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기일
2019.7.28.
석야 신웅순
그날은 세차게 비가 내렸다.
내 고향 정자나무 아래에서 노제를 지냈다. 아버지의 마지막 가는 길이었다. 정자나무는 마을 아이들의 놀이터였고 마을 어른들의 휴식처였다.
아버지가 고향을 떠난지 1년 반만이다. 아버지도 멀리 일을 나가셨고 얼마 후 다시 집으로 들어오셨다. 그해 아버지는 감기를 앓으셨고 폐렴으로 돌아가셨다. 예순 셋이었다. 우리는 아버지를 보낼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그것이 슬펐다.
나는 5년 간의 초등학교 선생을 그만 두고 모 대학에 편입, 주경야독하던 때였다.
“이보게, 왜 이리 일찍 가셨는가.”
곰부리 영감은 빗줄기를 맞으며 어린 아이처럼 펑펑 우셨다. 정이 많은 이웃집 어른이었다.
‘떼엥 떼엥, 에헤허오 어허이허오’
빗 속의 요령소리는 차가웠다. 상여는 마을 산모롱길을 멀리 에돌아갔다. 아버지가 지게를 지며 육십평생을 오고 갔던 길이다. 멀리 보이는 비가 내리는 산과 들은 적막했다. 적지않은 마을 사람들이 상여 뒤를 따랐다.
그 때 내가 서른이었으니 40여년이 가까워온다.
고향에서 월급을 받고 살면 편히 살 수 있으련만 나는 그것을 택하지 않았다. 공부를 택했다. 새벽 네시에 일어나 집에 돌아오면 자정이었다. 주경야독, 새벽부터 일을 했고 밤늦게까지 공부했다. 교직을 그만 두었으니 그것은 전부가 내 인생, 내 책임이었다.
내가 고향을 떠나지 않았더라면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시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생각에 사로잡혀 내가 죄인이라는 생각에서 한 동안 벗어나지 못했다. 부모를 모시고 살았기 때문에 더더욱 그러했다. 생각해보면 그도 부질 없는 일이었다. 그것은 아버지의 운명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이웃집 곰부리 영감께서
내가 먼저 가야한다면서 애들처럼 엉엉 울었다 -신웅순의 ‘울음’ 일절
나는 아버지의 눈물을 한 번도 본적이 없다. 아니 울지 않으셨던 것 같다.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그 때도 눈물을 보지 못했다.
올해도 아버지 기일에 형제들이 오지 않았다. 세월이 많이도 흘러서였을까.
돌밭 패랭이꽃으로 피어 있을까. 아버지의 뒷곁 눈물은. 나무 지고 오시다 산중에 빠뜨 리고 오셨을까. 아니면 숲 속에 빠뜨리고 오셨을까. 볏단 지고 오시다 들녘에 빠뜨리고 오셨을까. 아마도 아버지의 눈물은 세상에서 가장 깊은 아버지의 가슴 속에 빠뜨리고 오 셨을 것이다. 그렇다. 그래서 난 아버지의 눈물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 신웅순의 ‘아버지의 푸른 목소리’일절
세월이 야속하기는 하나 어찌 생각하면 고맙기도 하다. 까마득 잊었다가 일년에 한 번씩 아버지를 찾게해 주시니 세월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오늘 비가 세차게도 내린다. 아버지는 그 빗속으로 떠나셨다. 하도 오래되어 그런지 이젠 꿈 속에서조차 오시지 않는다. 아버지가 가신 때보다 지금 내가 더 나이를 먹었다. 아버지는 내가 인생에서 제일 힘들었을 때 돌아가셨다. 물론 며느리도 못 보고 손주들도 보지 못했다. 그것이 많이도 서러웠다.
건강하신 분이 왜 그리 명이 짧으셨는지, 공부가 뭣이길래 두루두루 내 살피지 못한 것이 후회가 된다. 그 말이 맞다.
수욕정이풍부지 자욕양이친부대(樹欲靜而風不止 子欲養而親不待), 나무는 고요하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고 자식은 봉양하려 하나 부모는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렇다. 인생은 연습이 없는 것이다. 단 한 번 뿐인 인생이다.
그것을 적막이라고 해 둘까.
젊은 시절 아버지의 모습
석야 신웅순의 서재, 매월헌.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芝香 작성시간 19.07.30 내기억속에 아버지는 온화한 참신한 선비로만 남아있습니다
그것은
내곁에 오래머무르지않으셨기때문입니다... -
작성자신웅순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9.08.01 맞아요. 오래 머무르지 않아서 그럴 겁니다.잘 계시나요?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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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예솔 작성시간 20.05.12 늦게 글 접합니다.
늘 그러합니다 길 거리나 어느 곳에서든지 애국가가 들려오면 산골 작은 학교 교단에서 애국가를 선창하시던 자상한 아버님 모습이 떠올라
눈가에 이슬이 맺혀 저는 애국자 아닌 애국자가 됩니다. 해마다 가을이면 가슴앓이되어 구절초 꽃이불 덮고 뭉게구름 타고 훨휠 끝없는 하늘로 한 점으로 사라지셨던 날을 지금도 아프게 그리고 있습니다. 들꽃을 사랑하셨고 이 산 저 산 노을진 강가로 자연을 화폭에 담아내셨지요.
저 또한 붓을 잡고 있는 시간들이 참 좋습니다.
아버님을 늘 만날 수 있으니까요.
교수님 글 제 안에 담으면 소록소록 옛 추억들이 살아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