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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이론이 아무 소용이 없는(?) 이유

작성자普賢.|작성시간23.07.21|조회수66 목록 댓글 8

불교 이론이 아무 소용이 없는(?) 이유

 

동서고금을 통 털어도 아마 불교만큼 뛰어난 가르침은 없을 것입니다. 물론 제가 세상 가르침을 다 공부할 수도 했을 리도 없지만 제 경험으로는 그렇습니다. 가장 원만하고 가장 완전한 가르침이 불교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불교에는 과학 철학 도덕윤리 등등, 세상의 모든 원리, 가치와 덕목이 다 들어있습니다. 안 믿어지시겠지만 제가 보기엔 그렇습니다. 더구나 불교는 대립이 없습니다. 그 어떤 가르침 어떤 존재와도 대립하지 않습니다. 이것을 ‘원만’이라고 부르는데, 아마 이렇게 원만한 가르침은 불교 외에는 보기 어려울 것입니다.

 

불교의 진수(眞髓)를 아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불교는 워낙 방대하여 하면 할수록 허기집니다. 너무도 뛰어난 분들이 너무도 뛰어난 가르침을 이르셨기에 그러합니다. 저 역시 불법의 바다에 빠져 방향 잃고 허우적거리기를 수십년 한 끝에 비로소 붓다가 우리에게 무엇을 이르려 하셨는지 분명히 알게(?) 된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고 보니 오히려 불교를 떠나고(?) 싶어지게 됩니다.

 

불교 이론,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또 그 많은 세세한 수행 및 수행의 가르침 역시 아무 필요가 없습니다. 모를 때는 그렇게 그것이 아쉬웠지만 알고나니(?) 아무 필요가 없던 것이었습니다. 경전에도 숱하게 나오는 말씀처럼 본래 우리 안에 있고 본래 우리 모두가 이미 갖고 있던 것이었으니까요.

 

또한 번뇌를 없애지 못하는 가르침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런 것들은 그림 속의 떡이요 빛 좋은 개살구 같은 것이라, 내 자랑 할 때는 그럴 듯해도 실전에서는 홍수 앞의 나뭇잎입니다. 흔히 불교 전문가들은 깨치거나 수행하면 만사형통인 것처럼 말씀하시나 천만의 말씀. 부처님도 당신의 번뇌는 모두 없앨 수(?) 없었으니, 이 세상은 홀로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공(空, 般若)한 이치, 세상이 모두 더불어 있는 이치(中道 緣起), 그리고 깊은 선정(禪定, 三昧)...이런 것들을 이룩하면 내 번뇌는 사라지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번뇌는 사라지게 할 수 없습니다. 나는 공한 이치를 보고 선정에 들며 중도 연기에 마음을 두어 세상을 잊을 수 있으나 세상은 세상을 잊지 못합니다. 세상 모두가 나처럼 깨어나야 비로소 세상은 밝아지고 번뇌는 소멸됩니다.

 

세상 모두가 깨어나는 것-그것이 진정한 성불(成佛)이요 그런 성불한 이들(佛陀)만 있는 곳이 불국토입니다. 세상이 어리석음에 덮혀 있는데 홀로 밝아봤자 아무 소용없습니다(擧世渾然我 獨醒). 이것이 원효를 비롯한 세상의 모든 스승님들이 당신의 깨달음을 버리시고 평범한 범부의 모습으로 세상 속으로 뛰어든 이치입니다.

 

-2023.7.21. 아침

 

*화엄경이, 그리고 보현행원이 참으로 평범한 것도 이런 이치에서입니다.

결국 중생의 삶을 구하는 것은 복잡한 이론 어려운 수행이 아니라(물론 그것도 어느 단계까지는 효과가 있지만) 어찌보면 단순한 말 한 마디 단순한 빵 한 조각입니다.

 

*불교에서는 세상 삶의 중요한 세 요소로 선행(善行), 자비, 그리고 보리심(菩提心, 깨달음을 구하는 마음)을 듭니다. 선행은 일반인들의 도덕윤리로 세상 이치를 몰라도 일상에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삶입니다. 자비는 그보다 한 단계 나아가 피해를 주지 않는 것은 물론 피해 입은 이들을 가엾이 여겨 그 분들의 고통을 없애주는 삶입니다. 보리심은 앞의 두 가지에다 궁극의 진리를 깨치겠다는 각오입니다. 왜냐하면 궁극의 진리를 알지 못하면 진정한 선행, 진정한 자비의 실천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마이클 센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많은 분들이 당혹해 하는 이유는 우리가 궁극의 진리는 알지 못한 채 선행, 자비행이 이루어지 때문일 것입니다.

 

http://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300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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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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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普賢.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3.07.21 내 공부 내 번뇌만 신경 쓰면 사실 불교는 최상의 가르침 입니다
    그러나 이웃에 눈이 가는 순간
    은산철벽 같은 한계를 느끼는 가르침이 역시 불교입니다
  • 답댓글 작성자普賢.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3.07.21 성철큰스님 일화에도 그런게 나오지요
    백련암인가에서 내 공부만 할때는 못 느꼈던 아픔을 우연히 산 너머 마을에 나들이 가셨다가 받았던 큰 충격 이야기.

    그래서 큰스님은 시자를 시켜 당신의 독실한 신도이신 운수회사 사장에게 알려 어려움을 다소나마 해소 시키시지요
  • 작성자普賢.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3.07.22 큰스님도 내 공부만 할 때는 아주 법열에 젖으셨을 겁니다.
    나날이 안목이 열리고 밝아져만 가니깐요

    그러나 세상에 나가면 다릅니다
    얼마나 고통 속에 힘든 삶을 중생들이 살아가는지
    그걸 알게 되면 제대로 공부하신 분이라면 가슴 아파오지 않을 수가 없어요
    모를 때는 몰라도 알고 나면 말이지요

    그래서 정말 올바른 공부는 중생 속에서 이루어진다, 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그렇게 불교에서 자비를 강조하는 것이고요

    화엄경 가르침 중에서도 최고로 꼽는 십지품도
    모든 보살의 지위가 <대비가 으뜸(大悲爲首)>이 되어 일어납니다
    초지 환희지부터 마지막 법운지까지가 다 그래요
    대비가 으뜸이 되어 지혜가 깊어지는 겁니다
  • 작성자普賢.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3.07.22 중생을 고통 속에서 건지지 못하는 공부는 아무 소용이 없어요
    건혜, 마른 공부밖에 못됩니다
  • 작성자보문 | 작성시간 23.07.22 마른공부!

    고맙습니다. 마하반야바라밀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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