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사진
제게는 어머니 독(獨)사진 스무 여장이 있습니다. 아버님 돌아가시기 1-2년 전 쯤에 찍은 듯한데, 정확한 시기는 모르겠습니다. 날이 제법 추웠던 기억이 있는 것으로 보아 11월쯤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어머니는 늘 외로우셨습니다. 그리고 서러우셨습니다. 아이들 데리고 갈 때는 몰라도, 저 혼자 갈 때는 거의 언제나 외롭고 서러운 내색을 숨기지 않으셨습니다.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처럼 17년을 풍이 온 아버님을 섬기는 일이 어찌 어렵지 않으셨겠습니까. 더구나 아버님은 병이 온 뒤로 유독 짜증이 느셔서 어머니를 힘들게 하셨습니다. 그 힘든 어머니의 대응이라야 고작 여보, 왜 그러시오? 하는 말 한 마디 던지시고 방으로 들어가셔서 서러움을 홀로 삼키시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행여나 막내 아들이 집에 들리면 그동안 쌓였던 서러움을 호소하시는 것이 제가 아는 전부입니다(외람되지만, 저 말고 다른 형제 분들은 그런 이야기 들은 적이 별로 없으실 듯). 그래서 그런 아픔은 모두 저의 몫이(?) 되고 만 듯합니다. 옛날에는 공책이나 신문지 한 귀퉁이에 서러운 마음을 글이라도 한 줄 쓰셨지만 그것도 병이 길어지며 그만 두신 지 오랩니다. 그러니 그런 저간 사정은 아마 저만 알고 있으리라 봅니다.
그 날도 어머님은 아버님과 무슨 일이 있었는지 우울해 계셨습니다. 그러다 제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기록을 남기는 걸 선호해서 사진기를 거의 늘 가지고 다녔는데 아마 어머니는 그걸 아시고 그러셨나 봅니다. 그런데 그 날은 제가 사진기를 가지고 오지 않았습니다. 다만 필름이 없을 때를 대비하여 차에 비상용 일회용 사진기(당시 만원짜리)를 갖고 있었는데 한번도 사용해 본 적은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날 당신 사진을 부탁하시는 어머님 표정이 너무 간곡하시어 화질은 떨어지겠지만 그거라도 한번 찍어보자는 마음으로 찍은 것이 제가 갖고 있는 어머님 독사진 스무 여장입니다. 역시 일회용이라 예상대로 화질은 형편 없으나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제게는 소중한 사진입니다.
어머니는 사진을 찍으실 때 제가 그동안 전혀 본 적이 없는 고운 한복 두 벌을 안방에서 가져 오셨습니다. 가져 오시며 이거 내가 00 할 때 입으려고 매우 아끼던 거다, 이거 입고 찍을란다 라고 하셨는데, 뭘 위해 아끼시던 건지 그 말씀은 기억이 안 납니다. 그러나 한복을 다루시는 모습을 보건대, 말씀대로 매우 아끼시던 것만은 틀림없었던 듯합니다. 그리고 곱게 한복을 갈아 입으시고 어머님은 거실 저 멀리 있던 화분까지 탁자 위에 갖다 놓으시고 사진을 찍으셨습니다.
사진 찍으실 당시 어머니는 얼마나 괴로우셨던지 눈물을 훔치셨습니다. 그러면서도 사진을 찍자고 하셨는데, 사진을 찍는 동안 어머니는 애써 아픈 마음을 감추시고 엷은 미소마저 억지로 지으셨습니다. 지금 보니 연속 사진 20장 넘게 찍는 동안 그 아픈 마음이 사진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억지로 짓는 미소라 사진 상당수에 근심이 스며 있어서 정작 남에게 보일 수 있는 사진은 몇 장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어머니의 마지막 독사진이 되어 제게 남아 있습니다. 고운 한복 속의 어머니. 그 고운 어머니로 말입니다.
-2023.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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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普賢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3.04.22 두 장만 올립니다. 나머지 중 몇 장을 제외한 거의 전부가 어두운 모습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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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보문 작성시간 23.04.22 우리들의 어머님들의 외로운 삶을 자식들은 몰라주었으니 저도 선생님 어머니 사진보며 친정어며니 모습을 떠올리며 눈시울을 적시네요.
어느 자식하나 어머니의 힘든 삶을 몰라주었으니 불효투성이 입니다.
고맙습니다. 마하반야바라밀 _()()()_ -
작성자普賢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3.04.23 저희 집 친가 쪽이 유전적으로 화기(火氣)가 많아 저희 형제들 역시 그러합니다. 똑같은 말이라도 조금만 부드럽게 하면 아무 일이 없을텐데 그렇지를 못합니다. 밖에서는 지나칠 정도로 친절한 분들이 안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니 마음 약하신 어머니께 얼마나 상처를 드렸겠습니까. 그런데 지금까지도 다들 그걸 모르시는 듯하여 참 안타깝습니다.
저 역시 어머니께 오만불손한 자식이었으나 다행히 부처님 가르침을 만나며 얼마나 어머니 은혜가 크신지 티끌만큼 이나마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께 불손한 일도 많이 줄고 가급적 어머니 말씀이라면 수순(隨順, 따라줌)하려 한 덕분에 어머니께서 그렇게 제게 마음을 조금이나마 여신 듯 합니다. 마하반야바라밀! -
작성자청정수1 작성시간 23.04.23 같은 날 찍은 사진이군요. 고이 아껴 둔 한복을 꺼내 입고 사진 찍으신 그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그래도 막내아들 앞에선 행복하셨을 것 같습니다.
내 얘기를 귀 기울여 들어주는 이 있어 행복합니다. 마하반야바라밀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