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댓글

뒤로

<몽경당일사(夢經堂日史)> 제4편 - 자금쇄술(紫禁瑣述)

작성자김홍필| 작성시간11.02.18| 조회수205| 댓글 5

댓글 리스트

  • 작성자 필유니버최남석 작성시간11.02.19 김홍필님 진짜로 중요한 자료 입니다 어떻게 찾아 왔습니까? 수고 하셨습니다 / 이 글을 완전 해석하면 논난이 어느정도 해결 될거 같습니다
  • 작성자 필유니버최남석 작성시간11.02.19 번역문 12행 의 [송나라라 때 에 이르러] 는 - 송나라에 이르러- 로 번역해야 합니다 13행 에[그 부락이 두만 압록 두강의 서쪽과 북쪽은 ] -서북쪽 -으로 번역 해야합니다 서쪽과 북쪽은 西與北 이라고 써야 합니다 원문에 與는 접속사 가 없으므로 그냥 서북으로 보는것이 마땅 합니다 이글이 말하는 두만 압록 두 강은 한반도 의 장백산 두만 압록이군요 이 글의 시대보다 더 앞의 시대에는 음산산맥 의 좌우로 흐르는 강을 서는 압록 동은 두만 이라고 하였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 김홍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1.02.19 則其部落散處于豆滿,鴨綠二江之西北。或稱野人。或稱蕃胡。侵軼我二境。北則梨湯介。西則李滿住。卽其大者也。
    ----------------------------------------------------------------------------------
    "북(北)쪽은 이탕개(梨湯介), 서(西)쪽은 이만주(李滿住)가 그 큰 자였다"고 나오므로....
    <한국고전번역원>에서는 "두만(豆滿), 압록(鴨綠) 두 강(江)의 서(西)쪽과 북(北)쪽"이라고 번역한 것 같습니다.
    "我二境"은 곧 "두 강(江)의 서(西)쪽과 북(北)쪽"을 가리킵니다.
  • 작성자 필유니버최남석 작성시간11.02.19 요야 동쪽에 봉천 심양 항창 흑룡강 이 있다는 말로 보아 요동은 지금의 요동반도 는 아니군요
  • 작성자 필유니버최남석 작성시간11.02.19 금나라 에서 후금 후금에서 청 청 ? 의 홍타시 이후에 청은 국력이 강해 개원에서 북으로 심양을 공격했고 이어서 동쪽으로 내려와 요양을 빼았았다 합니다 여기서 홍타시는 청의 홍타시 맞는가요? 그렇다면 이조 는 언제 양자강의 강화도(강도)에서 남한산성의 치욕을 받은 건가요 ? 청의 홍타시가 개원을 쳤을 때 이조는 이곳을 내주고 요동의 동쪽 만 가지고 있었다고 사료되는 글 입니다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
카카오 이모티콘
사용할 수 있는 카페앱에서
댓글을 작성하시겠습니까?
이동시 작성중인 내용은 유지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