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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비박/백패킹

설원 선자령 / 머나먼 타국 등반길에서 산화한 동생 상현이에게 바칩니다.

작성자몰디브.|작성시간23.01.20|조회수1,666 목록 댓글 25

머나먼 타국에서 등반 도중 산화한 보고 싶은 후배 상현이의 명복을 빕니다.

 

 

 

 

 

 

 

 

 

 

 

 

 

 

 

 

 

 

 

 

 

 

 

 

 

 

 

강원도 큰 눈 소식이 연일 메인 뉴스로 TV 화면을 장식합니다. 등산객이 많은 복잡한 주말을 피해 눈이 잦아들기 시작한 월요일 아침, 설원 선자령으로 향합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끝없이 이어지는 눈으로 제설작업이 한계에 부딪혀 강원도 도로 곳곳에서 고립되는 차들이 많았는데 오늘은 완전한 제설작업으로 메인도로는 시커먼 아스팔트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만약의 상황에 대비해 애마 종봄이에 3일치 식량과 물, 보온장비들을 잔뜩 싣고 출발을 하였는데 제가 우리나라 공무원들의 역량을 너무 낮게 평가한 듯 합니다. 밤새 수고한 분들께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선자령 휴게소에 도착을 했는데 월요일인데도 불구하고 주차장에 차들이 가득입니다. 들머리인 대관령국사성황당표지석 까지 애마 종봄이를 몰고 올라 갑니다.

 

차량을 주차하고 막 산행을 시작하려는데 이곳은 이면도로라 완전한 제설작업이 되어 있지 않아 가족 단위 한 차량이 눈속에서 나오지 못하고 발을 동동 구르고 있습니다. 그냥 지나칠 수 없어 가지고 있는 장비로 차를 꺼내준 뒤 산행을 시작합니다.

 

산행 내내 눈길 걸음걸음마다 하얀 눈꽃들이 눈을 즐겁게 해 줍니다. 숲길을 지나자 선자령 풍차들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하더니 드넓은 설원이 펼쳐집니다. 바람은 많지만 다른 곳에 비해 붐비지 않는 바람의 들판이라고 제가 명명한 박지로 향합니다.

 

텐트를 피칭하고 하얀 동심속으로 빠져들어 봅니다. 한참을 놀다 텐트로 들어 왔는데 몇 년 동안 멋진 장면을 촬영한 동영상 카메라 ‘DJI 포켓2’가 보이지 않습니다. 어디서 빠뜨렸는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작은 사이즈라 그동안 산행 중 2번이나 잃어버렸다가 찾기를 반복했습니다. 한참을 찾다가 포기를 하고 텐트로 돌아오려는데 옆 텐트에 있는 분이 그래도 찾아야죠 라며 내 동선을 따라 카메라를 찾기 시작합니다.

 

눈이 깊어 떨어지자 마자 눈 속에 파묻혀 찾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 보여 저만치 있는 그 분에게 그만 두시라고 막 이야기를 하려고 하던 차에 저 멀리서 찾았습니다 라는 외침이 들립니다. 너무너무 고마운 분들입니다. 이때 까지만해도 행운의 여신은 제 편으로 착각을 했습니다.

 

그렇게 환상적인 하루를 보내고 아침이 찾아왔습니다. 전날 드론 촬영을 많이 해둬서 하지 말까 하다가 아침 풍경을 찍기 위해 드론 민희를 꺼내 올리려고 하는데 추위로 받데리가 예열되지 않아 작동이 되지 않습니다. 받데리를 핫팩에 잠깐 녹인 후 작동을 하니 날개가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온도계를 보니 영하 15, 작년에 이곳에서 바람이 있는 영하 25도에서도 날렸음을 상기하고 막 비행을 시작하려다 혹시 몰라 어제 촬영한 메모리카드를 교체 한 후 비행을 시작합니다.

 

많은 텐트들이 모여 있는 설원을 지나 막 급경사면 지역을 지나려는데 모니터에 95%의 받데리 잔량이 갑자기 1%로 떨어지면서 비상착륙 메시지가 뜨더니 갑자기 추락을 해버립니다. 받데리 방전으로 추정됩니다.

