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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도(대도)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 4 - 장작처럼 타는 검은 돌이 문명의 수수께끼를 풀어 주었다.

작성자한헌석|작성시간08.10.01|조회수582 목록 댓글 33

P284 '카타이 지방 전역에 걸친 산지의 광맥에서 캐낸 검은 돌의 일종이 장작처럼 탄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 돌은 나무보다도 더 잘 탄다. 더구나 여러분에게 말하건대 저녁에 불을 잘 붙여놓으면 이 불은 밤새도록 계속되고 더러는 아침까지 가기도 한다. 장작과 같은 나무도 충분히 있지만, 카타이 전역에서는 이 돌들이 태워지고 있다. 그들이 이 돌을 때는 이유는 비용이 적게 들고 나무를 많이 절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장작처럼 잘 타는, 산지의 광맥에서 캐낸 검은 돌은 석탄이다. 문명의 대 수수께끼가 이 구절을 보는 순간 풀어졌다. 앞에서 서경(현 쿠차-고조선의 평양이고, 주나라의 호경이고, 고구려의 평양이고, 신라와 고려의 서경, 조선의 평양)의 호수가 70만호가 된다는 집사의 이야기를 인용한 적이 있는데, 평균 5인 가족으로 본다면, 좀 들쑥날쑥도 하겠지만 350만명의 인구가 한 지역에서 반만년을 살아왔다는 것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 식량과 땔감만 계산한다고 해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식량은 다른 지역에서 운송해 올 수 있다고 하겠지만, 장작을 1년 내내 공급한다면, 타지방에서의 공급은 만만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인근 100리의 산은 100년 안에 동이 나서 벌거숭이가 될 수밖에 없다. 바로 사막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 도시가 즉 황제의 수도가 100년 이상은 존재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 존재를 가능하게 한 것이 바로 이 검은 돌 즉 석탄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댓가로  황제의 수도는 항상 검은 석탄가루와 그 재로 인해 항상 검은 먼지로 가득 찰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가 연행록에서 늘 보게 되는 연경(북경, 한양-트루판)의 특징으로 등장하는 검은 먼지가 다름아닌 이 석탄가루인 것이다. 너무나 꼼꼼하고 정밀하게 연구하시고 정확한 자료의 전거를 늘 올려 주시는, 그 에너지와 혜안과 성실성에 늘 감동할 수밖에 없는 천상희 선생님의 '청나라의  북경은 어디에 있었나'/다음까페 ;대륙조선사연구회, 천상희칼럼 5호에서 인용한다.

 

'압록강을 건넌 뒤부터 비로소 서남쪽으로 향해 가고, 구련성을 지나가서는 서쪽 혹은 북쪽으로 갔다. 요동에서 심양까지는 축방(丑方)으로, 심양에서는 술방(戌方)으로, 고가자(孤家子) 이후부터는 모두 미방(未方)으로 향해 갔다.

압록강을 건너서부터 북경까지의 땅은 모두 모래였다. 요동 벌판을 들어선 뒤부터 오가는 거마(車馬)가 더욱 많고 모래가 먼지처럼 가늘어, 바람이 살짝 불어도 곧 휘날려 흡사 연기나 안개 같고, 이따금 눈앞에 있는 사람을 분별하지 못할 때도 있다. 그런데 산해관 안은 더욱 심하여, 수레바퀴가 닿는 곳에는 마치 잿가루를 키로 부친 듯 자욱하고, 사람의 의복ㆍ모자ㆍ얼굴에 붙으면 털어도 떨어지지 않으며, 입안에서 와삭와삭 소리가 났다. 그래서 비록 열 벌 바른 상자일지라도 모두 스며든다. 또 시장 점포나 인가에 둔 기물과 수레 안의 자리는 닭꼬리비[鷄尾箒]로 끊임없이 털어 버려야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잠깐 사이에 한 치 남짓 쌓인다. 도성의 큰 거리는 매양 물을 뿌려 적셔 주고 있다.

---(계산기정(薊山紀程) 제5권 부록(附錄) 도리(道里))

 

영평부(永平府)-서쪽으로 연경이 500리 떨어져 있다.(중략)

사하역(沙河驛)-이곳에서는 길이 모래돌 가운데로 나 있는데 모래가 말 배까지 묻힌다. 만약에 바람을 만나게 되면 먼지가 하늘을 덮어 사람은 길을 가지 못한다. 연(燕) 땅의 길 중에서 가장 괴로운 곳인데, 모래 길이 수십 리나 된다. 역 마을에는 역시 무너진 성이 있다.

