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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의 세기를 주먹으로 살다 간 깡패 김두한(1918~1972)

작성자天風道人| 작성시간14.07.18| 조회수2496|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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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天風道人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4.07.18 김두한은 항일 투사였나?

    드라마 <야인시대>에서 암흑가 두목 쌍칼은 만주로 떠나겠다는 김두한을 이렇게 설득하며 만류한다. “총을 들고 싸우는 것도 독립 운동이지만 종로의 상권을 지키는 것도 독립 운동이야. 우리는 거리의 독립군이 될 수 있어.” 신주백 성균관대 연구교수(한국사)는, 그러나 이같은 대의 명분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김두한은 조직을 먹여 살리기 위해 조선 상인들에게 기생했던 깡패에 불과하다고 평가한다. 명동 상권을 장악했던 하야시패와의 대립 또한 영화나 드라마에서 과장한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 작성자 天風道人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4.07.18 실제로 1963년 김두한이 펴낸 회고록 <피로 물든 건국전야>를 보면 조선인 상권을 보호하기 위해 야쿠자패와 맞섰다거나 하는 대목은 전혀 나오지 않는다. 광복 이후 공산주의자를 섬멸하기 위해 자신이 어떻게 활약했는지를 상세하게 기술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물론 김두한이 힘깨나 쓴다는 일본인을 주먹으로 제압한 것만으로도 당시 사람들이 대리 만족을 느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하야시와는 대립하기보다 공생하는 관계였다는 것이, 하야시패의 중간 보스였으며 훗날 김두한과도 절친한 사이였던 김동회씨의 증언이다.
  • 작성자 天風道人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4.07.18 1999년 MBC가 방영한 <깡패와 건달로 본 한국 100년>에 출연한 김씨는, 이른바 장충단 대혈투 사건 이후 하야시가 김두한에게 자전거보관소 운영권을 넘겼고 그 뒤 두 사람이 호형호제하는 관계를 유지했다고 주장했다.

    김두한 또한 회고록에서 하야시가 자신에게 매달 용돈 삼아 천 원씩 보내주었다고 기술했다. 측근의 회고에 따르면, 광복 직후 하야시는 일본으로 돌아가면서 김두한에게 남은 한국 돈 일체와 일본도 및 권총 한 자루를 선물로 주고 갔다고 한다. 이 시기 박헌영에게 설득당해 조선공산당 전위대장을 맡았던 김두한은 하야시가 준 이 무기들로 무장하고 박흥식·백낙성 등 조선인 유지들의 집을 털러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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