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란의 침입 (契丹-侵入)
고려시대에 3차에 걸쳐서 감행된 거란의 침입. 고려의 북진(北進) 정책과 거란의 동침(東侵) 정책의 충돌에 기인했다.
제1차 침입
~이 담판에서 서희는, 고려가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라는 것과 거란의 동경(東京;遼陽)도 역사적으로 보면 고려의 땅이라는 점을 설명하고, 고려와 요나라가 국교 관계를 맺으려면 양국간에 있는 여진(女眞)의 지역을 회복하고 도로(道路)를 확보해야만 한다고 하여 이를 납득시켰다.~
<야후백과 발췌>
이 지리적 위치가 되어야 하지 않는지 추측합니다. Asktrakhan의 통제를 받던 Khiva한국의 위치 비정으로 '청'의 해당위치는 점점 신빙성을 더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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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이태수 작성시간 08.10.11 위치비정이 마침 제가 생각한 구도와 거의 같습니다. 화레즘이 건주여진이고, 아랄해 서쪽이 해서여진이고 아랄해 동북쪽이 야인여진으로 보입니다. 볼가강의 볼가 타타르족의 사진을 보면 청나라 사람으로 보입니다. 여진인들은 볼가강의 불가르족 즉 부여족과 같은 반경에서 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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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이태수 작성시간 08.10.11 우크라이나에서 접두사와 접미사를 떼어내면 [크라인]이어서 바로 거란과 같은 음이 됩니다. 이외에도 우크라이나가 거란의 본거지가 되는 근거는 많이 있습니다. 오래전에 추정했던 것인데, 근거가 없어서 더 이상 주장을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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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김재만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08.10.11 저의 추정과 일치하십니다...제가 청의 위치위치에 집착한 이유가 고려와 여진의 위치로 거란의 위치를 비정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Khiva한국의 존재는 그 주장의 신빙성과 자신감을 불어넣어준 계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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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규형 작성시간 08.10.11 불가강은 더 위쪽이 아닌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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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이태수 작성시간 08.10.11 여진족들은 볼가강에서 볼가그라드 북쪽에 있었고, 강성해졌을 때 남하하게 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