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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유동조론(日猶同祖論) - 아슈케나지 유태(猶太) 세력(勢力)의 역사(歷史) 조작(造作)인가?

작성자김홍필|작성시간11.04.04|조회수815 목록 댓글 18

 

 

 

<그림 1>

 

 

 

 

 

<그림 2>

 

[출처=http://www.saturn.dti.ne.jp/~ttshk/framepage30.htm]

 

 

바로 위의 <그림 1> <그림 2>는 일본(日本)에서 산슈노진기’(三種神器; さんしゅのじんぎ) 야타노카가미’(八咫鏡; やたのかがみ), ‘쿠사나기노츠루기’(草薙; くさなぎのつるぎ), ‘야사카니노마가타마’(八坂瓊曲玉; やさかにのまがたま) 세 가지 가운데 하나인 야타노카가미’(八咫鏡; やたのかがみ)라는 구리거울에 쓰여진 문자(文字)들을 보여줍니다.

 

출처(出處)에 따르면,

<그림 1>은 일본(日本)에서 1970년대(年代)에 발간(發刊)되어 8개월(個月)만에 폐간(廢刊)된 잡지(雜誌) <오카루토(オカルト; occult) 시대(時代)>소개(紹介)된 것의 복사본(複寫本)입니다.

이는 탁본(拓本)으로 추정(推定)되며, 이세신궁(伊勢神宮)의 신체(神体) 가운데 하나인 야타노카가미(八咫鏡; やたのかがみ)라는 구리거울의 뒷면에 새겨진 모습이라고 합니다.

 

한편 <그림 2>는 유태인(猶太人) 랍비(Rabbi) ‘마빈 토케이어’(Marvin Tokayer, 1936~)의 책()에서 소개(紹介)된 것인데, 일본(日本)의 해군(海軍) 장교(將校)이자 신도(神道) 연구가(硏究家)이었던 야노 유-타로-(矢野祐太; やの ゆうたろう, 1881~1938)가 이세신궁(伊勢神宮)의 궁사(宮司)와 교섭(交涉)한 끝에 그가 직접(直接) 보게 된 야타노카가미(八咫鏡; やたのかがみ)라는 구리거울의 뒷면을 그가 손으로 그린 것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중요(重要)한 것은,

동경(銅鏡) 곧 구리거울 가운데의 동그라미 속에는 히브리(Hebrew) 문자(文字)가 새겨져 있다고 하며, 그 뜻은 다음과 같다고 합니다.

 

“I am that I am”

 

이는 <구약성서(舊約聖書)> 출애굽기(出埃及記) 3 14절에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그럼, <그림 1> <그림 2>는 동일(同一)한 구리거울에서 나온 것일까요?

 

출처(出處)에 따르면,

위에 인용(引用)된 두 가지의 그림은 다소(多少) 차이(差異)가 있지만, 어느 신관(神官)이 제작(製作)한 하나의 위조품(僞造品)을 토대(土臺)로 하여 특정인(特定人)이 베낀 것이라고 추정(推定)합니다.

 

이는 진품(眞品)이 별도(別途)로 있다는 것을 전제(前提)로 하여 성립(成立)되는 말입니다.

 

야노 유-타로-(矢野祐太; やの ゆうたろう, 1881~1938)가 그 구리거울의 진품(眞品)을 보았다고 알려져 있으므로, 견해(見解)가 대립(對立)되는 상황(狀況)입니다.

 

 

필자(筆者)가 부언(附言)하면,

메이지(明治) 시대(時代)의 문부대신(文部大臣)이었던 모리 아리노리(森 有; もり ありのり, 1847~1889)는 야타노카가미(八咫鏡; やたのかがみ)진품’(眞品)을 직접(直接) 본 후()히브리(Hebrew) 문자설(文字說)”을 그가 주창(主唱)하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일반적(一般的)으로, 야타노카가미(八咫鏡; やたのかがみ)진품(眞品)은 미에(三重; みえ) () 이세신궁(伊勢神宮)의 내궁(內宮)에 안치(安置)되어 있고, 레프리카(replica) 곧 모조품(模造品)은 토--(東京)의 황거(皇居) 안에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구리거울은 지금(只今)도 일본(日本)의 궁내청(内庁)에서 복제품(複製品)조차 일반인(一般人)들에게 절대(絶對)로 공개(公開)하지 않으며, 예로부터 신성불가침(神聖不可侵)의 대상(對象)이었습니다.

