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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차대전 이야기

노르망디 상륙 작전 - 제 3 부 : 오마하 해변 학살과 "히틀러의 전기톱"

작성자따블오남편(김준만)|작성시간13.05.24|조회수10,661 목록 댓글 5

노르망디 상륙 작전의 이야기를 마무리하면서 오마하 해변에서 벌어진 끔찍한 학살의 현장과 하루에 3,000명이 넘는 미군 병사들의 생명을 앗아간 주범인 독일군의 유명한 기관총 MG 42(일명 "히틀러의 전기톱")에 대한 언급을 안하면 "앙꼬 바진 호빵"과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오늘 얘기를 마치려고 합니다.

 

(오마하 해변에 도착한 상륙정에서 뛰어내린 미군 병사들은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자신의 허리까지 차오르는 수심에서

둔하게 움직이며 앞으로 나아가야 했는데 독일군 초소에서 쏟아지는 기관총 사격에 의해서 육지에 제대로 올라오지도 못하고

그대로 벌집이 되어버린 수많은 미군 시체들이 바다물 속에 쳐박히게 됩니다.)

 

이미 설명했 듯이 "오마하"는 노르망디 해변을 연합군이 편의 상 5개의 구역으로 나누어서 부른 암호명 중에 하나입니다. 하지만 전쟁 후에 "오마하"는 그 당시에 참전했던 수많은 연합군과 독일군의 생존자들에게 "끔찍한 지옥"으로 기억되게 됩니다. 노르망디 해안에 서쪽에 위치한 고작 8km 길이의 해변에서 3,000명이 넘는 미군들이 독일군 방어병력의 사격으로 사상자가 되었고 1,000명이 넘는 독일군들도 결국 상륙에 성공한 미군의 공격에 전사하였습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성공한 직후 해변에 모아놓은 연합군 전사자의 시시들)

 

1944년 6월 6일 아침 6시 45분 경에 미육군 1사단과 29사단 병력은 레인저 9개 중대와 함께 미국과 영국 해군의 함포 지원을 받으면서 상륙 작전을 시작합니다. 1사단은 잘 훈련된 정예 병력이었던 반면 29사단은 제대로 훈련 받지 못한 신병들로 채워진 상태였습니다. 상륙 지역의 동쪽 절반은 1사단이 맡았고, 29사단은 서쪽 나머지 해안을 맡게 되었는데 아침에 시작된 최초의 공격은 미군이 애초에 예측했던 상황과는 너무나도 거리가 멀었습니다.

 

해안으로 접근하던 상륙정들 중에서 10대는 거친 파도로 인해서 육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전복하는 사고가 발생하였고, 몇몇 상륙정들은 바닷물이 들어와서 더 이상 전진을 못하고 탑승한 보병들이 자신의 헬멧으로 물을 퍼내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극심한 배멀미는 상당수의 보병들을 해변에 접근하기 이전부터 초죽음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게다가 선두에서 진행로를 이끌던 상륙정의 항해사는 해변에 극심한 연막탄 연기로 인해서 제대로 목표 지점을 파악할 수 없었고, 때마침 조류마저 수많은 상륙정들을 동쪽으로 동쪽으로 밀어가고 있었습니다.

 

해변의 기상 상태가 워낙 거칠은 상황에서 1차 공격에서 투입된 743 기갑대대 소속 3개 중대 중 1개 중대의 수륙양용 "DD 탱크"들은 해변에 도착하기 전에 침몰해버리거나 간신히 육지에 도착한 탱크들도 마침 독일군 방어 병력이 집중되어 있던 지점에 도착하여 순식간에 포격을 당해 전멸해버립니다. 하지만 나머지 2개 중대 역시 상당수가 파괴되었지만 14대의 탱크는 무사히 상륙에 성공하게 됩니다. 

 

 

(셔먼 탱크에 수륙양용 장비를 설치하여 노르망디 상륙 작전에 투입하였습니다. 상륙 초반에는 상당수가 바닷물 속에 쳐박히는 등

손실을 입었지만 다행히 상륙에 성공한 이 "DD(도날드 덕)탱크"라는 애칭으로 불린 셔먼은 독일군 방어를 돌파하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하게 됩니다.)

