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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 투어 Part.9 : 괴로움의 산을 넘어 - 괴산시외버스터미널 [괴산군]

작성자Maximum|작성시간14.02.07|조회수2,025 목록 댓글 7



마지막 목적지로 향하는 길은 참으로 조심스러웠다. 

멀미의 'ㅁ'자도 모르고 살았기에 차를 너무 험하게 굴렸는데 그게 뜻하지 않은 재앙을 불러올 줄은 몰랐다.

타고 있던 애도 원래 멀미가 없었다는데 얼마나 급한 마음에 차를 몰았는지... 자신도 몰랐다고 한다.

너무 내 앞길만 생각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조금의 반성과 함께 부드러운 드라이브를 하게 되었다.


 증평에서 청천까지 약 25분, 청천에서 괴산까지 약 30분.

원래 각각 40분, 30분 정도 걸리는 거리임을 감안하면 제 시간에 맞춰 괴산에 온 것이나 다름 없었다.

이도 저도 들어오지 않아 아직까지 충북 최고의 오지에 속하는 괴산.

그 명성에 걸맞게 언덕은 쉬지도 않고 나왔으며 공장 하나 없는 시골 풍경만이 그득히 들어왔다.


 이미 괴산읍내에 들어오니 해는 넘어가고 보이질 않았다.

그렇다고 깜깜한 밤은 아니고 노을만 남아있는 어중간한 상황.

아직 사진을 건질 수 있기에 마지막 여정을 불태워보려 한다.


 


 세 일행 중 괴산이 처음이었던 사람은 필자 혼자였다.

나머지 두 사람은 이런저런 이유로 괴산을 온 적이 있어서 오히려 내가 안내를 받는 상황이 되었다.

하지만 이들도 얼마 전 개량된 국도와 버스터미널은 와 본적이 없었다.

그래서 작디작은 읍내 입구에 조용히 있는 버스터미널을 보고 신기해했고, 이윽고 셔터 소리가 연신 들리기 시작했다.




 버스 통로를 따라 들어와 주차장을 살펴보니 공간은 넓직했다.

관광버스가 시외버스보다 많은 것이 알려지지 않은 공영주차장을 보는 듯 했다.

관리는 제대로 안 되고 있는 건지 주차장 구석구석 땜질 투성이로 가득했고,

심지어 그 너머로는 시멘트 비포장으로 공간이 채워져 있었다.



 이번엔 반대로 주차장 쪽에서 사진을 찍어본다.

충북리무진 한 대와 경기고속 한 대가 양 끝에 나란히 주차되어 있는 모습.

명색이 군 대표 버스터미널이지만 공간은 지극히 작다.

이젠 석면의 대명사로 남은 슬레이트 지붕과 단층에 덧씌운 듯한 오른쪽 2층 건물이 버스터미널 건물이다.



 어디를 보아도 마치 80년대로 돌아간 듯한 인상을 받는다.

나름 주변 지역을 세세히 연결하고 있는 동네여서 비록 네 개 뿐인 승차장이지만 행선지는 많이도 붙여놨다.

 

 

구인사, 단양, 감물, 목도, 방곡, 충주, 수안부, 부흥, 청천.
청주, 증평, 대전.

 

음성, 장호원, 서울, 성남.

 

칠성, 수전, 연풍, 충주.

이제 운행하지 않는 동네도, 이름까지 생소한 지명도 많이 보인다.



 승차장 한쪽 구석엔 찐빵집도 있다.

추운 날씨에 몸을 비벼 찐빵을 먹으면서 버스를 기다리는 맛은 정말 일품일 것이다.

저녁 시간대여서 집을 가는 학생과 어르신이 많이 보인다.

승객을 받으면서 창문을 쓸고 닦고 문지르는 기사님도 보인다.

언제나처럼 평범한 하루가 또 가고 있는 것이다.

 



 충북 터미널들 생김새는 제각각이어도 승차장만큼은 하나다.

누구랄 것 없이 성곽 모양의 낡은 돌들이 버스와 사람을 수없이 실어나른다.

몇 십 년의 세월에 닳고 닳았어도 아직은 멀쩡한, 제법 잘 굴러가는 역사의 산물이다.



 '개찰구'. 여기로 표를 끊고 버스를 타는 사람, 버스에서 내려 읍내로 가는 사람이 뒤섞이는 장소.

조금 특이하게 승차장에서 약간 내려가야 들어갈 수 있는 구조지만,

좁아보이면서도 아무 문제 없이 몇 십 년간 제 역할을 하는 것을 보면 참 든든할 것이다.



 여러 버스터미널을 다녀봤지만 여기만큼 아담한 곳도 흔치 않다.

TV 하나 제대로 틀기 힘든 아담한 공간이지만 그만큼 관리도 잘 된다.

그 '아담함' 때문인지 청주의 한 병원에서는 큼지막하게 광고도 넣어놨는데 홍보효과도 아주 뛰어날 것이다.



