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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월성(半月城)에 대해서....

작성자김재만|작성시간10.08.22|조회수414 목록 댓글 5

야후백과를 보면서 사비성을 반월성이라고 이야기한다는 짧은 기록에 근거하여 한국고전번역원 사이트의 인터넷 사료검색을 통해서 반월성에대한 문헌을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보았습니다. 해당 검색어로 검색되는 항목이 그리 많지 않아서 그렇게 큰 어려움은 없었지만, 문헌을 정리해 가면서 처음에 가지고 있었던 호기심을 뛰어넘어 더 강한 의혹의 대상이 되어 버렸다는 점을 우선 강조하고 싶습니다.

 

반월성이라는 특정 구체적 명칭이 붙은 것은 그 모양이 활처럼 구부러져 멀리서 보면 반달의 형태로 보인다고 하여 반월성이라는 표효현이 생긴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모습이 산을 끼고 강(백마강)에 양쪽이 다다르는 모양이어서 더 그러한 모습으로 보였으리라 예상되며 사서도 그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반월성이라고 명명되는 성과 관련된 역사적 사료는 서로다른 국가 공동체인 백제와 신라의 역사가 일치되는 기현상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죠. 분명히, 사료에서 말하는 반월이라는 구체적 명칭을 사용했을 때에는 그 명칭이 지시하는 정확한 지리적 위치와 역사적 사실이 그 성과 관련되어 설명되어야 하지만, 사료에서는 동일한 명칭에 얽힌 역사적 의미가 서로 다른 국가의 그것으로 설명되는 알 수 없는 현상을 처음 경험했기 때문이죠.

 

즉, 반월성은 백제의 최후역사를 간직한 사비성이지만, 그것은 원래 신라왕이 건축을 하였다라는 내용입니다. 기타 문헌으로부터 분석해 볼 수 있는 하나의 가정은 당시부터 모든 성곽이 지리적 잇점을 고려하여 거의 동일한 모습(반월형의 모양)으로 건축이 되었을 것이다라는 자의적 해석을 해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반월이라는 것은 성의 양식을 묘사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사료를 보면 너무도 자신감있게 반월은 백제의 ~~~~ 또는 반월은 신라의 ~~~ 라는 의심과 의혹의 어조가 아닌, 당연히 그것이다라는 확답의 어조로 표현을 하였으므로 독자들로 하여금 혼란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요소가 있었다 보여집니다만, 그 양식의 이동이 여진족이 거주하는 지역까지 확대되었다라는 기록을 통해서 보면, 그 양식이 가지는 건축학적 우수성과 더불어 그 양식과 함께 살려했던 이민족의 노력이 옅보인다는 측면에서 과연 그 양식의 성곽이 가지고 있는 의미와 과거의 역사가 더욱 궁금하여 지게 되었지요...

 

하나의 의혹과 궁금증의 더함을 뒤로하고, 그 것을 포괄하여 깨닫게되는 또 하나의 것은 본 카페의 여러 선생님들께서 주장하시었던 중앙아시아를 중심으로 하는 역사관의 문제점을 위의 문헌고찰을 통해서 나름대로 정리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다시말해, 중앙아시아 어딘가를 중심으로 동서남북으로 한국인이 흩어졌고, 서쪽으로 이동한 세력은 달의 상징으로서 대표괴고 동쪽으로 이동한 세력은 해를 상징으로 가지게 되었다라는 아주 당현히 받아들여지는 기본적 concept에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단서를 찾아내었다라는 것입니다.

 

현 단계에서 반월성에 신라인들이 살았었는지, 혹은 백제인들이 살았었는지 한정된 문헌의 기록으로 확신할 수 없으나, 중요한 것은 모두 반달형의 건축물에서 거주하고 있었던 것은 틀림이 없었다라는 기록입니다. 왕이죠.. 그러니까...그렇다면, 앞서 언급했던 중앙아시아를 중심으로 해석하는 역사관으로 보더라도 달의 상징은 서쪽의 지역이 된다는 것으로 정의할 때, 백제인이나 신라인이나 모두 중앙아시아를 중심으로 서쪽에 위치하고 있었다라는 근거가 되기 때문이죠. 성과과 같은 중요한 건축물에 반대편으로 이동한 세력의 상징을 도입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사실, 중앙아시아 지역에 현대도 반달모양의 건축물들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현재까지 그 윤곽이 남아있다는 것은 상대적으로 후대에 그것을 건축하였을 것이다라는 추측을 가능케 합니다.

