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띠리리리 띠리리링 띠리리리링~~~” 예정된 알람에 눈을 떴다. 습관처럼 떠지는 눈꺼풀과 달리 찌뿌둥한 몸으로 월요일 아침을 맞는다. 알람을 끄고 카톡의 숫자 1을 확인한다.
순간 잠시 몸의 모든 것이 멈추는 듯, 알 수 없는 감정이 나를 휘감았다.
울컥 눈물이 쏟아졌다. 지난겨울 결혼한 아들의 예식 중 찍었을 사진 한 장! 아들은 왜 이 사진 한 장을 보냈을까! 그리고, 그때는 느낄 수 없었던 의례적인 장면에 이제야 가슴을 울림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를 안았다. 참 오래 걸렸다. 아들의 허리를 안은 아버지의 두 손은 아들을 향한 단단한 마음이 느껴졌고 아버지보다 훌쩍 커버린 아들은 아버지의 어깨를 진심으로 위로하고 있었다. 서로에게 믿음과 위로의 시간이 오기까지 위태롭고 안타까운 시간들이 빠르게 내 머릿속을 지나갔다.
보통의 아버지는 아들과 매우 친밀하지만, 이들은 좀 달랐다. 초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비교적 원만한 관계의 조금은 엄격한 아버지였다. 함께 인라인을 즐기고, 등산도 하며 매일 가정예배를 드리며 서로를 위해 한마디의 기도도 빼놓지 않았던 성실한 아버지와의 관계가 틀어지기 시작하여 풀기 힘든 실타래로 엉키어 숙제처럼 남아있던 안타까운 시절을 나는 오롯이 보고 겪어야 했다.
공대를 나와 미국계 제약회사에 다니던 남편이 15년의 직장생활을 끝내고 어느 날 신대원에 가겠노라고 선언한 날부터 연년생 딸과 아들은 현실에 대한 불안감을 강하게 표현했다.
중학생이었던 딸은 평소 말수가 적고 속이 깊어 엄마를 걱정하며 아빠에게 말을 아꼈지만,
아들은 가장의 자리에서 아빠가 책임감이 있어야 하지 않겠냐며 다시 직장에 들어가야 한다고, 가족을 지켜 달라고 분노했다. 아빠는 무슨 말로도 아이들을 설득하지 못하고 그들 사이에서 서로의 감정을 살피며 조절해야 하는 것은 나의 일이었다.
무엇보다 가정 경제를 오롯이 책임지게 된 나도 당황스럽긴 마찬가지였지만, 신학교를 졸업하고 처녀 때부터 목회자의 사모가 꿈이었던 나는 결코 반대하기가 편치 않았다.
이렇게 늦게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은 미처 생각지 못한 것 역시 아이들과 같은 불안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시어머님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었고 급기야 그 화살은 며느리인 나에게 꽂혔다.
“너 때문이지? 네가 부추겼지? 생각이 있는 거냐? 어쩔 거냐!” 하시며 며칠을 야단이셨다.
그러나 남편의 결심을 반대만 할 수 없었던 나는 며칠 남지 않은 신대원 시험에 낙방하면 다시 직장에 들어갈 것을 약속하고 만일 합격한다면 당신이 15년 동안 열심히 일했으니 대학원 3년간 내가 고생하겠다고 약속하였다. 결과는 합격이었다.
기숙사에 입사한 그는 일주일의 반은 집을 비웠고 다행히 기업체의 선임연구원으로 주 2, 3일을 근무하며 3년의 학업을 마쳤다.
우리 살림은 신혼부터 결코 녹록치않았던 생활이었는데, 그때부터 오롯이 나의 경제 활동으로 지탱 해야했으니 가정 경제는 많은 변화와 시련이 있었고 시기가 겹친 아들의 사춘기는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분노로 나날이 쌓여갔다.