 한참 사진을 찍는 도중 매표소의 아주머니께서 흠칫 경계하신다.

그래서 먼저 다가가 '매표소 사진 한 장 찍어도 될까요?' 했더니 아줌마 하시는 말.

'저 안 나오게 찍어줘요'

시간표도 찍을 수 있냐고 물어보니 역시나 '저 안 나오게만 해요'

매표소 유리창이 너무 훤해서 그동안 초상권 침해 좀 받으셨나 보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보니 알게된 사실.

이래뵈도 한 차례 리모델링을 했다는 거다.

대충 봐선 잘 모르겠지만 바닥도 유독 반짝반짝하고, 장애인 안내도 되어있다. 창틀도 쇠로 바뀌어있다.

정말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갖은 노력을 다하시는데, 크게 티가 나지 않으니 약간의 아쉬움이 있으신 듯하다.

 

 더불어 괴산터미널 특유의 고즈넉한 분위기 덕분인지 여기서 영화, 드라마 촬영도 많이 했다고 한다.

어디에 나오는 것 까진 기억에 없지만 아무튼 그 사실을 자랑스러워 하시며,

동시에 '여기서 찍을게 뭐 있다고...' 하시며 부끄러운 기색을 수줍게 표현하신다.




 영화 촬영도 하고 리모델링도 했으니 나름 유명세 좀 탈까 싶었지만 아직은 여전하다.

그래도 알려지지 않았을 뿐 아는 사람은 찾아와서 간간히 사진을 찍고 가는 듯 싶었다.

시간표까지 옛 분위기였으면 더 좋으련만 아쉽게도(?) 최신식이다.

 

 역시나 생활권인 청주가 가장 배차가 많고, 그 다음이 동서울. 이 두 노선에 수요를 기대는 곳이다.

다만 괴산 읍내가 충북에서도 가장 작은 탓에 (1만명이 안 되는 유일한 충북 읍내) 직행 따윈 없다.

동서울, 청주 모두 수많은 경유지를 통과해야 갈 수 있다.

 

 거리상으론 청주보다 충주가 가깝지만 충주행은 거의 멸종에 가까울 만큼 차가 없다.

아마 경부선이 충주로 지나갔으면 반대의 현상이 나타났을 테고, 아예 청주행이 없었을 가능성도 있는데.

교통의 중요성이 여기서도 다시 한 번 느껴진다.




 장사가 잘 안 되는지 여기도 이미 수없는 감차가 이뤄지고 있다.

동서울-증평-괴산을 증평까지만 자르고 괴산에 들어오지 않는 노선이 속속 보이기 시작했는데,

이미 위 시간표를 통해 그런 노선이 조금씩 더 생겨날 것 같다.

응답하라1994 '빙그레'가 그 당시 학교를 다닌게 어찌보면 천만다행(?)일지도 모르겠다.



 왠지 괴산 지역은 시간표가 자주 바뀌는 것 같다.

시간표를 물어보는 사람이 얼마나 많으면 '시간표좀 제발 ~~ 보세요' 라고 붙여놓으시기까지.

저 글자만 봐도 매표소 아줌마의 애교 섞인 투정이 눈에 보인다.



 건물이 워낙 작은 만큼 매표소에서 출입구로 나가는 곳도 참 좁다.

휠체어(가 들어올 일은 많지 않겠지만)가 드나들기도 불편할 정도로 좁은데,

오른쪽으로는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까지 있다.

다만 이용객이 많지 않으니 혼잡할 이유는 전혀 없다.

여기서 특히 영화 촬영을 많이 했다고 하셨는데, 왼편에 포스터까지 붙어있으니 영화관의 느낌도 잠깐 스쳐간다.



 하루를 정리하고 읍내의 조용한 불야성이 시작되는 시간.

벌써 불을 켜놓은 곳도 있고, 아직 준비 중인 곳도 있다.

작디작은 괴산 읍내에 또 다른 일상이 시작되고, 잠드는 시간.

그 일상을 깨워주고 끝내어 주는 공간 역시 버스터미널이다.



 '괴산시외버스공용터미널'. 이름 한 번 길다.

왠지 용사의 집이 생각나는 '해태의 집'. 이름만 저러지 일반 슈퍼나 다름없고,

2층은 역시나 중년층 이상이 선호하는 다방이 자리잡고 있다.




 이미 많은 곳에서 사라진 버스터미널의 옛날 생김새를 고스란히 간직한 곳.

보기엔 낡고 불편해 보일 수 있지만 이용객들만 아무 문제 없다면 그만 아닐까.

오히려 이런 모습에 반해 영화 촬영도 오고, 사진을 찍는 여행객에게도 더욱 뜻깊은 속삭임을 가져다 주기도 한다.

괴로움의 산을 넘어 평화를 찾는 시간, 그 끝에는 괴산이라는 자그마한 동네가 있었다.