 

찬바람 눈을 불고 들판 길 평평한데 / 寒風吹雪野途平

바다 넓어 하늘 같고 해는 멀리에 가로놓여 있다 / 海闊如天日遠橫

말을 묻어 버리는 황사 삼십 리 / 沒馬黃沙三十里

넓은 수레바퀴 느려서 소리 없이 구른다 / 廣輪遲轉不成聲

---(계산기정(薊山紀程) 제2권)

 

압록강을 건너서 북경에 이르기까지는 땅이 모두 모래이고, 요동 들에 들어서면서부터는 왕래하는 거마가 더욱 많고 모래는 더욱 미세해서 바람만 불면 휘날려서 마치 연기나 안개가 낀 것과 같다. 관내(關內)로 들어가면서 더욱 심해서 비록 바람이 없는 날이라도 수레바퀴, 말발굽이 지나간 뒤에 일어나는 것이 마치 횟가루가 날듯 해서 사람의 옷과 모자에 붙는다. 교자(轎子) 안에서는 사(紗)를 내려서 막지만 워낙 미세하기 때문에 새어 들어오기가 더욱 쉬워서 잠깐 사이에도 언덕처럼 쌓인다.

---(경자연행잡지(庚子燕行雜識)

 

"북경(北京)은 아무리 추워도 땅이 몇 치[寸] 밖에 얼지 않는다. 하루 종일 큰 눈이 와도 밤이 지나고 나면 눈 덩어리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남쪽 지방 기후와 비슷하다.

인구가 조밀하여 내뿜는 입김이 따뜻한 기운을 퍼뜨려서 그런 것이 아닐까?(중략)

무릇 이 지방 토질은 요동에서 북경까지가 모두 곱고 부드러우면서도 찰져서 해동(解凍) 때나 장마 때는 바퀴에 붙어 지나가기 어렵고, 또 집 벽에다 바르면 빗물이 스며들 걱정이 없다. 그런데 곱고 부드러운 이 흙은 다 모래여서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마치 연무(煙霧)처럼 먼지가 인다. 그래서 아무리 큰 눈이 쏟아져도 이 먼지와 뒤범벅이 되어 버리면 이내 눈발이 보이지 않을 지경이 되는데 그중에도 사하역(沙河驛)이 제일 심하다. 산해관 안쪽은 왕래하는 거마(車馬)가 더욱 많아서 밤낮으로 먼지를 일으키어 아주 바람이 없는 때라도 꼭 잿가루가 날리는 것같이 분분하다. 이것이 사람의 의복이나 모자에 붙으면 잠깐 사이에 모습을 변화시켜서 동행자끼리도 언뜻 보면 누가 누군지 분간하지 못할 지경이 된다. 머리카락이나 수염에 붙으면 닦아도 떨어지지 않고, 입속으로 들어간 것을 씹으면 사각사각 소리가 나기도 한다. 밤에 자고 아침에 일어나 보면, 이 먼지가 종이 창문을 뚫고 들어와 이불 위에 쌓여 있다. 심지어는 겹겹으로 된 장롱이나, 두세 겹씩 봉해 놓은 병 속에까지 뚫고 들어가니 참으로 괴상한 일이다. 저자 가게나 인가에 벌여 놓은 기물들은 닭털로 된 털이개를 가지고 끊임없이 털어 내는데, 잠시라도 멈추면 또다시 쌓이곤 한다. 바람이 불면 길 가는 사람은 눈을 뜨지 못한다. 그중에서도 북경이 가장 심한데, 이곳은 석탄(石炭) 앙금으로 된 지방으로서 가루가 쌓여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옛날 문자의 ‘치진(緇塵 세상 풍진 속에 분주하여 의복이 더럽혀짐)’이란 것이 곧 이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연원직지(燕轅直指) 제6권)

 

"북경의 토질은 검고 부푼 데다 수레와 말이 갈고 다니는 통에, 바람이 불 때면 먼지가 하늘을 덮어 바로 앞에 있는 사람마저 보이지 않는다. 시장의 점포들이 모두 닭털 총채를 들고 손 놀릴 새 없이 물건에 쌓인 먼지를 턴다.

몹시 추운 계절에도 땅이 한 치 남짓 얼 뿐, 하루 종일 눈이 와도 밤만 지나면 흰 점 하나 없어, 남방의 기후와 같아진다. 아마도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살면서 불때고 숨쉬는 훈훈한 기운이 따뜻한 기운을 펼치는 것인가 보다."