 

찾기 기능이 있어 위치를 모니터로 추적하며 따라가 보았는데 추락지점이 길게 늘어진 급경사면 중간지점(30미터 아래) 눈 속에 파묻힌 것으로 나옵니다.

 

나무를 잡고 몇 발자국 내려가 보았지만 80도 경사에 발이 미끄러지며 도저히 진행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됩니다. 촘촘한 나무들과 덮힌 눈 때문에 자일을 사용하더라도 내려가기 어려운 지점입니다. 넓디넓은 설원 가운데 하필이면 왜 그 곳에 추락을 했는지...

 

선자령의 이렇게 아름다운 모습을 마지막으로 촬영을 하고 이별을 한 민희를 생각하니 마음이 아픕니다. 2년 동안 나의 눈이 되어준 고마운 친구였는데... 민희 말고 스펙이 더 좋은 또 다른 드론(DJI AIR2 S/‘태일)도 가지고 있지만 거의 사용을 하지 않고 민희만 줄 곳 데리고 다녔었는데...

 

하산길은 우울한 마음에 촬영을 포기 하고 급하게 하산을 합니다. 집에 돌아와 그간 민희가 촬영한 영상들을 보며 민희를 잃어버린 허한 마음을 달래봅니다.

 

다음날 아침 우쿨렐레 수업이 있어 일찍 집을 나서려는데 산 동생 상현이의 부고 소식이 핸드폰에 뜹니다. 믿을 수 없어 함께한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봅니다.

 

40일간의 아프리카 여행 중 마지막 국가인 남아프리카공화국 테이블마운틴을 등반하다가 추락하여 운명을 달리 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귀국날짜가 지났는데 전화가 오지 않아 막 전화를 해보려던 참이었습니다.

 

고인이라는 이름으로 불러야 하는 믿을 수 없는 현실이 가슴 저미는 먹먹함으로 다가옵니다. 6대륙 세계여행.산행을 참 많이도 함께 한 동생입니다.

 

캠핑카를 렌트하면 동생이 운전을 하고 내가 조수석에서 길 찾기도 해주고 촬영도 하고 했습니다. 국내 백패킹때 부르면 싱싱한 활어회를 바리바리 싸서 낑낑 거리고 산정까지 올라와 주었던 동생인데.... 좀 더 잘해주지 못 한게 맘 한구석 미안함으로 자리잡습니다.

 

소중한 그 무엇을 잃었을 때의 상실감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비현실적 슬픔입니다.

 

전화 속 행님 가입시더라는 구수한 사투리를 이제 못 듣게 되었습니다.

 

 

 

             送友人

 

靑山橫北郭(청산횡북곽)
白水繞東城(백수요동성)
此地一爲別(차지일위별)
孤蓬萬里征(고봉만리정)
浮雲游子意(부운유자의)
落日故人情(낙일고인정)
揮手自茲去(휘수자자거)
蕭蕭班馬鳴(소소반마명)

푸른 산은 북쪽 성곽을 가로지르고
맑은 강은 동쪽 성을 돌아 흐르네.
여기서 한 번 헤어지고 나면
외로운 다북쑥처럼 만리를 가겠지.
뜬구름은 나그네 마음이요
지는 해는 친구의 정이라.
손 흔들며 이제 떠나가니
말 울음소리 더욱 처량하구나.

                                           - 李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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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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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몰디브.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3.01.30 감사합니다.
  • 작성자월봉 | 작성시간 23.01.30 저도 갑자기 전화에 문자 부고를 받고 깜짝 놀랐습니다.
    멀리 있기 때문에 어찌된 상황인지 알 수도 없었는데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답댓글 작성자몰디브.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3.01.30 마지막 가는길 3일 동안 함께 하고
    막 서울에 도착했습니다.
    감사합니다.
  • 작성자산맥 | 작성시간 23.01.30 얼마전 매스컴에
    나온 분 이군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 답댓글 작성자몰디브.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3.01.31 감사합니다.
    60 평생이 한 줌의 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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