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四海(사해), 區宇(구우)

작성자김홍필|작성시간10.09.04|조회수431 목록 댓글 5

아래의 글은 1895년 곧 고종(高宗) 32년에 유인석(柳麟錫, 1842~1915)이 쓴 <격고팔도열읍(檄告八道列邑)>의 일부(一部)에 관()한 것입니다.

 

 

의암선생문집(毅菴先生文集) 45(卷之四十五)

격고팔도열읍(檄告八道列邑)

 

<원문(原文)>

 

(前略)

 

凡我諸路忠義之人均是聖朝培養之物避患有甚於死者待亡其孰如伐之地雖當萬分之頭人可增百倍之氣天不共戴尤切薪膽之思時何等危難免魚肉之禍吾未聞變於夷者其何以立於世乎以公以私萬無生全之望於禍於福一守死字之符歃馬血而同盟成敗利鈍非吾所覩擇熊掌而斯取輕重大小於此焉分衆心皆趨無百靈之休佑國運復啓將見四海之永淸仁者之無敵勿疑士師之用誅何待玆敢爲先擧之地遂以此布告于人上自公卿下至士庶孰無哀慟迫切之志此誠危急存亡之秋各自寢苫枕戈亦皆赴湯蹈火期區宇之再造見天日之復明奚但爲功於一邦實是有辭於萬世

 

(後略)

 

[출처=한국고전종합DB, http://db.itkc.or.kr/itkcdb/mainIndexIframe.jsp]

 

 

 

<번역문(飜譯文)>

 

(前略)

 

무릇 우리 각도(各道) 충의(忠義)의 인사(人士)들은 모두가 임금의 배양(培養)을 받은 몸이니 환난(患難)을 회피(回避)하기란 죽음보다 더 괴로우며 멸망(滅亡)을 앉아서 기다릴진대 싸워 보는 것만 같지 못합니다. 땅은 비록 만분(萬分)의 일() 밖에 되지 않지만 사람은 백배(百倍)의 기운(氣運)을 더할 수도 있습니다. 하늘 아래 함께 살 수 없으매 더욱 신담(薪膽)의 생각이 간절(懇切)하고, 때는 자못 위태(危殆)하여 어육(魚肉)의 화()를 면()하기 어렵습니다. 나는 들어보지 못했소. 오랑캐()로 변()한 놈이 어떻게 세상(世上)에 설 수 있겠습니까? ()으로 보나 사()로 보나 살아날 가망(可望)이 만무(萬無)하니, ()가 되건 복()이 되건 죽을 사() () 하나로 지표(指標)를 삼을 따름입니다.

() 피를 입에 바르고 함께 맹세(盟誓)하매 성패(成敗)와 이둔(利鈍)은 예측(豫測)할 바 아니오, 의리(義理)를 판단(判斷)해서 이 길을 취()하매 여기서 구분(區分)이 되는 것이니 대중(大衆)의 마음이 다 쏠리는데 어찌 온갖 신령(神靈)의 보호(保護)가 없겠는가. 나라()의 운수(運數)가 다시 열리어 장차(將次) 온누리(四海)가 길이 맑아짐을 볼 것입니다. 어진 이는 당적(當敵)할 자 없다는 말을 의심(疑心)하지 마소서. 군사(軍士)의 행동(行動)을 무엇 때문에 머뭇거립니까?

이에 감()히 먼저 의병(義兵)을 일으키고서 마침내 이 뜻을 세상(世上)에 포고(布告)하노니, 위로 공경(公卿)에서 아래로 서민(庶民)까지, 어느 누가 애통(哀痛)하고 절박(切迫)한 뜻이 없겠는가? 이야말로 위급(危急) 존망(存亡)의 계절(季節)이라, 각기(各其) 짚자리에 잠자고 창()을 베개하며, 또한 끊는 물 속이나 불 속이라도 뛰어들어, 온누리(四海; 區宇)가 안정(安定)되게 하여, 일월(日月)이 다시 밝아지면 어찌 한 나라()에 대()한 공로(功勞)만이겠습니까? ()로 만세(萬世)에 말()이 있을 것입니다.

 

(後略)

 

[출처=http://cafe.daum.net/northboyhistory/IyKp/466?docid=GfeQ|IyKp|466|20040511061239&q=%DE%CC%FA%AD%F1%FD%E7%B5%F4%E8&srchid=CCBGfeQ|IyKp|466|20040511061239]

 

 

 

위에 인용(引用)된 자료(資料)에는 이른바 四海”(사해)라는 낱말이 나오는데, 1895년 곧 고종(高宗) 32년 당시(當時)에 유인석(柳麟錫)이라는 조선인(朝鮮人)이 사용(使用)한 용어(用語)입니다.

