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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50년대 서울 풍경...(거의 일본입니다.)

작성자김재만| 작성시간08.06.25| 조회수3643| 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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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김홍필 작성시간08.06.25 황덕표 선생님, 대만(타이완)에서 류구족이 한반도로 '피신'했다고 언급하셨는데... 그 피신의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 답댓글 작성자 황덕표 작성시간08.06.25 그 이유는 임진왜란 이후로 도망친 왜적들이 대만섬을 거치는 도중에 류구를 약탈했기 때문입니다. 류구의 지배층들은 왜적들의 약탈을 피해서 규슈와 쓰시마를 거쳐서 낙동강유역으로 도망갔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이탄님의 글을 검색하면 나옵니다.
  • 작성자 황덕표 작성시간08.06.25 1879년에 한반도의 류구왕조가 사라진 이후로 한반도전체가 일본화되었습니다. 일본열도보다 일본화가 늦었지만 일본열도는 임진왜란이후로 왜적들에게 점령되면서 일본화되었습니다. 일본화되기 전에 일본열도의 문화(규슈,시코쿠,혼슈남부)는 류구의 문화와 유사했습니다.
  • 작성자 김홍필 작성시간08.06.25 그렇다면, 역사기록에서 어느 시기에 한반도와 일본열도를 "류구(琉球)"라고 지칭했을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류구(琉球)는 또한 대류구(大琉球), 소류구(小琉球)로 나뉘었습니다. 지금의 일본 역사연구 자료에서는 대만(타이완)을 '소류구'라 하고, 오키나와 섬들(沖縄諸島)을 '대류구'라고 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 황덕표 작성시간08.06.25 임진왜란 이전에 류구의 영역은 최대 대만섬,하이난,오키나와,규슈,시코구,혼슈남부까지였습니다. 그리고 류구는 임진왜란에 참전하지 않았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 이태수 작성시간08.06.25 동북방의 일본은 왜란에 참전하지 않았고, 서해안의 왜구들만 왜란에 참전했다-라는 글을 본적이 있습니다. 서해안의 왜구들의 위치를 말레이시아 반도, 인도네시아, 태국, 미얀마 서해안으로 비정해봅니다.
  • 작성자 김재만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08.06.25 오키나와의 '류구'제국에서 발견된 기와의 형태가 고려양식이라는 글을 최근에 본적이 있습니다. 이는, 고려의 지배층이 이쪽 섬들로 피신해와서 만든 문명이 아닐까 생각됩니다만... 백성은 원주민, 지배층은 고려계열 이렇게 볼 수도 있다고 봅니다. 이들이 합쳐져서 변방을 얘기하는 '왜'로 분류될 수 도 있구요..
  • 작성자 필유니버최남석 작성시간08.06.25 1879년 한반도의 류구왕조,,, ? 처음 듣습니다 자세하게 알려면 역시 이탄님 글 을 검색 해야 되나요 ? 이부분 만 조금 더 언급 해 주시기 바랍니다 경복궁이 류구왕조 가 쓰던 궁이였는지 그게 궁금하군요
  • 작성자 필유니버최남석 작성시간08.06.25 사진의 풍경이 설지 않습니다 일본어 간판만 빼면요 내가 6,~7새때 보던 풍경이네요 그때가 사람사는 동리 였습니다 지금의 서울은 사이보그 와 정서가 없는 강시 들이 사는 동리로 느껴집니다
  • 답댓글 작성자 이태수 작성시간08.06.25 지금 사람들은 약으로 수명이 연장되었으므로, 산 귀신들이라고 합니다. 현재의 인류사회는 비정상적인 것입니다. 이러한 상태는 오래 유지될 수 없습니다. 이미 조짐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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