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실언니 / 권장생
몽실은 주저주저하다가 북촌댁에게 물었다.
"어머닌 왜 가난한 우리 아버지한테 시집 오셨어요?"
"......"
"우리 고모가 속이진 않았어요?"
"속이다니, 그대로 다 들려 줬어. 하나도 속이지 않았어."
"그래도 괜찮았어요? 이렇게 굶어 가면서 사는 가난한 집인데도 시집 오고 싶었어요?"
"......"
북촌댁은 말이 없었다.
"어머닌 아무래도 고모한테 속았어요."
"아냐, 몽실아......"
"......"
"속인 건 고모가 아니고 내가 아버지랑 몽실을 속이고 있단다."
"......"
"난, 나쁜 여자야."
북촌댁은 한숨을 길게 쉬었다.
몽실은 금방 말뜻을 알 수 없었다. 북촌댁이 무얼 속이고 있다는 건지, 일부러 그러는 것만
같았다.
"몽실아."
한참 뒤 북촌댁이 몽실을 불렀다.
"예."
"난 아버지랑 몽실을 여태 속였단다. 난 너희 집에 시집 와서는 안 되는 몸이야."
"어머닌 괜한 말씀을 하셔요. 무엇 때문에 속였다고 해요?"
"언젠가는 알게 될 테니까 내 얘기할께."
북촌댁은 몽실의 손을 꼭 쥐었다. 그러고는 그 손을 놓지 않고 그대로 얘기했다. 열 살짜리
어린애에게 하는 말 같지 않게 북촌댁은 자상하게 차근차근 들려 주었다.
그 얘기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았다.
열아홉 살 때 북촌댁은 가까운 읍내 총각에게 첫 번째 시집을 갔었다. 얼굴이 남달리 고왔
던 북촌댁은 그 덕택이었는지 무척 좋은 신랑감을 고를 수 있었다. 살림도 괜찮은 집안이었
다.
남편은 읍내 우체국에 다녔다. 한 일 년 동안 재미있게 살았다. 북촌댁은 그만하면 남부러
울 것 없이 평생을 행복하게 살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불행은 먼 데 있지 않았다. 북촌댁은 갑자기 몸에 병을 갖게 되었다. 무서운 병이었
다. 가슴앓이였다. 기침이 나고 빨간 피를 토했다. 의사는 남편과 헤어져 얼마 동안 요양을
하라고 했다.
친정에 가서 일 년 동안 병 치료를 했다. 그러나 쉬 낫지 않았다. 이 년이 되었을 때 남편
은 북촌댁을 버리고 다른 여자와 살림을 차렸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삼 년이 되어도 사 년이 되어도 북촌댁의 병은 낫지 않았다. 읍내 남편에게 다시 돌아가지
못하고 북촌댁은 그렇게 버림을 받은 것이다.
"......몽실아......"
북촌댁은 거기까지 이야기하고는 잠시 몽실을 부르며 입을 다물었다.
"어머니, 그럼 아직 아프셔요?"
"그렇단다. 많이 나았지만 아직 이렇게 몸을 잘 가누지도 못하잖니? 몽실이한테, 그리고 아
버지한테 정말 미안하단다."
"......"
"몽실아, 사람은 일부러 그러지 않는데도 남을 속이고 해치며 서로 그렇게 살아야 하나 보
지. 내가 몽실이한테 한 가지 부탁이 있어."
"뭐여요?"
"몽실이 자주 울 때가 많은데 이젠 울지 말고 참도록 해요. 나도 많이 울었지. 눈물이 마르
지 않을 만큼 매일 울었으니까 어떠했겠니? 그러나 그게 부질없었어. 그렇게 울지 말고 입술
을 깨물었으면 난 좀더 건강할 수도 있었을 거야. 우는 건 참 못난 짓이야."
몽실은 얼굴이 붉어질 만큼 가슴이 뛰었다. 걸핏하면 울었던 것이 부끄러워졌다.
"어머니, 이젠 울지 않을께요. 그러니까 어머니도 입술을 깨물어요. 저하고 함께 열심히 살
아요. 절대 울지 않고 어머니를 돕겠어요."
