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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자기발견과 성결(12)-종결편: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작성자하늘잔치|작성시간12.11.25|조회수69 목록 댓글 2

할렐루야!

 

오늘은 자기발견과 성결 12번째 시간입니다. 종결편입니다. 지금까지 은혜를 나누어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를 드리며, 주님께 감사를 드리는 마음입니다. 종결편인지라 다소 산뜻하고 가벼운 이야기로 마무리를 하려고 하였습니다만. 우리가 주님의 의를 내 마음안에 이루어 드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신앙의 본질이 되는지 철저히 깨달아야 하기에 마태복음 5장 20절의 말씀으로, 자기발견과 성결편을 마무리 하고자 합니다.

 

마태복음 5장 20절 말씀을 보시면,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셨습니다. 우리의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주님께서 심히도 경계하며 주신 말씀입니다.

 

당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어떠한 이들이었습니까? 율법에다가 장로의 유전까지 곁들어서 철저히 그 계명을 지키며 하나님을 섬긴다 자부하였던 이들이였는데, 짧게나마 이들의 행함이 어떠했는지 살펴봅시다.

 

누가복음 18:12절 "나는 이레에 두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오늘날 목회자나 성도들중에 이레에 두번씩 금식하는 분들 계시는지요? 소득의 십일조는 드리시는지요? 오늘날은 십일조가 율법의 산물이라 하여 폐지하자는 주장을 제법 외치는 교회들도 적잖습니다. 십일조 내기가 부담스러워 감사나 선교헌금으로 대체하는 성도들도 제법 많구여.

 

그런데, 이들이 내었던 십일조는 얼마나 철저했는지 보실까요? 마태복음 23:23절을 보시면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하셨는데요, 무슨 말이냐면, 심지도 않았는데 자연적으로 꽃가루나 씨가 날라와서 열매를 내면 그에 대한 십일조도 드렸다는 의미입니다. 자연소생물에 대해서도 그것이 내 땅에 이루어진 것이라면, 마땅히 그에 대한 십일조를 드렸던 것이지요.

 

또한, 마태복음 15장 2절에는, "떡 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아니하나이다" 라고 하셨는데요, 이들은 밖에 나갔다 들어오면 정결함의 의식으로 손을 반듯이 씻고 음식을 먹었습니다. 손을 씻지 않는 것은 매우 불결한 것이요, 죄인이라 여겼습니다.

 

누가복음 6장 2절에도 보시면 "어떤 바리새인들이 말하되 어찌하여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느뇨" 하셨는데요, 안식일에는 철저히 일하는 것을 금하였습니다. 그래서 치료받는 것도 안식일을 어기는 것이라 정죄하였지요.

 

오늘날 정통 중의 정통 유대인들, 이스라엘에 가보시면 머리에 큰 모자를 쓰고 다니는 분들 말입니다. 그분들의 삶이나 안식일의 생활상을 따라해보라고 하신다면 숨이 턱턱 막힐 정도일 것입니다. 안식일날은 차도 타지 않으며, 불피우지도 않고 , 엘리베이터 버튼조차 누르지도 않으며 , 비가와도 뛰거나 우산조차 쓰지 않는다 합니다. 왜냐! 일하는 것이라서요. 그러니, 하물며 당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율법적 행함은 어떠했겠는지요.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들을 보시며 매우 책망하셨습니다. "독사의 새끼들아", "회칠한 무덤", "외식하는 자", "화 있을 진저"... 왜 그러셨을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마태복음 5장 20절에 단적으로 제시되어 있습니다. 바로 그들의 마음안에는 <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그러면 너희가 구하는 것보다 더 풍성히 받으리라 하셨는데요(마6:33절 참조). 당시 율법에 정통했던 지배계층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고 수호하며 가르치는 데에는 나름 열심히 있었으나, 정작 중요한 하나님의 의는 마음안에 이루지 못함으로 인해 그들의 행함은 결국은 어떠했는지 성경 이 구절에서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6장 2절~3절 "...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예라 하리라 저희가 이런 일을 할 것은 아버지와 나를 알지 못함이라"

 

