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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

달성빈씨 족보서 達城賓氏 族譜序 (의령보1945년)번역본

작성자빈철성 (賓 哲晟)|작성시간19.11.14|조회수598 목록 댓글 2

달성빈씨 족보서 達城賓氏 族譜序 (의령보1945년)

족보라는 것은 조상을 존중하고 종족을 화합하여 효도와 공경의 마음을 돈독하게 만드는 책이다. 세계(世系)와 소목(昭穆)을 자세히 밝히려고 한다면 조상을 존중하지 않을 수 없고 가문의 질서와 종파(宗派) 지파(支派)를 수립한다고 하면 종족을 화합하지 않을 수 없다.


어느 날 의령의 선배인 빈병철(賓炳澈)과 빈병옥(賓炳沃)두 분이 종족 장로(長老)의 명을 받아 그들의 선대의 가첩(家牒)과 중조(中祖) 백세당(百世堂;18세손. 의령 낙서면에 백세당 효자비각이 있음) 선생의 효성(孝誠)을 표창하는 연명(聯名) 장계(狀啓)를 가지고 와서 나에게 한마디 말을 청하기를

해동(海東)의 수성(壽城) 한 지역은 옛날 우리 선조께서 중국에서 들어 오셨을 때에 임금이 토지를 내려 봉한 이름난 땅인데, 고려 때에 예가 행해졌고, 본조(本朝)에 들어 와서는 혁혁한 가문의 명성을 크게 떨쳤습니다. 그런데, 중엽에 불행한 일을 당하여 마침내 손 병사(孫兵使)의 왕명을 속이는 흉악한 술수에 걸려들어 종족이 사방으로 흩어지게 되었고, 갑오년과 을미년 동학(東學)의 큰 변고를 거듭 만나 사적과 가첩이 모두 불에 타버리고 말았습니다. 지금에 이르러서는 상고할 수 있는 문헌이 없어 기()나라와 송()나라가 선대(先代)의 예를 증험(證驗)할 수 없는 것과 같게 되었고, 엎어진 둥지 속에 남은 알 처럼되어 기운을 차릴 수 없는 형편입니다. 이에 약간의 단자(單子)를 수합하여 처음으로 족보를 편찬하는 일을 시작하였습니다. 삼가 바라간데 어르신께서 잘못된 부분을 깎아내고 오자를 바로잡아 주시고 아울러 서문(序文)을 지어주시어 미래의 후손들에게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하였다.

내가 두 분의 정성과 효심에 감동하여 의리상 감히 사양할 수 없었다. 족보를 살펴 자세히 상고해 보니, 빈씨는 과연 우리 동방의 수많은 성씨 가운데 명족(名族)이었다. 옷깃을 여미고 다시 다음과 같이 말해 준다. 옛날 난영(
)은 진()날 조정에서 7대에 걸쳐 벼슬한 집안의 후손으로서 마침내 범개 []의 간교한 술책에 의해 쫓겨났으니, 나라 안의 백성들 가운데 누구들 그를 불쌍히 여기지 않았겠는가? 손숙오 [孫叔敖]의 의관(衣冠)을 입고서 아직 천거(薦擧)해줄 어진 사람을 만나지 못하였으니, 어찌 애석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효라는 것은 모든 행실의 근본이고 온갖 선행(善行)의 으뜸이다. 백세당 선생께서 이미 이렇게 훌륭한 업적을 남기셨으니, 어찌 신령스러운 뿌리에서 큰 열매가 맺히지 않겠는가? 이 족보의 완성이 마침 말세(末世)에 이루어졌으니, 지금의 세상에서 조상의 두터운 음덕이 도와준 것이 아니겠는가? 그대들은 면려(勉勵;올 바른 것을 힘서 행하다)할 지어다.

을유년(을유년1945) 3월 그믐에 전 동몽교관(童蒙敎官) 가락 김련(駕洛 金璉)은 서문을 짓다.

각주1) 소목(昭穆): 사당(祠堂)에서 신주(神主)를 모시는 차례로 왼쪽 줄의 소(), 오른쪽 줄의 목을 통틀어 일컫는 말. 소목(昭穆)의 제도는 중국 상고 시대부터 유래된 것인데 주대(周代)에 들어와 주공(周公)이 예()와 악()을 정비하면서 비로소 구체화되었다

각주2) 동몽교관[ 童蒙敎官 ] 조선조 초에 어린이를 교육시키기 위하여 각 군현(郡縣)에 두었던 교관직. 처음에는 동몽훈도(童蒙訓導)라고 불렀다. 대전회통(大典會通)에 의하면 매년 사맹삭(四孟朔), 1, 4, 7, 10월의 4회에 걸쳐 등용 시험을 보았으며 임기는 450일이었다.

 

첨부파일 달성빈씨 정식족보 의령보 1945년 서문 번역본.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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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빈철성 (賓 哲晟)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9.11.14 족보 편찬의 핵심 가치는 '선조의 업적을 높이 받들고, 후손들에게 자기 가문의 정체성'을 확립시켜 주는 것입니다.

    1945년도에 의령보(달성빈씨 정식족보)를 만드신 빈병철 선조께서 의령보와는 체계가 전혀 다르고 의령계열의 조상 서열도 파괴해가면서 기해보(1959년) 편찬 작업에 동참하셔서 기해보를 편찬하였다고 한다면 과연 누가 믿겠습니까?

    족보에 대하여 조금이라도 아시는 분들이 보시면 기해보(1959)는 의령보(1945)에 비하면 아주 저급한 수준의 짜집기 가짜 족보입니다.

    또한 의령보는 기존의 달성 세보(1838년경), 무주보(1925년), 남해보(1930년)의 체계를 잘 계승하고 있습니다.

  • 작성자빈철성 (賓 哲晟)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9.11.14 그러나, 기해보는 오로지 사천지역 빈씨계열을 큰 집으로 만들기 위한 교란과 조상삭제. 짜집기 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내용은 누가 봐도 알 수 있는데… 자기 조상(빈병철,빈병옥 선조)의 명예스러운 족보편찬의 역사까지도 부정하는 빈지태 사무총장의 의도는 도저히 알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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