 

여기서 레인저 부대에 소속되어 첫번째 공격 병력에 포함되었던 리차드 메릴 대위의 증언을 들으면 우리가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첫 장면의 끔찍한 상륙 상황이 결코 영화적인 허구가 아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나는 상륙정이 해안에 도착하자마자 제일 먼저 뛰어내렸습니다. 그리고 내 뒤로 7번째 사병이 그 다음으로 상륙하였습니다. 나와 그 7번째 사병 사이에 있던 병사 사이에 병사들 전원이 상륙정에서 나와보지도 못하고 독일군의 기관총 세례에 받고 쓰러졌습니다. 그들 중에 둘은 즉사했고, 3명은 중상을 입었습니다. 그나마 중상을 입었지만 목숨이라도 보전한 그 세명은 정말 운이 좋았던 셈입니다."

 

가까스로 해변에 도착한 상륙정의 앞문이 열리면서 튀어나온 상륙 병력들은 가슴까지 차오르는 깊은 바닷물 속으로 쳐박혀버렸습니다. 모래사장에서 무려 100m~200m 가량 떨어진 얕은 바닷물 위에서 상륙정은 병력들을 토해냈고 가엾은 병사들은 무거운 장비들과 비닐 백 속에 보호된 소총을 이고,허부적거리며 가슴까지 차오르는 수면을 헤치며 육지를 향해 전진해야 했습니다.

 

애초 계획보다 훨씬 동쪽으로 밀려와 상륙한 그 지점은 독일군의 기관총과 포 진지가 철저하게 구축되어있는 위치였고 마치 학살 당하기 위해 총구 앞에 세워진 사형수와 다름 없을 정도로 노출된 상태로 상륙정의 문이 열리자마자 독일군의 초소에서 불을 뿜는 MG42 기관총의 분당 120발의 탄환들에 "사형 집행"을 당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여기서 상당수의 병사들은 벌집이 되어 바닷물 속에 쳐박히게 되는데 단 며칠만에 오마하 해변이란 좁은 지역 안에서 3,000명의 미군 사망자를 발생시킨 주요 원인이 바로 무방비 상태에서 둔하게 전진하던 병사들이 제대로 저항도 못하는 상태에서 독일군의 공격에 "학살" 당했기 때문입니다.

 

 

(노르망디 해안에 설치된 기관총 진지 앞에서 사망한 독일군 병사의 시신)

 

1차공격의 병력들이 육지에 올라설 때까지 절반의 인원은 이미 사살된 상황이었고 모래사장으로 간신히 올라온 병력들도 코 앞에서 독일군 방어 진지가 기관총 사격은 물론이고 포까지 발사하자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하였습니다. 다행히 아직 썰물이 들어오지 않은 상황에서 독일군이 모래 사장에 설치한 각종 철재와 목재 바리케이트들 덕분에 엄폐를 하여 전원이 몰살당하는 최악의 상황은 면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대로 부대 단위로 집결해서 독일군에게 명령 체계에 따라 공격을 가할 수 있는 상황이 못되었고 대부분 쏟아지는 총알 세례 속에서 그자리에 꼼짝 못하고 묶여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해변에 설치된 수많은 지뢰들도 간신히 살아남아 모래사장에 올라온 생존자들을 눈깜짝할 사이에 산산조각 내어버리면서 모든 병사들은 공포에 떨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병사들의 상당수가 자신의 개인화기를 바닷물 속에서 분실한 상황이었으므로 그나마 재무장할 수 있는 기회는 땅바닥에 누위있는 아군 시체들이 갖고있었던 총들을 집어 드는 것이었습니다.

 