그날 이후 몽실은 딴사람처럼 되었다. 울지 않을 뿐만 아니라 언제나 얼굴에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북촌댁과 둘이서 나물 다래끼를 메고 산으로 들로 함께 다녔다. 고사리를 캐다 읍내 장에
팔아 식량도 조금 샀다. 마을 사람들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이상하기도 하지. 새 어머니 티가 조금도 나지 않는구먼."
"친어머니와 딸보다 더 정다운 것 같아요."
2. 아래 소설을 읽고 몽실이의 행동을 통해 문학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해 보자.
몽실이 아주머니 심부름으로 아침 일찍 시장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강변 쪽으로 가는 쓰레
기장 옆을 지날 때였다. 몽실은 문득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 고양이 울음 소리 같기도 하고,
그냥 바람 소리 같기도 했다.
몽실은 걷던 걸음을 멈추었다. 웬지 그 소리가 무엇인지 알고 싶었던 것이다.
"애앵 애애앵..." 그 소리는 바로 앞 쓰레기 더미에서 들렸다.
'고양인가 봐!'
몽실은 쓰레기 더미를 해치고 안으로 들어갔다.
"얘야, 뭣이 있니?"
어떤 아저씨가 역시 이상한 소리를 들었는지 지나치다 말고 멈춰 서서 물었다.
"모르겠어요. 뭣인지......"
몽실은 소리가 나는 쓰레기 더미의 위쪽을 손으로 헤쳤다.
"어머나!"
몽실은 놀라 한 발 주춤 물러섰다.
"애앵......"
귀를 찢는 듯한 소리와 함께 까만 덩어리 하나가 불쑥 나타난 것이다.
"뭐야?"
아저씨가 다가왔다. 그리고 지나가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기웃거렸다. 어느새 여남은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둘러섰다.
"어머! 저건 저건 갓난아기야!"
어떤 아주머니가 기겁을 하며 소리쳤다.
"검둥이 새끼구나. 어느 나쁜 엄마가 내다 버린 거야!"
또 한 사람의 남자가 화난 소리로 말했다.
검둥이 갓난아기는 조그만 까만 주먹을 꼭 쥐고 줄곧 울었다. 몽실은 너무도 뜻밖이어서 숨
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에움. 더러운 것!"
어떤 남자가 침을 뱉으며 발길로 찼다. 아기가 자지러지게 울었다.
"안 되어요!"
몽실이 저도 모르게 몸을 아기 쪽으로 가리고 섰다.
"비켜! 이런 건 찟밟아 죽여야 해!"
"화냥년의 새끼!"
사람들은 웅성거리며 제각기 침을 뱉고 발로 쓰레기 더미를 찼다.
몽실은 다급하게 아기를 덥석 보듬어 안았다. 강아지처럼 새까만 덩어리가 손에 말캉거리며
잡혔다.
"넌, 대체 누구냐? 그 새끼 내려놔!"
"웬 계집애가, 정신있냐?"
몽실은 얼른 아기를 치마 속에 감추고는 사람들의 틈을 비집고 빠져 나왔다. 사람들은 줄곧
무언가 소리 지르며 욕지거리를 해 댔다. 몽실은 열 걸음쯤 달아나서는 사람들을 향해 돌아섰
다. 그리곤 애원하듯이 꾸짖듯이 말했다.
"그러지 말아요. 누구라도, 누구라도 배 고프면 화냥년도 되고, 양공주도 되는 거여요."
사람들은 몽실이 하는 말에 잠시 입을 다물었다. 몽실은 재빨리 아기를 안고 도망치기 시작
했다. 강변둑길을 지나 행길로 달리는 사이 갑자기 울어 대던 아기가 조용해졌다.
허겁지겁 집으로 돌아와 아주머니를 불렀다.
"아주머니! 큰일났어요!"
"뭐라고? 큰일이라니, 어쨌다는 거야?"
집안에서 아저씨, 아주머니 그리고 혜숙이가 달려나왔다.
"그게 뭐야, 몽실아?"
아주머니가 달려와 몽실이 안고 있는 아기를 헤쳐 들여다봤다. 그러나 가엾은 검둥이 아기
는 얼음처럼 싸늘하게 식은 채 죽어 있었다.
