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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초실록

함안 군북 유현 천제봉 쑥고개(숯고개) 300년 수령 느티나무 보호와 등산로 개척

작성자民草 農溪 鄭奉永|작성시간17.08.19|조회수344 목록 댓글 3

2017.8.7(월) 오후 함안에 종중 서류관계 준비차 내려갔다가 양복 상의를 차에 벗어놓고, 폭염에도 불구하고 인천 거주 병권 장조카랑 함안 고향 뒷산인 모과등(이칭 ; 모개등)을 지나서 천제봉(조선시대 역사 사료는 天帝峯, 현지도는 天祭峰 ; 233m) 아래의 흥복사(興福寺)까지 올랐다.

우리 말고는 오르는 사람이 없기에 등산로가 있으나 희미하다. 매년 한 번씩 개량낫(이칭 ; 왜낫)을 숫돌에 갈아 지참하여 길을 뚫어준다.

천제봉까지 쭉 송림(松林)으로 되어있어 피톤치드를 뿜어내는 힐링 등산로이나 아랫쪽은 무성한 잡목이 길을 가려서 매년 낫으로 뚫어주지 않으면 등산로가 막힌다.

1차로 흥복사까지 반쯤 뚫었고, 2차로 날짜 잡아 한 번 더 해야 천제봉 정상까지 도달한다. 추가로 정상까지 등산로를 뚫기로 의논이 되어있다.

유은(柳隱) 정광식(鄭光植, 족보 항렬명 ; 鄭鉉洛, 1912 음 4.22생, 생존시 106세) 아버지가 32세 때인 1943년(소화: 昭和 18) 음 8.27 자에 유현리 산 78의 산 78- 1, 산 78 - 2(유현리 324 - 4 전(밭)으로 전환 ; 1739m² : 526평)로 분할하기전의 산 78의 원래 면적 56979m²(17236평) 중 절반(28489.5m² : 8618평)을 매수한 산판매도증(山坂賣渡證)과 매도금 영수증(領收證) 고문서에 의한 것이다.

정광식 아버지가 2차 도일(渡日)을 다녀온 후 벌어온 돈으로 32살의 청년 나이에 매입한 것이다. 요즈음으로 치면 장가도 안 갈 나이에 이렇게 큰 일을 하셨다.

해방되기 2년 전인 1943년(소화 18) 8.27 산을 매입한 시기는 서울의 정창영 형님(1943 음 11.20)이 태어나기 3달 전이 된다. 당시 32세의 청년 유은 아버지는 이미 5남매가 태어난 가장(家長)이자 대주(大主:垈主:大柱)였다. 1946.6.3에는 바로 접경의 법수면 우거리 산82 번지 18347㎡(5050평)을 군북면 장지리 거주 남양홍씨 홍시종(洪時鍾)의 아들 홍상범(洪象範)으로 부터 매입도 했다. 여러모로 대단한 아버지시다.

산판매도증 고문서를 가지고 1994년 조치법 시행 때, 남양홍씨 문중과 법적으로 다투어 1971.12.20 분할된 임야대장이 없이 잘 못 등기된 유현리 산 78 - 3 면적 20727m²(2정9무보 : 6270평)을 경정(정정의 뜻)하여 산판매도증 계약서 영수증 대로 분할 측량을 하여(농지위원 3인의 보증을 받아) 유현리 산 78 - 3으로 새 번지를 부여하고, 1994.4.27 등기원인 신청착오, 토지표시 경정으로 6886m²(2083평)을 더 찾아 유현리 산 78 - 3의 임야대장 면적은 27613m²(8353평)이 되었다.

산판매도증 영수증의 유현리 산 78의 원래 면적(17236평)의 절반인 8618평(8618평 - 8353평=265평)에서 265평은 양보하였다. 산의 일부가 개간되어 밭으로 이미 전환된 유현리 산 78 - 2(유현리 324 - 2 지번의 밭으로 1959.6.15 자, 등록 전환)의 526평이 빠져나가 산판의 면적이 줄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다.

당시 산을 더 찾아 우리산이 된 우거리산과 접하는 봉우리에 이듬해 봄인 1995년 3월에 기념으로 정삼영 형님과 정경문이 천제봉 흥복사 근처 숯고개 300여 년 고목의 파생 새끼(子) 나무를 구하여 이식하였다. 지금으로 부터 22년 전으로 당시 야생하는 느티나무가 6~7년생으로 전체 수령은 30년 정도가 된다.