1차 상륙에는 전투 보병들 뿐만 아니라 공병 부대도 상륙정에 각종 공병 장비들과 함께 탑승하고 해변으로 접근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 역시 상륙정에서 내리자마자 보병들과 똑같은 끔찍한 전투 상황에서 목숨을 걸고 해변을 향해 물 속을 걸어가야 했습니다. 해변 위에 도착한 공병 부대원들은 이미 40% 이상이 손실되었고, 문제는 상당수의 공병 장비들을 모두 바닷물 속에 빠뜨려버렸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2차 공격을 위한 상륙정들이 본함에서 출발을 하게 됩니다. 문제는 1차 상륙 부대들이 제대로 독일군을 무력화시키기는 커녕 거의 전멸에 가까운 손실을 보고 해변에서 단 한발자국도 전진하지 못하는 상황이었으므로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2차 공격 병력들의 규모가 1차에 비해 훨씬 컸으므로 독일군의 공격이 1차 상륙 때보다 좀 더 분산될 수 있다는 점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1차 공격 때보다 더 안좋은 상황은 바로 썰물이 시작되어 모래 사장에 노출되어있던 장애물들이 바닷물 속에 잠겨버리자 상륙정들은 얕은 바닷물 속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장애물들에 상륙정이 충돌하면서 파괴되고, 전복되는 불상사가 발생합니다.썰물이 시작되자 모래 사장 위에서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지만 아직 숨이 붙어있는 부상자들 위로 바닷물이 쏟아졌고 그들은 꼼짝 못하고 익사하는 경우가 속수무책으로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오마하 해변의 지형 단면도, 300야드의 낮은 수면의 해안 위에는 장애물이

설치되어 있었고 때문에 상당수의 상륙정들은 육지에 도착하기 전에 해치를

열고 바닷물로 병사들을 뛰어들게 했는데 우측에 보는 바와 같이 높은 절벽에

설치된 기관총 진지에 사수는 바닷물을 헤치고 천천히 접근해오는 미군 병사들

이 매우 사격하기 수월한 표적이 되었을 것입니다. )

 

게다가 사병들의 상륙 병력들이 상륙한 지점이 애초 계획보다 훨씬 동쪽 지점이었다면, 지휘부가 탑승했던 상륙정들은 서쪽으로 밀려가서 상륙하여 본진과 먼 거리에 해변에 올라서게 됩니다. 마침 그곳은 높은 절벽으로 정면이 막혀있었는데 그 절벽 위에 미리 배치된 독일군 스나이퍼들의 총격으로 지휘부 상륙 병력의 절반이 희생되었고 나머지 병력도 그날 저녁까지 꼼짝을 못하고 현재 위치에 묶여버리게 됩니다. 

 

해안 동쪽 지점에 병사들과 함께 상륙한 중대장, 소대장급 장교들 중에서도 사망자가 속출하는 바람에 어느 중대는 해변에서 가까스로 한곳으로 집결하여 확인한 결과 갓 임관한 소위가 중대 내에 최고 상급자가 되어 중대 병력을 지휘해야 하는 웃지 못할 해프닝이 벌어졌습니다. 그나마 이런 경우는 행운이었고 장교들이 전부 사망한 경우에는 제대로 지휘를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우왕좌왕하다가 명령 체계를 갖춘 인접 부대와 만나서 일단 귀속되곤 하였습니다.

 

처음에는 1차,2차 상륙 부대들과 거의 함께 운반되어 온 DD 탱크들과 장갑 트럭들이 바닷물 속에 쳐박혀서 무용지물이 되어버렸지만 뒤이어 끊임없이 보내오는 탱크와 장갑 트럭들이 독일군의 공격에도 불구하고 속속 상륙에 성공하기 시작하자 이미 천명이 넘는 대량 학살을 저지르고 있던 독일군 공격 진지들이 탱크의 공격에 순식간에 파괴되어 버리면서 역전이 기미가 보이기 시작했습니. 뿐만 아니라 엄청난 희생을 치르고 모래사장에 올라왔던 병력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희생자가 늘어나듯이 어찌 되었든 상륙에 성공하는 병력의 숫자도 늘어나다보니 전열을 가다듬고 조직적인 공격을 시작하게 됩니다.

