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편지의 추억

작성자윤슬 강순덕|작성시간18.06.18|조회수74 목록 댓글 14

 

 국어 선생님이 꿈이었던 내가 대학에 진학하지 못한 채 서울의 모 학원을 다니기 시작한 어느 날이었다강의실에 도착하여 노트를 정리하는데 앞에 앉은 학생이 자꾸만 돌아보더니 말을 걸어 왔다.
'혹시 00 국민 학교 나오지 않았어요?'
'? 그런데요?'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지 않은 내가 학원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리란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당황한 표정으로 되묻는 나에게 그 아이는 연필 쥐는 모양으로 나를 알아보았다고 했다. 보통 엄지와 검지에 연필을 쥐고 중지가 연필을 받혀주는 모양으로 연필을 쥐는데, 나는 약지 위에 연필을 올린다. 그래서 국민 학교 때 담임 선생님께 숱하게 지적을 받았지만 끝내 고치지 못했다.
 지금까지 내 약지 손가락에는 굳은살이 증거로 남아 있다. 연필 쥐는 모양으로 사람을 기억하다니 지금 생각해도 참 신기하다.  세월이 흘러도 고치지 못하는 습관이란 얼마나 무서운 건가. 연필 쥐는 걸 고쳐보려고 노력했던 수많은 노력들이 떠올랐다. 
 
  김용택 시인의 <마당은 삐뚤어졌어도 장구는 바로 치자>는 시가 있다. 그 시에는 특별한 서사와 메시지가 담겨 있다. 하지만 그 서사와 메시지를 빼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입은 삐뚤어졌어도 말은 바로 하자.' 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입이 삐뚤어진 사람도 말은 바로 하듯이 삐뚤어진 마당에서도 장구는 신명나게 잘 칠 수 있다그러므로 연필 쥐는 법은 삐뚤어졌어도 글씨는 잘 쓸 수 있지 않을까. 
  인간은 누구나 한두 개의 결점을 갖고 살아간다. 누군가는 그것을 극복하며 살고 또 누군가는 신경 쓰지 않고 살아간다. 나는 대체로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결국 그 결점은 극복하거나 많이 좋아진다는 걸 알았다. 그 중에 고치지 못한 건 연필 쥐는 법이다내 연필 쥐는 법은 틀렸지만 글씨가 썩 나쁜 건 아니다
 사실 나의 글씨는 악필이었다. 연필 쥐는 법부터 틀렸으니, 글씨 또한 엉망인건 당연한 결과였다. 그런 내가 악필을 고칠 수 있었던 건 중학교 때 담임 선생님의 한마디였다. 어느 날 평소 내 모습을 지켜봐 오신 선생님이 국민 학교 1학년 국어책을 가져다 주셨다. 선생님은 '네 글씨가 제멋대로여서 날라 다니는 것 같다. 책에 있는 글자 위에 그림을 그리듯 글씨 쓰는 연습을 해보라.'고 하셨다. 나는 부끄럽기도 했지만, 선생님의 관심에 감동을 받고 열심히 글씨 쓰기를 연습했다.
 글자 위에 연필로 글자를 쓰고, 그 위에 또 글자 쓰기를 반복했다. 나중엔 모든 교과서를 읽는 대신에 글자를 썼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연필 쥐는 버릇은 고쳐지지가 않았다. 연필을 바로 쥐면 글씨가 좋아지질 않고, 평소대로 연필을 쥐어야 글씨가 잘 써지는 것이다어쨌든 감사하게도 나의 글씨는 그때의 노력으로 바로 잡아졌다.   