 

대한제국(大韓帝國) 1897년 곧 고종(高宗) 34년에 성립(成立)되었으므로, 1895년은 그보다 약() 2년 전()에 해당(該當)됩니다.

 

일전(日前)에 필자(筆者)가 언급(言及)한 바 있지만, ‘사해’(四海)가 무엇인지 다시 살펴보겠습니다.

 

사해’(四海)는 이른바 중국’(中國)을 기준(基準)으로 설명(說明)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중국(中國)은 무엇일까요?

 

15세기(世紀) <훈민정음언해(訓民正音諺解)>에서는 중국’(中國)황제(皇帝)가 계시는 나라황제국’(皇帝國)으로 언해(諺解)합니다.

 

중국’(中國) 이외(以外)에도 경조’(京兆), ‘경사’(京師), ‘한사’(漢師)라는 낱말들도 있습니다. 이것들은 천자(天子)가 머무는 땅또는천자(天子)가 직접(直接) 다스리는 지역(地域)’을 가리킵니다.

이를신주’(神州)라고도 합니다. 그리고 신주(神州)에 팔역(八域) 또는 팔도(八道)를 더하면 이른바 구주’(九州)가 됩니다.

 

또한 천자(天子) 또는 황제(皇帝)가 제후(諸侯)들을 두고 통치(統治)하는 지역(地域)사해’(四海)라고 합니다. 이를 구주’(九州)라고도 말할 수 있으며, 그 중심(中心)은 역시(亦是) ‘신주’(神州)입니다.

 

사해’(四海) <산해경(山海經)>에도 나오는데, 해내(海內)는 사해(四海)의 내부(內部)를 가리키며 해외(海外)사해(四海)의 외부(外部)를 말합니다.

 

 

지금(只今)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四海’(사해)라는 낱말은 중국(中國) 또는 신주(神州) 중심(中心)천하(天下)’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중화(中華) 사상(思想)’에 따른 표현(表現)이기도 합니다. 

 

19세기(世紀) 말엽(末葉) 조선(朝鮮)의 유인석(柳麟錫, 1842~1915)<격고팔도열읍(檄告八道列邑)>에서 四海’(사해)라는 표현(表現)을 사용(使用)하였습니다.

 

그렇다면, 1895년 당시(當時)中國’(중국) 神州’(신주)는 구체적(具體的)으로 어디를 가리키며 四海’(사해)의 동서남북(東西南北) 끝은 어디일까요?

 

이른바 신주(神州)와 팔역(八域)반도(半島)존재(存在)하였을까요?

四海’(사해)라는 낱말이 과연(果然) 반도(半島)에서도 쓰일 수 있었을까요?

 

四海’(사해)는 조선(朝鮮)의 강역(疆域)이 반도(半島)이든 대륙(大陸)이든 관계(關係) 없이, ‘온누리또는 천하’(天下)라는 뜻으로 어느 지역(地域)에서나 임의(任意)로 사용(使用)될 수 있는 표현(表現)이었을까요?

만약(萬若) 그것이 사실(史實)이라면, ‘四海’(사해)라는 용어(用語)가 반도(半島)에서도 널리 쓰였다고 보아도 문제(問題)될 것이 없습니다.

 

혹시(或是), 유인석(柳麟錫)은 이른바 소중화(小中華) 사상(思想)’에 의거(依據)하여 四海’(사해)라는 낱말을 썼을까요?

小中華’(소중화)라는 낱말은 원문(原文) 기준(基準)으로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서 모두 19()이 나옵니다.

 

四海’(사해)라는 용어(用語)의 쓰임새에 관()해서는 여전(如前)히 의문(疑問)이 제기(提起)되지만, ‘四海’(사해)라는 낱말이야말로 황제(皇帝)가 계시는 나라中國’(중국)을 기준(基準)으로 성립(成立)되는 것이므로, 협소(狹小)한 반도(半島)보다는 광활(廣闊)한 대륙(大陸)의 지리적(地理的) 상황(狀況)에 더 적합(適合)한 표현(表現)은 아닐까요?

 

19세기(世紀) 말엽(末葉)에 유인석(柳麟錫)은 반도(半島)에서 살았을까요?

아니면, 그는 대륙(大陸)에서 살았을까요?

그 여부(與否)를 확정(確定)할 수 있는 증거(證據) 자료(資料)는 어디에 있을까요?

 

 

참고(參考)로 부언(附言)하면, 모두(冒頭)에 인용(引用)<격고팔도열읍(檄告八道列邑)>에는 區宇”(구우)라는 낱말도 나옵니다. 이것은 四海’(사해)와 상통(相通)하며 팔도’(八道)를 뜻한다고 보입니다.

