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꽃으로 피는 소금

작성자윤슬 강순덕|작성시간18.11.07|조회수35 목록 댓글 12

 박범신의 소설 <소금>은 자본주의의 단맛에 길들여진 아내와 딸들과 그 안에서 섬처럼 살아가던 아버지가 존재의 이유를 찾아가는 이야기다. 물질만능의 가족 속에서 겉도는 아버지의 고절한 시간들, 가족으로부터 도피하여 진정한 자신의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아버지, 그런 아버지의 삶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성장하는 딸의 모습을 통하여 현대인들이 삶에서 잃어버린 소중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묻고 있다.

 이야기는 소금밭 결정지結晶池에서 발견된 염부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된다. 결정지란 바닷물이 여러 차례 증발지蒸發池를 거쳐 비로소 소금이라는 육체를 갖추는 곳이다염부는 자식의 배움과 가족의 밥을 위하여 소금밭을 일구어 왔으며, 소금밭에서 대파질을 하다 몸 속 염분이 부족하여 죽음에 이른다.
 소금을 짓는 염부가 소금기가 부족하여 사망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한편 그의 아들 선명우 역시 소금밭은 아니지만  인생의 무서리에서 가족을 위해 살아간다. 한 때 젊은 날 품었던 첫사랑도 삶에 대한 열정도 퇴색한 채로 가족의 밥과 소비를 위한 조달자로서 충실히 살아왔다.
 그런 그가 딸의 스무 번째 생일에 가출한다 딸의 생일 파티에 맞추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만난 소금장수 가족으로 인해 아버지는 자신의 삶을 되찾기 위한 가출을 시도한 거다. 오랜 시간 잊었던 아버지(염부)의 존재와 조우하게 된 것이다.

 소금장수 가족의 구성은 괴이하리만치 특이하다. 그들은 핏줄로 이어진 가족이 아니다. 아버지의 폭력으로 인해 장애가 된 여자와 길에서 만난 그의 남편인 소금장수, 그리고 길에서 얻은 두 아이가 트럭 하나에 몸을 싣고 소금을 팔아 살아간다. 그들은 서로를 필요로 하면서도 미워하며 같은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이다
  소금장수는 사고로 하반신 불구가 되어버린 상황에서 선명우를 만나고, 선명우는 그들의 가장의 역할을 떠안게 된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처한 사람들에게 선명우는 진심으로 서로를 일으키며 그들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준다. 그리고 그를 의지하는 그들에게서 자신의 삶과 진정한 가치를 회복하게 된다.
 한편 선명우의 딸 시우는 행방불명된 아버지를 찾아 나서고 홀로 살아온 아버지의 외로운 흔적들을 확인하게 된다. 가족의 소비를 위한 은행 통장으로서의 아버지, 자신의 존재를 몽땅 걸고 살아온 아버지, 자신의 삶을 기꺼이 저당 잡힌 채 살아온 아버지의 삶과 마주하며 아버지의 존재를 새롭게 인식하게 된다. 그리고 이제야 비로소 자신의 삶을 제대로 살아가고 있는 행복한 아버지의 뒷모습을 목격한 시우는 아버지를 놓아주고 돌아온다
 
 흔히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가치를 따질 때 경제적 실리의 잣대를 들이댄다. 물질의 가치는 물론이고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관계에도 저울이 있으며 심지어 연애에서도 밀당을 한다. 전통적 미덕으로 중시해 오던 정情이라던지 이웃사촌이란 관계는 사라진지 오래다.
 자본이 가지고 있는 단맛은 우는 아이를 달랠 때 효력을 발휘하듯  때로는 위로를 주기도 한다. 단맛은 어린아이의 입 속에 든 사탕처럼 황홀하다. 하지만 영속되는 단맛이란 없다는 게 문제다. 단 맛이 남기고 간 자리에 퍼지는 검은 독을 간과한 결과를 우리는 알아야 한다
  
