 재산 피해가 발생하게 됩니다. 하지만 영국의 승리는
히틀러가 영국 본토 점령의 야욕을 접게 되는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게다가 1940년 11월에 히틀러를 깜짝 놀라게 하는 사건이 터지게 되는데 바로 영국 해군이 함재기를 동원하여 이태리 해군의 모항이었던 타란토 항을 공습하여 3척의 군함을 침몰시키는 성공을 거둡니다. 기가 막힌 것은 이 거대란 전함들을 침몰시킨 함재기라는 것이 소드피시라고 불리는 구형 복엽기에 적재된 어뢰였고 그나마 12대의 복엽기들이 2회에 걸쳐 공격을 실시하게 되는데 이공격으로 이런 전과를 올렸다는 것입니다. 히틀러는 지중해는 이태리 해군 덕분에 전혀 걱정하지 않고 유럽 대륙의 지상전에 집중할 수 있었는데 믿었던 이태리 해군이 이런 어이없는 공격을 당하자 이 멍청한 무솔리니의 군대를 믿고 지중해를 맡겼다가는 남부 유럽으로 연합군의 언제 상륙하여 프랑스를 해방시키려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타란토 항 공습으로 대성공을 거둔 영국의 소드피시(swordfish) 복엽기. 바로 이 복엽기는 타란토 공습 5개월 후인
1941년 5월 독일이 자랑하는 초거대 전함 비스마르크호를 격침시키는 작전에 주역으로 또 한번 엄청난 전공을 올리게
됩니다.)
게다가 새해가 밝아서 1941년 1월 북아프리카에서는 영국 공군의 폭격과 지상군의 신속한 공격이 진행되면서 수많은 이태리군들을이 영국군의 포로가 되었고 엄청난 대포와 장비들이 영국군 수중으로 넘어가면서 이태리군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후퇴의 후퇴를 거듭하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이렇게 불과 반년도 안되는 기간동안 무솔리니의 이태리군은 이집트 침공의 결과로 영국군에게 무참히 패배하고 쫓겨가는 형국이 되어버리는 와중에 강 건너 불구경을 하던 히틀러의 생각을 바꾸고 북아프리카 지역에 독일군의 참전을 결정하게 됩니다.
히틀러가 가장 아끼는 장군들 중에 하나였던 롬멜은 북아프리카 전선에 급파되었고 여기서부터 "사막의 여우"의 전설은 시작하게 됩니다. (다음 글에서 롬멜의 눈부신 승리와 숙적 몽고메리 장군과의 결전인 앨 알라메인 2차 전투까지 소개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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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키위맨(강신금) 작성시간 12.12.07 김준만님의 글은 다른 곳에 모아 두었으면 좋겠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따블오남편(김준만)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2.12.07 아무 곳이든 상관없습니다. 그저 재밌게 읽어주시는 고수님들께 감사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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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우삭(송형준) 작성시간 12.12.07 정말 따로 한곳에 모아 한꺼번에 읽어볼 수 있음 좋을것 같네요^^ 재밌게 잘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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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동호아빠(이홍갑) 작성시간 12.12.15 저는 지금 거꾸로 읽어가고 있습니다. ^^ 다음번에는 다시 정독을 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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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따블오남편(김준만)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2.12.15 허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