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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원재칼럼

1930년대 중국 대기근

작성자리원재|작성시간14.03.15|조회수861 목록 댓글 3

앞에서 말한 대기근을 다시 얘기해보자.인육이 시장에서 거래된 이 비참한 현실을 다시 곱씹어 보자.

1929년 경제 대공황은 말그래로 공황 패닉상태라고 한다.경제는 곧 심리라고 학자들이  말하듯이 내가 경제학을 공부하고 또 실경제를 운영하면서 정말  경제는 심리다라는 말에 공감하게 된다.이건 나중에 다시 말하겠고 지금 이게 중요한게 아니라 여러분들 공황이 무엇입니까?

경제공황이 왜 일어납니까? 경제를 맨처음 공부하다보면 수요와 공급 곡선으로 아담스미스가 말한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하여 수요곡선과 공급곡선이 만나는 점이 적정가격이라고 우리는 이미 중고등학교때 배워왔다.

하지만 단순하게 수치화한것이고 정말 경제는 어떻게 할  수 가 없을 정도로 어렵다.노벨경제학상 타는 사람들중 상당수가 수학자이다.영화 뷰티풀마인드에서 수학천재가 탄 상은  노벨수학상이  아니다.경제학상이다.더군다나 노벨상에는 수학상이 없다.노벨 자신이 수학을 무척 싫어했고 자신의 연인을 뺏어간  남자가 수학자였기때문에 그렇다는 설이 분분하지만 결국 수학과 경제는 뗄내야 뗄수가 없다.

그래서 건국대 총장이 경제학자인데 현재의 고등학교 문과 수학이 문과인 경제학리론을 배우는데 턱없이 부족하다고 한다.암튼 이 복잡한 과정을 떠나서 일단 공황의  정의부터 알아보자.

1920년대는 세계 1차 대전이 독일을 제외한 다른 식민지경영국가는 유례없는 경제호황을 누린다.일본의 전성기는 1964년 도쿄 올림픽 이후 90년대 초반까지가 일본의 전성기라고 알고 있지만 사실 그 이전 1920년대 일본경제성장률은 매년 100%였다.그만큼 공급을 하는 공장이 막 돌아갔다는 얘기인데 갑자기 그만큼의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 닥친다.검은 월요일로 불리는 주식폭락사태가 미국 월스트리트를 강타하자  이것이 전세계에 파급되었고 이것이 다시 2차 세계 대전의 원인을 공급한다.그런데 수요가 공급을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공급이  넘쳐났다라는 얘기인데 1930년대 세계 곧곧에서 일어난 대규모 기아현상은 그만큼 수요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더군다나 돈이라든지 경제적 여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아현상을 겪었다라는 얘기는 결국 이 수요에 맞춘 공급선이 차단되었다라는 증거이다.그전에는 오히려 지금보다 더 관세장벽이  낮았다.자유무역협정이 뭐 대단한것 같지만 이미 2차대전 이전에 무역관세가 낮은 시대에 살았었다.보급선이  없었는가 그것도 아니다.타이타닉으로 대변되는 대형선박의 전성기였다.수요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미국농촌에서 썩어가는 그 수많은  곡물을 바다에 버리는 짓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1930년대 중국 내륙 즉 대륙조선사에서 말하는 조선경기도지역 에서 나타난 대규모기아현상을 단지 가뭄과 홍수가 원인이라고 말할 수 는 없다.그전과 이후에도 그정도의 자연재해는 많았다.결국 이 대규모 기아사태는 당시 대륙조선지방의 중심이었던 세력을 약화시킬려는 국민당 정권의 꼼수로 인해 경제유통망을 차단시키고 강제적 수탈을 통해 식량자원을 고갈시켜 발생시킨 인재라는 추측이 충분히 가능하다라는 얘기이다.

사나운 짐승을 길들이는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굶기는 것이다.맨처음에는 배고프다고 으르렁대고 덤비지만 결국 힘이  빠진  상태가 되면 온순해질 수밖에 없다.

바로 이것을 노린 국민당정권은 그동안 대륙의 기득권 세력이었던 조선량반세력을 약회시키기 위하여 경제를 파탄시키기위해 수탈과 기아를 강요하였다고 나는 생각한다.지금 이런 력사가 있었음에도 불구 하고 단지 중국학자들은  그시대에 경제대공황과 자연재해로 그렇게 되었다고 주장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아니다.그 시대는 우리가 생각한것만큼  저널리즘의 파워가 그리 센시대가 아니다.누가 이런 참상을 본국에 타전해도 별반응이 없던시대였다.지금 기준으로 생각하면 말도 안되하겠지만 실제 그랬다.더군다나 그 시대에는 공급이  넘쳐나서 나타난 현상인데 자연재해로 인해 피해를 얻었다면  얼마든지  수요가 있는 곳으로 곡물이 수출될수 있음에도 이것을 차단했다라는 정황이 드러난다.바로 대규모 기아사태를 유발시켜 조선의 세력을 약화시킨 그 어떤  세력들이 존재했다라는 얘기이다.그리고 1920년 청산리대첩 봉오동전투등 독립무장투쟁이 대성공을 거두어 독립기운이 높아졌음에도 그 이후 무슨 리유로 무장독립이 활성화되기는 커녕 되레 쇠퇴하였는가?