몽실은 바들바들 떨며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몽실은 몸에 높은 열이 나면서 앓아 누웠다. 머리가 아프고 어지러웠다. 그토록 도지게 견
뎌 온 몸이 왜 이렇게 약해져 버렸는지 모른다. 몸만 약해진 것이 아니다. 마음까지 힘을 잃
고 다만 서럽고 외롭기만 했다.
3. 아래 소설을 읽고 몽실이와 아버지 그리고 그 밖의 사람들
이 처한 상황을 상상해 보자.
"너, 집이 이 근처가 아닌 모양인데 무엇하러 여기 왔니?"
"시골에서 왔어요. 아버지가 병환이셔서 어제 내려왔어요."
"요 앞 병원에 들어가려고 왔니?"
"예."
"아픈 사람이 하도 많아 쉽게 들어가겠니?"
"......"
"벌써 한 달 동안이나 줄 서서 기다리는 사람도 있나 보더라."
"아저씨, 어떡하면 좋아요?"
"아버지하고 너하고 둘이서 왔니?"
"예."
"왜, 어머니가 안 오셨니?"
"어머닌 안 계셔요."
"그러니? 모두 전쟁 때문에 고생이라구. 아버지가 병원에 들어가려면 쉽지 않을 거야. 밤낮
으로 줄 서서 기다려야 할 거야."
"기다리더라도 어쩔 수 없지요. 아버지 다리를 꼭 낫게 해 드려야 해요."
그날 밤 빵 장수 아저씨는 집에서 담요 한 장을 갖다 주었다. 낡아서 구멍이 난 것이지만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몽실은 아저씨에게서 깡통을 얻어 밥을 구걸했다. 얻어 온 밥을 아버지와 함께 나눠 먹으면
서 몽실은 노루실에 두고 온 난남이 걱정을 했다. 구멍 난 담요를 아버지 덮어 드리고 그 한
자락을 가지고 길바닥에 그냥 웅크리고 누웠다. 봄 밤은 살을 에듯이 추웠다.
하루가 지나고, 그리고 사흘이 지났다.
몽실은 난남이 걱정이 태산처럼 밀려와 가슴을 죄게 했다. 줄 선 사람들은 조금도 줄어드는
것 같지 않았다. 가끔씩 가다가 택시가 오고 거기서 내린 사람들이 병원으로 들어갔다. 줄 선
사람들은 웅성거리고 있었다.
"뭐야! 일껏 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은 보름씩 한 달씩 있어도 못 들어가는데, 어떤 놈은
백이 좋아 금방 들어가는 거야?"
"저런 놈들 때문에 우리는 세월 없이 기다려야 하는가?"
자선 병원도 차별이 있었다. 어떤 이유로 그렇게 되는지 몰라도, 돈 많은 사람들은 뒷구멍
으로 진찰권을 얻어 내어 이렇게 쉽게 들어갈 수가 있었던 것이다.
가난한 사람을 위해 세워진 병원이 오히려 가난한 사람들을 이용하는 잘못을 저지르고 있
는지도 모른다.
비가 내렸다.
불쌍한 사람들은 길바닥에서 그냥 비를 맞으며 기다렸다. 거적을 덮고 누운 사람, 앉은 사
람, 부축하며 기대며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하염없이 기다리는 것이다.
기다리다 죽어 버리는 사람도 있었다. 하루에 한두 사람씩, 거적에 싸여 가족들의 울음과
함께 어디론가 떠나는 것이다.
얼굴빛이 검푸르고 목구멍에서 자꾸 피가 올라오고 있는 할머니 한 분이, 몽실의 자리에서
다섯 번째 앞에 있었다. 그 할머니 옆에는 쉰 살이 넘어 뵈는 아들이 어머니 시중을 들고 있
었다.
할머니는 말할 기력도 없고, 아들이 어디서인가 구해 온 가루 우유를 끓여 주는 것도 먹지
못했다. 길옆 가장자리에 벽돌 조각을 모아 부스러기 나무를 지펴가며 아들은 어머니께 열심
히 따뜻한 물을 끓여 주고 있었다.
