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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普賢.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3.08.22 화엄교학은 어렵습니다. 내용이 대단하기는 해도 그냥 현학적 이론에 가까워요. 우리같은 범부는 별 도움이 안 됩니다.
저는 해주스님의 화엄학 강의를 보면 어려워서 따라가지를 못해요.
더구나 거기 나오는 한문, 한자를 이해를 못해요.
저같이 20세기에 태어난 사람들은 당나라 현수 법장 당시의 한문 언어는 이해 불가능입니다.
반면 화엄경은 쉬워요! 정말 너무나 쉬워요!
제가 그냥 술술 읽어나갈 정도입니다.
한글 대장경보다 읽기가 훨씬 쉬워요.
어떻게 1500년 전에 번역된 경전 한문이 1500년 후의 한글 세대인 제게 그렇게 쉽게 읽히는지! -
작성자 普賢.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3.08.22 우리가 살다보면 行이 제일 중요합니다.
흔히 불교에서 신구의 삼업을 얘기하는데, 사실 구업 심업(의업)은 행을 유발하지 않으면 이웃들에게 큰 문제는 별로 안 됩니다.
그냥 계획(?) 수준에서 끝나는 거죠.
그러나 행은 달라요.
행이 나오는 순간 세상 자체가 달라집니다.
이번에 신림동 지하철 등 칼부림 사건 보세요.
칼부림 예고는 경찰이 미리 손을 쓸 수도 있고 또 계획으로 끝나지만, 행으로 옮기는 순간 난리가 납니다.
그래서 한 사회의 질서가 유지되려면, 또 도덕 윤리가 유지되려면 가장 급선무가 행을 먼저 제압하는 것이고,
그 행을 제압하는 것이 사회에서는 법이니 규칙 또는 규율이라면, 종교에서는 戒입니다.
계는 생각과 말도 있지만 무엇보다 행을 규제하기 위해 나온 것이지요.
행은 그렇게 바로 이웃들을 해칠 수 있어요 -
작성자 普賢.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3.08.22 하지만 기존 화엄은 바라밀행과 관법을 화엄수행으로 본 거 같아요.
십바라밀 때문인 듯한데, 이것도 제가 누누히 말씀드리지만 십바라밀은 십지품이 중심이 되어 설해지긴 하지만 화엄경 전체에 나오는 수행법은 아닙니다.
일부(명법품 십행 십지 및 입법계품 일부)에서만 나와요.
그러니 십바라밀을 화엄 수행의 핵심으로 잡기에는 제가 볼 때는 무리입니다.
또한 십바라밀 중 후반 4개는 좀 억지스런 면이 있어요.
그래서 십바라밀을 화엄 수행의 주요 방법으로 보는 관점은 저는 동의하고 싶지 않습니다.
한편 보현행원은 화엄경 거의 전부에 걸쳐 나옵니다.
다만 무엇이 보현행원인지, 보현행원품에서와 같은 구체적 항목은 안 나와요.
그냥 보현행원이요, 일체의 보살행을 총칭하는 듯한 느낌을 대권 화엄경에서는 받아요.
그러니 법장이나 청량징관 심지어 규봉 종밀까지 이 부분에 대한 연구가 별로 없었던 걸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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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普賢.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3.08.24 화엄교학이 꼭 필요하긴 하지만 이미 화엄교학이 체계화 된 지금 우리같은 범부에겐 교학을 공부하는건 별 이익이 없을 겁니다 왜냐? 교학 그게 바로 화엄에서 그렇게 경계하는 일념이요 망상 이거든요?
그니까 우리같은 범부들은 교학보다 화엄경 자체를 읽는게 중요합니다 읽고 무슨 뜻이든 알든말든 그냥 넘어가면 됩니다
그리고 체계적으로 읽어나갈 필요도 없어요 아무 곳이나 펼쳐 읽으면 됩니다 그러면 어느 곳에서나 일중다 다즉일의 화엄 세계가 펼쳐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