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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2 - 오벨리스크를 보며 룩소르 신전을 떠올리다!

작성자가라치코|작성시간21.07.04|조회수267 목록 댓글 4

파리 여행2 - 콩코르드광장에서 오벨리스크를 보며 이집트 룩소르신전을 떠올리다!

 

 

2018년 5월 9일 저녁에 인천을 출발해 베이징 에서 다른 비행기로 환승한 중국항공기

다음날인 5월 10일 아침에 파리 드골공항  3터미널에 도착해서는 입국 수속을 밟습니다.

 

 

 32번 Gate 로 나가 건너편에서 신용카드로 티켓을 구입해 에어 프랑스 공항버스

4번 노선에 올라 30분후 리옹역에 한번 쉬고는 20분을 더 달려서

공항을 출발한지 50분 만에 몽파르나스역 Gare MontParnasse 에서 내립니다.

 

 

기차역으로 들어가 2층에서 마지막 선로인 24번 선로 까지 걸으면 오른쪽에 맥도널드가

보이고 정면에 코인로카 콘시그니 Consignee 가 보이기로 들어가 짐 검사 를 받은후

안쪽으로 들어가 로카에 배낭을 넣는데 이게 열쇠식이 아닌 전자식이라 참 까다롭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몇차례나 시도해 보다가 좌절 하는데... 우리도 역시 아무리해도 안되기에

사무실로 되돌아가 여직원을 불러오니 직원도 사용해본 적이 없는지.... 몇차례나

시도해도 안되니 다른 기계로 가서 시도해 3번째 기계에서 어찌어찌 겨우 성공했는데....

 

 

이 기계는 돈을 넣은 구멍이 없고 오직 신용카드 만 사용하는데... 우린 카드를 위에서

아래로 긁었으나, 여직원은 기계에 카드를 문대보더니 안되니까 아래쪽 구멍에

카드를 삽입 합니다.  결론적으로 스타트 단추를 누르면 안됩니다?  이게 애물이라...

 

 

그러니까 박스를 열고 배낭을 넣은 다음 무릎으로 꽉 압박하고 있으면 박스가 잠기고

푸른불이 붉은 불로 바뀌면 무릎을 뗀후 스타트 단추를 누르지 말고 그냥

신용카드를 아래에서 위쪽으로 삽입 하고 기다리면 푸른불 4개 가 들어오고 이어

비밀번호가 적힌 종이 가 나오는데 나중에 기계에 종이를 갖다 대면 저절로 열립니다.

 

 

우린 내일 파리 남부 오를리공항 에서 이베리아항공 비행기를 타고 마드리드 를 거쳐 스페인

남쪽 카나리아제도의 가라치코 마을 이 있는 테네리페섬 으로 갈 예정이라 숙소를 오를리

공항에 있는 이비스 호텔을 예약했지만 시간이 일찍은지라 파리 시내 구경 을 하려고 합니다.

 

 

 몽파르나스역 Gare MontParnasse 지하로 내려가 기계에서 까르네 Carnet 를 구입합니다.

1. 롤러를 돌려 언어를 English 로 선택 2. 오른쪽 초록색 버튼 Validate 눌러 선택

3. 롤러를 아래로 돌려 Buy Ticket 4. 맨위에 있는 Ticket t+ 선택 

 5. 10장 혹은 20장 선택  6. Validate = Totaal Payable 14.90€,

혹은 29.8 € 7. 영수증 : Yes, No ( 지폐 : Vote billet 투입구 ) 또는 신용카드 투입

 

 

그런데 지금은 프랑스 철도가 파업중인지라 직원들이 봉사활동에 나서고 있는데 그 중에

한 노조원이 지하철 구내 까지 들어와 도와준답시고 내게 오더니 저 롤러를 돌리는

구식 기계 말고 그 옆에 그냥 화면에 손가락으로 터치를 하는 신식 기계 로 안내합니다.

 

 

까르네 두 묶음 20장 을 구입한다니까 자기가 대신 화면을 눌러주는데 29.8 유로 가 뜨네요?

돈을 넣을 차례인데 저 노조원은 끝까지 도와주지 않고 가버린지라.... 살펴보니 지폐를

넣는 구멍이 있기로 50유로 지폐를 넣으니 돈은 잘 들어갔는데 다음엔 감감 무소식 입니다?