 

사실 오후 1시 전후 해서 독일 방어 부대들 중에 일부는 연합군 상륙 부대들이 해변에서 발이 묶였고 상황이 독일군에게 유일하게 돌아간다고 상부에 보고하기도 하였으나, 동시에 적들을 계속 묶어놓기 위해서는 좀 더 병력 지원이 필요하다고 요청하였습니다. 하지만 상륙 작전이 벌어지는 곳은 오마하 해변만이 아니었고 이미 그날 새벽에 수천의 공수부대들이 후방에 낙하하여 독일군 방어 예비 부대들은 공수 부대들을 공격하기 위해서 오마하 쪽에 와줄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미군 상륙정(LCVP:Landing Craft Vehicle Personnel)의 구조)

 

최초 상륙 작전 개시와 함께 엄청난 희생을 치루면서 해변에 발이 묶이고 결국 작전이 실패하는 것이 아닌가 할 정도로 위급한 상황이었던 미군들은 끝도 없이 보내오는 상륙정들에서 탱크들과 좀 더 많은 병력들을 쏟아내면서 전열을 정비하게 되자 드디어 오후가 되면서 제대로 된 공격을 할 수 있었고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 볼 수 있었던 독일군 방어 진지에 대한 보병 부대의 영웅적인 공격은 실제 이루어졌고 아침에 시작되었던 상륙 작전은 오후에 들어서자 하나 둘씩 미군의 공격에 점령되는 진지들의 솟자가 늘어나게 됩니다.

 

 

(독일 탱크 포탑을 땅에 그대로 묻어서 해안 포 진지로 활용한 사례)

 

초반의 위기 상황을 극복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던 것 중에 하나는 미국과 영국 해군 군함에서 불과 1km~2km까지 접근하여 발사한 함포 사격이었습니다. 물론 거대한 전함에서 발사한 함포 사격들도 독일군 방어 진지를 파괴하는데 기여했지만 훨씬 작은 사이즈의 구축함들이 육지로부터 1km 이내까지 들어와서 함포를 발사하여 상당수의 독일군 75mm 포 진지를 파괴하는 전공을 세웁니다. 미해군 구축함 프랭크포드는 함포 사격 중에 독일군의 포격을 받고 타격을 입습니다. 그런데 기막힌 상황은 미 구축함에게 타격을 준 장본인은 해안에 독일군 탱크 포탑을 땅에 뭍어서 만든 포였습니다. 프랭크포드에서도 엄청나게 타격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해변에 탱크 포 진지를 향해 끝까지 함포 사격을 하여 결국 파괴해버렸지만 탱크 포와 바다에 떠 있는 구축함의 포격전이라는 전무후무한 상황이 벌어진 셈입니다.

 

 

(미해군 구축함 프랭크포드 호, 오마하 해변에서 독일군의 결사적인 공격을 받으면서도 함포 사격을 지속하여 상당수의 독일군

방어진지를 파괴하는 전공을 세웠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끊임없이 밀려 들어오는 상륙군들에 의해서 독일 방어부대는 밀리게 되었고 추가 병력 지원도 없는 상황에서 방어에 한계를 드러내고 D-Day 오후로 접어들 무렵 대부분의 방어진지들은 함락됩니다.

 

자~~~ 여기까지 오마하 해변의 하루 동안의 상륙작전을 이야기 했습니다.

 

(훗날 "오마하의 야수"(Beast of Omaha)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독일군 기관총 사수 하인리히 세블로흐 하사.

21살의 이 앳된 병사는 그의 손에 쥐어진 MG42 기관총으로

단 9시간 동안 2,000명이 넘는 미군 병사를 사살했다는 전설이

내려오있습니다. 그는 결국 미군에게 포로로 잡혀서 전후에

천수를 누르고 2006년 지병으로 사망하였습니다.)

 

결국 하루 동안 이곳에서 독일군의 공격으로 상륙 중에 전사한 미군 병사의 숫자는 3,000명에 달했습니다. 심지어 독일 육군 352 사단 소속으로 오마하 해변에 방어 진지에 배치되었던 하인리히 세베로흐라는 병사는 9시간 동안 MG42 기관총으로 12,500발을 발사하여 상륙하는 미군 병사들을 무려 2,000명 이상 사살하거나 부상시켰다는 전설같은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이날 오마하 해변에서 발생한 미군 사상자의 60% 이상을 이 독일군 병사의 기관총 사격으로 발생했다는 이야기가 되는데 저는 솔직히 이 이야기를 믿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병사의 기관총 사격으로 2,000명의 1/3 정도가 사상자라고 해도 정말 끔찍한 숫자가 됩니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오마하 해변 상륙 장면을 보면 독일군의 MG42 기관총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할리우드 A급 영화들만 모았을 때 가장 끔찍하고, 충격적인 전쟁씬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장면입니다.)