---(담헌서(湛軒書) 외집 8권(外集 卷八) 연기(燕記) 경성기략(京城記略) '

 

- 계산기정에서 '그런데 산해관 안은 더욱 심하여, 수레바퀴가 닿는 곳에는 마치 잿가루를 키로 부친듯 자욱하여....'

연원직지에서 '그 중에서도 북경이 가장 심한데, 이곳은 석탄 앙금으로 된 지방으로서 가루가 쌓여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담헌서에서 '북경의 토질은 검고 부푼 데다 수레와 말이 갈고 다니는 통에....'등의 어구는 마르코 폴로가 묘사하는 카타이지방의 '불에 타는 검은 돌'(석탄 )과 그 재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이 청나라의 북경이라는 것은 조작이고 트루판과 우루무치 사이의 종남산(지금도 그 쪽 천산의 주산 이름이 총난산[宗南山] 혹은 바그달산[박달산, 백두산, 배달산]그 주변의 산을 난산[南山]이라고 부른다.)을 사이에 두고 남북 양성을 가지고 있는 조선의 한양을 연경(트루판 주변지역이 옛 연나라 땅이니, 연경이라고 불렀을 것이다.) 혹은 북경이라고 부른 것이 확실하다. - 지금도 우름치 혹은 오름치라고 부르고 한자로는 오로목재(烏魯木齋)로 표기한다. 두 지명이 다 앞부분은 우리말 훈 뒷부분은 한자 음으로 그것도 훈민정음식의 발음으로 되어 있다. (오름峙, 오르목岾[고개 재]) 오르목이 있으면, 그 아래 들판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바로 그 아래 드ㄹ판(트루판)이 있다. 여기서 3만리도 더 떨어져 있는 거기에 어떻게 선명하게도 훈민정음의 발음으로 지명과 산명이 박혀 있을까? 그 청나라 북경은 조선말 훈민정음을 썼단 말인가? 아니다.  현 북경이 사막 지대란 말인가? 아니다. 그곳(소위 청나라 북경)이 바로 조선의 센타요, 천하의 센타이기 때문이다. 바로 세종대황제께서 천하의 온 제후국들의 語音(나랏말씀)이 중국(중원, 중앙의 황제직할지)과 달라서 그 뜻을 不相流通하매, 훈민정음을 창제 반포하셔서 쉽게 익혀 날마다 편하게 쓰게 하신 것이다. 그래서 들판과 오르목재와 종남산과 박달산과 남산의 이름이 아직도 지도에 박혀 있는 것이다. 감숙성 이동 지역에서 중앙조정으로 가는 사신들의 연행록에는, 옥문관을 나서서 소륵하(압록강이라고 조작 - 아니면, 원래 압록강이라고 불렀는지는 알 수 없다)를 건너면, 바로 고비사막(옥문관과 트루판 사이의 사막)으로 들어가게 되니, 반드시 사막이 등장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고비사막을 서북방으로 건너는 중간기점이 하미다. (계산기정에서는 영평부로 나와 있다.) 이 하미에서 서쪽 트루판 방향으로 60킬로정도 가면, 지금은 沙湖(지금은 하미분지 가운데이지만, 그 명칭으로 보아서는 옛날에는 호수였던 듯)라는 지명이 있다. 계산기정에서 이야기하는 沙河일 수밖에 없다. 거기에 역참이 있어서 사하역이라고 불렀을 것이다.

 

연원직지에서 '북경(北京)은 아무리 추워도 땅이 몇 치[寸] 밖에 얼지 않는다. 하루 종일 큰 눈이 와도 밤이 지나고 나면 눈 덩어리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남쪽 지방 기후와 비슷하다.'고 나와 있다.

담헌서에서 '몹시 추운 계절에도 땅이 한 치 남짓 얼 뿐, 하루 종일 눈이 와도 밤만 지나면 흰 점 하나 없어, 남방의 기후와 같아진다. 아마도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살면서 불때고 숨쉬는 훈훈한 기운이 따뜻한 기운을 펼치는 것인가 보다.'고 나와 있다.