 

[참고=http://godpresencewithin.web.fc2.com/pages/zatsugaku/yatanokagami.html]

 

 

그런데 이세신궁(伊勢神宮)의 신관(神官)도 심지어 천황(天皇)도 함부로 볼 수 없다는 그 구리거울의 진품(眞品)이 어떻게 하여 몇 사람에게 보여졌는지를 필자(筆者)가 구체적(具體的)으로 확인(確認)할 방법(方法)이 없습니다.

 

(), 그 구리거울이 메이지(明治) 시대(時代)에 주목(注目)을 받은 것은 무슨 이유(理由)일까요?

 

그 당시(當時)에 히브리(Hebrew) 언어(言語)에 밝은 일본(日本)의 일부(一部) 기독교(基督敎) 목사(牧師)들도 그 구리거울에 새겨진 문자(文字)의 연구(硏究)에 참여(參與)하였습니다.

 

-(昭和) 시대(時代)에는 ‘GHQ’ 곧 제2차 세계대전(世界大) 이후(以後) 일본열도(日本列島)에 설치(設置)된 연합(連合) 사령부(司令部)의 장군(將軍)야타노카가미(八咫鏡; やたのかがみ)강제적(强制的)으로 보았다고 알려졌습니다.

유감(遺憾)스럽게도, 그때 그 장군(將軍)이 보았던 구리거울에 관()한 기록(記錄)은 전혀 남아 있지 않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가 진품(眞品)을 보았는지, 복제품(複製品)을 보았는지, 그 구리거울에서 구체적(具體的)으로 무엇을 보았는지를 알 수 없습니다.

 

[참고=http://godpresencewithin.web.fc2.com/pages/zatsugaku/yatanokagami.html]

 

 

‘GHQ’ 이야기가 앞에서 나왔기에 한가지 덧붙이면,

맥아더(MacArthur) 사령부(司令部)고다이고’(後醍醐; ごだいご) 천황(天皇)의 후손(後孫)이라는 인물(人物)산슈노진기’(三種神器; さんしゅのじんぎ)와 가계도(家系圖)를 가지고 나타나서 스스로 쿠마사와’(; くまさわ) 천황(天皇)이라고 주장(主張)하며 자기(自己)가 정통(正統) 천황(天皇)임을 인정(認定)해 달라고 호소(呼訴)한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출처=<일본어는 한국어다>, 김용운, 가나북스, 2006]

 

 

당시(當時)에 그 인물(人物)이 정말로 산슈노진기’(三種神器; さんしゅのじんぎ)를 가지고 왔다면, 당연(當然)히 야타노카가미(八咫鏡; やたのかがみ)라는 구리거울도 지참(持參)하였을 것입니다.

만약(萬若) 그가 진짜로 정통(正統) 천황(天皇)이었다면 진품(眞品)의 구리거울을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또한 그의 주장(主張)이 진실(眞實)이라면, 메이지(明治) 천황(天皇)의 정통성(正統性)이 의심(疑心)되는 상황(狀況)입니다.

 

 

지금(只今)부터는 이른바 일유동조론(日猶同祖論)”[“일본인(日本人)과 유태인(猶太人)은 그 조상(祖上)이 같다는 가설(假說)]에 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유태교(猶太敎) 랍비(Rabbi) ‘마빈 토케이어’(Marvin Tokayer, 1936~)1999년 일본(日本)에서 聖書された日本ユダヤ封印古代史 ― 失われた10部族”[성서(聖書)에 숨겨진 일본(日本)유태(猶太) 봉인(封印)의 고대사(古代史) 잃어버린 10부족(部族)의 수수께끼]라는 책()을 발행(發行)하였습니다.

 

여기서 잃어버린 10부족(部族)”이라는 것은 유태(猶太) 국가(國家)북조(北朝) 이스라엘(Israel)”을 가리킵니다.

 

12부족(部族)의 유태(猶太) 국가(國家)솔로몬’(Solomon) ()의 사후(死後)2부족(部族)인 남조(南朝) 유다(Judah)10부족(部族)인 북조(北朝) 이스라엘(Israel)로 나뉘었습니다.

 

북조(北朝) 이스라엘(Israel)은 기원전(紀元前) 722년에 멸망(滅亡)한 후()에 그 자취를 감추었고, 2부족(部族)의 남조(南朝) 유다(Judah)는 기원전(紀元前) 586년 바빌로니아(Babylonia) 제국(帝國)에게 멸망(滅亡)하여 지배자(支配者)와 귀족(貴族)들이 전부(全部) 포로(捕虜)로 끌려갔습니다.