자 그럼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의가 저러 할찐데,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레에 더 많이 금식하고 온전하 십일조 드리며 몸도 날마다 씻고 죄인들하고는 가까히 하지 말아야 할까요?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의는 이러한 것이 아님을 우리 모두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는다 하면서도 내 의가 바리새인들의 의보다 더 낫지 못한 경우라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하셨으니, 이 말씀은 참이요 반듯이 실현될 것입니다. 그럼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의는 무엇일까요? 바로 마음의 할례를 통한 하나님의 선한 마음을 내 안에 이루어 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마음의 할례를 통한 하나님의 선한 마음을 내 안에 이루어 드리는 것은 결코 쉬운일이 아님을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자신이 죽어진다라는 것! 정말 쉽지 않지요. 그렇기에 하나하나 분야분야마다 죽어지는 자신을 만들어 갈수록 그 상급은 엄청나며 주님의 사랑과 응답 또한 남다르다라는 것을 우리는 깨우쳐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이에,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바리새인들보다 더 나은 의를, 내 마음안에 이루기 위해서는 자기발견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이에 자기를 발견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하오니 부디 바른 시각으로 신앙생활을 실천해 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첫째, 자아가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하고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것은 그만큼 신앙의 연륜이 있고 하나님 말씀을 들어 많은 성경적 지식을 갖은 사람일수록 더더욱 그러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특히나, 가르치는 입장에 있거나 세상에서 교양이라도 좀 쌓은 사람들이라면 자신의 속내나 악함이 드러나는 것은 심히도 자존심이 상하기에 견디지 못하지요.

 

어떤 사람은 비진리의 자아가 명백히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깨닫지를 못합니다. 자신이 감당하는 사명으로 인하여 허물과 악한 모습이 가리워져 있는 것이지요. 믿음생활 잘 하다가도 자신의 악한 모습이 드러나는 것은 주님의 은혜입니다.

 

사람은 대개들 칭찬받기를 좋아하지 책망이나 지적받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응답받기를 좋아하지 막상 그 응답을 받으려면 연단을 받아야 한다라는 것에는 그다지 원치 않지요. 연단을 받으면 자신의 악이 드러나게 되고 마음이 힘들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말입니다, 고요한 바다에 풍랑이 일어남은 더 빨리 가게 하시기 위한 주님의 은혜임을 알고 우리는 주님앞에 자아를 드러내야 하는 것입니다. 가령, 어떤 사람은 누군가에 대한 서운함 내지 미운 감정이 있어 생각속에 살기를 드러내며 폭력이나 살인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내 그 생각을 떨쳐버리는 것으로 모든 것이 끝난 줄 압니다. 아닙니다!! 순간에 스친 그 생각이 자신의 자아임을 알고 주님앞에 여실히 드러내어 기도하셔야 합니다.

 

어떤 이는 저 앞에 자신이 싫어하거나 만나기 거북한 사람이 오는 것을 보면 시선을 딴데 돌리거나 애써 모른척 그 앞길을 피해가려고 합니다. 아무도 자신의 속내를 모르니 자신만 감추어 버리면 아무 문제가 없겠지요. 아닙니다! 주님은 우리의 생각과 중심을 다 보고 계십니다. 먼저 손내밀지 못하는 자신의 관대치 못한 마음과 악한 감정을 인정하고 주님앞에 여실히 드러내어야 합니다.

 

어떤 이는 자신은 성격이 좋고 원만하며 온유한데, 어리석은 일꾼이나 주위로 인하여 혈기가 팍팍 나면서도 그런 자아는 나의 것이 아니라고 얼릉 덮어버립니다.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안좋은 모습이 드러난 것에 대해서 분이 삭히지 않아 그들을 탓하지요. 아닙니다! 자신안에 혈기가 있고 감정이 다분함을 주님앞에 드러내셔야 합니다.

 

어떤 이는 생각속에 간음을 하면서도 자신은 외로우니까, 결혼하지못할 피치 못할 상황이니까 그래도 나 정도는 세상 사랑하지않고 믿음생활 하니까 간음하는 자신의 생각을 얼릉 포장해 버립니다. 아닙니다! 간음끼가 여전히 내 안에 있음을 주님께 드러내야 합니다.

 

아무쪼록, 사람들 앞에서 주님앞에서 자신의 악한 모습이나 추악한 육의 속성이 드러난 것에 대해서 속상해 하지 마시고, 자신의 모습 그대로를 인정하시면 그 다음은 주님이 치리해 주십니다. 자아를 애써 숨긴다해도 결국은 주님께서 마음을 연단하사 드러나게 하시기 마련입니다.

 

서기관들이나 바리새인들처럼 자신의 악한 모습을 숨기고 행함적으로만 거룩히 나아가려고 하신다면, 그 의는 바리새인들보다 더 낫지 못한 것이니 주님의 말씀대로인 것입니다.

 

둘째, 자신에게 일어나는 문제들 속에서 기도제목을 찾지 않기 때문입니다

 

믿는 우리들에게는 문제가 문제가 아닙니다. 오히려 문제들은 기도하게 만드는 제목일 뿐입니다. 그저 기도제목의 주제 내지 소재가 될 뿐이라는 것이지요. 이런 믿음과 자각을 소유하신 분들이라면 가히 그분의 신앙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은 남다를 것이라 보여집니다.

