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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도(대도)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 4 - 장작처럼 타는 검은 돌이 문명의 수수께끼를 풀어 주었다.

작성자한헌석| 작성시간08.10.01| 조회수511| 댓글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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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김재만 작성시간08.10.01 개인적인 소견은 이렇습니다... 현재 우리들에게 지명으로 파악되는 도시는 가장 최근에 까지 우리와 관계된 조상들이 살았다는 근거가 될 수도 있다고 봅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한반도'입니다. 가장 정확한 지명들이 남북한에 골고루 분표하며, 역사적 사건들이 대입되어 있습니다. 이와 아주 유사한 보다 큰 역사의 장이 China대륙입니다. 그것은 한반도로 오기전에는 바로 그 지역이었다는 반증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중앙아시아도 역시 그렇습니다. 고조선과, 고구려의 중심무대가 그 곳이라기 보다는, 그 역사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 근세에 까지 그곳에 살았던 것이 아닌지 생각이 됩니다.
  • 답댓글 작성자 김재만 작성시간08.10.01 선생님의 접근도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기 위한 뛰어난 해석과 식견이시며, 마땅이 후학들의 공부가 이어져야 하는 내용임에는 틀림이 없어 보입니다... 이와함께, 추가적으로 있을 수 있는 가능성도 함께 고려하여 주셨으면 합니다..
  • 작성자 한헌석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08.10.01 김재만선생님 송도(대도)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2 '반치음의 비밀'을 한번 더 보아 주십시요. 여진은 요인, 스키타이, 고려인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그 타타르가 바로 고려이고, 조선입니다. 그 중앙조정이 카라샤르와 트루판에 있는 천하의 중국입니다. 여진의 금나라 천하와 거란의 요나라 천하라는 말은 어불성설이고, 단지 우리를 헷갈리게 만드는 조작일 뿐입니다. 구글어쓰를 찾으셔서 트루판과 하미근처를 확인해 보십시요. 분명히 사막이 확실합니다. 연행기의 영평부와 북경(연경)의 사막이 바로 여기입니다. 법현의 서역기를 한번 읽어 보시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돈황을 떠나 하미로 가면서 고비사막 이라고 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 김재만 작성시간08.10.01 선생님의 말씀을 따르면, 제가 올린 아래의 지도에서 1780년대의 타타르의 영토는 모두 '고려'가 됩니다만...ㅎㅎㅎ... 강력한 도움의 말씀을 주십니다...
  • 작성자 한헌석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08.10.01 영토개념의 국가는 아시아사에서는 19세기 후반에나 나오는 개념입니다. 제가 영토라고 하지 않았읍니다. 중앙아시아를 중주로 삼고 있는, 트루판(북경, 연경, 한양)에 앉아 계신 정조의 KOREA(고려)의 천하였읍니다. 그 사방 5천리가 황제 직할의 제후국들이 있고, 더 이상의 지역들은 손님으로 대접받는 조선천지임이 분명합니다. 김선생님이 자부심을 가지셔도 무방합니다. 제가 동방견문록의 탐색 연재를 시작한 것은 그것을 증명하려고 하는 것이니, 앞으로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 김재만 작성시간08.10.01 감사합니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부분 다시한번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 작성자 한헌석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08.10.01 당연히 역사연구는 사서를 통해서 하는 것이 기본입니다. 유물 유적은 보조적이라야 합니다. 왜냐하면, 유물 유적은 너무나 노골적으로 목적의식적으로 조작되는 것이 그 존재이유이니까요. 사서는 조작을 하되 완벽을 기하기가 쉽지 않은 너무나 많은 자료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 모순점을 틈타서 그 실상을 찾아가야 합니다. 정작 제가 집중해야 한다고 말한 것은 한반도사나 중국사가 아니라 중앙아시아사의 조작과 지명이동과 주체의 변모 조작의 해명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씀드렸읍니다. 선생님이 마치 청과 조선의 역사가 조작이 아니란 듯이 말씀하시는 것은 듣기가 조금 민망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 김재만 작성시간08.10.01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부분은, '역사의 축소'와 '역사의 조작'은 분명이 다른 부분이라는 것입니다.