 

그렇다면, 한국의 역사가 중앙아시아를 중심으로 동서남북으로 뻗어나갔다라는 해석보다는 한때, 서쪽에 있었던 역사의 중심세력이 장구한 세월동안 서서히 동쪽으로 이동하여 현재 한반도까지 이동하여 정착하게 되었다라는 수정된 가설에 좀 더 무게를 두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입니다. 만약 동서남북으로 뻗어나갔다면 그 중심은 현재의 크림반도가 되겠죠... 중앙아시아 보다는...

 

그리고 그것은 해당지역에 존재했던 성곽의 양식이며 그 양식이 북방의 어떤 지역, 즉 여진족이 있었던 지역까지 이동하였을 가능성이 높다는데서 중세와 근세를 연결하는 인구의 이동과 역사 중심세력의 남방에서 북방으로의 이동을 예상케하는 하나의 실마리가 될 수도 있어 보입니다. 사실, 모스크바의 크레믈린 성과과 기타 러시아 지역의 노로고르드 성곽등을 분석해 보면 분명히 하나의 공통점은 강을끼고 산과함께 둥그렇게 쌓아 올렸다라는 점이고, 뾰족한 탑의 양식은 현재 터키의 '톱카피 팰리스' 첨탐양식 그대로 사용되었다라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 합니다. 동일한 양식이 북방에 보인다는 것은 그 양식을 사용했던 사람중의 일부가 그쪽으로 이동하였다라는 것을 말해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풀리지 않는 또 한가지의 문제점은 과연 그것이 백제의 양식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신라의 그것으로도 이야기를 할 수 있느냐라는 것입니다. 만약, 백제가 멸망한 사비성(반월성)에 그대로 신라의 누군가가 지속적으로 살게되어 역사를 간직하게 되었다면, 현대 학계에서 이야기되는 서로 다른 지역을 중심으로 갈등을 빚었던 백제와 신라의 대립양상이 하나의 지역을 놓고 서로 다투게 되었던 두세력으로 전혀 다른 각도로 해석이 되며, 그곳은 왕의 상징성과 전통이 깃들어 있었던 그럴만한 곳이어야 한다는 데에 논의의 여지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당시 신라의 주세력은 해당지역을 벋어나 다른 곳에 이동하였던 유목성으로 해석이되며 성곽을 견고히 쌓고 살아가는 정주의 세력과 상대적으로 그것을 벋어나 이동하는 유목세력의 갈등으로 신라와 백제의 역사를 해석해 볼 수 있게하는 하나의 계기가 될 수 있다고도 생각합니다.

 

한국의 역사를 이야기 할때, 고구려, 백제, 신라의 3국 갈등으로 한국의 고대사를 시작하여 설며하지만, 그 근본은 하나이었다라고 다시 종합하여 이야기 합니다. 그렇다면, 그 근본이 되는 하나의 지점이 분며히 존재할 것이며, 그곳을 중심으로 황권 또는 왕권의 다툼이 지속적으로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충분히 설명해 볼 수 있으며, 백제와 고구려의 갈등, 그리고 백제와 신라의 갈등도 그러한 연속선상에서 해석을 해야 보다 정확하지 않을까라는 사색을 해보며 한국의 역사는 하나의 지점에서 정주한 역사라기 보다는 하나의 중심점을 놓고 이동한 세력과 해당지역에서 상대적으로 안정된 생활을 바탕으로 문화적 번영을 누렸지만, 거친 자연환경을 개척해갔던 유목민적 생활패턴을 잃어버려 정주한 세력은 왕권 또는 황권에 대하여 유목세력의 끊없는 의심과 도전을 받게 되었을 가능성이 높았을 것이다라는 가설도 한번 유추해 볼수 있구요...

 

만약 상대적으로 후대가 해당양식의 건축물과 역사적 해석을 시도하였다면, 과거의 기록으로부터 분명히 혼란스러운 부분이 있었을 것임에는 틀림이 없어보이며, 북방으로 이동한 본인들의 정체성을 어느 역사를 중심으로 해석해야 하는가?라는 기본적 화두에대한 답변에 어느누구도 자신감있는 실마리를 제시하지는 못했을 것이다라는 추측과 함께, 거대한 타타르제국이 어떻게 하여 한순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되었는 가라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물음을 위와 같은 문헌검색의 결과로서 본인들의 정체성을 안정적으로 뒷바침해 줄수 있었던 역사 해석의 부재와 단지 성곽이라는 눈에보이는 효율성만을 강조한 당시의 문화적 조류가 복합적으로 작용하지 않았을까라는 보다 확신되는 논리를 전개해 볼 수도 있었습니다.