평촌(平村)에서 모개등을 지나서 숯고개(이칭 ; 쑥고개, 골 아래에는 흥복사 : 興福寺 위치)의 300여 년 느티나무는 함안 여항산(艅航山 : 餘航山, 770m)에서 계티고개를 지나 삼봉산(三峰山, 302m)에 도달하고, 다시 봉산이고개를 지나 천제봉(天祭峰, 233m)을 거쳐서 쑥고개(이칭 ; 숯고개)에 이른다.

저멀리 남쪽 함안의 진산(鎭山)인 낙남정간(洛南正幹) 여항산의 지맥이다. 봉산이고개에는 남해안고속국도가 나기전에는 1000년이 족히 넘는 수령의 포구나무(이칭 ; 팽나무)가 있었다. 지금은 고속도로가 나면서 고목(古木)은 사라졌다.

쑥고개 300여 년 느티나무(이칭 ; 기목나무)는 조복희(趙福熙 ; 1912년 음 2.6생) 어머니가 1928년 17살 때 대산면 서촌에서 시집 올 그때에도 대산면 악양고개나 법수면 악양들, 대산면 옥열리 철머리고개에서 서쪽으로 바라보이는 우산처럼 생긴 독립수였다고 한다.

쑥고개 느티나무~정삼영(鄭三永 ; 1937 음 9.10~2003.3.4, 67세 卒), 정경문(鄭景文 ; 1964.2.3~2002.5.12, 39세, 육사 42기, 육군 중령, 인도 - 파키스탄 캐슈미로 분쟁지구 유엔정전감시단 요원 : PKO로 활동 중 2002.5.12 순직, 대전국립묘지 안장) 부자(父子) 생전 식수목 느티나무~우거리고개 포구나무(300여 년 고목 ; 이 나무가 서 있는 산 등성이가 낮아 법수면 악양들에서는 독립수지만 조망되지 않는다 ; 이 나무도 보호할 예정이다)~법수산(法守山, 155m)~법수면 서부지역 강주리, 황사리, 대송리, 사정리, 백산리의 모든 지맥이 해당 되어 의령과 마주보는 남강에 이른다.

쑥고개 독립수 기목나무(느티나무)와는 그후 9남매(7남 2녀)를 출산 양육하는 동안 등에 엎고 걸리고 30리길 대산면 서촌 친정을 내왕할 때는 숯고개의 이 우산처럼 생긴 느티나무를 바라보며, 저 나무 밑에 내가 사는 평촌 동네가 있다며 이정표가 되어 먼길을 걸었다고 한다. 쑥고개 아래는 가는골이고 옆 큰골(이칭 ; 여시골)에 고향 평촌 마을이 있다.

어머니 조복희는 9남매를 낳았으니, 90개월(7년 5개월) 동안은 배속에 아이를 지닌 두 몸의 삶이였으나, 그래도 82세로 당시 나이로는 장수하신 편이다. 돌아가시기 하루 전에도 건강하시어 사시는 집 옆의 텃밭에서 냉이 잡초(초봄에는 나물이 되지만 무성하게 자라면 밭의 잡초가 됨)를 반나절 호미로 뽑으시고는 과로로 그 다음날 새벽에 뇌졸증으로 갑짜기 쓰러져서 10여일 만에 돌아가신 어른이다.

유현 신촌의 태영 동생 등과 더불어 쑥고개의 느티나무를 보호하는 이유가 이런 어머니의 애환(哀歡)이 서려있는 스토리 때문이다.

조복희 어머니가 생전에 항상 쑥고개 느티나무에 대하여 항상 그런 말씀을 하셨다. 언젠가는 보호수 표지석이라도 하나 세우려고 한다. 표지석의 명칭은 전후면에 '자모수(慈母樹) 기목나무', '사모수(思母樹) 느티나무'가 될 것이다.

3번에 걸처서 둘레의 잡목을 정리하여 고목이 잘 자라게 한 적이 있는데, 이번에 가보니 잡목이 둘레에 또 우거졌다. 8월 안에 시간을 내어 기계톱으로 300여 년 고목 느티나무와 정삼영 형님과 정경문 기념 식수목 2곳의 느티나무 주변 반경을 벌목하여 잘 자라도록 정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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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로 2017.8.17(목) 장유서 7시 30분 출발하여 창원에서 지인 유은후씨를 태워 함안에는 9시 경에 도착하여 정태영(기계톱 담당), 정병권, 지인 4명이 작업하여 오후 2시 경에 작업을 마쳤다. 날씨가 엄청 더워서 땀도 많이 흘렀다.

쑥고개 마루에 있는 300년 느티나무 고목은 옛날 법수면 윤내리, 가야면 산서리 사람들이 군북장을 내왕하는 고개마루의 휴식처 그늘수로 쉬어가는 장소였다.