"어머니, 이것 잡수셔요. 어서 몸이 회복되어야만 고향집에 돌아가실 게 아니겠어요."
"음...... 음......"
할머니는 눈을 감은채 그렇게 신음 소리로만 대답했다.
새벽녘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는 저녁때가 되어도 그치지 않았다. 몽실은 아버지 전씨를 위
해 이곳저곳 쓰레기 더미를 찾아 찢어진 지우산이랑 걸레 같은 것을 주워다 덮개를 만들었다.
그러나 정씨는 더 버티고 견디지 못하는지 몹시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몽실아, 어떻게 기차삯을 구해서 집으로 가자꾸나."
"아버지, 점더 기다려요. 병원에 들어가기만 하면 깨끗이 건강해져서 나온대요."
"하지만 못 견디겠구나......"
정씨는 비에 젖은 길바닥에 털썩 쓰러지고 말았다.
바로 그 때 피를 토하며 기다리던 할머니가 이상한 비명 소리를 질렀다. 소리가 너무도 컸
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그쪽을 돌아다봤다.
"어머니이!"
이어서 할머니의 아들이 울부짖으며 할머니의 몸을 흔들었다. 할머니는 벌써 숨이 끊겨 버
렸다. 아들은 흐느껴 울았다. 비에 젖은 사람 모두가 할머니의 아들과 함께 울고 있었다.
몽실은 젖은 길바닥에 누워 있는 아버지를 부축했다. 아버지가 몽실의 얼굴을 쳐다봤다. 퉁
퉁 부어오른 얼굴, 그러면서도 핏기 없는 아버지의 얼굴이 가련한 딸을 올려다보면서 눈에 눈
물을 글썽이었다.
"아버지 조금만 참아요. 오늘만 견디시면 차를 구해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도록 할께요."
손을 꼽아 보니, 벌써 이리로 온 지가 아흐레나 되었다. 난남이 걱정이 언뜻 스치고 갔지만
몽실은 이내 잊어버렸다.
이토록 눈앞의 일이 어려운데 난남이 일까지 걱정할 겨를이 없었다. 몽실은 자기도 모르게
많이 지쳐 있기도 했다.
정말 몽실의 모습은 비참했다. 여자 아이인지 남자 아이인지 분간할 수도 없었다.
빗질 한 번 못 한 머리칼은 제멋대로 엉클어져 있었다. 빨지도 않고 입은 채 길바닥에 드러
누워 잠을 자고 일어나 아버지 심부름을 하느라 더러워진 옷에서는 냄새가 났다.
몽실의 옷에서만 냄새가 나는 것은 아니었다. 정씨의 모습은 더욱 비참했고 더러웠다. 그
정씨 앞에 목발을 짚고 서 있기도 하고 앉아 있기도 하는 청년도, 그 앞의 아주머니도, 그 앞
의 사람도, 그리고 거기 줄 선 모든 사람들에게서 풍기는 고약한 냄새는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비가 그치고 햇빛이 났다. 입은 채 적셨던 옷을 그대로 또 입은 채 말렸다.
"몽실아, 난 그만 죽을 것 같다."
정씨가 밥을 먹지 않는 것은 참으로 드문 일이다. 깡통엔 쌀밥이 더 많이 담겨 있엇다. 몽
실은 아버지를 위래 좋은 집을 찾아다니면서 구걸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정씨는 그날 따라
고개를 저으며 밥을 전혀 먹지 않았다.
"그럼, 이따가 잡수셔요."
몽실은 깡통을 종이로 덮어 아버지 곁에 놓았다. 한나절이 되어 몽실이 정씨에게 밥을 권하
자 역시 고개를 저으며 먹지 않았다.
"아버지, 며칠만 더 기다리면 우리 차례가 되어요."
몽실은 정씨의 어깨를 가볍게 흔들었다.
"그래, 정말이지 많이 앞으로 당겨져 왔구나."
병원 현관문이 저만치 있었다.
그러고 보니 그날이 벌써 보름째나 되는 날이었다.
4. 문학작품은 그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다. 이 소설의 시대적
상황과 갈등을 이야기해 보자.
