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 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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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普賢. 작성시간24.07.24 “사람들이 인연을 따라서 자기 마음을 비추어 보고 나쁜 지견이 나타나지 않도록 가르친다”는 것은 또 미세한 망상이 남아 있는 알음알이에 집착하여서 알음알이 내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신수가 보리수 마음을 먼지가 안 끼도록 닦는 것과 비슷하죠.
점수인데, 돈오선을 하시는 대혜의 입장에서는 당근 경계하는 것, 아닐까요?
"“사람들에게, 다만 모든 것을 탁 놓아 그 자유로움에 맡길 뿐이고 마음의 흐름을 상관하지 않도록 한다. 생각이 일어났다 사라지는 것이 본디 실체가 없으니, 이를 집착하여 실제를 삼는다면 분별하는 마음이 생긴다”는 것은 자연의 실체를 고집하여 마지막 최고의 법으로 삼아서 알음알이 내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일종의 空을 붙잡는 것과 비슷한 상황을 경계한 말로 보입니다.
실체가 없는 그 자체를 붙잡는 거죠.
마치 소승불교에서 모든 게 없다고 하면서 없는 그것은 남겨두는 것처럼.
"다만 옛 어른의 말씀 위에서 탑을 쌓듯 한 층 올리고 또 한 층 올리는 식으로 공부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
--->닦아서, 뭘 자꾸 더해서 깨달음을 이루려 하지 말라는 뜻인 듯.
본래청정 본래성불은 그런 자리가 아니거든요? -
작성자 普賢. 작성시간24.07.24 “한 생각도 일으키지 않는다면 거기에 허물이 있습니까, 없습니까”라고 물으니 “수미산이다”라고 답하였고, “한 물건도 가져오지 않았을 때 어떻게 합니까”라고 물으니, “방하착”이라고 답을 했습니다.
--->여기에 허물이 있다 없다, 어떻게 한다 등등은 전부 분별에서 나오는 망상들이지요.
그러니까 수미산!
방하착! 인 겁니다.
허물이 있건 없건 하늘은 푸르고 구름은 흐르지요.
물건이 없는데 뭘 어떻게 합니까?
뭘 어떻게 하느냐, 하는 그 마음도 버려야 진짜 한 물건도 없는 거지요.
물건 없다고 하면서 어떻게? 하는 그것이 이미 물건이 있는 거거든요? -
작성자 普賢. 작성시간24.07.24 "이 곳에서 의심을 깨뜨릴 수 없거든, 다만 이 속에서 공부할 뿐입니다. 여기에 다시 스스로 자질구레한 생각을 내실 필요가 없습니다. 저를 믿는다면 오직 이렇게 공부할 뿐입니다. 달리 사람들에게 가리켜 줄 부처님 법이 없는 것입니다. 이 말을 믿지 못한다면 천하의 선지식을 찾아서 의심하고 또 의심하는데에 그대의 공부를 맡겨 둘 따름입니다."
--->그니까 뭘 더하겠다, 닦아야겠다, 있냐 없냐, 뭐 어떻게 할거냐 이런 생각 내지 말고 그냥 의심만 하라는 겁니다.
그게 전부 망상이거든요?
선은 이렇게 언어도단, 생각이 끊어진 자리를 생각을 안 하고 말도 끊고 바로 찾아갑니다.
반면에 화엄은 말로 찾아갑니다.
모든 게 분별 때문이네, 일념이 이 세상을 만드네 등등의 노래를 부르는 거죠.
그래서 선과 화엄이 불교 사상 중에 가장 서로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겁니다.
망상을 경계하니 멀지 않고,
말이 있고 말이 없으니 또 가깝지도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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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누리달 작성시간24.07.30 제겐 모두 모르겠고,
오직 의심에 의심만 할뿐은 화두참선(간화선)
의 길인건 알겠습니다.
의심만 하고 묻기만할뿐 답을
구하려하면 빗나간다는~~~
선은 생각이전 자리,
화엄은 말로 물음을
시작한다~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자리~~
내생명부처님무량공덕 생명~
그리고 선생님 질문있습니다.
염불선은 염불하고
있는 이 놈이 뭔가?
그럼 마하반야바라밀
염불도
마하반야바라밀 염불하는 이 놈이 뭔가?
이리 해도 되는지요?
궁금한건
마하반야의 자리가
바로 이,뭣고 그 자리
아닌가?
그럼 굳이 마하반야바라밀 염불하는 이놈이 뭔가? 하는 물음을 할필요가 없는게 마하반야 염불 인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