 

여기서 과연 MG42라는 이름이 이 기관총은 얼마나 대단하길래 이렇게 엄청난 학살의 주인공이 되었을까요?

 

 

(2차대전 독일군이 사용한 기관총으로써 군사전문가들에게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받는 MG42 기관총)

 

1942년에 그 이전 독일군의 주력 기관총이었던 MG34의 장점을 그대로 살리고 총신 구조를 보다 단순화하여 개선한 MG42 기관총은 발사할 때 나는 소음이 전기톱의 그것과 비슷하다고 해서 "히틀러의 전기톱"이라는 섬뜻한 별명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독일 공수부대원이 MG42를 어깨에 밭치고 서서 발사하고 있습니다.)

 

여러가지 다목적 용도로 사용되었는데 일반 보병 전투 지원용 기관총으로 V자형 거치대를 놓고 사용하기도 하고, 보다 높은 삼발이 거치대를 사용하여 중기관총 용도로 쓰이기도 합니다. 게다가 원형 조준대를 부착하여 대공 화기로도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타미야 피규어 키트를 보면 MG42 기관총의 다양한 사격 사용예를 볼 수 있습니다.)

 

7.92mm X 57mm 마우저 탄환을 사용하였고 중량은 18kg으로 비교적 가벼운 편이었습니다. 유효 사거리 1km에 최대 사거리는 3km여는데 분당 1,200발을 발사할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분당 1,200발 발사 성능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는 당시 미군이 사용하던 M1919 브라우닝 기관총의 성능과 비교하면 대번에 알 수 있습니다. M1919는 분당 400발에서 600발 정도였습니다. 아예 성능으로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는 얘기가 됩니다.

 

 

(미육군 M1919 브라우닝 기관총)

 

2차세계대전 중에 가장 많은 숫자의 인명을 살상한 개인 화기로써 MG42 기관총을 따라올 상대가 없었다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지요. 사실 불명예스러운 기록은 이 효과적인 살상무기는 전투에서 상대를 사살하기 위한 용도 뿐만 아니라 나치 독일이 전쟁 중에 자행한 무고한 양민과 전쟁 포로들의 학살에도 사용되었습니다.

 

 

(MG42 기관총은 전쟁기간 동안 총 40만정이 생산되었습니다.)

 

놀랍게도 MG42는 2차대전이 끝난 후에도 독일과 폴란드를 포함한 유럽 일부 국가에서 1968년까지 사용되었습니다.

 

이렇게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관한 이야기들을 소개해드렸습니다. 연초에 제가 약속했던 제목들 중에 아직도 써나가야 할 글들이 많네요. 하지만 뭐 시간에 쫒기는 일도 아니고 여러분들 관심 갖고 응원해주신다면 꾸준히 써나갈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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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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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JLPicard(정갑수) 작성시간 13.05.24 오늘은 댓글을 먼저 달게되네요.^^
    점심식사하러 식당에 들어와서 밥이 어디로 들어가는지도 모를 정도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따블오남편(김준만)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3.05.24 헐헐헐 감사합니다. 재미있게 읽으셨다니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셔먼 시작하기 전에 후딱 숙제 해치우려고 그동안 써온 세번째 노르망디 이야기 오늘 끝냈습니다. 조만간에 제가 올렸던 3호전차 제작기의 고증 리포트를 준비할 예정입니다. 여러 고수님들 즐겁게 읽어주시면 큰 기쁨이 되겠습니다.
  • 작성자소닉붕어(황선휘) 작성시간 13.05.24 초당 20발이라는 제원은 가히 경이로운 수준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냥 한 마디로 비 오듯 탄환을 퍼붓는 격이지요.
    생각만 해도 오금이 저립니다.
  • 작성자불타오르는 머리(정태준) 작성시간 13.05.31 9시간동안 2000명이라..살인마가 따로없네요..
  • 작성자binidad(정창효) 작성시간 13.05.31 저는 이거 빼먹고 안읽은거 발견하고 이제 읽었습니다. 디자인 자체도 굉장히 멋진게 바로 이총이죠. 많은 살상을 한 무기지만 참 독일사람들이 이것을 기똥차게 만든듯...
    영화한편 보는듯하게 재밌게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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