 

자신의 주위에 일어나는 문제들은 결국은 나 때문에 일어나는 문제들이라는 것을 인식한다면 우리는 그 문제로 인하여 겸비하게 기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문제속에서 자기를 발견할 수 있는 주님의 은혜를 놓쳐버리곤 합니다.

 

이런 글을 쓰는 제 자신조차도 문제들 속에서 자기발견을 놓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정말로 민망한 일이지요. 차후라도 깨닫게 되어 기도하게 되지만... 그 당시로서는 제 모습이 보이지않고 상대의 모습이 더 보이게 되니 막상 성령의 주관을 받지 못하고 세상에서 만들어진 자아의 모습이 툭툭 튀어나오기도 합니다.

 

일전에 어떤 권사님이 이런 상담을 해오셨습니다. 그토록 애지중지 키웠던 아들이 미덥지 못한 며느리감을 데리고 왔기에 일언지하에 거절했더니, 아들이 그 여자를 임신시켜서 데리고 온 것입니다. 임신이 되기만 하면 부모도 어찌할 수 없다 생각을 했는지.. 이에 그 권사님은 너무나도 속상하여 그 여자에게 아들과 헤어질것을 강력히 경고했다 합니다. 자신은 앓아누울 정도라고 하는데요...

 

이 문제의 요지는 그 여자분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먼저는 자신과 아들에게 있음을 깨우쳐 보신다면 능히 주님안에서 해결책이 보이기도 하겠으나, 이렇게 우리는 문제속에서 자신을 발견해 볼 수 있도록 날마다 기도를 쌓아가셔야 합니다.

 

이것은 목회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부흥이 안되면 성도들이 전도를 하지않았고, 세상이 악해서 그런거라고 치부하기보다는 먼저는 자신과 하나님 사이에 담은 없지 않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해 볼 수 있다면 특히나 가르치는 입장에 있는 분들은 더더욱 그러한 것입니다.

 

그럼 문제들마다 자꾸 자신을 발견하게 되면 낙심이 되고 힘들지 않을까요? 그럴것 같지만 정반대입니다. 오히려 즐겁고 행복하게 신앙생활이 지속됩니다. 주님의 의를 내 마음안에 이루려고 노력해 나가니 주님께서 은혜를 부어주시니까요. 세상 사람들은 문제들속에서 자신을 발견하기보다는 남과 환경을 발견하지요. 그러다보니 남탓이 나오고 환경탓이 나오고 험담과 수군거림이 나오는 것입니다. 혹! 원인분석이 명백히 환경과 남에게 있음을 발견하다해도 행복한 마음을 이루지 못합니다.

 

당시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이 자신들에게 일어나는 문제들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의 모습을 발견하게 하시는 사랑의 연단임을 인식하기만 하였다면 분명 그들의 의는 주님앞에 열납되었을것이라 봅니다.

 

셋째, 자기 의와 틀이 강함으로 인하여 자신을 발견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자기 성격과 의가 강한 사람은 남의 허물이 잘 보이게 됩니다. 정작 자신의 허물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은 잘하고 있고 옳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나와 남은 다르다라는 것을 늘 인식하는 기도를 해야합니다. 입술에만 파숫꾼을 세울 것이 아니라 생각에도 파숫꾼을 세워달라 기도해 가셔야 합니다. 나와 남이 다르다라는 것을 인식한다면 나의 모습도 발견되기 마련이요, 상대를 판단하거나 혈기를 내는 일도 많이 줄어들게 됩니다.

 

성격이란 자라온 환경속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형성된 기질인지라, 누군가가 신뢰할 만한 사람이나 성령님께서 자신의 성격속에 악함이 있음을 깨우쳐주지 않는다면 스스로 깨닫기는 참 힘든 면모이기도 합니다.

 

자수성가한 사람들의 성격에서는, 자신보다 열심내지 못하는 사람들을 볼때 답답하고 쉽게 지적과 책망이 나오기도 합니다.

 

자라온 환경에서 늘상 잔소리듣고 지적을 받아온 사람들은, 신앙을 한다해도 자꾸 자신의 악한 모습이나 상대의 좋지 못한 모습이 더 빨리 발견이 되어 죄를 버려 나간다는 명분하에 판단이 곧잘 앞서기도 하고, 끊임없이 낙심하는 자기 모습과 싸워야하는 버거움이 있기도 합니다.