이 글들을 보면, 북경은 한겨울에도 사막지대의 영향을 받아 남방의 기후와 비슷하다는 묘사를 하고 있다. 이 묘사들이 현재의 북경의 기후라는 말인가? 또한 이 글들은 남방에 대해서 북방의 기후가 남방의 기후와 같아진다고 말하고 있지, 서방의 기후가 남방의 기후와 같아진다고 말하고 있지 않다. 이 연행록의 사신들이 현장이나 마르코 폴로같이 태산북두의 고산을 넘어 서방으로 가지도 않았다. 현재의 중앙아시아의 사막을 건너간 것은 결코 아니다. 고비사막(옥문관과 트루판 사이의 사막)을 건너간 것일 뿐이다.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도 뜨거운 '고비사막의 아득한 大河'를 건너 가서 정조를 만나고 돌아온 영남(경상도- 경주[돈황지역] 상주[장액과 란주사이의 지역으로 추정됨] 방면의 지방, 현재의 감숙성, 마르코 폴로의 탕구트 지방) 사림의 연행록일 뿐이다. 수백종의 연행록이 대부분 이 '뜨거운 고비사막의 아득한 大河'를 건너 간 기록이다. 연행록을 읽을 때 명심해야 할 포인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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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답댓글 작성자김재만 | 작성시간 08.10.01 고려시대 거란의 고려침입, 조선시대, 청의 조선 침입이, 축소된 역사라면, 확대해석으로 해당의 위치를 가늠해 볼 수 있지만, 그 것자체가 조작이라면, 역사의 해석은 다른 방향으로 접근 해야 한다는 것이죠...
  • 작성자김재만 | 작성시간 08.10.01 제가 생각하는 사서와 유물유적의 접근은 선생님의 생각과 다릅니다. 사서는 인간이 붓으로 쓴 기록물이지만, 유적은 도자기 또는 공예품등으로, 그들을 상징하는 문양과 문화가 직접적으로 반영되며, 그들의 무덤에서 출토된다는 면에서 당시 해당지역에 살았던 사람들을 나타내준다는 면에서, 더욱 신빙성을 갖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붓으로 쓸 수 있는 것은 조작이 쉽습니다. 그러나, 예술품들은 쉽게 따라서 조작하기 어렵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한헌석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8.10.01 맞습니다. 조작하기 어렵습니다.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게 되어 있지요. 그래서 조작세력은 바로 그 점을 이용합니다. 제 글에서 유물 유적의 발굴에 대한 언급이 무수히 많을 것입니다. 중조의 유물은 단일 박물관으로는 반도의 중앙박물관에 가장 많이 옮겨져 있읍니다. 혹은 아예 신조품을 만들기도 하고 많이 파묻기도 합니다. 선택적으로 파괴하기도 합니다. 아예 발굴을 하지 않거나 변조를 해서 발표도 합니다. 자 누가 그 일을 합니까? 누가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하고 보호합니까? 누가 21세기에 창덕궁을 떠억하니 새로 만들어 세웁니까? 역사 진실을 추구하는 우리입니까? 이 세계질서를 만들어 나가는 저 조작세력입니까?
  • 작성자한헌석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8.10.01 역시 김선생님이십니다. 선생님의 남다른 통찰력과 천재가 빛나게 느껴집니다. '역사의 해석은 다른 방향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을 어렴풋이 감이 잡히셔서, 그렇게 매진한다면 저는 평생 선생님을 존경하고 위해서 모든 일을 다할 각오가 되어 있읍니다. '숨겨놓은 실상'의 본문을 찾아내기 위해서, 그 본문을 숨기기 위해 흩뜨려 놓은 조작사는 각주(FOOTNOTE)로 읽어 낼 수 있다면 선생님의 그릇의 크기는 기량무한이기 때문입니다. 그 '타타르' 전체를 홍익인간하는 조선인의 그릇의 크기를 배우고 따라 가서 드디어 그런 그릇이 되어버리는 것이 '다른 방향'의 핵심이라 할 수 있겠지요. 단순히 역사적 사실찾기와 역사 퍼즐맞추기의 달인
  • 답댓글 작성자한헌석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8.10.01 이 되는 것이 목적이 될 수 없지요. 이 불행한 역사의 진실을 찾아서 구도의 길을 떠나 내가 진실이 되어버리는 것, 나의 정체가, 나의 가능성이, 나의 잠재력이, 나의 천재가, 나의 장점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 그래서 그것을 실현하는 것이야말로 문사철의 궁극 목적이 아니겠읍니까? 역사를 알아야 나를 알 수 있읍니다. 틀린 지도로 내 삶의 기준점을 잡으면, 내 에너지와 능력과 마음을 그 지도 조작자에게 빼앗겨 버리는 것입니다. 나의 성장만큼 지도가 바로 보이고 역사가 바로 보일 것입니다. 또한 역사가 바로 보이는 만큼 내가 성장할 것입니다. 이것이 '다른 방향의 바른 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의 문제제기 감사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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