 

 

 

#p.s. :  사진은 여기가 끝이지만 여정은 끝이 아니었다.

 

이미 시간이 늦어 사진을 찍지는 못 했지만 꼭 가보고 싶었던 '그 곳'까지 가 보았다. (어딘지는 다음 편에 나옵니다)

 

'그 곳'에서 어떻게 헤어질 지 잠시 고민했는데,

 

시간도 시간이고 경로상 문제도 있는지라 나는 충주에 내려줘서 버스를 태우길 원했고,

 

나머지 둘은 청주까지는 나가야 된다고 했지만 경로가 뒤집히는 관계로 약간의 마찰이 있었다.

 

충주에서 대전까지 교통편이 생각 외로 열약하다는 것을 알게 되어 결국 다시 증평으로 리턴.

 

그러다보니 시간은 벌써 9시를 지나고 있었다. 읍내에서 낙지볶음을 맛나게 먹다보니 이미 시간은 10시.

 

시간표를 알아보니 무려 '청주'에서 대전가는 막차가 9시 10분이라는 것을 알게되어,

 

결국 할 수 없이 증평에서 대전까지 다시 그를 태워다주고 올라가야만 했다.

 

본의 아니게 1박 2일 여행이 1박 3일로 늦춰졌고 피곤에 쩔은 탓에 나머지 둘도 올라가면서 잠깐의 정적도 흘렀다.

 

노원에 사는 그를 강남에 내려주고 다시 집으로 올라가, 드디어 1박 3일의 여정을 끝마칠 수 있었다.

 

 총합 800km, 하루 평균 400km의 고된 행군, 출발부터 미친 듯한 막힘으로 꼬인 일정, 그 때문에 촉박해진 시간.

 

대전에서의 불타는 하루, 그 후유증, 집 가는 것에서까지 이루 말할 수 없는 일이 있었지만 참 행복했다.

 

언젠가 차를 끌고 좋아하는 이들과 여행을 가 보고 싶었고, 특히 입대를 앞둔 동생과의 추억은 더욱 뜻깊었으니 말이다.

 

 이미 입대를 해버린 일행 중 한 명, 열심히 학교를 다니는 동기 한 명.

 

그들과 나눈 소중한 시간은 무엇과도 바꾸기 힘든 좋은 경험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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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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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중원고속 | 작성시간 14.02.08 저의 고향 괴산. 유년시절의 아련한 추억이 떠오릅니다.
    오늘도 잘 봤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Maximum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4.02.08 중원고속님도 항상 감사합니다. ^^
  • 작성자wa hayo | 작성시간 14.02.20 굳이 따진다면 괴산은 생활권이 충주권에 가깝긴 합니다. 증평과 괴산이 분리된 연유가 실생활권의 미묘한 차이이니

    다만 교통의 발달(19번 국도 장연~충주)의 선형이 좋지 않아서 더 멀게 느껴져서 그런 듯 합니다. 실거리상 이게 가장 가까운데, 험한 고갯길을 넘다보니 충주권과 근접했다는 느낌이 안들긴 합니다. 다만, 장연면은 방곡리까지 충주시내버스가 들어오긴 합니다. 주민분들 실생활권은 충주로 해결하고 있더군요.

    장연면 방곡리에서 좀 재미(?)있는 부분은 마을 앞 도로에 19번국도 주요 행정구역 거리 측정 판이 있는데 무려 보은(!)이 등장합니다. 충주권에서 보은을 발견하니까 뭔가 신선하더군요.
  • 답댓글 작성자Maximum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4.02.21 한 지역의 생활권을 구분하는 방법 중 가장 유용한 방법이 버스라고 생각합니다. 십 수년 전엔 도로 상태에 따라 구분도 할 수 있었지만 요샌 개량이 많이 되어서 그런 구분은 힘들고, 자가용을 이용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주로 이용하는게 버스다 보니 왕래 많은 지역 위주로 배차가 된다는 점 때문에 가장 어느 지역에 많이 종속되는지를 잘 알 수 있는 지표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거리상으로 보면 충주가 더 가깝고 원래 생활권도 충주였던걸로 압니다만... 경부축의 청주가 워낙 커져서 지금은 청주와의 교류가 더 많은 것 같아요. 물론 증평에 비하면 충주의 영향도 아직 적지 않긴 합니다만. ㅎ
  • 답댓글 작성자Maximum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4.02.21 청주권으로의 개량이 일찍 되었고 충주권으로는 세성으로 이어지는 국도가 최근 확장이 되었습니다만 시기상 차이가 나는 것은 아무래도 청주권으로 이미 기울었기 때문에 그 쪽 개량이 더 일찍 된 것으로 생각됩니다. 충주가 더 많았더라면 수안보방향 도로가 더 일찍 개량이 되었겠죠.. 그 보은가는 길이 충주와 바로 이어지는 국도 아닌가요. ㅎㅎ 재밌죠. 그 국도가 큰 도시들만 쏙쏙 피해가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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