 

 

아니? 티켓이 나오던가? 아니면 지폐라도 다시 흘러 나와야 하느게 아닙니까? 몇개 버튼을

눌러보아도 감감 무소식이라, 다시 노조 직원을 불렀더니 지하철 직원에게 가자기에

나와 마눌이 모두 따라 갔는데.....  노조원이 지하철 직원 에게 우리 사정 을 설명합니다?

 

 

그러고는 지하철역 직원과 함께 기계로 돌아오니 그새 다른 사람이 한번 사용해 버렸네요?

울 마눌이라도 기계 앞에 지켜서서 다른 사람들이 사용 하는걸

막아야 했는데.... 엉겁결에 그냥 나를 따라 지하철 직원에게로 모두 함께 가벼렸으니....

 

 

그러니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티켓 판매기에는 10유로나 20유로 지폐는 사용할수

있지만 50유로나 100유로 지폐는 사용이 불가능 합니다? 해서 우린 자판기

처럼 직원이 열쇠로 티켓 판매기 를 열어 50유로 지폐를 꺼내주리라 기대를 했었는데....

 

 

지하철 직원이 자신이 가진 직원 카드로 몇번 조작을 하니 기계를 여는 것은 아니고

조금전 반시간 정도의 티켓 판매 현황이 화면 에 뜨는데..... 50유로 지폐 

사용된 기록은 없습니다!  당연하지요! 이 기계는 50유로 지폐를 인식할수 없으니....

 

 

직원은 아마도 50유로 지폐 넣은 즉시 되돌아 나왔을 것 이라고 말하는데...

하지만 좀 전 상황에서 내가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았거니와 그런일은

없었습니다. 그러자 안타까운 마음에 마눌은 내 옆에 어떤 사람이

붙어서 지켜보고 있었다고 맣하는 것이....... 그 사람이 주워갔을 거라네요?

 

 

아니? 나와 마눌이 함께 쳐다보고 있었거니와 우리가 기계 엎에 있을때는 분명 돈이 나오지

않았었는데, 그럼 우리 뒷 사람이 티켓을 끊을때 그때 돈이 나왔던 것일까요? 그럼

마눌이라도 지켜서서 보아야 하거늘.... 할일없이 나를 따라 현장을 떠났거늘 날 원망하다니?

 

 

이제 50유로가 문제가 아니고.... 그 정도 돈을 잃어버린 것은 충분히 감수 할수 있지만...

문제는 콩나물, 두부를 사면서 100원 가지고도 다투는 잔돈에 아주 민감한

마눌인지라... 이제 마음을 상해버렸으니 앞으로 여행은 망쳐버린 것 이나 다름없습니다?

 

 

 

마눌은 침통한 표정으로 입을 닫아 버리는 것이...,,. 앞으로 열흘은 갈 것 같은데, 아무리

흥미로운 볼거리라도 관광에 흥이 날리 없습니다. 게다가 앞으로는 손해를

벌충해야 하니 내가 맥주 한잔 마시려해도 마눌의 심기를 살펴야 할테니 그게 걱정입니다?

 

 

 어쨌든 지하철 표는 사야 하는지라..... 이번에는 남의 도움을 받지 않고 혼자 시도해서는

까르네 두묶음 20장 29.8 유로 20유로 지폐 1장과 10유로 지폐 1장을 넣고 구입해 

입구 기계에다가 표를 넣은후 올라온 것을 받아 쥐고는 지하 통로를 한참동안 걸어갑니다. 

 

 

파리 지하철 메트로 티켓은 90분동안 환승이 가능 한데..... 메트로 - 버스,  RER -

버스 그리고  RER - 트램간에는 환승이 불가능 하며 또한 버스 운전사

에게 직접 티켓을 구입할 경우 가격은 동일하지만.... 환승은 불가 하다고 합니다?

 

 

몽파르나스역에서 Metro 12호선 포르트 드라 사벨 Porte Chapelle 행 지하철을 타고는

7번째 정거장 콩코르드 Concorde 역에서 내려 올라오니 바로 콩코르드

Concorde 광장 인데...... 황금색으로 도금한 웅장한 조형물 들이 빛을 받아 반짝입니다?

