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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론

연중 제 27주일(2026.10,4) 가해 강론

작성자예찬|작성시간26.10.01|조회수205 목록 댓글 26

연중 제27주일 100426 가해 강론
이사 5:1-7; 필리 4:6-9; 마태 21:33-43

오늘 우리가 들은 복음 말씀에 나오는 포도밭 주인에 대한 비유 말씀은 예수님께 대한 이야기임이 분명합니다.

내용인 즉, 주인의 포도밭으로, 즉 이스라엘로 파견되었다가 모진 대우를 받고 심지어는 죽음까지 당한 예언자들의 뒤를 이어 목숨을 잃게 되신 그 포도밭 주인의 아드님이신 예수님께 관한 이야기임이 분명한 내용인 것입니다.

이 비유 말씀은 하느님 나라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예수님 당신 자신에 대한 내용을 예수님께서 직접 다루신다는 점에서 다소 이례적입니다.

또한 이 비유 말씀은 주님의 포도밭인 “하느님의 백성”을 위탁 받은 사람들, 곧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을 명백히 비판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포도밭을 하느님의 뜻이 아닌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위해 이용하고 남용했습니다.

하느님의 예언자들이 아무리 회개를 촉구해도 그 사람들은 응답하지 않았고, 심지어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직접 보내셨음에도 그 사람들의 마음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결국 하느님 백성에 대한 책임은 새로운 일꾼인 “교회”로 넘어가게 됩니다.

마태오 복음사가가 이 비유 말씀을 기록한 이유는 이방인 출신 그리스도인들에게 그 사람들이 제자 공동체의 일원이 된 것이 하느님의 뜻에 부합한다는 확신을 심어 주기 위해서 였습니다.

당시 이방인들은 모세의 율법을 완전히 따르지 못하거나 따르려 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늘 환영 받지만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 비유 말씀은 하느님께서 바로 그 소명을 이방인 출신 그리스도인들에게 맡기셨기 때문에 그들이 교회 안에 들어오게 되었음을 일깨워 줍니다.

하지만, 수천 년이 지난 지금,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소명의식과 정통성을 심어주었던 이 비유 말씀이 오늘날 우리에게는 그때만큼 절실하게 와닿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비유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단지 하나의 역사적인 흥미거리에 불과한 것일까요?

그럼, 이제 잠시 동안, 그 당시의 수석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원로들이 한 대답을 살펴보도록 하십시다.

예수님께서 그 사람들에게 “포도밭 주인이 돌아오면 그 소작인들을 어떻게 하겠느냐?” 하고 물으셨을 때, 그 사람들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 악한 자들을 참혹하게 죽이고, 제때에 소출을 바칠 다른 소작인들에게 포도밭을 맡길 것입니다.” 그 사람들은 소작인들이 사악(邪惡)하다는 것을 쉽게 알아차립니다.

하지만 정작 자신들이 바로 그 사악한 소작인이라는 사실은 깨닫지 못했습니다. 혹시 우리 역시 우리 자신 안에 있는 똑 같은 오류와 한계를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오늘날 교회 안에도 수석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원로들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교회 안에서 지도자 직무로 부름 받은 사람들은 언제나, 어디서나 자신들에게 맡겨진 신뢰에 부응하는 좋은 관리자들이었을까요?

천만에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그렇게 말하기는 쉽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것이 거짓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다른 이들의 허물만 알아보았던 당시 사람들의 오류를 똑같이 되풀이해서야 되겠습니까?

교회 안에는 과거에도,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나쁜 자도자들이 늘 존재해 왔고 또 존재할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의 포도밭 소작인은 누구입니까? 과연 성직자들 만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우리는 오늘날 포도밭이 어디에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 시대에 포도밭은 “이스라엘”이라 불리는 하느님의 백성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포도밭은 “교회”라 불리는 하느님의 백성을 뜻하는 것일까요? 하지만 온 세상이 하느님 나라로 부름을 받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포도밭의 일꾼들은 단순히 교회의 자도자들 뿐만 아니라, 교회 공동체 자신을 의미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한때 수석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원로들에게 맡겨졌던 그 의무를 지니게 되었음을 뜻합니다.

우리 각자는 하느님의 “사제직 백성”에 속한 일원입니다. 우리의 소명은 모든 이가 하느님께서 간절히 바라시는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그들을 인도하고 격려하며 용기를 북돋아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겠습니까? 하느님의 사랑 가득한 뜻을 명백히 선포하는 설교와 가르침이 분명 하나의 방법이자 필수적인 길입니다.

하지만 이는 당시의 수석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원로들도 했던 일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말하고 가르치는 바를 스스로 실천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일상생활은 하느님의 참된 자녀로서 자유롭게 살아가는 본보기가 되어야 합니다.

성체성사는 바로 그렇게 하기에 뛰어난 모범입니다. 우리는, 홀로 떨어진 개인으로 서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함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과 완전한 친교를 나눕니다. 그리고 그 친교를 일상의 삶 속으로 가져갈 때, 다른 이들 역시 그 동일한 친교로 끌어당기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야 말로 풍성한 소출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이 한 가지 더 있습니다. 그것은 포도밭의 일꾼이 우리 자신에게 하느님께서 보내시는 주님의 전령(사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마음을 기울이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역시 평생에 걸쳐 끊임없이 회개해야 하기 띠문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해오던 익숙한 방식에 안주해 있지 않고, 더 깊은 영적 이해와 더 실효성 있는 봉사로 나아가라 부르시는 주님의 말씀에 늘 깨어 있어야 합니다.

쳣 번째 전령은 당연히 하느님의 말씀 안에 계시고 교회 안에 살아 계신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또 다른 전령들도 보내실 것입니다.

그 전령은 누군가가 무슨 말을 할 때 우리가 다른 이들의 죄부터 떠올리게 된다면, 바로 그 순간이 우리가 그 전령을 알아보아야 할 때입니다. 그것이야 말로 다른 사람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먼저 돌아보아야 한다는 하느님의 표징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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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예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10.03 有朋自遠
    訪來不亦樂好
    (유붕자원방래
    불역락호)
    공자의 ^논어^
    첫 구절의 말입니다.
    멀리서 마음이 따뜻한
    오십년지기 벗이
    찾아 온다는 소식에
    가슴이 설레이는 가을 아침입니다.
    그는 내가 가장 힘들때 삶의 의지와 용기를 심어준 사람시기도 합니다.
    내 그를 맞아
    식탁위에 영글은 청포도와 하얀모시
    수건을 마련해야
    될거 같습니다.
    지치고 힘들때
    손잡아 줄수 있는
    벗이 있어 행복한
    가을입니다.
    나도 누군가에게
    가슴 따뜻한 사람이 되길
    힘쓰는 하루되게 하소서
  • 작성자예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10.04 신부님, 감사합니다!! 800년전 그 분의 낮은 자세를 다시 기억하고 배우는 하루 되겠습니다. 평안한 하루 되세요!
  • 작성자예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10.04 정희욱 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축일 기억해 주시고 축하해 주셔서 감사 드립니다. 주님의 은총이 충만하시길 기도 하겠습니다. 신부님 강녕 하심을 빕니다.
  • 작성자예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10.04 우와 신부님!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신부남의 기도 덕분에 무럭무럭 큽니다
    감사드려요
  • 작성자예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10.05 고맙습니다~~^^
    늘 잊지않고
    말씀주셔서..
    저는 오늘도 기쁜 날입니다

    주님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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