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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사모게시판법당

선 스승의 편지- 4-2. 대승의 마음 又

작성자보문|작성시간24.07.23|조회수37 목록 댓글 9

4-2. 대승의 마음

  

教人으로 隨緣照顧하고 莫教惡覺現前這箇又 是認著髑髏情識而生解者. 教人으로 但放曠하여 任其自在하고 莫管生心動念이라 念起念滅本無實體이니 若執為實하면 則生死心生矣라하는 遮箇又 是守自然體하여 為究竟法而生解者. 如上諸病非干學道人事皆由瞎眼宗師錯指示耳니라. 既清淨自居하며 存一片真實堅固向道之心이니 莫管工夫純一不純一이라.

 

사람들이 인연을 따라서 자기 마음을 비추어 보고 나쁜 지견이 나타나지 않도록 가르친다는 것은 또 미세한 망상이 남아 있는 알음알이에 집착하여서 알음알이 내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들에게, 다만 모든 것을 탁 놓아 그 자유로움에 맡길 뿐이고 마음의 흐름을 상관하지 않도록 한다. 생각이 일어났다 사라지는 것이 본디 실체가 없으니, 이를 집착하여 실제를 삼는다면 분별하는 마음이 생긴다는 것은 자연의 실체를 고집하여 마지막 최고의 법으로 삼아서 알음알이 내는 것을 말합니다.

 

위와 같은 모든 병은 도를 배우는 사람의 탓이 아닙니다. 모두가 눈 먼 종사의 잘못된 가르침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대가 이미 청정하게 살면서 진실하고 굳건하게 도를 향하는 마음을 항상 지녔습니다. 그러니 공부를 하는 데에 잘 된다 안 된다는 분별을 하지 마셔야 합니다.

 

 

但莫於古人言句上只管如疊塔子相似이듯 一層了又 一層이라 枉用工夫하면 無有了期리라. 但只 存心於一處하면 無有不得底時節因緣到來하면 自然 築着礚着하여 噴地省去耳이니라. 不起一念還有過也無아하니 云 須彌山이라하고 一物不將來時 如何오하니 하되 放下着이라.

 

다만 옛 어른의 말씀 위에서 탑을 쌓듯 한 층 올리고 또 한 층 올리는 식으로 공부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 잘못하는 공부는 깨칠 기약이 없습니다. 오직 한 곳에만 마음을 두면 깨닫지 못할 게 없습니다. 시절인연이 닥쳐오면 자연히 원하는 대로 공부가 이루어져 금방 공부할 힘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한 생각도 일으키지 않는다면 거기에 허물이 있습니까, 없습니까라고 물으니 수미산이다라고 답하였고, “한 물건도 가져오지 않았을 때 어떻게 합니까라고 물으니, “방하착이라고 답을 했습니다.

 

遮梩疑不破어든 只在這裏參일뿐 更不必自生枝葉也니라. 若信得雲門及이면 但恁麼參일뿐 別無佛法指似人이라. 若信不及이면 一任하니 江北江南問王老하여 一狐疑了一狐疑이니라.

 

이 곳에서 의심을 깨뜨릴 수 없거든, 다만 이 속에서 공부할 뿐입니다. 여기에 다시 스스로 자질구레한 생각을 내실 필요가 없습니다. 저를 믿는다면 오직 이렇게 공부할 뿐입니다. 달리 사람들에게 가리켜 줄 부처님 법이 없는 것입니다.

 

이 말을 믿지 못한다면 천하의 선지식을 찾아서 의심하고 또 의심하는데에 그대의 공부를 맡겨 둘 따름입니다.

 

도를 공부하는 데 있어서 사람들은 무엇을 지시하고 드러내야만 그것을 믿고 따른다. 하지만 화두 수행에 있어서 지시하고 드러내는 모든 것은 방편일 따름이다. 화두를 믿고 공부하는 자가 화두를 챙기는 자리에서 대상을 분별하는 자기 생각이 다 사라져야 진실을 본다. 화두 문중에서 그 진실은 오로지 화두를 챙길 뿐이다. 거기에 깨달음이 있다.

 

출처: 스승의 편지 , 대혜 종고 서장, 원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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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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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普賢. | 작성시간 24.07.24 "이 곳에서 의심을 깨뜨릴 수 없거든, 다만 이 속에서 공부할 뿐입니다. 여기에 다시 스스로 자질구레한 생각을 내실 필요가 없습니다. 저를 믿는다면 오직 이렇게 공부할 뿐입니다. 달리 사람들에게 가리켜 줄 부처님 법이 없는 것입니다. 이 말을 믿지 못한다면 천하의 선지식을 찾아서 의심하고 또 의심하는데에 그대의 공부를 맡겨 둘 따름입니다."

    --->그니까 뭘 더하겠다, 닦아야겠다, 있냐 없냐, 뭐 어떻게 할거냐 이런 생각 내지 말고 그냥 의심만 하라는 겁니다.
    그게 전부 망상이거든요?

    선은 이렇게 언어도단, 생각이 끊어진 자리를 생각을 안 하고 말도 끊고 바로 찾아갑니다.
    반면에 화엄은 말로 찾아갑니다.
    모든 게 분별 때문이네, 일념이 이 세상을 만드네 등등의 노래를 부르는 거죠.

    그래서 선과 화엄이 불교 사상 중에 가장 서로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겁니다.
    망상을 경계하니 멀지 않고,
    말이 있고 말이 없으니 또 가깝지도 않습니다.

  • 작성자普賢. | 작성시간 24.07.24 이해들 좀 되셨습니까?
  • 작성자보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7.24 지난주에 이어서 오늘 한편의 글입니다.

    댓글 달아야지 하는데 어렵기도하고 시간을 못내었네요.

    선생님 덕분에 조금 이해는 되는데
    분별심을 내지 말라는 것인데 화두 뿐만 아니라 생활 속에서 이것을 하면 어떻게 될까의 계산부터 생기니 어려운 것 같아요.
    그래도 옛날에 비하면 많은 분별심이 줄어들긴 했으나 하고 또 하겠습니다.

    댓글 가르침 감사드립니다._()()()_
  • 작성자법혜 | 작성시간 24.07.25 이해가 되는 부분도 있고, 안되는 부분도 있네요...^^

    불성, 주인공, 참나, 반야...모두 공의 다른 이름입니다.
    공은 그냥 공인 것이지 텅 비어있는 어떤 실체를 찾지말라는 뜻으로 이해하려 합니다.

    보문님 공양 올려주셔서 감사하고
    보현 선생님 애써 올려주신 댓글 가르침에 감사합니다.
    나무마하반야바라밀..._()()()_
  • 작성자누리달 | 작성시간 24.07.30 제겐 모두 모르겠고,
    오직 의심에 의심만 할뿐은 화두참선(간화선)
    의 길인건 알겠습니다.

    의심만 하고 묻기만할뿐 답을
    구하려하면 빗나간다는~~~

    선은 생각이전 자리,
    화엄은 말로 물음을
    시작한다~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자리~~

    내생명부처님무량공덕 생명~

    그리고 선생님 질문있습니다.

    염불선은 염불하고
    있는 이 놈이 뭔가?
    그럼 마하반야바라밀
    염불도
    마하반야바라밀 염불하는 이 놈이 뭔가?
    이리 해도 되는지요?

    궁금한건
    마하반야의 자리가
    바로 이,뭣고 그 자리
    아닌가?
    그럼 굳이 마하반야바라밀 염불하는 이놈이 뭔가? 하는 물음을 할필요가 없는게 마하반야 염불 인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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