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노족이란, BC 3세기 말에서 AD 1세기 말까지 중국의 북방에서 활동한 기마유목민족. 인종은 투르크계·몽골계·아리아계 등 여러 설이 있으나 투르크 계통이라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 <흉노열전>에서는 그 조상이 하후씨(夏后氏)의 후손인 순유(淳維)라고 하였다. 언어는 알타이어족에 속한다. 이들은 시대에 따라 중국의 사서(史書)에서 각기 다른 이름으로 불려졌는데 은(殷)나라와 주(周)나라 때에는 귀방(鬼方)·곤이(昆夷) 등으로, 주나라 말기에는 험윤, 춘추시대에는 융(戎)·적(狄)이라 하였으며 전국시대에 비로소 흉노 또는 호(胡)라 하였다. 흉노족들은 본디 현재의 간쑤성[甘肅省(감숙성)]·산시성[陝西省(섬서성)]·산시성[山西省(산서성)] 등에 거주하다가 점점 북쪽으로 옮겨 살게 되었다. 진(秦)나라 말기에 흉노의 추장 두만(頭曼)이 오르도스지방을 점령하였고 그 아들 묵돌[冒頓(모돈)]이 아버지를 살해하고 스스로 선우(單于;북아시아 유목국가의 군주를 可汗이라고 부르기 이전에 쓴 칭호)가 되어 월지(月氏)·동호(東胡) 등을 복속시키고 한(漢)나라의 북변을 공격하였다. 고조(高祖)는 이들을 공격하였으나 따퉁[大同(대동)] 부근에서 이들에 포위된 뒤 간신히 탈출하여 그 뒤 한나라 왕실의 딸을 흉노 추장에게 시집보내고 매년 많은 공물을 보낼 것을 약속하여 BC 198년 화의를 맺었다. 그 뒤 흉노는 오손(烏孫)이나 동(東)투르기스탄의 오아시스 여러 나라를 지배, 흉노의 지배권은 동쪽으로 러허강[熱河(열하)]에서 동투르기스탄, 북쪽은 예니세이강 상류, 남쪽은 오르도스까지 이르게 되었다. 한나라 무제(武帝) 때는 흉노를 공격하여 외몽골 방면으로 축출하면서 그들의 점령지를 한의 세력판도에 넣기 시작하였고, 이때 흉노족 사이의 분열로 5사람의 선우가 난립하다가 결국 후한(後漢) 초기인 48년 남(南)흉노와 북(北)흉노로 분열하게 되었다. 남흉노는 후한에 투항하여 중국 내부에 살면서 중국의 서북 방위를 담당하다가 진(晉)나라 말기 반란을 일으켜 진을 멸망시킨 5호16국 가운데 하나로 전조(前趙)·북량(北凉)·하(夏) 등이 흉노가 세운 나라들이다. 북흉노는 지금의 러시아와 몽골의 국경지대에 거주하다가 선비족(鮮卑族)의 공격을 받아 선우가 살해되고 후한과 남흉노 연합군의 공격으로 본거지를 상실하였으며 잔당들은 선비족의 국가 또는 유연(柔然) 등에 복속하였다. 흉노의 여러 부족의 족장들은 1년에 3차례씩 선우의 본거지에 모여 무속적인 제사를 지내고 동시에 부족의 일을 의논하였다. 유목·수렵을 주생업으로 하면서 말·양을 방목하였으며 하영지(夏營地)와 동영지(冬營地)를 오가며 천막식 원형가옥에 거주하였다. 스키타이·시베리아계 문화 이외에 한나라 문화, 이란 문화를 다량 흡수한 것으로 보여진다. 한편 유럽에서 게르만민족의 대이동을 초래한 훈(Huns)족이 바로 흉노족이라는 설이 있는데 흉노 지배층의 서방 이동과 훈족의 서방 이동이 완전히 무관한 것은 아니므로, 훈족의 이름이 흉노에서 유래하였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로 여겨지고 있다. <야후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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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족이란, 2∼3세기경 산시성[山西省(산서성)] 위서현[楡社縣(유사현)] 지방에 입거(入居)하여 4세기 5호16국(五胡十六國) 시대에 중국을 휩쓴 흉노족의 한 종족. 