사월 초파일 석탄일이 오면 군북면의 유현리, 장지리와 법수면 일원의 총각 처녀들이 흥복사(옛날에는 이칭 ; 우거리 절)에 왔다가 나무 그늘 아래 쉬며 집합하는 장소가 되기도 했다. 또 유현초등교(구, 유현국민학교)가 폐교되기 전에는 흥복사가 학교와 가까워서(2~3km) 1, 2, 3 저학년은 봄 가을 고정 소풍 장소이기도 하다.

군북역과 군북장은 일제시대와 광복 후 박정희의 5.16 이후 60년 중반까지는 증기 기관차의 물을 공급하는 역으로 함안역이 5분을 정차하면, 군북역은 20~25분을 정차하는 역의 중요성으로 군청 소재지 함안장 보다 크거나 엇비슷했다.

군북역은 의령, 합천 사람이 일제시대나 광복 후 부산이나 일본을 왕래할 때는 군북역을 이용하였다. 삼성그룹의 창업주 호암 이병철 회장도 일제강점기 청년시절에 의령군 정곡에서 일본이나 서울, 부산을 내왕할 때 탑승한 곳이 이곳 군북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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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일제시대와 광복후의 1970년대까지는 조국 산하가 모두 벌거숭이 산(민둥산)으로 나무가 귀하던 시대였습니다. 숯고개의 300여 년 느티나무는 주변에 민가가 없는 고개마루 외딴 곳에 서 있기에, 법수면 등 인근의 사람들이 몰래 와서 아래쪽 둥치 큰 가지를 잘라가는 일이 많아 수난을 겪었기에 현재는 수목의 형태가 윗쪽으로 만 퍼져있습니다.

고목 둥치(밑동) 주변에서 6~7개의 톱 자국(나무 흉터)은 소가 쟁기를 끌어 갈아낸 논바닥의 흙을 평평히 고르는 써래(바탕에 6~10개의 빗살 모양의 말뚝 발이 있음)를 만들기 위하여 잘려간 흔적들이라 전합니다.

마을 동구 밖 평지(平地)의 500~1000여 년의 당산나무 보다는 수령이 한참 낮지만 숯고개 이 고목는 고개마루에 자리잡아 태풍 때의 세찬 바람도 꿋꿋이 견뎌온 300여 년 거목이기에 보호수(保護樹)의 의미가 크다 하겠습니다.

고목 보호수와 등산로 개척 관계 작업 사진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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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8.23(수) 정병권(65)이랑 둘이서 천제봉(233m) 등산로를 3차로 개척을 했다. 천제봉 정상 1, 2봉우리를 거처서 마지막 3봉우리 벤치가 있는 곳까지 가서 휴식을 취했다. 등산로 내내 소나무 그늘이지만 날씨가 너무 더워 땀깨나 흘리며 각각 소지한 큰 패드병 하나씩을 모두 마시고도 모자랐다.

하산하면서는 모개등을 거치지 않고 희미한 등산길인 큰등과 옛 우거리(于巨里)고개(이칭 ; 돈밭갓고개) 쪽으로 하산 하면서 그곳에 있는 수령 300여 년 팽나무(경상도 방언 ; 포구나무) 고목를 살펴보고 평촌 골짝 산소쪽으로 내려왔다.

옛 우거리 고개길은 흔적만 남아 있고, 팽나무 고목도 주변의 키큰 나무들에 가려서 가지 여러개는 썩어 내려앉았고, 옛날처럼 옆으로 둥글게 벌어져야 할 나무가 윗쪽으로 만 클뿐, 둥근 형태로 성장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 고목은 군북면 유현리와 법수면 우거리의 면 경계 지점 옛 우거리고개에 위치한다. 한번 날짜를 잡아 주변 100~150여 평 벌목으로 고목을 보호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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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8.26(토) 4차로 김해 장유서 7시 30분에 출발, 8시 30분에 도착, 장조카 정병권(65), 기계톱 다루는 홍상무(73)씨 셋이서 우거리고개 포구나무 고목 구제에 나섰다. 기계톱 다룰줄 아는 유현마을 거주 동생 정태영(66)은 젖소 목장일과 바쁜 농장일 다른 일정으로 불참한다기에 홍상무씨를 대타로 요청한 것이다.

300여 년 포구나무 고목은 1970년대까지는 우산모양의 독립수로 유지하다가 1980년 경 이후 37년간 주변의 잡목과 생존경쟁으로 키재기 하면서 옆으로 퍼진 가지는 다 썩어서 떨어져 내려앉고, 하늘을 쳐다보며 위로만 자라는 수목형태로 변형되어 있기에 주변의 키큰 잡목을 베어내어 원래의 수목 형태로 자라게 하려는 보호작업이다.