 

 

그런데 울 마눌 예전에 오페라 광장 (Place de l'Opéra) 에서 가르니에 오페라극장 을 보고 

 방동 광장을 거쳐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을 본딴 마들렌 교회 를 구경한후 다시 걸어서

콩고르드광장 을 보고는 입을 다물지 못하더니.... 오늘은 두번째인지 시큰둥한 표정 입니다?

 

 

"콩코르드 광장"  은 동서 길이 360m,  남북 길이 210m 로 파리에서 가장 큰 광장으로

동쪽은 튈르리공원 에 이어지고 북쪽은 루아얄가를 통해서 마드렌 성당과 마주하며,

서쪽은 샹젤리제 거리 개선문 과 통하고 남쪽에는 센강에 걸린 콩코르드교 가 있습니다.

 

 

 

팔각형으로 구획된 콩코르드광장루이 15세의 기마상을 장식하기 위해 1765년에 조성된

후에 1770년에는 왕세자 루이 16세와 오스트리아 공주 마리 앙투아네트의 결혼식 

거행되었지만.... 루이 15세상은 프랑스혁명 때에 파괴되고 “혁명광장” 으로

개칭된 후에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  등  1,000여명이 처형된 비극의 현장  입니다!

 

 

 혁명 다음해 1793년에는 "길로틴(단두대)" 이 놓여 왕족과 귀족, 성직자를 처형 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공포정치를 주도하다가 실각된 혁명가인 로베스피에르와 당통 마저

단두대 이슬로 사라졌으니! 이후 길로틴(단두대) 이 있던 자리에는 분수대 가 생겼습니다.

 

 

1795년에 공포정치가 끝나고 비로소 “화합” 을 뜻하는 콩코르드 로 바뀌었는데 1833년

이집트의 총독이었던 무하마드 알리 파샤 가 루이 필리프 프랑스왕에게 선물한

3,200년된 룩소르의 오벨리스크 가 우뚝 서 있는데. 이집트의 람세스 2세 때 제작된

것으로 나일강변 룩소르 신전 에서 옮겨왔으니 운송 기간만 4년이 걸렸다고 전해집니다.

 

 

오벨리스크 의 높이는 23m 에 달하며 상형문자가 새겨져 있는데 오벨리스크의 좌우

에는 로마의 산 피에트로 광장을 본뜬 분수 가 있으며 8개의 모퉁이에

코르투아 플라디에가 만든 여신상이 놓여 광장의 아름다움을 더하는데, 여신상

들은 각각  마르세유, 낭트, 리옹, 보르도  등 프랑스의 8대 도시를 상징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내게는 저 오벨리스크 가 예사롭지 않은 것은..... 몇년전에 우리 부부는 선배님

부부와 요르단과 이집트 전국 일주 배낭여행 시 룩소르(테베) 에 가게 되었는데

카르낙 신전을 보고 룩소르 신전 에 이르니..... BC 1,550년에 세워진 오벨리스크

하나 뿐이라 균형이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더니 그 한짝이 여기 서 있는 것 이네요?

  

 

그리스인들은 저 기둥이 마치 그리스의 “꼬치구이” 처럼 생겼다고해서 "오벨리스크"

라고 이름 지었고, 후대 유럽인들은 "클레오파트라의 바늘" 이라고 불렀다는데...

“이집트는 나일강의 선물”  이라고 하는 것은.... 매년 나일강 상류에

홍수가 져서 강이 범람해서는 농사에 좋은 비옥한 흙이 떠내려오기 때문 입니다.

 

 

해서 나일강 중류 테베인 들은 매년 정해진 시기에 나일강이 범람 하면 오페르 축제 

열리는데, 강이 더 범람하여 붉은 흙을 가져다 주십사고 신에게 기원하는 것이라!

해서 파라오 람세스 2세는 아몬 대신전인 카르낙 신전에서 룩소르 신전 까지

 ( Ma' bad il-Oqsar 마아바트 일 룩소르) 양머리 스핑크스 늘어선 참배길  만들었네요?

 

 

 런던과 로마 이스탄불 등 유럽 각지에 있는 숱한 이집트 오벨리스크 는 유럽의 제국주의자

들이 이집트에서 강탈해 온 것이지만, 콩코르드 광장의 오벨리스크는 1833년에 오스만

투르크 제국 이집트 총독 무하마드 알리 파샤가 기증 했다는데, 그는 알바니아 출신입니다.

