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0.15일 터키의 고대도시 에페스를 생애 처음 만나다
셀축은 관광객이 많은 곳이지만 인구 약 2만 5천의 작은도시.
고대 로마 유적지 에페스는 셀축에 위치하고 습니다
지금은 기둥 하나만 덜렁 남아 있지만, 그 기둥 조차도 온전치 못한 돌들을 꿰 맞추어 놓았지만
고대 세계7대 불가사의중 하나인 아르테미스 신전을 중심으로
오랫동안 번영을 자랑한 고대도시 에페스,
아직도 완벽히 복구되진 않았지만 아름답다는 말이 절로 나오고, 화려함 아니 고급스러움에
또한번 놀라고 도시의 장대함에 다시 감탄합니다
터키에는 고대로마 유적지가 많지만 그중에
화려함과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2000년전의 화려했던 에페스의 숨결을 되집어 봅니다
※ 에페스 설명 인용 ※
에페소는 에게해 연안에 위치한 고대 도시로 도시 전체에 유물이 산재해 있다.
사실 에페소는 여러 유적이 발굴되고 있지만 정확하게 도시의 기원을 알 수는 없다. 다만 역사적으로 많은 민족과 문화가
이곳을 지나갔으며 그로 인해 수많은 유적을 볼 수 있는 유적 도시가 되었다.
에페소는 로마제국 당시 아시아의 수도를 페르가뭄에서 에페소로 옮긴 덕에 많은 건축이 이루어지고 문화의 전성기를 이루었다.
로마 황제 안토니우스가 클레오파트라와 이곳에 체류하기도 했으며, 이후 아우구스트스 시대에 더욱 번성하여
로마의 대도시로 성장하였다. 기원 후에는 기독교와 밀접한 관계를 맺었는데 그리스도의 사도들이
이곳에 전도 여행을 와 교회를 세우기도 하였다. 하지만 7세기 부터는 오스만 제국의 힘이 커져 잦은 침략으로
피폐해 갔으며 이후에는 오스만 투르크의 통치에 놓이게 되었다.
현재의 에페소는 역사 유적과 건축, 기독교 성지순례를 하는 여행객들이 즐겨 찾는 곳으로 에게해의
한가로움과 지중해의 여유로움까지 즐길 수 있는 여행지다. 이스탄불이나 앙카라등 대도시에서 멀어 여행하기 쉽지는
않지만 도시 곳곳에 산재한 유적들과 한적함으로 점점 더 많은 여행객이 찾고 있다.
에페스 출입구는 남쪽과 북쪽이 있는데 우리는 북쪽에서 들어가 남쪽으로 나옵니다.
남쪽매표소가 규모가 크고 북쪽은 작지만 전체적으로 도시가 남쪽방향으로 조금 내리막 경사이기에
북쪽에서 시작하는것이 걷기에 수월할 둣 합니다
상수도관과 바실리카전경
이곳(바실리카)은 로마황제때 화폐를 매매하는 곳이 있는 상업의 중심지 입니다
100년경 아우구스 황제 때 165m 길이로 건설되어진 건물이지요.
기둥들들이 화려하고 장대합니다
왼쪽 공터 쪽은 관용 아고라가 있던 자리입니다 .
※ 사진 클릭하면 큰사진 볼수 있습니다
바리우스 목욕탕 전경
에페스에서 가장큰 목욕탕의 하나..냉탕, 온탕, 탈의실, 열탕 사우나로 나누어져 있답니다.
일부만 발굴된 상태랍니다
바실리카 의 석조 기둥들
파란하늘아래 웅장했던 옛 모습이 그려지네요
반석들은 아무렇듯 그렇게 새롭게 터을 잡고 있습니다.
2천년의 긴 세월을 버티고 지금 여기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파란 하늘에 조각상이 인상적입니다
이곳 바실리카에서 아우구스투스와 그의 아내 리비아의 동상이
발견되어 현재는 에페스 박물관에 보관되고 있답니다
오데온으로 들어가는 출입구지요
오데온의 모습입니다
지붕이 있는 소극장으로 시낭송이나 음악회가 개최되었답니다.
