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추운 겨울의 쓸모 없는 부채 答
信後에 益增瞻仰이라. 不識커라 日來에 隨緣放曠하여 如意自在否아. 四威儀中에 不為塵勞 所勝否아. 寤寐 二邊에 得一如否아. 於仍舊處에 無走作否아. 於生死心에 不相續否아. 但盡凡情일뿐 別無聖解니라. 公이 既一 笑하여 豁開正眼하여 消息頓亡하니 得力不得力은 如人이 飲水에 冷煖을 自知矣니라.
편지를 받은 뒤 존경하는 마음만 더욱 깊어 갑니다. 요즈음 인연을 따라 사시면서 뜻대로 자유자재한지 궁금하기만 합니다.
오고 가며 앉고 눕는 삶 속에서 번뇌가 더 왕성한 것은 아닙니까. 깨어있을 때와 잠잘 때의 경계가 한결같으십니까. 옛 그대로인 자리에서 바쁘게 무엇을 만드는 일은 없습니까. 분별이 생겼다 사라지곤 하는 그 마음을 대물림하여 이어가는 것은 아닙니까.
다만 범부의 마음을 비울 뿐, 달리 거룩한 견해는 없습니다. 그대는 이미 한 웃음에 올바른 눈을 활짝 떠 모든 소식을 단숨에 잊고 있습니다. 힘을 얻거나 얻지 못했다는 사실은 마치 사람들이 물을 마심에 그 물이 차고 더운가를 스스로 아는 것과 같습니다.
然이나 日用之間에 當依黃面老子所言인 刳其正性하고 除其助因하며 違其現業이라. 此乃了事漢의 無方便中에 眞方便이고 無修證中에 真修證이며 無取捨中에 真取捨也라. 古德이 云에 皮膚脫落盡이라도 唯一眞實이在하며 又 如栴檀繁柯가 脫落盡이라도 唯真栴檀이 在라하니 斯違現業除助因刳正性之極致也라.
그러나 날마다 주어진 삶 속에서는 마땅히 부처님께서 “음욕과 성냄을 없애고, 그 마음을 내게 하는 오신채와 같은 음식을 먹지 않으며, 현재의 나쁜 행실을 고쳐야 한다”라고 말씀하신 것에 의지해야 합니다.
이것이 깨친 사람이 방편이 없는 가운데에서 쓰는 참 방편입니다. 닦고 증득할 것이 없는 가운데에서 참으로 닦아 증득하는 것입니다. 취하고 버리는 분별이 없는 가운데에서 참된 분별이 있는 것입니다.
약산 스님(745~828, 석두회천의 제자)은 “껍데기가 다 벗겨져서 오직 하나의 진실만 남는다”고 하고, 또 “전단나무의 무성한 나뭇가지와 잎이 다 떨어져서 오직 진짜 전단만 남는 것과 같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이 ‘현재의 나쁜 행실을 고치고, 오신채 같은 음식을 먹지 않으며, 음욕과 성냄을 없애 주는 더할 나위 없는 법’입니다.
公은 試思之하라. 如此說話도 於了事漢分上에는 大似一柄臘月扇子이나 恐南地寒暄이 不常이라 也少不得이니라. 一笑하노라.
그대는 생각해 보셔야 합니다. 이처럼 이야기를 하는 것도 깨친 사람 형편에서는 추운 겨울의 쓸모없는 부채와 같습니다. 그러나 남쪽 땅의 날씨가 차고 더운 게 한결같이 않다는 사실을 걱정하고 있기에 어쩔 수 없습니다. 빙그레 웃는 저의 마음을 아시는지요.
☞ 선에서는 마음이 걸림이 없어야 행이 걸림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이 마음과 행은 올바른 법이 가득한 연기의 흐름을 탄다. 아름다운 연기의 삶으로서 행복이 가득하다. 내가 행복하고 주위가 행복하며 나아가 세계가 행복한 것이다. 거침없는 행이라고 하여 나 혼자만 좋아하고 주위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면 이는 수행자가 아니라 문제있는 사람이다. 대혜스님은 이 점을 지적한다.
출처: 禪 스승의 편지, 대혜 종고 『서장』, 원순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