당시 이 지방을 갈실 혹은 갈이라고 하였으므로 이런 이름이 나왔다고 한다. 5호16국의 하나인 후조(後趙)를 세운 흉노 석씨(石氏)는 이 종족이다. 갈이란 당시의 중국인이 멸시하는 뜻으로 사용해서 음역한 것이라 해석된다. 수(隋)나라와 당(唐)나라 때는 갈호·융갈 등의 명칭이 북방 유목민족 전반에 대한 통칭으로 사용되었다.<야후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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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족이란, 칭하이[靑海(청해)]를 중심으로 중국 서북 변경에 거주하는 티베트계의 유목민. 한대(漢代)에 정치적으로 통합되어 서강(西羌)이라 불리었고, 그후 강족의 요씨(姚氏)는 5호 16국(五胡十六國)의 후진(後秦)을 세우기도 했다. 남북조 시대에는 탕창강[宕昌羌(탕창강)]·등지강(鄧至羌)이 간쑤[甘肅(감숙성)] 남부에 웅거하였다. 수(隋)·당(唐) 시대에는 그 일족인 탕구트[黨項(당항)]가 강력한 존재가 되기도 하였으나, 그 후 그 일부는 토번(吐蕃)의 지배하에 들어갔고, 또 일부는 닝샤[寧夏(영하)] 지방으로 옮겨 서하(西夏)를 세우기도 했다. 현재는 탕꾸터[唐古特(당고특)] 또는 장인(藏人)·번인(蕃人) 등으로 불리며, 티베트 민족의 한 구성 종족으로 본다.<야후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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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족이란, 고대중국 간쑤성[甘肅省(감숙성)] 남부로부터 산시성[陝西省(섬서성)] 남부에 걸쳐(중심은 武都·洛陽) 여러 부족으로 나누어져 분포했던 티베트계의 반농반목(半農半牧)의 소수민족. 오호(五胡) 중의 하나였다. BC 111년에 전한(前漢)의 무제(武帝)가 저족을 공격해서 무도군(武都郡)을 설치한 이후 중국의 군현(郡縣)에 포함되어 지배되었으나, 그 굴욕적이고도 차별적인 취급에 대하여 자주 반항함으로써 민족 자립의 움직임을 나타냈다. AD 3세기가 되자 제씨(齊氏)·양씨(楊氏)·부씨 등의 유력씨족이 나타났고, 296년에는 제만년(齊萬年)이 진왕조(晉王朝)로부터 억압을 받아온 관중(關中)지방의 소수민족을 규합하여 반란을 일으키고 스스로 황제라 칭하였으나 3년 후에 진압되었다. 4세기 초 오호십육국(五胡十六國)시대로 돌입하자 소수민족의 자립운동이 활성화되면서 저족도 351년에는 부건이 장안(長安)에서 전진(前秦)을 건국했고, 조카인 부견은 376년에 화베이[華北(화북)]를 한때나마 통일했다. 또 서역 원정에서 돌아오던 길에 양주(凉州)에 머무르면서 386년에 후량(後凉)을 건국한 여광(呂光)도 저족 출신이었다.<야후백과>
저족이란, 고대중국 간쑤성[甘肅省(감숙성)] 남부로부터 산시성[陝西省(섬서성)] 남부에 걸쳐(중심은 武都·洛陽) 여러 부족으로 나누어져 분포했던 티베트계의 반농반목(半農半牧)의 소수민족. 오호(五胡) 중의 하나였다. BC 111년에 전한(前漢)의 무제(武帝)가 저족을 공격해서 무도군(武都郡)을 설치한 이후 중국의 군현(郡縣)에 포함되어 지배되었으나, 그 굴욕적이고도 차별적인 취급에 대하여 자주 반항함으로써 민족 자립의 움직임을 나타냈다. AD 3세기가 되자 제씨(齊氏)·양씨(楊氏)·부씨 등의 유력씨족이 나타났고, 296년에는 제만년(齊萬年)이 진왕조(晉王朝)로부터 억압을 받아온 관중(關中)지방의 소수민족을 규합하여 반란을 일으키고 스스로 황제라 칭하였으나 3년 후에 진압되었다. 