 

<네이버(NAVER) 한자사전(漢字辭典)>에서는 區宇’(구우)區域’(구역)과 같은 낱말이라고 합니다.

 

區宇’(구우)라는 낱말은 <진서(晉書) 지리지(地理志)>에도 나오는 것인데, ‘區畫’(구획) 또는 境域’(경역)을 가리킵니다.

 

<漢典(한전)>[http://www.zdic.net/]에 따르면, ‘區宇’(구우)천지’(天地)라는 뜻도 있습니다. 이것은 곧 천하(天下), 세상(世上), 세계(世界)를 말합니다.

따라서 區宇’(구우)四海’(사해)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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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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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김재만 | 작성시간 10.09.04 ~황제(皇帝)가 계시는 나라’ 곧 ‘中國’(중국)~광활(廣闊)한 대륙(大陸)의 지리적(地理的) 상황(狀況)에 더 적합(適合)한 표현(表現)은 아닐까요?

    => 황제의 관점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죠... 1세기 전까지만해도 여러명 또는 더 많은 수의 황제가 존재했던 것 같으니까요... 사서를 따라가 보면요...

    => 그러나 위의 정의 그대로 해보면, 중국에 황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황제가 출현한 곳이 '중국'이 되는 셈이죠... 쉽게 말함녀 중앙집단이 된다는 뜻입니다. 황권의 갈등이 생기는 것이 여기서 부터이지요... 한번은 상대적으로 남쪽에서 황제가 출현했고 계속 그 전통이 이어졌는데,
  • 답댓글 작성자김재만 | 작성시간 10.09.04 => 어느순간, 그것이 북쪽에서 출현했다는 것입니다. 청나라의 성립이 그렇게 해서 시작된 것이거든요... 라마승까지 스스로 찾아와 귀부를 했으니, 서역의 모든 나라들이 다 전부... 당시 현시점으로 보았을때, 다른 어떤 이보다 바로 그 분이 황제가 맞다라는 공통된 의견의 일치가 생겼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누가 출현하긴 한 모양이지요...그들은 스스로를 신라의 종실이라고 주장을 하였던 것이고... 그렇다면, 남쪽에서 출현했던 황권이 갑자기 왜 북쪽에서 출현하는 가의 문제가 생깁니다.. 무엇인 원인이냐 이것입니다...
  • 답댓글 작성자김재만 | 작성시간 10.09.04 어떻게 보면, 황제의 자식이 반드시 황제가 된다라는 고정관념이 있지만, 반드시 그렇지 많은 않아 보입니다... 다황제 시대가 일단 그것을 설명하고, 황권이라는 정신적 개념으로 접근하더라도 육체적인 부분의 DNA적인 유전자만으로 후대가 반드시 황제라고 '확답'을 할 수는 없다는 것이죠... 단지 가능성이 높을 분이겠죠...
  • 답댓글 작성자김재만 | 작성시간 10.09.04 또 하나의 접근은 황제의 출현은 전체의 움직임과 관련이 있을 수 있다고 봅니다.. 즉, 해와 달의 움직임 그를 둘러싼 별들의 움직임과 가끔씩 출현하는 혜성의 움직임으로 설명합니다. 그래서, 신라에서는 별을 보는 '첨성대'까지 별도로 건축을 했었죠... 단지 농사에 이용하고자 또는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혜성의 운행만을 찾아보고자 밤새도록 별을 보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지구 유기체적인 관점에서 접근해 보면, 혜성이 출현했을 때, 역의 기운이 강하게 작용하여, 반역이 흔히 일어난다고 합니다. 단지 별이 떨어지는 심리적인 현상만이 아니라, 무서운 속도로 다가오는 헤성의 기운에 의해서 지구의 basic balance가 깨지면서~
  • 답댓글 작성자김재만 | 작성시간 10.09.04 그것이 사람들에게까지 작용하여 정신적 또는 그것과 연결되어 신체적인 변화를 일으킨다라는 것입니다. 즉, 인간은 지구 또는 별과 연결되어있고, 그것에 대한 중심점을 황제로 보는 시각입니다. 황제를 중심으로 풀어간다는 것이죠... 즉, 그 상호 조합에 따라서 꾸준한 시간적 간격으로 가지고 황제의 출현이 방향성을 갖을 가능성도 있다는 것입니다... 아직, 정확히 깨닫지는 못하고 있습니다만... 거기서 나오는 것이 아마도 천부경, 음양오행, 삼황오제 이런 고대 이론일 것입니다... 즉, 그것은 우주의 이론이고 과학이며 질서가 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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