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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지창은...중조(차이나조선)의 주 무기가 아닙니다....삼지창을 신성시 하는 민족은 몽골계 북방민족입니다.

작성자홍진영|작성시간08.09.04|조회수1,679 목록 댓글 31

 

흔히 조선 군졸들의 상징은 삼지창으로 나옵니다만...

정작 실록엔 조선의 여타 무기류에 비해 거의 드물답니다.

 

군기창에 환도가 달린 창이 몇 천개인데...삼지창은 몇 십개로 나올 정도랍니다.

 

그런데 왜 근대의 조선군졸들의 상징처럼 됐는지가 의문입니다...?

조선군의 창이 삼지창이였다고 역사를 조작해서 일제가 얻을 이익이 전혀 없으니..일제의 조작은 아닐겁니다.

 

 

저는 이렇게 해석해 봅니다.

삼지창은 몽골과 우크라이나(카프카스) 영국 여신...포세이돈,치우(제우스)..의 상징입니다...

제우스는 번개라 하나...이는 화약무기를 말한 것으로 보이고...

결국, 포세이돈도 북동 아시아 치우씨(제우스)를 서남유럽에 끼워 맞춘 신화라 봅니다.

 

그럼, 또 어느 선생님들께선...거 봐라 몽골은 서역에 있었다 하시겠으나...

몽골이 알타이 서쪽에서...사한국이란 명칭으로 정식 개국한 건 정사입니다 만...이는 탕구트(솔렁거스?)의 지원을받아

금나라와 타타르를 서역으로 몰고 들어가서 그 공훈으로 칭기스칸이란 제후자릴 받았기에 생긴 국가입니다.

 

이후, 탕구트를 갖은 구실을 만들어 이르티쉬로 해서 우루무치 쪽부터 치고 들어와...

결국 원 고향인 몽골(현 내,외 몽골)을  현지인들(고려 서북도인들)의 자발적인 호응으로 거져 회복하는 겁니다.

 

몽골과 그 한참 이전의 그들의 조상인 요나라...더 윗 조상인 배달(바탈)국 치우천황 시절부터 이 삼지창은 유라시아 북부를 누볐을 겁니다.

 

 

 

삼지창은...장창을 든 적의 기마대를 치기에 좋은 무기입니다.

서로 마주보고 달리다...같이 찌를는 서양식 장창전술은...승자도 같이 상처를 입을 확률이 지대합니다 만...

삼지창으로 장창을 걸어 살짝 방향을 틀면...긴 장창의 무게중심은 타켓을 손쉽게 빗나가며...

그 장창의 안으로 파고들어...삼지창을 꺼구로 뒤집으며 반대편 끝으로 적을 가격하면 장창은 무용지물이 됍니다.

 

그러기에 임진란 때 조총과 일본도 외엔 나룻배 위의 전투용 장창이 주 무기였던 왜늠덜이...

명나라군의  당파(짧은 포크식으로 가운데 창도 길이가 같은 삼지창)에 엄청 당했단 말이 나온듯 합니다.

그 이후..이전엔 않 쓰던 삼지창을 조선(중조)의 무기로 애용(?)했단 설도 있습니다.

 

참고로 삼지창은 검에 약합니다...

베기엔 약한 창이라...삼지창에 걸리더라도 방향회전이 빠른 검은 빨리 빠지며...

날이 없는 창 자루를 몸으로 잡고들어가 검으로 가격하면 쉽습니다.

삼지창은...기마군단이 창으로 전투할 때 유리한 무기인 겁니다.

 

 

 

여하지간에...

우리가 조선으로 알고있는 중조의 병사들은...삼지창을 별반 않 썼었는데...

일본과 우리는 공히...삼지창을 조선군졸들의 주 무기로 의식하고 있는 이유가 궁굼해 지는데..저는 이렇게 예상합니다.

 

삼지창은...역사가 깊은 도구로서...

나무(단목,木,東)의 상징물이자...남성 성기...완성수(三,3)의 상징...삼신사상의 상징... 사슴뿔 등의 뿔...불(火)의 상징이랍니다.

 

불교의 불꽃문양도 이와 관련이 많아 보이니...세계의 종교는...이 삼신신앙이 근원일까 봅니다.

세 갈래의 신목(삼지창)으로 시작한 신앙이...세 갈래의 불...세갈래의 선으로 상징되는 삼수...빛...세 갈래의 사슴뿔...

세 갈래의 선으로 표현된 물줄기..등등으로 진화하다...철학 종교적으로 발전됐다 보여 집니다.