우거리(于巨里)라는 지명이 우(于)는 할 우(위야:爲也), 있을 우(재야:在也), 갈 우(왕야:往也), 여기 우(시야:是也)이고, 거(巨)는 클 거(대야:大也), 많을 거(다야:多也), 억 거(수야만만:數也萬萬)이지만, 이 고목과 숯고개 느티나무 고목 2개 만 우거(于巨)의 상징으로 겨우 남아 있다.

군북면 유현리와 법수면 면경계 고개지만 나무가 서 있는 지점은 분수령(도계, 군계, 면계는 대개 분수령으로 나누어진다)으로 살피건데 약간 우거리 쪽으로 경사진 지점이 된다. 법수면 우거리 본동 순흥안씨 촌에는 누님(정을남, 83)이 사시는 곳이기도 하다.

군북면 유현리(柳峴里) 지명의 유래는 유전(柳田)마을과 옛 남현(欖峴)마을의 두 마을에서 딴 지명이다. 유전마을 앞의 유전늪(현, 한국제강 자리)의 물가에는 1980년대까지도 500여 년 수령의 수양(垂楊)버들이 여러 그루 있었다. 남(欖)은 감람(橄欖)나무 남(람)이다.

유현리은 의령방향의 북서쪽으로 트인 들판을 제외하고는 북서쪽에서 시계 반대 방향으로 고개를 나열하면, 민등고개, 건장골고개(어지럼고개), 세실골고개, 개고개(이칭 배:拜고개), 옹당골고개, 봉산(峰山)이고개, 부릉고개, 숯고개(이칭 ; 쑥고개) 우거리고개(이칭 ; 돈밭갓고개), 새총골고개, 깨살고개(꼬사리고개:고사리고개) 등 크고 작은 고개를 통해서 들어오는 마을이다.

옛 남현은 현 평촌(平村, 이칭 ; 평마을, 퍽말)를 말한다. 현재 유현리 옛 호부래비골과 민등마을, 민등고개 등에는 남해고속국도의 상, 하행선의 함안휴게소가 위치하고 있다. 옛 남현의 유적으로는 유현 지방도 변에 남북 방향 좌우에 수구막이(풍수지리설) 선돌(길이 ; 1.7m)이 현존한다. 평촌의 큰골과 가는골에는 고려말기 조선 전기로 추정되는 기와장과 말안장(옛날에 없어졌다)이 출토되기도 했다.

37년만에 하는 100~150여 평 벌목잡업이라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땀흘리며 수고한 보람이 있었다. 3~5년 후에는 원래의 나무 형태로 수형을 유지하리라 본다. 오후 1시까지 작업을 마쳤다.

점심 식사후에는 홍상무씨는 돌아가고, 정병권은 가을 배추 식재 거름 준비 등으로 빠지고, 나 혼자서 돈밭갓고개~큰등~우거리산 등대~가는골 등대 정삼영, 정경문 부자 기념식수 느티나무 구간의 희미한 등산로를 톱과 낫으로 오후 6시까지 개척 작업 후, 오후 7시경야 김해 장유에 도착했다.

출향 혹은 작고로 고향에는 가구수도 줄고, 둘째(이을순, 83), 셋째(조정자, 78) 형수님 두분이 고향에 거주하고 계시지만 발길이 뜸했는데, 부산 거주 큰형수(안맹수, 90세)의 장자되는 인천의 장조카 정병권(65)이 요즘 본가 농파정사(農坡精舍)에 내려와 거주하기에, 옛날의 소 먹이고, 소꼴 베고, 연 날리고, 땔나무 할 때를 회상하며 노후 말년에 자주 내려가 등산이라도 할까하여 고개마루 고목 2그루와 기념식수 1그루의 스토리텔링 등산로를 개척한 것이다.

천제봉을 오르는 길이 기념식수 한 가는골 등대까지는 2개의 양방향의 등산로가 개척되었기에 올라갈 때(登山)와 내려올 때(下山)는 코스를 다르게 하여 변화를 갖기 위함이다.