원래, 목회를 하고싶은 것이 아니라 공부가 하고 싶다던 남편은 처음 생각과는 달리 졸업 후 당연한 수순처럼 부 교역자 생활을했고, 아이들은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에 진학하는 시기가 되어 딸은 성악과에, 아들은 시각디자인과에 들어가게 되었으니 부 교역자 사례비가 월 100만원 이었던 현실에 내가 열심히 일하고 노력하지만, 아이들도 나도 서로 드러내지 않는 경제적 결핍을 메우기 힘들었다.
아이들은 모두 기숙사에서 생활하게 된 후, 아들은 아빠와의 대면을 피하고, 아빠는 아들이 전화조차 하지 않는 것이 매우 서운하여 서로는 점점 멀어지기만 했다.
3년여 부 교역자 생활을 마치고 남편은 적지 않은 나이로 청빙이 어려워 경기도의 작은 도시에 폐허가 된 교회 자리에 쌓인 쓰레기를 치우고 남아있던 전 재산은 사택을 짖고 교회 리모델링을 하는데 모두 써버렸다. 15년의 개척교회 생활은 아이들에게 지원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나의 직장이 유일한 생활수단이 되어버렸다.
그동안 학업을 마친 딸은 결혼을하고, 아들은 누구의 도움 없이 작은 사업체를 운영하며 열심히 살아가고 있었고, 굳어져 버린 아빠와의 관계는 회복할 기미가 없었다. 영상 관계 일을 하는 아들은 바쁘다는 핑계로 명절에도 집에 오지 않을 때가 많았지만 나에게는 안부 전화도 잊지 않았고 아빠와는 점점 골이 깊어져 갔다.
중간에서 편치 않은 것은 나였다. 남편이 아들에게 무심함을 이야기할 때, 아들이 아빠에 대한 불만을 얘기할 때, 서로의 입장을 대변하느라 혼자 울기도 했다. 아빠는 아들의 일상을 전해 들으면 걱정과 서운함으로 끝나지만, 아들이 아빠를 이해하기 싫은 것은 왜 엄마를 고생시키느냐는 것이었다. 나는 아들 앞에서 항상 괜찮아야 했고, 유쾌한 엄마여야 했다. 그리고 아빠의 삶이 가치 있는 사역임을 이야기하며. 아빠를 이해할 날이 오기를 바랐다.
“엄마가 생각해 봤는데 아빠에게 생활비를 받지 못하지만, 엄마는 아빠와 함께 사역하고 있음을 감사하게 생각해, 워낙 표현이 없는 아빠 성격에 너에게 살갑고 친절하지 못한 건 아마도 채워주지 못한 미안함의 표현 아닐까. 나도 우리 아버지를 참 무능하고 책임감 없는 아버지라고 생각했고, 엄하기만 하고 당신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사람이라 생각했었는데, 내가 어른이 되고 너희들에게 채워주지 못한 것들을 생각하니 오히려 자기 방어적이 되더라. 애들이 나를 별로 좋은 엄마라 생각하지 않으면 어떻하지? 별로 해 준 것 없는 엄마라고 생각하겠지! 나는 나름 노력하고 살았는데 더 해주고 싶고 친하고 싶은데 내가 부족해서 그게 안되겠지? 하고 조금은 위축되더라. 우리 아버지도 그러셨겠다 생각하니 그때부터 아버지한테 한없이 죄송한 마음이 들더라. 울 아버지도 그런 가운데 가끔 술을 드시면 우리 막내딸 참 이쁘고 착해, 라고 칭찬해 주셨거든. 아빠도 그런 마음 아닐까? 너한테 소식이 없거나 무슨 일이 있을 때, 이 녀석 잘 있나? 하고 묻기도 하고 나에게 전화했을 때 아빠 바꿔줄게~ 하고 강제로 전화하게 될 때도 퉁명스럽게 ”어쩌라구? 왜?“하는 말투에 그런게 내포되어 있는 것 같아. 되도록 자주 전화하고 일 있을 때 아빠랑 상의하고 그럼 좋겠어, 아빠가 너를 얼마나 대견스레 여기는데~”하며 다독여왔다.