물론 지금은 천장은 없습니다.
한편으로 오데온은 시의회의원들, 에세스의 부유층, 큐레트와 함께 회의를 했던 곳이기도 합니다
200년경 만들어 졌으며 1,500명을 수용할 수 있지요
여기는.. 공의회(피르타네이온)
길가엔 돌기둥들이 사열이라도 하듯 줄지어 있습니다
뫼비우스 기념비 맞은편에
제우수의 수행비서로 승리의 신인 나이키신의 조각상입니다
뫼비우스 기념비
쿠레트거리로 가는 길목 로타리에 위치하며 독재자 술라의 손자인 뫼비우스 가족의 이름으로
100년경 만들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도미티아누스 신전
서기 81_96년사이 도미티안 황제의 이름으로 지어진 신전입니다
폴리오 우물(샘)
97년경 지어진 것으로 물저장소와 함께 기억할만한 유적
수많은 역사의 잔해들이 여기 저기 흩어져 지나간 시간을
말해주고 있네요.
헤라클래스 문
이문은 400년경 건축되었으며, 원래는 2층으로 된 개선문으로
현재 보이는 기둥은 아치위에 있었던 2개의 기둥입니다
이문은 여기를 지나는 사람들릐 검사하는 검색대의 역활을 했답니다
헤라클레스이 상징인 사자가 양각되어 있습니다
왜 부엉이눈이 연상되는 걸까?
쿠레트(크레테스) 거리
쿠레트거리는 로마시대 종교나 행정적 업무를 맡아보던 종교지도자들을
쿠레트라고 지칭하였는데 이거리의 시작부문에는 종교지도자 이름이 새겨져 있고
이거리를 쿠레트 거리라 명명하였습니다
사진 좌측(천막부문)은 고급 주택가로 현재 발굴이 한창 진행중입니다.
정면에는 에페스의 상징처럼 돼있는 셀수스 도서관이 웅장히 자리잡고
우측엔 공중화장실 및 목욕탕이 있습니다
트라야누스의 샘(트라이언 우물)
트라이언황제의 이름을 따 2세기 초 건축된 우물, 12m높이의 건축물로 갖가지 동상들이 장식되어
있었는데 대부분 동상들은 대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고 나머지는 에페스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답니다
모자이크 바닥..스콜라스티카 목욕탕의 맞은편 산기슭에 고급 주택가가 있고
지금도 터키-오스트이아 발굴단이 한창 복원작업을 벌이고 있습니다
아래쪽으로 하드리안 신전이 보이고
내려오는 길을 되돌아 보니 쿠레트 거리 모습이 빼어난 자태를 보입니다
에페스 위인들의 동상중 하나
돌틈사이 야생화의 모습이 인상적이네요
셀수스 도서관 전경이 보입니다
하드리안 신전
200년경 로마황제 하드리안안의 위엄을 위해 만든 신전으로
앞에는 행운의 여신 폴투나의 약각이
뒤에는 메두사의 양각이 반원의 향태로 조각되어져 있습니다
에페스에서 비교적 보존이 양호한 상태로 정교하고도
아름다운 모습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스콜라스티카 목욕탕과 공중화장실 방향 골목길
공중화장실
U자 형태의 구멍이 나있는 대리석변기 밑으로 정화조 시스템과 상하수도 시스템이 연결되어
짧은 시간에 냄새가 나지 않도록 만들어져 있습니다
한번에 50명을 수용할 수 있고 칸막이는 별도로 없으며 잆고 있던 외투로 칸막이로 사용했지요.
발아래 홈으로 물이 흐르고 이물을 이용해 용변후 세척을 했답니다
셀수스(켈수스) 도서관 전경
도서관의 모습을 스케치 하고 있는 외국인의 진지한 모습이 한편 부럽습니다.