 

브리야트등의 몽골 무당들이 신물로 사용하며...우리의 무당들도 신물로 사용하며...영국의 여신도 신물로 사용하며...

우크라이나는...주화의 뒷면을 장식할 정도로 국가 문장으로 쓰며...

몽골은 아예 국기 문양의 맨 위를 장식합니다.

 

몽골을 대표하는 깃발인 톡"의 맨 위도 이 삼지창이 달리고..내몽골(읍루몽골)에선 게르의 상단도 장식합니다.

몽골은 이 삼지창을 "세레"라 합니다...우리의 "세 갈래"와 유사합니다.

물론 식기인 "포크"도 "세례"라 합니다.

 

우린 세 날의 길이가 같은 세레(삼지창)식 농기구는 "호구(돼지우리 풀 겉어내는 도구)"라 했었으니...

아마도..당파는 포크(호구)로서...호라즘(명나라)의 용어요...

 

세레"는...중앙이 긴 구조로...북방족들이 공통으로 사용하고 부르던 신물 같습니다.

말 그데로...세레(몽골)=세갈래,스ㅓ~이(한국)=쓰리(영국)..모두 같은 뜻이자 발음입니다.

三(한자)...3(아라비아 숫자)...모두 같은 배열의 세개의 획이며...1,2도 마찬가지 입니다.

 

또한 "셋"은...삼이라 하는데...중원과 왜인들은 "산"이라 합니다...근데 우리의 산(山)도 세례(삼지창) 모양입니다.

과거 언어가 창조될 당신 단어수가 20여가지 밖엔 없었단 어떤 학자분의 말씀 마따나...

우리나 서양이나 공통으로..높고 나무같이 기둥중심으로 가지를 뻣고...우뚝 솟은 것엔...삼(싼),산,세,셋,쓰리 등의 음이 붙었나 봅니다.

 

 

몽골은 1자 창이 달린 톡(깃발)은...전쟁때 쓰며...삼지창이 달린 창은 행사때 쓴다 하니...

삼지창이 역사가 더 길며...상징성이 더 크단 얘기도 됍니다.

 

 

또한,서양의... 성자 성부 성신~~~...우리의 삼신사상...북방 무당들의 삼신을 상징한 삼지창...모두 통하는 겁니다.

 

 

그리고 이 삼지창과 그를 사용했던 무당들이나 여신들이나 군대들이 서양(카프카스^. .^)이 기원였다면...

구한말 훨 이전부터 양키들은... 옛부터 아시아는 서양의 속지였느니...빗은 서쪽으로 부터~~~니...란 자랑이 늘어졌을게 뻔 한데...

 

그저 이 삼지창는 북동에서 온 악마들의 상징으로만 취급했음은...

이와 닮은 포크도 18세기에 메디치가에서 2지창으로(삼지창은 식기로 사용하면 불경죄?) 쓰기 시작 19세기나 쓰기 시작했음은...

삼지창을 신물로 쓰던 민족은...총령의 동북쪽에 있었단 확증입니다.

 

 

참고로...서역은 19세기 초까지도...화장실 같던 손으로...직접 음식을 드셨답니다.

현 인도 동남아인들 처럼여...

 

몽골여...?

현재의 몽골인들도 시베리아의 말갈부족들이 많이 섞인 분들이라 손으로 들고 칼로 베어 고기를 뜻습니다만...

여타 음식을 드는 젖가락과 칼을 사용했었으며...

과거엔 젖가락과 칼지갑이 달린 셋트와 이를 차고 다니는 부스(챔피온 벨트)는 남성의 필수이며...역사가 긴 필수용품입니다.

 

삼지창(포크)의 일반적인 사용과..여타 식기류들의 사용연대를 보면,,,

서유럽은 동양에 비하면...100여년 전까진...거의 아프리카 원주민들 수준였던 겁니다.

 

이들이 뭔 동양에 문화를 전파했겠습니까...?

카프카스는...문명의 중심이 아닌...동양 문명의 최 서쪽 변방일 뿐이라 사료됩니다.

 

 

또한...

 

왜늠덜을 떨게했던 삼지창을 든 검푸른 제복의 군대들은...

중조(차이나)군대들이 아닌...동국 고려(조선)군대였던 겁니다.

청나라도 이 부류였을 것으로 확신됍니다.