몽실이 물을 떠오자 인민군 여자는 재빨리 미싯가루을 탔다. 어두운데도 손놀림이 무척 익
숙했다. 난남이는 미싯가루 물이 입에 잘 맞지 않는지 몇 번 고개를 저으며 받아 먹지 않았
다.
"아가야, 조금만 먹고 기다리면 죽을 끓여 줄께."
인민군 여자가 달래면서 몇 숟갈 더 떠넣으니 난남이는 흡사 알아듣기라도 한 것처럼 받아
먹었다. 그동안 몽실은 난남이의 죽을 끓이기 위해 쌀을 부지런히 씹었다.
한 시간 뒤 난남이는 암죽을 먹고 잠이 들었다.
인민군 여자도 몽실이와 함께 거적에 누웠다. 몽실은 어느샌지 곁에 있는 인민군 여자가 죽
은 북촌댁인 것같은 생각이 들었다.
"저어, 아줌만 어디서 왔어요?"
몽실이 누워서 물었다.
"아줌마라 하지 말고 언니라고 불러라. 네 나이 몇 살이니?"
"열 살이어예."
"우리 옥순이보다 한 살 적구나. 우리 집은 북쪽에 있지. 저 멀리 압록강 근처야, 아주아주
멀단다."
인민군 여자는 손을 더듬어 몽실의 손을 잡았다.
"언니도 국군들과 싸우러 왔어요?"
"으응...... 그래."
좀 더듬듯이 인민군 여자가 대답했다.
"인민군은 왜 사람을 죽여요?"
"언제 죽이는 걸 봤니?"
"아까 해질녘에 앞냇가에서 죽였잖아요. 면장 아저씨랑 순경 아저씨랑 더 많이 죽였잖아요.
앵두나무집 할아버지가 그토록 죽이지 말라고 말렸는데도......."
"앵두나무집 할아버지가 누구니?"
"까치바윗골에 살고 계셔요. 아들이 공비였어요."
"뭐라고? 공비라니...... 그렇게 말하면 큰일나요. 인민 해방군이라 해야 한다. 그런데......."
"그 할아버지가 묶여 있는 사람들을 살려 달라고 대장 아저씨한테 애원을 했어요. 죽이지
말아 달라고요. 언니는 못 보셨어요?"
"못 봤어. 정말 그랬니?"
인민군 여자는 잠시 말이 없었다.
"앵두나무집 할아버지는 전에 산속에 숨어 있는 아들에게 떡을 해 주고 닭을 잡아 주었다
고 지서에 끌려가서 여태 소식이 없었어요. 인민군 언니......"
몽실은 벌떡 일어나 앉아 인민군 여자의 얼굴을 내려다봤다. 어둠 속에 희미하게 보였지만
인민군 여자는 술픈 표정이었다.
"왜 그러니?"
"국군하고 인민군하고 누가 더 나쁜 거여요? 그리고 누가 더 착한 거여요?"
"......"
"왜 인민군은 국군을 죽이고, 국군은 인민군을 죽이는 거여요?"
인민군 여자가 누운 채 말했다.
"몽실아, 정말은 다 나쁘고 다 착하다."
"그런 대답이 어디 있어요?"
"국군 중에도 나쁜 국군이 있고 착한 국군이 있지. 그리고 역시 인민군도 나쁜 사람이 있고
착한 사람이 있어."
"그래요. 아까 낮에 태극기를 불태워 준 인민군 아저씨는 착한 분이셨어요."
몽실은 낮에 있었던 얘기를 들여 주었다.
"그런 거야, 몽실아. 사람은 누구나 처음 본 사람도 사람으로 만났을 땐 다 착하게 사귈 수
있어. 그러나 너에겐 좀 어려운 말이지만, 신분이나 지위나 이득을 생각해서 만나면 나쁘게
된단다. 국군이나 인민군이 서로 만나면 적이기 때문에 죽이려 하지만 사람으로 만나면 죽일
수 없단다."
몽실은 무슨 말인지 잘 알아듣지 못했다. 다만 사람으로 만나면 착하게 사귈 수 있다는 것
만 얼마쯤 알 수 있었다.
