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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st- 캠핑후기

대화

작성자팬다|작성시간11.10.19|조회수7,828 목록 댓글 97

 

[11.10.15~16]


수런수런 바람 반주에 억새의 노래가 참하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산과 산의 대화는 바람 소리로 밖에 들을 수 없다 했겠다.

그렇다면 가을산으로의 동행,
아이와의 산상 대화가 바람을 타고 곧장 저 하늘의 별로 빛났으면.

그가 한마디 내가 한마디, 가을은 깊어가고
다카하마 교시(高浜虚子)의 하이쿠 처럼

아이 한마디, 내 한마디에 부녀지정도 깊어갔으면.
그랬으면.


 


어스름 녁을 우중우중 걷는다.
연잇는 제법의 된비알에 고개 숙이는 일도 잦다.

오랫만의 산행에 힘도 드는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도 익어가는 가을 숲의 따신 시선 따위 안중에 없구나.

속세를 벗어나 정을 줄 만한 대상은 오직 산뿐이다. 산은 반드시 사물의 도리를 깊이 관찰하는 눈과
명승지를 탐방하기에 알맞은 체구와 오래도록 머무는 인연이 있어야만 비로소 허물없는 교우관계를 허락한다.

명나라 문인 오종선 지은 <소창청기>의 한구절을 일러주랴.
송나라 사마광의 금언을 들려주랴.

산을 오르는 데도 도가 있다. 
천천히 걸으면 피곤하지 않고 안전한 땅을 밟으면 위험하지 않은 것이 그것이다.

기실 부질없는 욕심임을 안다해도 어쩔 도리없다.
아빠라는 허울의 이름을 앞세울 밖에.

중학생된 큰아이 동행하여 백련골로 올라 신불재서 하루 묵고
신불평전 거쳐 단조산성 너머 청수좌골로 내려설 것이다.


애초 강풍주의보가 내렸음을 확인한 터,
바람 소리외의 고요를 공감하고 싶었다.

말하자면 제임스 조이스가 <the dead>에서 표현한
고요속에서 촛농이 쟁반 위에 떨어지는 소리,

제 심장이 늑골에 부딪히는 소리와 같은
영혼이 아득해지는 고요를 공감하고 싶었다.

이 역시 부질없는 욕심이었던가.
아무리 귀 기울여도 바람 소리만 가득할 뿐.

때를 맞추어 아이 불러 온갖 소리를 두고 고요를 대화 하고자 하였으나
곤히 잠든 모습 물끄러미 바라만 보다 시간만 채워질 뿐.

애써 위안하여 옛사람 불러 좋은 소리 대화나 나눌까.

그 자리 송강, 서애, 백사, 일송, 월사에 더하여 나까지 여섯.

세상에서 듣기 좋은 소리를 이르기로
송강은 '달 밝은 밤에 다락 위에 구름이 지나가는 소리'라 하고

 일송은 '만산홍엽에 바람 앞의 먼 산봉우리에서 나오는 소리'라 하며 
서애는 '졸음 밀려오는 새벽 창가의 작은 술잔에 술 따르는 소리'라 하고

월사는 '산속 초당에서 시인이 시를 읊조리는 소리'라 하니
백사 웃어 받기로 '동방화촉 고운 밤에 임의 옷 벗는 소리'만 할까 하여 한바탕 웃어 공감도 깊은데 

말석의 내 거들길, 지금 이순간 반평 우주에서 세찬 바람 아랑곳없이
아빠 팔베개하여 곤히 잠든 내 아이의 새근이는 소리도 좋지요, 하였다.

저 은빛 춤사위를 보라.
희열은 고통에 비례한다는 것은 증명된 가설임에 틀림없다.

행여 팩이라도 빠질까 펄럭이는 텐트를 밤을 새워 노심초사하였으나
어떻든 아침은 밝았으며 햇살도 기운차게 일어난 것이다.


이 가을을 찾은 손에게 그것이 지극한 도리라도 되는 양

억새가 한시도 허리 펴지 못할만치 바람 세차게 불었다.

나는 그의 혼신이 칭찬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박제된 억새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으며

스스로 움직일 수 없는 그를 위해
기꺼이 손 내밀어준 바람이 제법 근사하다고도 생각했다.

저 후회없는 나부낌을 아이에게 보여주며
때로 누군가에게 손 내밀어 위로가 되어 주어야 하며

우리의 삶도 항시 바람 앞에 흔들리는 꽃과 같으며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노래한 시인의 심사도 때로 헤아릴 수 있어야 한다고 무언의 대화 하였다.


아이 걸어간다.
뭉클하다.


신불평전과 우뚝한 영축산 함박등 채이등 죽밧등...

저 풍경을 보자면 옛사람이나 오늘 사람이나
아름다운 풍경을 마주한 심사란 그 마음이 그 마음이다 싶다.

퇴계 선생의 <유소백산록>을 읽고 선생의 완상법을 10가지로 정리한
강영조 교수의 저서 <풍경에 다가서기>의 한구절이 떠오른다.