 

 

밑에 ...우리 삼지창에 대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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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창은 당파 밖에 없었던 걸까?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사극에 병사나 포졸들이 항상 들고 있는 무기는 창입니다. 그 중 당파로 알려진 삼지창류의 창은 방송국을 가리지 않고-영화도 마찬가지- 반드시 등장하는 친근한(?)한 무기입니다.

(조선 시대 대표(?) 창 당파)

하지만 이 설정은 대표적인 고증 오류의 하나로 지적 받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당파의 도입시기는 임진왜란 중 명군으로부터입니다. 당파라는 무기 자체의 기원은 불분명하나 당파가 조선에 도입된 계기는 항왜명장인 척계광의 '절강병법'이 도입되면서부터입니다. 절강병법 원앙진에서 당파수는 2인으로 당파를 이용하여 화전을 발사하거나 후미에서 지원하는 임무를 맡았습니다.
물론 조선 전기에도 당파와 유사한 형태의 삼지창 혹은 극이 존재했습니다.

(세종 실록 오례의 군례서례에 등장하는 극)
 
세종실록 오례 군례서례에 나오는 조선 초기 극의 모습입니다. 극은 삼국연의에서 여포의 창인 '방천화극'처럼 일반 창에 좌우로 가지가 있는 창을 뜻합니다. 가지가 하나인 경우도 있고(방천화극) 삼지창과 당파처럼 두 개인 경우도 있습니다.
당파가 이 극에서 유래된 무기인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습니다.
극은 고대 전차전 때부터 이용되었으나 후대로 올수록 실전용이라기 보다는 크기를 대형화시키고 깃발을 달아서 의장용의 성격이 강해졌습니다. 그리고 실록 등을 보면 삼지창과 당파가 따로 언급되는 것으로 봐서 당파 외에 삼지창이 따로 존재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하튼 조선 전기에 병사들이 당파를 들고 쫄래쫄래 뛰어다니는 모습은 '일반적'이라고 보기는 힘든 상황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은 당파가 정식으로 수입된 임진왜란 이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조선 후기에도 당파의 보유량이 극히 미미하다라는 점입니다.
조선 후기 대표적인 군영 중 하나였던 훈련도감의 군기물 중 당파는 고작 28자루 밖에 없는 걸로 나옵니다. 다른 무기와 비교하면 그 차이를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조총은 8,239자루, 환도(環刀) 7,219자루, 활 10,558장(張)을 보유하고 있던 훈련도감에서 당파는 고작 28자루였으니 그 비율이 얼마나 형편 없었던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훈련도감 뿐만 아니라 다른 군영도 사정은 마찬가지였습니다. 또한 조선 후기에 그려진 궁중행사 그림이라던가 각종 행사 그림에서 당파를 든 병사는 찾기 힘들 정도로 당파는 보편적인 무기로 보기 힘든 상황입니다.
그러니 조선군 = 당파라는 개념이 얼마나 허상인 것이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럼 조선 시대 극이나 당파 외에 다른 창은 없었을까? 물론 있었습니다.
하지만 조선 전기 창 유물이나 관련 기록이 극히 드물어서 정확히 어떤 종류의 창이 있었고 그 중 실전용으로 가장 많이 사용된 창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정확히 알려져 있지 못한 상황입니다.

(세종실록 오례의 군례서례에 나오는 창)

그 중 실록에 등장하는 창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창의 모습과 거의 동일합니다

(국조오례의에 나오는 창)
이 외에도 이 외에도 국조오례의에 나오는 창 그림을 통해 조선 전기 창의 모습을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작년 동래성 발굴 현장에서 임진왜란 시기의 조선군 창으로 추정되는 유물이 발견되어 조선 전기 창 유물에 대한 관심이 증폭된 적이 있었습니다.

(동래성에서 발굴된 창 유물)

창자루의 길이가 3m 정도의 창으로 조선 전기 창 규격과 거의 일치하고 있으며 원형이 거의 그대로 발굴되어 깜짝 놀라게 한 유물입니다.
일반적으로 조선 전기 창에 대한 선입관 중 하나가 창이 매우 짧았다라는 것인데 이러한 견해는 임진왜란 직전 조선을 방문한 일본 사신 귤강광의 발언 때문에 더욱 굳어진 것인데... 사실 당시 일본의 창이 너무 길었던 탓(약 6m정도)도 있었다고 볼 수 있을 겁니다.

이 외에도 기병용 기창(騎槍)이 있었으며 조선 후기로 넘어오면 절강병법의 도입으로 인해 장창, 낭선, 죽장창, 기창(旗槍), 삼지창, 요구창, 왜장창 등 다양한 창이 존재했습니다.
하지만 조선 후기 조선군은 조총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져 상대적으로 창의 중요성이 덜하게 되었습니다.

