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방 (靑幇)이란?
<문헌: 야후백과>
* 참고: 저장재벌 (浙江財閥)
19세기 말부터 1920년대에 걸쳐 중국 최대의 무역도시인 상하이[上海(상해)]에서 중국경제를 지배하였던 저장성 출신의 금융업자·실업가 집단. 상하이는 난징[南京(남경)]조약(1842)으로 개항이 된 뒤로 중국 최대의 무역도시로 발전, 외국의 무역상과 은행이 진출하였고 동시에 면공업 등의 제조업도 늘어났다. 그 때문에 중국의 전통적 금융업인 전장(錢莊)도 외국은행이나 민족자본의 은행계열 아래로 들어갔다. 이중 저장재벌계열에는 중국은행 등 <남사행(南四行)>, 금성은행(金城銀行) 등 <북사행(北四行)>과 각종 저비은행(儲備銀行;기업에 대한 투자를 목적으로 하는 새로운 은행) 등이 있었다. 동남아시아 화교 두월생(杜月笙) 등의 자본이 상당량 유입되었다. 장제스[蔣介石(장개석)]가 저장재벌을 기반으로 삼아 1927년 이후 권력을 장악하자, 장(蔣)·송(宋)·공(孔)·진(陳)의 4대가족에게 흡수되어 독자적으로 존립할 수 없게 되었다.
<문헌: 야후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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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청방 (중국어 간체: 青幫, 병음: Qīng Bāng)은 20세기 초 중국 상하이에서 조직되어 운영되어 오던 범죄조직이다. 이 조직은 소림사의 비밀 결사 조직에서 기원했다고 전해지며 20세기 들어서 많은 상하이의 상인과 기업가들이 가담하였다. 당시 두목으로 유명한 사람은 두월생(杜月笙)이며 그는 상하이이 전체를 관할 했다.
청방은 지방 군벌로 부터 공급받는 아편, 도박, 매춘등을 관장했으며 기업가들과 손잡고 노동조합과 노동운동을 탄압하는데 고용되기도 하였고 우파 정치인들의 백색 테러에도 동원되었다. 1927년 4월 공산당에 대한 숙청사건인 4.12사건때 상하이에서 약 5,000명의 공산주의자와 노동자 학살에 청방이 개입되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이 사건직후 두월생은 장제스(장개석)의 국민혁명군의 장군으로 영입되었다.
청방은 중국 국민당과 협력관계를 가지고 있었으며 한때 장제스가 청방의 일에도 관여한 것으로 여겨지며 남의사와도 깊은 관계가 있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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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재만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08.11.26 즉, 장개석이 군권을 바탕으로 저장재벌을 흡수하여, 4대가문에 위탁경영시킨 후, 두월생이라는 인물에게 '해결사'역할을 시켰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음글에서 언급될 예정이지만, 바로 이 '두월생'이라는 인물이 '삼합회'의 거두이었습니다...'두산백과 <두월생편>~ '아편대왕'~... (개인적 의견: 영국과 손잡고 아편전쟁을 일으킨 세력의 후예인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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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김재만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08.11.26 천지회->삼합회->청방->국민당 비밀경찰('남의사')... 여기서, 이 남의사라는 집단을 집중적으로 연구해야 합니다. 심상치 않은 집단입니다. 명의 전통은 '남색의 제복'을 입었던 전통이 있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남색의 제복이라는 뜻에서 '남의사'라는 이름이 지어졌으며, 이들의 핵심인물이 청방(삼합회)의 조직원(깡패/조폭)이었다고 하네요... 어제 올린 국민당군대의 '느끼한 표정'의 인물들로 추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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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김재만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08.11.26 한국역사에서 독립운동가들을 탄압하였던, '일본헌병'의 진정한 모습이 바로 이들 깡패집단인 '남의사(나치의 '비밀경찰 SS'와 비교되는 잔인함을 보였다고 합니다.)'일 가능성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 대한제국과 조선을 없애고, 그것을 찾아야 된다고 목노아 외치던 사람들을 탄압한 세력이 누가 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