 소금을 잉태한 바닷물이 시간 안에서 뜨거운 태양과 거친 바람을 통과하는 여정을 시작한다. 염부는 끊임없이 대파질을 한다.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대파질을 한다는 건 힘겨운 노동이다. 염부의 몸에서 소금기가 다 빠져 죽음에 까지 이르게 되는 노동이다. 그러한 노동을 통하여 어느 순간 하얗게 소금 꽃을 피운다. 그러나 소금은 염부의 손에 의해 만들어지지 않는다. 하염없는 기다림과 보이지 않는 시간을 통과한 후에야 소금이라는 형태가 드러난다. 그러기에 햇빛과 바람으로 바닷물을 익히고, 모든 불순물들을 증발시키는 시간 안에서 피어난 꽃이다. 
 아버지와 소금은 어쩌면 서로 닮았다. 음식을 만들 때 가장 기본이 되는 맛이 소금이다. 하지만 음식의 가장 기본이 되는 소금의 가치를 모르고 살아간다. 소금은 그저 짠맛일 뿐 음식의 맛을 결정한다는 걸 잊고 산다. 아버지의 존재도 그렇다. 선명우의 가족처럼 대부분 아버지의 존재는 희미하다. 

 집을 떠나서 자신과 대면하게 된 선명우와 그의 딸 시우를 보면서 내 아버지를 생각했다. 집에서는 늘 혼자였던 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른다. 아버지 여윈 손에서 타들어가던 담배꽁초를 미워했고, 마당 한쪽에 쌓여가던 빈 술병들을 싫어했다. 아버지 곁에 앉아서 빈 술잔에 술 한번 따라드려보지 못했다.
 엄마가 떠안고 살아온  고통을 가슴아파하며 아버지를 원망했었다. 아버지의 쓸쓸했을 가슴을 안아주지도 못했고, 앞서가는 아버지에게 달려가 팔짱 한번 껴보질 못했다. 선명우는 자신과 마주할 기회가 있었지만 내 아버지는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떠나가셨다. 다시 만날 수 없는 아버지, 내가 찾아갈 수 없는 곳에 계신 아버지, 그 아버지가 문득 그리워졌다. 

 소금을 연상할 때 느끼는 맛은 단순히 짠맛이다. 그러나 한 알의 소금 안에는 짠맛을 포함하여 단맛, 신맛, 쓴맛이 있다. 이들의 맛이 서로 균형을 이룬 것이 진정한 소금의 맛이다. 나아가 소금은 생명을 이루는 기초이며 생명을 되살리는 요소이다. 평생 소금밭을 일구다 몸 속 염분을 땀으로 쏟아내고 죽음을 맞이한 아버지의 삶을 반추하여 자신의 삶을 되살린 것처럼...
 우리는 모두 달콤한 인생을 꿈꾸며 살아간다. 그러나 진정으로 달콤한 인생이란 눈물과 고독과 슬픔 속에서 이루어진다. 한 알의 눈부신 결정체로 찾아와 주기를 기다리며 긴 시간 안에서 스스로를 담금질하는 소금과 같은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쓰고 시고 짠 맛이 서로가 서로의 맛 안에서 녹아 버무려진 후에야 비로소 균형을 이루는 참된 인생으로 찾아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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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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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윤슬 강순덕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8.11.08 웃는 모습을 뵌 적이 없어요.. 강골기질이라서 표현도 안하시고..
  • 작성자수원 안영신 | 작성시간 18.11.08 소금 한 덩어리의 결정체가 되는 과정이 바로 우리네 인생이 완성 되어가는 과정과 닮았군요. 남자나 여자나 아버지와 화해하기 위해서는 긴 시간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윤슬 강순덕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8.11.08 형체가 없는 물이 형체를 이루기까지 얼마나 쓰고 아린 시간이 흐를까요
    신비하기만 합니다
  • 작성자노수현 | 작성시간 18.11.12 어쨋건 나도 그런 아버지라는 것...아버지는 죽어서야 생각나는 그런 존재다 ㅠㅠ
  • 답댓글 작성자윤슬 강순덕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8.11.12 그렇다고 죽지 마셔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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