4세기 초 오호십육국(五胡十六國)시대로 돌입하자 소수민족의 자립운동이 활성화되면서 저족도 351년에는 부건이 장안(長安)에서 전진(前秦)을 건국했고, 조카인 부견은 376년에 화베이[華北(화북)]를 한때나마 통일했다. 또 서역 원정에서 돌아오던 길에 양주(凉州)에 머무르면서 386년에 후량(後凉)을 건국한 여광(呂光)도 저족 출신이었다.<야후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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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족이란, 고대 북아시아의 유목민족. 인종이나 언어계통에 대해 상세한 것은 알 수 없다. BC 3세기 초에 동호(東胡)를 구성하는 한 부족으로서 대싱안링[大興安嶺(대흥안령)] 일대에 분포하고 있었다. BC 206년 무렵 동호가 흉노(匈奴)의 모둔단우(冒頓單于)에게 격멸되자 흉노에게 복속되어 서서히 남하, 시라무룬강(遼河 上流) 유역에서 수렵·유목생활을 하면서 때로는 흉노를 따라 한(漢)나라의 북동쪽 변방을 침입하기도 했다. 48년 흉노가 남북으로 분열된 뒤, 자립하기 시작하여 54년에는 추장인 어구분(於仇賁) 등이 후한(後漢)의 도읍 뤄양[洛陽(낙양)]으로 가 조공을 바쳤고 광무제(光武帝)는 그를 왕에 봉했다. 2세기 중엽에 나타난 대추장 단석괴(檀石槐)는 북흉노의 잔류 부족을 비롯하여 몽골평원의 여러 유목민족을 귀속시켰고 동쪽으로 랴오둥[遼東(요동)], 서쪽으로는 준가얼분지[準喝爾盆地(준갈이분지)]에 이르는 대세력을 구축하여 중국의 북변(北邊)에서부터 서변(西邊)으로 침공, 후한의 조정을 괴롭혔다. 단석괴가 죽은 뒤, 각 부족의 대인(추장)의 자리가 선거추대제에서 세습제로 바뀜에 따라 통일세력은 와해되었다. 3세기 초에는 보도근(步度根)·가비능(軻比能) 등의 대인이 나오기는 했지만 통일은 이루지 못했고 3세기 중엽부터 모용(慕容)·우문(宇文)·단(段)·걸복(乞伏)·탁발(托跋)·독발(禿髮) 등의 부족이 유력하게 되었다. 유력부족은 기마군단의 힘을 배경으로 한족(漢族) 지배층과의 결속을 다져가면서 5호16국시대(五胡十六國時代)의 화베이[華北(화북)]에서 격전을 벌였다. 모용씨는 전연(前燕)·후연(後燕)·서연(西燕)·남연(南燕)·토곡혼(吐谷渾), 걸복씨는 서진(西秦), 탁발씨는 대국(代國;北魏의 전신), 독발씨는 남량(南凉)을 세웠다. 그 뒤의 북조(北朝)의 왕조(北魏·東魏·西魏·北齊·北周) 및 수(隋)·당(唐)나라 왕조의 종실(宗室)도 조상은 선비계이다. 1980년 여름 대싱안링 북부 원생림의 한모퉁이에서 수렵·유목단계에 있던 선비 탁발부족의 제사 혼적이 있는 동굴이 발견되었다. 동굴 안의 벽에는 443년에 새겨진 명문(銘文)이 있는데 이것에 따르면, 일찍이 탁발부족이 이 땅에 살았다는 것, 동굴 안의 제단에서 천지와 조상에 제사를 올렸다는 것, 당시 선비의 추장을 가한(可汗)이라 하였던 것 등을 알 수 있다.<야후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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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의 5가지 종족들이 16개의 국가를 만들어 자웅을 겨루던 4-5세기 중국 북부지역을 '오호십육국'이라는 별칭으로 역사서에 기록됩니다. 야후백과에서는 "4세기부터 5세기 초에 걸쳐 중국 북부에서 흥망한 국가군(國家群) 또는 그 시대. 5호란 흉노(匈奴), 갈(흉노의 별종)·저(티베트계)·강(羌;티베트계)·선비(鮮卑;투르크계 설이 강함)를 가리키는데, 이들이 중국 북부에 16개의 왕조를 세웠으므로 5호 16국이라 한다. 16국 가운데에는 한인(漢人)의 나라도 포함된다."로 전하고 있습니다.