(조선 후기 기창(旗槍)
 
 
 
밑엔...우크라이나나..티벳등지의 삼지창 문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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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내몽골 시러무런 초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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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r articleno = "6041909";

 

 

내몽골의 초원에는 여름 한 철 관광객들을 위한 크고 작은 리조트들이 세워져 있다.

버스에서 내린 관광객들에게 리조트 직원들이 전통적인 몽골식 인사로 환영한다.

흰(혹은 청색)  스카프를 목에 들러주고 술을 한 잔 권한다.

손님은 엄지와 약지를 맞대어 술잔에 살짝 담근 다음. 그 술방울을  땅에, 하늘에, 튀기고 그리고 이마에 살짝 바른다.

우리네의 고시래의 풍습과 비슷한 의미일 것이다.

그리고 그 술잔을 비워야한다.

 내몽골은 중국 내의 자치구로 몽골족 인구가 40%정도 되지만

다들 중국어를 쓰고 세로로 내려쓰는 몽골전통 문자는 간판에만 남아있는 형편이다.

리조트 식당과 야외공연장에서 공연을 할 때도 몽골전통어로 부르는 노래는 두 세곡 뿐이다. 

 

 2인 1실의 이 겔들은 현대식으로 개조된것으로 내부에 침대 두개와 텔리비전과 화장실과 샤워기가 갖춰져 있다.

하지만 겔 안에서 텔리비전을 보는 관광객은 거의 없다.

초원에 와서 뭐하러 텔리비전을 보겠는가.

밤하늘에 쏟아져 내리는 별을 보기도 바쁜데. 

 

 

 

리조트 직원인 몽골 젊은이

 

 

 노을이 지기 시작했다

 다시 아침이다, 초원에는 많은 메뚜기들이 있다. 메뚜기 날개소리가 늘 귀에서 울린다.

 원래는 그 100배쯤 있던 메뚜기들을 손님들을 위해 약을 뿌려 많이 없앴다고 한다.

 

 

 

 

 

전통 겔의 내부구조는 원래 저렇게 생겼었다.

 

초원을 산책하면 끝없이 갈 것같았다. 하지만 걸어가다보면 철조망 울타리가 세워져 있어 나갈 수 없다.

각자 자기 소유의 땅을 구분해둔 것이다. 초원에서도 길을 따라가야만 한다.

 

 

 

 

 삼지창 깃대와 오색의 손수건 장식은 티벳사진들에서 본 것과 유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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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지명선 | 작성시간 08.09.05 몽골은 사업차 갔다오셨나요. 내몽골도 몽골분위기가 나는데, 모두 중국말만 씁니다. 몽골은 몽골말을 쓰던가요?
  • 답댓글 작성자홍진영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8.09.05 돈이 전무하니...사업을 쪼그만 준비할 사전답사 겸...여행입니다...네.외몽골은 러시아 알파벳을 빌려...철저히 몽골어만 쓰며...위그루문자도 십여년 전부터 가르칩니다...사실 내몽골인들도 몽골어를 애용하는 것으로 보입니다...내몽골방송이 더 몽골전통홍보에 난리더군여,,,문자는 한자와 위그루문자(옛 몽골어)를 병행하나...내몽골도 말은 철저히 몽골어를 쓰며...오히려 외몽골 말보다...우리말과 더 어감이 통합니다...현 지나족 정부는...이를 죽일까 달랠까 고심중일 겁니다...현 한국인들의 역할이 중요한 시기라 하겠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홍진영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8.09.05 현 외몽골인들은...원래 내몽골이 진짜 몽골인들이며...지나족들이 자꾸 쑤시고 들어 오면서 혈통과 문화가 섞여 내몽골인들이 변질된다고 걱정들입니다...사실 외몽골도 위정자들의 비리로...지나인들이 작전적인 투자를 엄청나게 하여서...지나에게 몽골이 넘어가니...차라리 미국이나 한국에게 줘라"는...농담까지 있습니다.
  • 작성자지명선 | 작성시간 08.09.05 잘 알겠읍니다. 몽골은 한국같습니다. 왠지 동질감을 느끼는 것은 왜 일까요?
  • 답댓글 작성자홍진영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8.09.05 자기들의 황제를...한"이라 하니...몽골어로 "왕국"은...한오르스...오르스"를 "몽골(몽고리아)"의 "골"로 대체하면...한골(한고리아=한고려)..많이 비슷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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