 

 * 참고 1: 한국고대사탐구/ http://cafe.daum.net/ancientkoreanhistory/KhV4/212>

                                     http://cafe.daum.net/ancientkoreanhistory/KhV4/210

 * 참고 2: 한국인은 양력보다 음력을 중요하게 여긴다. 대표 예) 음력 설, 정월 대보름 등등...

 * 참고 3: 홍성원작 '달과 칼'

            2 - Daum 책 [현재창]
홍성원 역사 장편소설 < > 제1권. ... 작가가 피력하는 칼의 문화를 가진 왜달로 대표되는 한민족의 정서는 이렇다. ... 한 에 한 번 생성 소멸을 거듭하며 의 덧없는 힘을 깊은 어둠 속에 어루만져 잠재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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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김재만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0.08.23 그렇습니다. 또 하나의 중요한 부분은 장구한 세월동안 동쪽으로 이동한 세력이 있고, 계속 서쪽에 남아있다가 동쪽으로 온 후발 주자들도 있을 거구요... Korean이나 Chinese나 Japanese나 모두 거기서 출발한다고 봅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 모두의 공통 관심사가 될 수 있고, 국가와 민족을 넘어서는 연구의 방향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 삭제된 댓글입니다.
  • 답댓글 작성자김재만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0.08.25 저도 유사한 생각을 하였습니다. 아무래도 형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런지... 그러나, 그러한 성이 존재했었다는 것이 너무나 신기할 뿐입니다... 그런데, 왜? 사서에서는 '반월성'표현으로 일반명사보다는 고유명사, 즉, 특정한 성을 지칭하는 것으로 이해될 때가 있으므로, 해석상의 문제인지, 아니면 그것이 특정 성을 진짜로 지칭하는 것인지에 대한 문제가 제기될 때가 있고, 만약, 일반명사라면 왜 구지 반월성이라는 건축형태의 모습을 강조하였고, 왜 또 그렇게 기술하려는 시도가 있었는지에 대한 의문은 지속됩니다. 후대가 보게되면 이것이 신라의 역사 범주인가? 아니면 백제의 역사범주인가? 당연히 의문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 답댓글 작성자김재만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0.08.25 성곽양식을 제외하더라도, 한국의 문화에서는 아직도 '달'이라는 서정적 의미가 전세대를 통해서 상당히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고, 어두운 곳 은은하게 사방을 비추는 어머니의 모습이 느껴지기도 하죠. 달빛에 의지해서 책을 읽었다는 전설의 학자들이 우리역사에는 유난히 많은 것 같습니다... 보다 소외받는 사람들의 정서가 존재하는 그런 이미지 입니다. 상대적으로 해는 강렬하면서 자극적인 느낌이 있지만, 달은 항상 어두울 때 뜨지요... 그만큼 운치가 있고, 전설을 흩뿌리며, 감수성이 높은 한국인의 정서를 은은히 끌어당긴다 하겠습니다...
  • 작성자이상호 | 작성시간 10.08.28 솟는해와달="半月"(=半해-海-반달(곰)=朝鮮(=1하나=단일-통일)=桓檀君=鷄林(부원군)알평羅井=毛禮家井(음)=첨성대(양)=桃李室=海平面(習文村道文)중심산실대조증좌自然보존要.歷史文化란現在過去未來동질(유구,영속,)성精神魂얼증좌요상징保存要.大陸地(3千里금수江山)朝鮮.경제논리개발로歷史文化왜곡파괴도난훼손개판자행심각,國權침탈100年南北韓여야괴뢰집단政府政權수립책임인식件. [참조] http://www.gumi.go.kr/haepyeong/pages/sub.jsp?menuIdx=55 [해평면-해평이야기-세상사는이야기 <글등록(전체):이상호(첨부파일 포함) 민원<신변(분)보호(장)요청,권총(실탄)발포소지 허가>, 과인主人主銘, 主權회복예우 민원재촉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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