서로 서운함이 가득 차 꿈적도 않던 아들과 아빠의 관계가 변화하기 시작한건 지난 봄 이었다.
아들이 아빠에게 연락을했다. 결혼을 하겠다며 상견례를 하자는 얘기였다.
아빠에게 유난히 친절한 아들의 모습이 조금은 의아하면서도 내심 다행스러웠다. 좀처럼 풀리지 않던 실타래가 가늘어지고, 좁혀지지 않았던 간격이 조금씩 좁아지는 것을 느꼈다.
아들은 결혼을 결심하고 부모님의 도움을 받지 않겠다며, 며느리와 함께 계획하고 날짜와 식장까지 정한 후 상견례를 진행했다. 아들의 변화가 반갑기도 했지만 조금은 갑작스럽게 느껴졌기에 내가 물었다. 어떻게 아빠에게 마음을 열게 되었냐고, 아들은 여자 친구를 만나고 연애하는 과정과 준비하는 과정에서 자신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되었다고 했다.
여자 친구가 부모님을 대하는 모습에서 깨달음이 있었고,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그동안 자신이 얼마나 못나게 굴었는지, 부모님께 잘못해 왔는지 깨달았다며, 엄마 아빠가 우리에게 주고 싶었던 것이 얼마나 많았을까, 아빠의 삶의 목적이 무엇이었을까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아빠가 넉넉하게 채워주진 않았으나 그동안 아빠 엄마의 기도와 사랑 덕에 잘 살았고 아빠의 삶이 목적이 뚜렷한 길을 걸어왔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때부터 아빠에게 전화하고 만나서 대화하는 태도가 매우 친근하고 진심임을 느낄 수 있었다. 참으로 다행스럽고 행복한 일이었다.
나는 이제야 마음을 놓을 수 있게 되었다. 그 후 아들은 부쩍 아빠와의 소통이 잦아지고 일상적인 대화가 오고 가며 의논하는 것을 보게 되어 더없이 안심이었다. 지난 명절은 모처럼 우리 가족 모두가 한 상에 둘러서 음식을 나누는 기쁨도 있었다.
그리고 마주한 석 달 전 찍힌 사진 한 장의 의미는 참으로 나에게 주는 안도감의 절정이었다.
둘은 서로를 안는 순간 무슨 생각을 했을지 나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내가 느낀 그대로가 아닐까!
믿음과 위로, 서로를 믿어주고 위로하는 관계야말로 가족이 아니겠는가.
나는 카톡의 사진 밑에 이렇게 썼다. “박제” 나의 갤러리에서 가끔 꺼내 보는 참 마음 뭉클해지는 광경이다. 오랜 시간을 겪은 나만 느껴지는 벅찬 순간이다. 그리고 이 모습을 내 가슴 속에 박제하였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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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채운구정옥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6.16 유작가님도 든든한 아드님이실걸요?
그렇죠? -
작성자최인규 작성시간 26.06.16 사명을 이루신 아버님과 곁에서 가시밭길을 지켜내신 작가님, 아드님과 따님 모두 대단하시며 가정에 큰 은혜 함께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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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채운구정옥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6.16 감사합니다. 작가님께서는 더 험한 길을 걸어오신걸로 아는데 이건 아무것도 아니죠. 지금도 멀리 타국에서 아빠의길을 따르고 있는 딸과사위를 위해 날마다 기도하며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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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화원 안영신 작성시간 26.06.18 그동안 여유롭게 살아오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군요.
이제 힘든 시간은 다 지나갔으니, 앞으론 마음 편하게 지낼 수 있겠지요.
사진 속에 담긴 행복을 음미하면서..... -
답댓글 작성자채운구정옥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6.19 마음 만은 항상 여유 있습니다.^^
힘들고 애쓰지 않는 삶이 어디 있을까요. 모두가 인내하며 살고 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