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불문사랑방

[스크랩] 수중전

작성자노암|작성시간11.12.27|조회수39 목록 댓글 4

 

 

 

수중전


  종각역 3번 출구로 지상에 오르다. 물살을 거꾸로 거슬러 오르는 힘찬 연어처럼* 사람 속을 헤엄쳐 탑골공원 서편에 다다른 순간 빗방울이 듣기 시작했다. 종묘의 나무를 보러 가는 길이었다. 종묘사직은 걱정되지 않았으나 나무 숲 속 빈 의자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나무의 벗은 몸을 보고 싶었던 12월의 오후였다. 때 아닌 겨울비가 제법 진득하게 내리기 시작하자 소나기에 논 둑 터지듯 공원 옆구리들이 터지고 하루 종일 고여 있던 노인들이 몰려 나왔다. 나는 예의 연어처럼 터진 물꼬를 거슬러 공원으로 들어섰다. 고어텍스 아웃웨어에 붙어 있는 모자를 당겨 썼다. 고관절이 부실한 노인들까지 얼추 빠져나간 시간, 돌바닥에 마주 쪼그려 앉은 두 어른이 비 따위 아랑곳 않는 청춘인양 흐트러짐 없다. 가까이 가서 보니 대국  중. 접이식 장기판 하나 사이에 두고 요지부동 장군이다. 병졸과 장군이 평등하게 비를 맞고 있는 전장, 차 포가 쳐 놓은 팽팽한 긴장, 둘러섰던 구경꾼들 다 빠져나가고 빗줄기도 점점 굵어지는데 꿋꿋하게 멍군이다. 이제 패 따위 상관없다. 수 따위 쓸 데 없다. 먼저 일어나는 놈이 지는거다! 항우(項羽)와  유방(劉邦)의 때아닌 수중전에 끼어 진퇴양난 비를 맞았다.


*강산에 노래에서


 

다음검색
스크랩 원문 : 노암공방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능선 | 작성시간 11.12.27 수중작이 수준작이군....
  • 작성자불생불멸 | 작성시간 11.12.28 젊은 날 어느 여고에 근무할 때 2, 3학년 배구 시합을 하기로 하고 날과 장소를 정하고 심판은 가장 공정하리라 생각되는 박용제로 하고 통보가 왔습니다. 그 시간이 되었을 때 비가 오기 시작했습니다. 2학년이 먼저나와 기다렸습닌다. 3학년이 안 나오면 이기는 것입니다. 학년 간의 상당한 자존심이 걸린 일이 있었기에 3학년도 바로 나왔습니다. 빗방울이 점점 굵어졌습니다. 나도 자존심이 있지, 시합을 계속 진행시켰습니다. 여선샘을 한 명씩 넣기로 했기 때문에 비를 많이 맞은 여선샘이 보기에 난감했으나 아무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자존심을 건 감정이 극에 달하니 일이 이렇게 되어버리데요.
  • 작성자능선 | 작성시간 11.12.29 시냐? 아니냐? 시다. 더 이상 줄일 수 없으므로...
  • 작성자이산 | 작성시간 12.01.03 참으로 감동이 소나기로 쏟아내립니다!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