 글씨가 좋아진 나는 편지 쓰는 게 즐거워졌다. 친구에게, 선생님에게, 떨어져 사는 부모님에게 편지를 썼다생각하면 하얀 편지지 위에 써 내려간 수많은 이야기들이 있어 나는 외롭지 않게 잘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그 사연들 속의 주인공들이 흔들리는 나를 바로 잡아주었다. 가끔은 우울하고 절망스런 현실을 쓰고 싶다가도 잘 있는 내 소식을 먼저 들려주었다. 편지 속에 나처럼 잘 있고 싶어서 열심히 살았다
  말은 주어 담지 못하지만 글은 주어 담을 수가 있다. 미움과 원망을 쏟아놓은 편지를 다시 읽으면 그 글이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상대방에게 가려던 말()들이 내 가슴에 먼저 다가와서 너의 이 말()이 얼마나 아프고 무서운 것이냐고 묻는 것 같았다. 보고 싶은 00, 그리운 00, 사랑하는 00를 써 놓고 나면 그 대상에 대한 미움이나 그동안의 원망 같은 것이 사라졌다. 그래서 글이란 한 번 더 생각하는 것이고, 상대방을 배려하는 것이란 걸 경험으로 알게 됐다.
 그 후로도 오랫동안 편지 쓰는 걸 좋아해서 문방구에 가면 예쁜 엽서나 편지지를 사 모으고, 예쁜 색깔의 볼펜을 사서 모으는 걸 좋아했다. 물론 메일이나 휴대폰이 나오고 나서부터는 언제부턴가 그런 습관이 사라졌다. 세상이 편리해진 게 전부 좋은 건 아니다. 십이월이 오면 크리스마스카드나 연하장을 사서 틈틈이 써 두었다가 우체국에 가던 그때의 설렘 가득한 행복을 지금은 맛볼 수가 없다.
 가끔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이 내게 하는 말이 있다. '그때 네가 보내준 그 편지를 아직도 갖고 있다.', '힘들었을 때 정말 힘이 되었다.', '너의 편지가 참 좋았다.' 편지라는 말을 꺼내면서 우리는 순수했던 어린 시절의 우정과 추억을 이야기하곤 한다.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나는 더 많은 편지를 쓰겠다고 생각한다.
 요즘은 컴퓨터 앞에서 키보드 좌판만 두드려댔더니 글씨가 잘 안 써진다. 안 써지는 게 아니라 아예 글을 잊어버려서 난감할 때도 있다. 결혼식장이나 장례식장에 갈 때 봉투에 써 넣는 경조 문구도 도장으로 대신하는 바람에 어쩌다 봉투에 직접 쓰게 되는 상황이 오면, ', 결혼', '부의'라는 쉬운 한자도 잘 생각이 안 나서 백지에 여러 번 연습을 하고 쓰게 된다

 문득 옛 생각이 날 때는 편지함에 들어 있는 편지를 꺼내 읽어본다그럴 땐 아련하게 떠오르는 추억으로 가슴이 먹먹하다. 나는 주로 편지를 보내는 편이라서 답장을 받지 못한 경우도 많고, 보관하지 못한 편지도 많아서 편지함에 남아있는 편지는 많지 않다
 갈래머리 적 친구들의 편지 몇 장과 직장 동료에게서 받은 편지나 연하장, 그리고 딸들이 보낸 크리스마스카드 몇 장이 남아 있을 뿐이다. 그 중에 내가 잊지 못하는 편지는 남편에게서 받은 편지다. 감정 전달을 편지로 했던 나에 비해 남편은 도통 답장을 보내지 않아서 토라지기도 하고 위기에까지 이르게 된 일도 많았다. 그러다가 결국은 답장 받는 것을 포기하고야 말았다. 그토록 편지 쓰는 걸 싫어했던 남편에게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받은 편지가 있다
 1998년 여름, 남편은 1년 동안 교육을 가서 하숙 생활을 했었다. 시부모님 모시고, 어린 두 딸을 키우며, 직장에 다니던 나는 그때 너무 힘들었었다그런 나에게 남편은 마음을 담아 위로의 편지를 보냈던 것이다하얀 편지지에 모나미 볼펜으로 두 장에 걸쳐 써 보낸 편지에서 비록 감정 표현은 서툴렀지만나를 생각하는 진심이 느껴졌아마도 죽을 때 까지 남편에게서 편지를 받을 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하니 더욱 소중해진다.  
 결혼 10년 만에 받은 그 편지는 남편이 나에게 든 보험이나 마찬가지다. 이루 말할 수 없이 밉고, 지금 당장이라도 집을 나가고 싶다가도 그때 나를 위로해준 편지 한 줄이 생각나서 마음이 돌아서곤 했으니까... 지금도 그 편지를 읽으면 그때의 감동이 되살아나서 마음이 울컥해진다. 
  진심을 다해 쓴 편지 한통은 인생을 바꾸는 편지가 된다보내는 사람의 인생이든 받는 사람의 인생이든 애정 어린 편지는 충분히 그럴 만한 힘이 있다. 문자나 카톡을 보내면 내 생각이 순간 이동하여 그의 눈앞에 도착하는 세상이다. 그러나 가끔은 하얀 편지지 위에 마음을 담아 편지를 쓰고 싶다.  보고 싶은 친구의 이름과 사랑하는 가족에게 잘 지내고 있느냐고 말이 아닌 글을 담아서 보내고 싶다. 그리고 어느 날인가 내 이름이 적힌 편지 하나를 문득 받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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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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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꿈꾸는 천사 | 작성시간 18.06.19 언제나 보내는 편이시군요
  • 답댓글 작성자윤슬 강순덕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8.06.19 답장은 속수무책이지만 즐거운 편지 쓰기였지요..
  • 작성자노수현 | 작성시간 18.06.19 문득 손편지 쓰고 싶은 어느날.......
  • 작성자이하재 | 작성시간 18.06.20 예전에는 서간문 대회도 있었지요. 위문편지를 쓰면서 글짓기도 늘고 추억을 떠올려봅니다
  • 답댓글 작성자윤슬 강순덕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8.06.25 그러네요
    스승의날 어버이날 국군의날
    편지 쓸 일 많았는데요
    그 시절이 그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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