"알아듣겠니?"
"조금밖에 모르겠어요."
"그럴 거야."
인민군 여자는 조그맣게 한숨을 쉬었다.
몽실이 잠깐 있다가 말했다.
"언니도 인민군인데 조금도 무섭지 않아요. 돌아가신 우리 어머니 같아요."
"어머니가 무척 좋으셨니?"
"예, 새 어머니였는데 참 착하셨어요. 그런데 너무 많이 아팠어요. 그래서 난남이를 낳고
그만 죽은 거여요."
"돌아가신 어머니가 새 어머니셨니?"
"예, 우리 엄마가 아버지 버리고 딴 데 시집 갔기 때문에 새 어머니가 들어온 거여요."
"그랬니? 어머니가 왜 시집 가셨을까? 무슨 사정이 있었겠지."
"하도 굶어서 배가 고파 가셨대요."
"쯧쯧, 오죽했으면 아버지를 버리고 가셨겠니?"
"우리 엄마가 나쁘죠?"
"넌 어떻게 생각하지?"
인민군 여자가 되물었다.
"나쁜 것 같기도 하고 나쁘지 않은 것 같기도 해요."
"그래, 엄마는 틀림없이 나쁘지 않을 거야."
별이 너무도 많이 나와서 하늘이 온통 꽃밭 같았다.
둘은 잠시 조용히 그 하늘의 별을 바라보았다.
한참 뒤 인민군 여자가 맑고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 나라 내 고향, 언덕 위에 초가 삼간 그립습니다......"
노랫소리가 구슬퍼서 그런지, 별빛이 아롱아롱 물기를 가득 머금고 몽실의 눈으로 흔들리며
내려왔다. 몽실은 인민군 언니의 손을 꼭 쥐었다.
한밤중이 되어 몽실이 잠이 든 걸 누가 흔들어 깨웠다. 인민군 언니였다.
"몽실아, 언니는 지금 떠나야 한단다. 자는 걸 깨워서 미안하구나."
"어디로 가셔요? 또 오셔요?"
"그건 모른다. 내가 장골 할머니 집에 식량을 좀 두고 갈 테니까 난남이 잘 키우고 꿋꿋하
게 살아라."
"언니, 언니 이름이 뭔지 가르쳐 주셔요."
"최금순이야. 뒤에 또 만날지도 모르니까 잘 있어."
최금순은 몽실의 얼굴을 끌어다가 가만히 뺨을 비볐다. 그러고는 어두운 비탈길을 총총 걸
어 내려갔다.
몽실은 아까 낮에 인민군 청년과 헤어졌을 때보다 더 아프게 외로워졌다.
몽실은 멍하니 어둠 속에 서서 울었다.
다음검색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오짜르트 작성시간 04.06.26 저도 이 글 보면 슬퍼지겠군요.
-
작성자산책길 작성시간 04.06.26 제목이 몽실이가 아니고 몽실언니네요. 난남이와 이야기가 좀 더 많은가 봐요. 자선병원에서는 정말 끔찍하군요. 가난이, 의료혜택이 없는 국민이 얼마나 비참한지....뼈저리게 느껴집니다. 글이 참 좋아요. 인물들이 심리가 그대로 전해집니다. 마지막에 왜 아빠는 안보일까요 ?
-
작성자산책길 작성시간 04.06.26 50년 전이면 먼 시대도 아니죠. 우리 아버지나 할아버지들의 어린시절이니까요. 참 그분들 공헌이 컸습니다. 우리가 이만큼 살 수 있는 것도 우리 어른들의 덕택이다 싶으니 새삼 부모님들과 어른들게 존경심이 생기고 더 잘해드리고 싶네요. 좋은 작가 알게되어 반갑네요.
-
작성자산책길 작성시간 04.06.26 별들이 많아 꽃밭이라 표현한 것도 인상적이구요, 신분을 떠난 인민군 언니와의 우정도 좋고 인간과 사회의 본질에 대한 얘기도 다가옴이 많았군요. 가난한 시절...우리 부모님세대...안스럽고 대견하시네요.
-
작성자오짜르트 작성시간 04.06.26 님의 꼬리글이 더 포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