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 한 덩어리 숫돌과 같아
故曰
修道之人은 如一塊磨刀之石이라.
張三也來磨하고 李四也來磨하면
磨來磨去에 別人刀快나 而自家石漸消니라
然이나 有人은 更嫌他人 不來我石上磨하니 實爲可惜이로다.
그러므로 말하였다.
“수행자는 칼을 가는 한 덩어리 숯돌과 같다.
장서방 셋째 아들이 와서 칼을 갈고
이 서방 넷째 아들이 와서 칼을 갈면
그 사람들 칼이야 예리해지겠지만
숫돌 자체는 점점 닳아 없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들은
사람들이 찾아와 숯돌에 칼을 갈지 않는다고 불평하니
참으로 딱하고 안타까운 일들이다.
《註解》
如此道人 平生所向은 只在溫飽니라.
주해
이런 수행자가 평생 바라는 것은
오직 배불리 먹고 따뜻하게 사는 것이다.
1. 張三李四
중국 송대의 속어이다. 중국에서 흔한 성씨들인 ‘정씨네 집안의 셋째아들’과 ‘이씨 집안의 넷째 아들’이란 뜻이니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張公李公, 張三呂四, 甲男乙女, 某甲某乙이라는 말들도 비숫한 뜻으로 쓰인다. 여기서는 공덕을 지으려고 수행자에게 공양 올리는 사람들을 말하고 있다.
2. 只在溫飽
수행자가 세간 사람들처럼 배불리 먹고 좋은 옷 입고 따뜻하게 사는 것에만 급급함으로 부처님 법을 배워 어리석은 마음을 고칠 줄 모른다면, 이는 아름답게 살지도 못하면서 남의 복전이 되려 함이니, 마치 날개 부러진 새가 무거운 거북이를 등에 업고 하늘을 나는 것과 같다. 깨달음은커녕 자신의 업도 닦지 못했는데 어찌 다른 사람의 업장을 녹여 줄 수 있겠는가. 부처님 법대로 살아가야 할 수행자가 세속의 삶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것은 재물이나 이성에 대한 집착을 여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수행자는 재물이나 이성을 보면 반드시 이들을 바른 생각으로 대해야 한다. 야운 스님이 이르기를 ‘몸을 해치는 것은 이성보다 더한 것이 없고, 도를 잃게 하는 근본은 재물보다 더한 것이 없다’라고 하였다. 부처님께서도 수행자가 재물과 이성을 가까이 못하도록 이르시기를 ‘수행자는 이성을 호랑이나 독사 보듯 해야 할 것이요, 비싼 패물은 나무나 돌처럼 여겨야 할 것이다.’하고 하셨다.
출처: 선가귀감, 서산대사 지음, 원순 역해, 도서출판 법공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