  • 답댓글 작성자 김재만 작성시간08.10.01 고려시대 거란의 고려침입, 조선시대, 청의 조선 침입이, 축소된 역사라면, 확대해석으로 해당의 위치를 가늠해 볼 수 있지만, 그 것자체가 조작이라면, 역사의 해석은 다른 방향으로 접근 해야 한다는 것이죠...
  • 작성자 김재만 작성시간08.10.01 제가 생각하는 사서와 유물유적의 접근은 선생님의 생각과 다릅니다. 사서는 인간이 붓으로 쓴 기록물이지만, 유적은 도자기 또는 공예품등으로, 그들을 상징하는 문양과 문화가 직접적으로 반영되며, 그들의 무덤에서 출토된다는 면에서 당시 해당지역에 살았던 사람들을 나타내준다는 면에서, 더욱 신빙성을 갖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붓으로 쓸 수 있는 것은 조작이 쉽습니다. 그러나, 예술품들은 쉽게 따라서 조작하기 어렵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 한헌석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08.10.01 맞습니다. 조작하기 어렵습니다.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게 되어 있지요. 그래서 조작세력은 바로 그 점을 이용합니다. 제 글에서 유물 유적의 발굴에 대한 언급이 무수히 많을 것입니다. 중조의 유물은 단일 박물관으로는 반도의 중앙박물관에 가장 많이 옮겨져 있읍니다. 혹은 아예 신조품을 만들기도 하고 많이 파묻기도 합니다. 선택적으로 파괴하기도 합니다. 아예 발굴을 하지 않거나 변조를 해서 발표도 합니다. 자 누가 그 일을 합니까? 누가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하고 보호합니까? 누가 21세기에 창덕궁을 떠억하니 새로 만들어 세웁니까? 역사 진실을 추구하는 우리입니까? 이 세계질서를 만들어 나가는 저 조작세력입니까?
  • 작성자 한헌석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08.10.01 역시 김선생님이십니다. 선생님의 남다른 통찰력과 천재가 빛나게 느껴집니다. '역사의 해석은 다른 방향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을 어렴풋이 감이 잡히셔서, 그렇게 매진한다면 저는 평생 선생님을 존경하고 위해서 모든 일을 다할 각오가 되어 있읍니다. '숨겨놓은 실상'의 본문을 찾아내기 위해서, 그 본문을 숨기기 위해 흩뜨려 놓은 조작사는 각주(FOOTNOTE)로 읽어 낼 수 있다면 선생님의 그릇의 크기는 기량무한이기 때문입니다. 그 '타타르' 전체를 홍익인간하는 조선인의 그릇의 크기를 배우고 따라 가서 드디어 그런 그릇이 되어버리는 것이 '다른 방향'의 핵심이라 할 수 있겠지요. 단순히 역사적 사실찾기와 역사 퍼즐맞추기의 달인
  • 답댓글 작성자 한헌석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08.10.01 이 되는 것이 목적이 될 수 없지요. 이 불행한 역사의 진실을 찾아서 구도의 길을 떠나 내가 진실이 되어버리는 것, 나의 정체가, 나의 가능성이, 나의 잠재력이, 나의 천재가, 나의 장점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 그래서 그것을 실현하는 것이야말로 문사철의 궁극 목적이 아니겠읍니까? 역사를 알아야 나를 알 수 있읍니다. 틀린 지도로 내 삶의 기준점을 잡으면, 내 에너지와 능력과 마음을 그 지도 조작자에게 빼앗겨 버리는 것입니다. 나의 성장만큼 지도가 바로 보이고 역사가 바로 보일 것입니다. 또한 역사가 바로 보이는 만큼 내가 성장할 것입니다. 이것이 '다른 방향의 바른 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의 문제제기 감사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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