흉노족의 명칭은 시대에 따라서, 7~8가지로 불렸고, 전국시대에 비로소 '호'라는 명칭이 붙여졌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5호라는 이름을 통해서 5개의 흉노부족으로 예상해 볼 수 있습니다. 문헌에서는 흉노, 갈, 강, 저, 선비족이 5호에 속하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지만, 흉노의 명칭이 '호'가 되었다라는 것을 통해서, 갈, 강, 저, 선비족이 모두 흉노의 일파이었던 것으로 해석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내용을, 훈족의 명칭과 연관시켜 보면, 흉노족의 이름에서 발생한 '훈족'이라는 명칭에는 갈, 강, 저, 선비족들의 일파가 모두 포함될 수 있다는 가정이 생깁니다. 또한, '호'라는 부분에 촛점을 맞춰보면, 호를 일종의 '호족'의 개념으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5호란, 5개의 지방 호족세력으로 해석해 볼 수 있다고 봅니다. 결론적으로, 어떤 이유에서인지 지방의 호족세력들이 여러 개의 국가들을 만들어 세력다툼을 벌이던 시절이었다라고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지방이라는 것입니다. 중국의 중심에서도 북쪽에 위치하게 됩니다. 이 당시 우리가 알고 있는 우리의 역사에는 고구려라는 제국이 위치해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헝가리에서는 훈족을 Khan으로 간주하고, Hun족과 유사한 사람들이 대한민국의 사람들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훈족의 유물에서는 고대 가야유민들의 전형적 두상인, 편두형태의 해골이 나오기도 하였습니다. 한국의 역사학자들은 이런 내용들을 토대로, 훈족은 고대 가야 또는 신라계일 것이다라는 조심스런 가정을 하였었습니다.
그러나, 고구려라는 테두리로 보았을 때, 한때, 신라도 고구려연방에 속하는 속국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런 개념에서 고대 중국의 북부를 좌지우지 하였던, 5호의 세력도 일종의 고구려연방에 속하는 Hun족의 일파들이 아니었을까 하는 조심스런 생각을 해 봅니다.
어떤 분들은 신라계가 선비족일 것으로 예상을 하십니다. 윗글을 통해서 보면, 선비족도 역시 흉노족의 일파로, 고대 훈족의 범위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요약, 북방 고구려의 역사와 5호 16국의 역사를 통해서 숨겨진 한국의 고대사를 찾아 볼 수 있다는 확신에 다가서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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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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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승호 작성시간 08.09.07 송동건교수의 저서중에 고구려사 역사 복원(제목이 정확한지 모르겠네요)이란 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 흉노를 고구려라고 단정하시던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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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김재만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08.09.07 윗글을 통해서 보더라도 고구려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당시 북쪽이 어지러웠던 것은 4~5세기 최대 국력신장을 보이던, 백제가 남쪽에 있었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중조를 빼앗겨서 왼쪽으로 세력이 밀리는 겁니다. 이것이 훈족의 대이동이고, 흑해윗쪽살던 게르만을 더 서쪽으로 밀어버리는, 고대, 민족의 연쇄 대이동이 됩니다. 이 시기를 남북조라고도 얘기하지 않는지요?... 5세기 장수왕 시대에는 다시 남진정책으로 중조를 탈환하는 것이 아닌지?... 이후 6세기 이후는 신라의 전성시대로, 신라천하가 되는 시나리오가 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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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김재만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08.09.07 갈,강,저,선비 이런 용어들이 백제 중조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는, 고구려세력을 북쪽의 오랑캐로 낮추어서 부를 수 있는 정치적 여건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