에페스에서 가장 복원이 잘된 건물중의 하나입니다
사진으로 봐도 멋지네요
셀수스 도서관은
2세기 중반 아시아주 총독이었던 셀수스를 기념하여 그의 아들이 건축을 시작해
125년경 손자에 의해 완성되었으며
이당시 12,000개의 롤서적을 소유했지만 265년경 고트들에 의해 방화되어 무너졌답니다.
※ 그당시엔 서적의 형태가 지금처럼 책모양이 아닌 롤형식이었답니다
아래서 위로
도서관에 새겨진 4개의 조각상중의 하나
마자에오스와 미트리드아테스문
셀수스도서관 바로 옆에 있으며 아고라로 통하는 문입니다
기원전 40년 아우구스투스 제왕, 그의 아내 리비아,그의 달과 사위들을 위해 만들어진 문입니다
대리석 거리
대극장에서 쎌수스도서관 까지 이어진 거리
지반에 상하수도 시설이 있는 이거리는 모두 대리석으로 되어 있고
차도와 인도가 구별되어져 있습니다
대리석 거리에 있는 사랑의집(유곽) 낙서
현존하는 최초의 광고판 이라할 수 있을까.
셀수스 도서관 지하통로가 여럿 발견되었는데.. 그중 하나가 어디로 연결되었을까요..
바로 사랑의 집으로 연결되었답니다
예나 지금이나 性은 사람의 기본적인 욕구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굳이 주석을 달자면 이런 의미라네요
"실연으로 가슴이 숭숭뚫린(하트에 구멍이..) 사람은 나(여자)에게로 오세요
발모양 방향으로 따라오면 되구요, 단, 이 발 사이즈 보다 작은 사람은 입장 불가예요"
대극장 모습
앞에는 18M높이의 3층 무대가 있었고 관중석은 3층으로 나누어져
총 24,500명을 수용할 수 있답니다. 규모가 굉장합니다
건축 초기에는 공연을 위한 곳으로만 이용되었지만 이후 로마제국의 유행(?)에 따라 검투사
혹은 맹수와의 결투가 벌어지기도 하였고
또한 기독교적으로는 사도 바울이 선교 중에 이곳에서 수난을 받았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야외 극장처럼 산기슭의 경사와 높이를 이용해 반원형으로 지어졌습니다.
대극장 정면 무대 모습
항구거리(아카디우스거리)
대극장과 항구사이에 있는 거리로 폭 11M, 길이는 530M ,
수많은 제왕과 지도자를 맞이 했던 이길은 지반에는 상하수도 시스템이 있으며
알카디우스제왕시절(395~408) 이거리를 수리하여 그의 이름을 따
아카디우스거리 라고 합니다.
기둥을 따라 상점들이 있었씁니다
그런데 앞에 바닷가가 안보이지요?
당시에는 이길 끝에 바닷가와 항구가 바로 인접해 있었지만 토사가 밀려와 쌓이면서
항구가 육지가 되면서 번영했던 에페스가 퇴락의 길을 걷는 계기가 되었답니다
세월과 자연의 힘을 느낄수 있는 부분입니다
북쪽매표소로 나가기전에 있는 석관묘들
이곳을지나 출입구로 나가게 됩니다
즐거운 유럽여행! 함께 나누는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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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슈발츠발트™ 작성시간 10.07.09 감회가 새롭네요. 당시 건축술과 도시 구성도 놀라울 따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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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유월향기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0.07.10 터키여행의 하일라이트 중의 하나가 에페스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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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부운 작성시간 10.07.11 3년 전 10월인데도 날이 하도 더워 흘러내리는 땀을 닦기에 바빠서 제대로 보지 못했는에 이렇게 꼼꼼하게 설명하고 다각도로 찍은 사진을 보니 반갑군요. 애쓰셨습니다. 잘 봤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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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유월향기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0.07.11 감사합니다. 좋은 날씨는 여행의 기쁨...에페느 날씨 최고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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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햇살까아떡 작성시간 13.02.20 2년전 땡볕 아래 걸어 다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남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