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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수필

[가족]생각난다

작성자瑞香|작성시간04.04.12|조회수143 목록 댓글 5




서울의 어느 큰 공장의 공장장이던 오빠는 내가 방학을 하면
서울로 기차를 타고 오라고 해서는 영화구경을 시켜 주고
달콤한 제과점의 빵을 맛보여 주고 그리고 학생화 한켤레 맞춰 주면서
엄마 아버지 용돈을 가방 깊숙히 넣어 주면서 신촌역까지 배웅을 해주면
난 경의선 열차를 타고 집으로 내려오곤 했다.

기차에서도 내려 한시간 가량을 들길을 지나고 논두렁을 지나고
산모룽이를 돌아가야 옹기종기 모여사는 李氏 집성촌..
커다란 오동나무 아래 개나리 울타리와 토담...그리고 낮으막한 우리 집.
동구밖 느티나무 아래서 논 일을 마치고 흙이 묻은 손을 털며
이 때 쯤 내가 오려는 걸 아시고 아버지는 셋째 딸을 기다리고...
엄마가 손수 만들어 주신 포플린 꽃 무늬 원피스 자락을
나풀거리며 반가움에 달려가면 그저 허허 웃으시던
구랫나루가 보기 좋은 아버지의 턱수염에 볼이 따거운 줄도 모르고
내 얼굴을 마구 부비던 철부지...

저녁 짓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 오르는 초가지붕 위로
둥그런 하얀 박이 영글어 가는 그리운 고향....

맨몸으로 오르기 힘든 황산을 1회 왕복 5시간에 걸쳐
하루 두 번...10시간...100킬로 그램의 세멘트를 짊어지고 가는
젊은 노동자에게서 난 평생 농사 일을 하시다 가신 아버지가 떠올랐다.
많이 받아야 중국 돈으로 50위엔....우리돈 7,500원...
굳은 살이 단단하게 박힌 그 어깨 위로 희망처럼 푸른 빛의
녹찻물이 담긴 피티병 하나가 더 얹어지고......
작은 것 하나서 부터 모두 짐을 져서 올려야 하는 그곳 생활...
그래도 없는 것 없이 다 있던 호텔과 상점들...

목이 말라 3위엔을 주고 사 먹은 조금은 시들은 오이 하나에도
난 얼마나 감사한 마음이 들었는지....그나마 그 높은 길들이
돌계단으로 잘 다듬어져 정상까지 다 놓여져 있다는 것이 다행인지.

마침 집에 돌아온 큰 아이와 작은 아이에게 그 이야기를 해주며
쓸데없는 전화비등등...용돈 아껴 쓰라고 입이 아프도록 이야기 하지만
애들은 아직 잘 못알아듣는 것 같다.

길게 늘어서 산을 오르는 여행객들에게 길을 비켜 달라며
알아 들을 수 없는 자기들만의 큰소리로 신호를 보내는
그들의 무표정한 얼굴이 새삼 떠오르는 조금은 시원한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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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玄珍 | 작성시간 03.08.15 그리도 크게만 느껴졌던 동구밖 느티나무 어느날 친정 나들이 길에 마주한 샴 쌍둥이처럼 붙은 커다란 몸집이 한쪽은 고목이 되어 버리고..우연인지 어제 낮에는 아이 국어 학습 도와 주는데 시어에 동구 밖 정자나무가 나와 잠시 고향 생각도 했었지요. 장사처럼 산처럼 어머니처럼 버티고~~~ 아름다운 글 잘 보았습니다
  • 작성자글라디 | 작성시간 03.08.15 여행을 하고 나면 더 감사한 마음이 생기나봅니다.저도 언제 한 번 그런 여행 떠나보고프네요. 서향님 늘 건강하시기를...그래서 아름다운 마음 변치 않으시기를...
  • 작성자혜림 | 작성시간 03.08.15 여행은 사람을 성숙하게 한다고 하더군요... 울 아들넘들도 배낭 여행을 한 번 보내야겠어요^^
  • 작성자청난당 | 작성시간 03.08.16 그 시절 우리가 느꼈던 일들을 선명하게 보여주시네요...잘 읽었습니다.
  • 작성자청난당 | 작성시간 03.08.20 서향님 오늘 아침 좋은 만남 감사드리구요. 건강한 하루,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그 찻집에서 만날날을 기다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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