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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 普賢. 작성시간23.10.11 알음알이 내지 말라기보다는, 경을 읽으면서도 자신을 되돌아보지 않으면, 또는 나에 비추어 경전을 읽지 않으면 그게 도움이 안된다, 그런 말일 겁니다.
경전이란 우리 일심의 묘용을 글로 나타낸 것이거든요?
그래서 경을 읽을 때 단순한 문자 해석을 하기보다는 늘 내 마음에 비춰봐야 합니다.
마음에 비춰본다는 것은,
어째서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을꼬?
왜 이런 말씀을 하셨을꼬?
이런 말씀을 하는 부처님과 나는 같은가 다른가?
나는 왜 이런 부처님 말씀을 이해하지를 못하는가?...
이런 걸 경을 읽으면서 스스로 반문하고 살피는 것이지요.
이렇게 하지 못하고 그저 경문 한자 해석이나 하고 있으면,
그걸 간경이라 하여 공부하는 것이라 하면,
팔만대장경을 읽어도 소용이 없다, 아무 도움이 안 된다... 이런 말씀일 겁니다. -
작성자 普賢. 작성시간23.10.11 제가 보문님이 올려주시는 원순스님의 번역을 보면, 여러 번 시비(?)를 걸지요?
왜냐? 글 자체를 번역하시는 게 아니라, 스님의 견해를 번역에 싣는 일이 많아 그렇습니다.
번역은 어려워요.
중국에 인도 불경이 전해졌을 때부터 번역 땜에 여러 뛰어난 스승님들이 골치 아파 했어요.
중국 말과 인도 말이 그 체제, 양식이 전혀 다르거든요?
그리고 문화적 배경도 전혀 다르고요.
그러니 단순히 말만 알아 듣는다고 번역이 이뤄지는 게 아니란 말입니다.
그래서 안세고, 지루가참, 이 두 분이 아마 최초의 역경사이실텐데,
이 두 분이 번역한 경전들 중 많은 경전들이 나중에 재번역 되었습니다.
가령 안세고 지루가참 이 두 분은 중국어에 뛰어나셨지만 음역보다는 의역을 많이 하셨나봐요.
그런데 그 의역이 정확하게 전달되면 다행인데 그렇지가 않을 때는 문제가 아주 심각해지지요.
그래서인지 구마라집은 의역이 어려울 땐 음역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우리 큰스님도 번역하신 거 보면, 의역보다는 음역이 많지요.
즉, 한자어 중 우리 말로 옮기기 곤란한 건 그냥 한자어 그대로 쓰시고,
밑에 註를 달아 설명하는 형식이죠.
저는 이런 방법이 훨씬 좋은 방법으로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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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普賢. 작성시간23.10.11 看經하되
若不向自己上做工夫이면
--- 이 문장 중에는 '마음'이라는 단어가 없어요.
그냥 '자기에게 향하지 않는다면'이라고만 씌여 있어요.
(上字가 한문으로 마음을 의미하는지는 모르겠는데, 만약 그렇다면 제가 틀린 겁니다)
그러니 번역을 지금처럼 하기보다는,
간경하되 자기에게로 마음이 향하지 않고(不向自己) 짓는 공부(上做工夫)라면,
이렇게 번역하는 게 옳지 않나 하는 게 제 생각에요.
그게 훨씬 원문의 뜻이 잘 전달되지 않을까요?
물론 저는 한문을 몰라 무식한 생각일 수 있습니다.
늘 잘못할 거라 각오하고 있고요. -
작성자 普賢. 작성시간23.10.11 密師가 누군가 햇는데, 종밀스님이시군요.
한문 옛 글들은 이렇게 옛 스승님을 부를 때 뒷글자(또는 앞 글자)를 취해 지칭하는 수가 많지요.
예를 들면 원효스님 인용할 땐 曉師, 이렇게요.
종밀스님은 스승 청량징관과 함께 禪 공부를 하신 선사시지요.
하택 신회의 맥을 이은 하택종 스님께 공부를 배웟다 하는데, 우두종 계통도 배우셨던 걸로 제 기억이 있는데 가물가물해서 확인해봐야겠습니다.
(칭량징관은 하택종의 무명선사에게 배웠다고 하지요)
선을 공부하신 징관, 특히 종밀에 의해 화엄은 선과 회통하는데 큰 도움을 받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