 

 

이집트가 자신의 조국이 아니니 기증했다는 표현이 맞는지 모르겠으나...... 그는

오스만제국의 총독 에서 독립해 이집트의 군주 가 되어 무하마드(메메트) 알리

 Muhammad Ali 로 불렸는데, 오스만투르크에서 독립할 때 프랑스의 지지 

받기 위해 룩소르 신전의 보물인 오벨리스크 를 기증하는 거래 를 했던 것이지요?

 

 

 알리 파샤 다시말해 무하마드 알리의 왕조 는 1952년 나세르가 일으킨 군사 쿠데타 까지

유지되었는데..... 이후 먼 훗날인 1964년 2월 25일 미국 마이애미 컨벤션 홀에서

영원한 복싱 챔피언 이 탄생했으니...... 그의 이름은 캐시어스 클레이 Cassius Clay 입니다.

 

 

경기 전 인터뷰에서 그는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쏘겠다” 라고 말했고 경기에서

꼭 그렇게 했으니 20세기 가장 위대한 스타가 탄생한 순간이었는데.....

그런데 그가 종교를 기독교에서 이슬람교로 개종 하면서 이름도

개명했으니...... 바로 저 이집트 군주와 같은 무하마드 알리 Muhammad Ali  라!!!

 

 

 여기 콩코르드 광장에서 서쪽은 샹젤리제 거리이니 개선문 과 통하는데... 파리는 국제적인

도시라 몇년전에 김정일의 장남 김정남 이 바로 저기 보이는 상젤리제 거리 근처에 있는

르메르디앙 에투아 호텔 에 젊은 여성 과 함께 나타난 것이 보도되기도 했던게 떠오릅니다.

 

 

당시 파리의 시앙스포 (파리 정치대학) 르아브르 캠퍼스에서 공부하는 아들인 김한솔

군을 만나기 위해서라고 추측되었는데.... 그러고 보니 우리 부부가 몇년전에

두브로브니크 에서 보스니아-헤르쩨고비나의 도시 모스타르 Mostar 에 갔을때

도시 남쪽에 유나이티드 월드 칼리지 에 가 볼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떠오릅니다.

 

 

거기 국제학교에 김한솔 군이 고교생 으로 재학했었으며 페이스북 에는 노랑머리 를 한

사진이 16장이나 올려져 있었는데.... 한국 기자들이 취재 를 시작하면서

결국은 폐쇄 되었던 것인데, 핀란드 국방장관 출신 언론인인 엘리자베스 렌

인터뷰를 하면서는 서방의 여느 소년다운 자유분방한 사고 를 보였던게 기억이 납니다.

 

 

 김한솔군은 보스니아-헤르쩨고비나 모스타르의 국제학교를 졸업한후 여기 파리의

대학 으로 진학해 파리에 왔으며, 아들을 만나려고 파리를 방문했던

김정남얼마전에 말레이시아에서 암살 당했고 아들 한솔군은 숨어 버렸으니....

 

 

 콩코르드 광장 주변을 거닐며 튈르리 정원 세느강 까지 구경하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떨쳐버리고는 이제 "모네의 수련" 을 보려고

"오랑주리 미술관" 으로 들어갑니다. 나의홈페이지 : cafe.daum.net/baik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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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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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카페지기 | 작성시간 21.07.04 베픔은 기술이다.
    그러므로 연습이 필요하다.
    다른 사람과 나누지 않는다면 당신이 가진 물질적,
    정서적 소유물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
    -마크 샌번-

    늘 즐겁고 健康 하시고 幸福 하시기 바랍니다,
  • 답댓글 작성자가라치코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1.07.04 이제 장마철인가 합니다.
    늘 몸과 마음이 다 평안하시기를 빕니다!
  • 답댓글 작성자카페지기 | 작성시간 21.07.04 가라치코 네 제습기 켜놓고
    시원한 바람 맞고있네요.
    건강한 시간되세요
  • 답댓글 작성자가라치코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1.07.04 카페지기 장마가 아무리 길다고 해도.....
    결국에는 그치고 맑은 날이 돌아오듯
    오래지 않아 평상을 찾을날이 올것으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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