건강과 볼거리에 맞추어 탐승 경로를 정하라.
풍경을 흥미롭게 하는 다양한 이동 수단을 이용하라.
좋은 풍경을 체험할 수 있는 조망점과 시기를 선정하라.

풍경에 맞춰 시선과 시각 크기를 조절하라.

인상적인 풍경에 이름을 붙여라.

풍경을 상찬하라.

맛있는 먹거리를 맛보라.

미리 공부하고 가라.

풍경 체험을 나눌 수 있는 마음 맞는 사람과 함께 떠나라.


가운데 쓰리랑릿지 멀리 아리랑릿지.
그 너머 삼봉능선 자락.

 


저 멀리 사자봉과 수미봉.
그 아래 사자평전.


신불산과 하루 묵었던 신불재
그리고 가을하늘.

 


억새의 노래.
신불산의 가을 억새 산행은 때를 살펴야 한다.

대체로 시월의 중순 전후가 적기이며
아침 걷기로는 신불산에서 영축산 방향이 역광이므로 은빛 물결 감상에 적합하다.


억새 속 아이.
저 길이 세상의 길이라면 잘 헤쳐 나아가길.




인생일까.
힘든 오름짓과 세파속 한 밤 그리고 찰나의 휴식.

쉬어가기로는 나란한 신발과
나란한 청춘이 닮았다.

 


여름엔 옥계청수가 넘치더니
이윽고 계절이 깊어 그 자리 낙엽이 메우는구나.

필시 왕유가 다녀간게다.
저 떨어진 낙엽위에 한 수 시 남긴게다.

산중(山中)

                    왕유

냇물은 줄어 바닥 위로 흰 돌이 돋고
날은 차져 붉은 단풍 성글어 가니
산길에 비 온 자취 바이 없건만
비취빛 하늘에 사람 옷이 흠뻑 젖네



*******


아이와 동행한 하룻밤 하루낮.
무언의 대화가 깊었다.

쏟아지는 별무리에 눈 멍들고자 했고
불어오는 바람에 가슴 뚫고자 했다.

누구처럼 둥근 달 하나 토해내는 산에 올라
만리에 바람 머금은 강을 보고자 했다.

어쩔것인가.
도리가 없다.

세찬 바람과 비에 아이에게 차마 나서자 못하고
초옥에 별 부딪는 소리만 들려주었다.

초옥을 비추는 보름 갖 지난 휘황한 달빛과
삼킬 듯 부는 강바람의 인사법만 들려주었다.

어느새 곤히 잠든 아이.
한참을 바라본다.

억만개의 생각들이 별무리 처럼 마구 쏟아진다.
지금에사 아무 생각나지 않지만 기억나기로 단 한마디.

네 곁에 내가 있음을 잊지마라.
나는 아빠다.


 


해가 질 때 / 김용택 시 백창우 곡 손현숙 노래

 

이상 행복팍팍 사랑팍팍 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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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답댓글 작성자팬다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1.11.14 따님도 사랑이님도 수고많으셨습니다^^ 수시합격이 결정되었다니 참 좋으시겠습니다!!!
  • 작성자늘새봄 | 작성시간 11.11.17 오랫만 의 팬다님 글을 정독 하였 습니다..ㅋ
    잔잔한 음악과 시처럼 고운 서정적인 그림들은 한폭에 고운 산수화 를 보는듯 감동적 이네요.
    두어본 만나본 영알 이기에 몇몇의 장면에선 또 같은 감흥을 만날수 있어서 반갑고 설레이었네요..
    시간은 총알 과 같고 언제나 체력 부족으로 그 품(산)에 던지는 날 점점 줄어 감에 급 우울해 지곤 하지만,
    이렇듯 아름다운 여정 을 만나보면 다시금 설레고 또 다시 그곳에 나를 보곤 합니다..ㅋ
    늘 한결 같은 성실함 과 겸허함 을 잃지 않으시는 팬다님...멋져요~^^*
  • 답댓글 작성자팬다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1.11.17 늘새봄님 오랫만인 듯 해요^^ 잘 계시죠? 과찬이지만 기분 좋은 칭찬입니다. 남은 가을도 잘 보내시고 저만치 겨울도 반갑게 맞으세요^^
  • 작성자쌔나 | 작성시간 11.11.23 영축산 함박등 사진 좀 업어갑니다...
    님의 글을 읽으며
    40년전?.......저녁나절, .아버지 짐자전거에 실려 동네 앞 개울로 낚시 나가던 생각이 들었습니다
    딱히 낚시라기보다는 그저 낚싯대 걸쳐놓고 딸년보고 지켜보게하고 멀찌기 개울에서 하루의 노동의 땀을 씻던
    그때는 젊었을 나의 아버지.........
  • 답댓글 작성자팬다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1.11.23 아버지라는 이름이 갖는 무게라는 것이 어쩌면 세월의 무게와 비례하는가 봅니다. 행복하게 겨울 맞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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