3곳의 보호수 스토리텔링 고향 등산로 개척에 땀 흘리며 힘은 들었지만, 뿌듯한 자부심(自負心)의 만족감(滿足感), 성취감(成就感)을 얻을 수 있었다. 평범(平凡)한 일상일지라도 사람은 항상 의식(意識)에 눈을 뜨야한다. 의식이 깨어있어 새눈으로 보면 사소한 일이라도 만사(萬事)가 새롭게 보인다는 말로 이 글의 끝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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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9.3(일) 5차로 천제봉을 장조카 정병권과 등산했다. 일전에 고목 주변의 잡목을 정리하는 과정에 잡목을 타고서 올라가며 뒤엉켜있는 망개나무(이칭 ; 청미래덩굴, 한약재 이름 ; 토복령) 군락을 잘라낸 그루터기가 있었기에 미리 준비한 작은 곡괭로 그 뿌리를 캐서 조카와 반씩 나누었다.

검색에 의하면, 망개뿌리 효능은 해독작용(정화작용), 이뇨작용, 비만 고지혈증 지방간 예방(대사질환 치료), 고혈압개선, 피부염완화(거풍습:去風濕), 금연효과 등의 효과가 있다고 한다. 음료수로 끓여서 직접 효능을 실험, 체험해 보려고 한다.

망개나무는 가시가 있는 덩굴식물로 제들 끼리 뒤엉켜서 군락을 이루며, 덩굴이 칡처럼 길게 나가지는 않지만 덩굴이 옆 다른 나무(기생나무:지주목)를 걸칠 때는(타고 오를 때는) 키가 5~8m까지 위로 길게 자라는 군락도 발견된다. 이번 망개나무 군락은 그렇게 왕성하게 번식했다. 벌목 제거하면서 가시에 여러번 찔리는 등 무척 힘들기도 했다.

새로운 산림 생태변화~?

망개나무가 주변이 키큰 교목의 그늘에 가려서 넝쿨은 길게(5~8m) 타고 올랐으나 가을이 되어도 열매가 하나도 달리지 않았다. 옛날 1950~1970년대(산에 소 먹이던 시절)는 산이 민둥산으로 나무는 없고 관목의 땔나무와 풀만 있을 때에는 망개나무의 키가 1~2m 이하라도 망개가 주렁주렁 달렸다. 당시에는 할미꽃도 산지에 지천으로 많았다. 숲이 무성하면서 할미꽃도 사라지고 망개나무도 숲의 그늘로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산지의 생존경쟁 식생변화가 발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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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안 군북 유현리 태생 유은재(柳隱齋) 농부(農夫) 유은(柳隱) 정현락(鄭鉉洛, 본명 ; 정광식:鄭光植, 1912. 음 4.22, 양 6.7~1995. 음 2.2, 양 3.2, 84세 卒) 父께서 천제봉(天帝峰) 아래 쑥고개 마루의 노거수 보호수 느티나무 아래에 서있는 사진 2장을 추가로 첨부한다. 75세 무렵의 1986년 경 사진이다.

보호수 주변 벌목 및 등산로 개척일 ; 1차 2017.8.7(월), 2차 8.17(목), 3차 8.23(수), 4차 8.26(토), 5차 9.3(일), 6차 9.5(화), 7차 2018.3.25(일) 보호수 주변 정리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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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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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民草 農溪 鄭奉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7.08.20 옛날 일제시대와 광복후의 1970년대까지는 조국 산하가 모두 벌거숭이 산으로 나무가 귀하던 시대였습니다. 숯고개의 300여 년 느티나무는 주변에 민가가 없는 고개마루 외딴 곳에 서 있기에, 법수면 등 인근의 사람들이 몰래 와서 아래쪽 둥치 큰 가지를 잘라가는 일이 많아 수난을 겪었기에 현재는 수목의 형태가 윗쪽으로 퍼져있습니다.

    고목 둥치(밑동) 주변에서 6~7개의 톱 자국은 소가 쟁기를 끌어 갈아낸 논바닥의 흙을 평평히 고르는 써래(바탕에 6~10개의 빗살 모양의 말뚝 발이 있음)를 만들기 위하여 잘려간 흔적들이라 전합니다.

    글 이어짐~
  • 작성자民草 農溪 鄭奉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7.08.20
    마을 동구 밖 평지(平地)의 500~1000여 년의 당산나무 보다는 수령이 한참 낮지만, 숯고개 이 고목는 고개마루에 자리잡아 태풍 때의 세찬 바람도 꿋꿋이 견뎌온 300여 년 거목이기에 보호수(保護樹)의 의미가 크다 하겠습니다.
  • 작성자民草 農溪 鄭奉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8.01.13 2018.1.13(토) 자,

    창원 지인 유은후씨의 카톡 댓글입니다.

    ☆☆☆

    제가 같이 작업했던 일이라 그때의 기억이 생생합니다.

    정봉영 선배님의 개인적인 일일수도 있지만, 본인이 선배님의 고향에 동행하기도 한 인연이 깊은 지역으로 작은 역사라도 유지하여 알리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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