일제의 탄압?독립전투는 중국에서 일어났는데 웬탄압?그리고 청산리는 지금의 만주가 아닌 내몽골에서 일어난 전투인데.바로 중국내 독립세력을  중국력사에서 말하는 봉건군벌을 타도한 국민당의 북벌로 조선독립세력들이 약화되었고 그 독립군의 자양분역할을 하여야  할 섬서성 산서성 호남성 하남성이 국민당이 이런 탄압으로 인해 약화되었다가 1937년 중일전쟁 이후 조선독립세력과 연계되기 전까지 조선독립세력의 가장 큰  적은 다름아닌 국민당과 홍군같은 신중국일파였다는 사실.

이런 력사를 은폐하고 마치 자유중국 국민당과 조선독립세력 임시정부가 친밀했다고 알고 있지만 임시정부와는 친밀했다고 하더라도 무장독립세력 김좌진 홍범도 장군 같은 무장독립세력을 탄압한  세력은 바로 신중국파들이었다.이들이 지금 양안관계 개선이라고 손을 잡는 것도 다 같은 손문을 뿌리로 한 신중국파들이었고 이들이 합작하여 없앤세력이 바로 대륙조선량반에서도 반일세력들이었다.이들을 굶기고 탄압하여서 결국 일본과 서구세력이 만들어놓은 신조선인 한반도로 대리동을 한 리유도 바로 이 조선경기도에서 벌어진 대규모 기아현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사람이 앉아서 굶어 죽느니 다른 어딘가로 리동을 하는게 인류의 특징이다.단순하게 생각해야 한다.왜 대륙조선이  한반도로 리동을 했냐고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친일파들이 그 시대에 천만명이 넘었는데 이들의 권유로 결국 한반도로 리주를 하는게 전혀 이상할게 없다라는 사실이다.굶어죽는것보다는 낫지 않은가?

이런 탄압과 한반도로의 력사리동은 단기간이  아닌 아주 천천히 이루어진다.물을 서서히 데우면 개구리는 그 뜨뜻한  물에 적응을 하고 따뜻하니까 계속 물에 있다가 서서히 죽어간다.우리는 이런 수십년에 걸친 력사와 인종 리동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사회에서 살고 있다.왜? 그만큼 한국사회 조선사회를 제외한  나머지가 합작한 결과가 바로 한국사회를 지배하는 력사이데올로기인 한반도 조선력사이다.이 거대한  력사왜곡을 인식 못하면 이것은 단지 한국사회의 문제가 아니다.인류사의 거대한  흐름중의 하나인 중국력사가 결국 이렇게 왜곡되어 한반도 조선력사로 축소되어 있다면 이것은 인류전체의 문제이다.중국이 조선이었다? 라는 식으로 신문가십거리정도로 대륙조선사가 신문에 나온적이  있었다.물론 최두환씨가 나와서 설명을 했는데 그냥  지나가는헛소리정도로 사람들은 인식하였을 것이다.하지만 이런 웃어넘기는 상황에 이런  거대한 력사와  음모가 숨어 있다라는 것을 안다면 저렇게 웃어 넘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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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정덕영 작성시간 14.03.15 대륙사에서 반도사로 우리에 역사가 축소된 비밀이 신라시대도 아니고 조선 초기 말기시대도 아니고 대조선 망국후 손문에 세력과 조선총독부세력이 꾸민 조작극에 원인이 고향을 안 떠날수 없도록 만든 검은세력이 음모로 정든 대륙에 고향을 버리고 살기위하여 반도땅으로 이주하니 역사조작이 쉽게 되는 군요 그 이주사를 정리를 못하니 후세가들은 그 이주사가 사실인지 아닌지 싸우고 있는 것이 문제로 우리에 대륙에 역사를 복원 못하는 부분이군요 ,,,,
  • 작성자박항인 작성시간 14.03.16 이동 시기에 고향 땅 떠날 때 노래가" 아리랑"입니다. 대대적으로 불려지는 시기와 이동시기가 일치하지요.
  • 작성자이영철 작성시간 14.04.08 글을 읽고 나니 가슴이 먹먹해 오네요. 늘 깨어있도록 만드는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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