 

또한, 남의 눈치를 보고 자라온 사람들의 성격속에는 쉽게 상처받고 의심하는 마음이 다분한지라, 상대가 나에게 상처를 주는 것이지 쉽게 상처받는 자신의 모습은 악하다라는 것을 잘 발견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애정결핍의 성격을 형성한 사람들은 남에게 잘 보이려고 하다가 착한 콤플렉스에 빠져 쉽게 낙심하고 자괴하는 모습속에, 스스로의 생각속에서 자기연민에 빠지기도 하구여.

 

특히나 목회자나 가르치는 입장에 있는 분들이 자기 의와 틀이 강한 경우에는 성도들이 참 힘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자신을 발견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자신은 하나님 말씀대로 가르친다는 자기 의가 앞서있기 때문이요, 이것이 또한 진리라는 틀이 있어 그 진리를 행하지 못하는 상대가 잘못이지 진리를 제대로 가르치는 내 편에서는 하등 문제가 없다라는 것으로 생각이 앞서있기 때문입니다.

 

결국은, 무엇을 말합니까? 자기 의와 틀이 강한 사람들은 비진리의 육신의 생각이 앞서기에 자기발견을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기 의와 틀의 강함은 당시 바리새인과 서기관, 제사장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자신들은 선민이요, 하나님 말씀대로 행한다는 명분하에 하나님의 의보다 자신의 의가 앞서서 정작 이루어야 할 사랑과 겸비함의 마음은 이루지 못한 것이지요.

 

너희들중에 죄없는 자가 저 여인을 돌로 치라라는 말씀에도 그들은 물러서지 않다가 두번째 주님께서 땅에 무언가를 쓰셨을 때야 비로소 물러가기 시작했습니다. 주님께서 땅에 무언가를 쓰신 것은 그들의 영혼조차도 살리시기 위한 주님의 선한 마음이었습니다.

 

직접적으로 사람들 앞에서 한명한명 죄를 드러내고 지적하게 되면, 그들의 강한 의와 틀로 인해 자존심이 상한지라 변박할 수 있음이요, 그들의 영혼마저 실족될 수 있기에 스스로 깨닫도록 땅에 쓰시어 그들의 죄 조차도 바람에 흩날리어 다른 이들이 두고두고 기억하지 못하도록 땅에 쓰신 것입니다.

 

자 이젠 정리합시다.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려면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의 의보다 더 나아야 합니다. 그들보다 더 나은 의를 이루기 위해서는 자기발견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자기발견을 하지 못하는 이유 3가지를 말씀드렸습니다.

 

첫째, 자아가 드러나는 것을 싫어하고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둘째, 자기에게 일어나는 문제들속에서 기도제목삼아 자기발견을 안하기 때문이요,

셋째, 자기 의와 틀이 강함으로 인해 자기를 발견하지 못하기 때문이라 하였습니다.

 

지금껏 자기발견과 성결편을 잘 양식삼아 가신다면 아직은 성결을 이루지 못했다해도 그래도 변화되려는 노력하는 마음을 주님께서는 높이 평가해주시고 긍휼히 여겨주시어 분명 천국을 상급으로 주실 것이라 믿습니다.

 

천국을 침노하는 노력하는 자세를 율법이라 치부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분명 씨를 뿌리는 자가 열매를 거두는 것입니다. 비진리의 육신의 생각이 있는 이상은 성결을 이루지 못합니다. 또한 이 육신의 생각은 자기발견을 어렵게 만듭니다. 그러니 자기발견과 성결의 핵심은 내 안에 비진리의 육신의 생각을 발견하여 버려가자는 것입니다. 그것이 성결의 길입니다.

 

우리 모두 주님의 사랑으로 자기발견을 통해 나날이 주님의 선한 마음을 이루어 천국에서 만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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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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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월리^^ | 작성시간 13.03.20 오늘 아침부터 서운한 감정 때문에 기도하며 힘들었는데 이 글을 읽고 쉽게 상처 받은 내 성격도 있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서운한 감정의 내 자아가 죽어지길 오늘 안 죽는다면 내일 또 죽일지언정 나약함을 인정하고 주님의 선한 마음이 내 마음 되길 간절히 원하는 마음으로 기도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천국중개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3.03.21 할렐루야. 서운한 감정!버려나갑시다. 서운할때마다 그 이유를 본다면, 상대에게 무언가 기대내지 기대치를 갖고 있는데, 내게 만족이 안되면 서운해들 합니다.

    서운하여 삐지고 토라지고 분내고! 사명도 내려놓고, 교회도 떠나고... 인정받고 싶어서, 되돌림받고 싶어서, 우리가 이런 육의 마음을 발견하여 버려나간다면, 쉽게 감정 상하는 속성이 버려지면서, 주님의 평안과 너그러움의 마음밭을 이루어 나가니 복이네요^^ 기도합니다. 감사하구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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