이후(以後)2부족(部族)의 남조(南朝) 유다(Judah)는 그들의 땅으로 돌아와 간신(艱辛)히 소생(蘇生)하였고, 그때부터 기원전(紀元前) 1세기(世紀) 무렵 로마(Rome) 제국(帝國)의 속주(屬州)로 편입(編入)된 후() 멸망(滅亡)할 때까지 유태(猶太) 국가(國家)이스라엘’(Israel)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른바 <음모론(陰謀論)>에 따르면,

오늘날의 유태(猶太) 국가(國家) ‘이스라엘’(Israel)은 고대(古代) ‘카자르’(Khazar; 하자르) 계통(系統)가짜유태인(猶太人), 다시 말하면 고대(古代) 유태인(猶太人)의 핏줄과는 아무런 관계(關係)가 없이 오로지 후대(後代)에 유태교(猶太敎)를 신봉(信奉)하였던 투르크(Turk) 계통(系統)의 백인(白人) 후손(後孫)들 곧 아슈케나지’(Ashkenazi)1948년에 중동(中東)의 팔레스타인(Palestine) 주민(住民)들을 강제(强制)로 내쫓고 세운 국가(國家)라고 합니다.

 

그럼, ‘카자르’(Khazar; 하자르)는 무엇인가요?

 

카자르’(Khazar; 하자르)는 카프카스(Kavkaz; Caucasus)와 볼가(Volga) ()-(Don) ()의 중간(中間) 지역(地域)을 본거지(本據地)로 한 백색계(白色系) 유목(遊牧) 민족(民族)이었는데, 8세기(世紀) 중엽(中葉)에 그 지배층(支配層)이 유태교(猶太敎)로 개종(改宗)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일반적(一般的)으로는 그리스도교(Christ-)와 이슬람교(Islam-)를 믿었으며 10세기(世紀) 후반(後半)부터 러시아(Russia)의 침입(侵入)을 받다가 1016년 러시아(Russia)와 비잔틴(Byzantine) 제국(帝國)의 공격(攻擊)으로 멸망(滅亡)하였다고 합니다.

 

[출처=네이버 백과사전]

 

 

결국(結局), 카자르(Khazar; 하자르)멸망(滅亡)한 후()에 주()로 그 지배자(支配者)들은 러시아(Russia)와 유럽(Europe)으로 진출(進出)하여 유태교도(猶太敎徒)로서 삶을 유지(維持)하였다고 보입니다.

 

여기서 유태교도’(猶太敎徒)라는 것은 <구약성서(舊約聖書)>에 나오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후손(後孫)이라는 혈연(血緣)과 직접(直接) 관계(關係)되지 않고 단지(但只) ‘유태교(猶太敎)를 믿는 사람을 말합니다.

 

고대(古代)에도 모든 유태인(猶太人)들이 유태교(猶太敎)를 믿은 것은 아니었고 다른 종교(宗敎)를 신봉(信奉)한 경우(境遇)도 있었기 때문에 유태교도(猶太敎徒)=유태인(猶太人)”라는 등식(等式)이 불변(不變)의 법칙(法則)은 아니라고 봅니다.

 

유구(悠久)한 세월(歲月) 동안의 혼혈(混血)로 인()하여 오늘날에는 고대(古代) 유태인(猶太人)100% 순수(純粹)한 혈통(血統)은 남아 있지 않다고 보입니다.

 

토라’(Torah) 모세(Moses) 오경(五經)’탈무드’(Talmud)를 신봉(信奉)하는 아슈케나지(Ashkenazi) 유태교도(猶太敎徒)들은 오늘날의 <음모론(陰謀論)>에 자주 등장(登場)합니다.

 

사견(私見)이지만, 일본통(日本通)으로 알려진 랍비(Rabbi) ‘마빈 토케이어’(Marvin Tokayer)아슈케나지(Ashkenazi) 유태교도(猶太敎徒)라고 여겨집니다.

 

 

그럼, 본론(本論)일유동조론(日猶同祖論)”으로 되돌아가겠습니다.

 

랍비(Rabbi) ‘마빈 토케이어’(Marvin Tokayer)의 주장(主張)에 따르면, 북조(北朝) 이스라엘(Israel)10부족(部族)이 동()쪽으로 점차(漸次) 이동(移動)하여 일본열도(日本列島)로 들어갔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고대(古代)에 그들이 한반도(韓半島)를 경유(經由)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고대(古代) 히브리(Hebrew) 문자(文字)가 새겨진 고조선(古朝鮮) 시대(時代)의 와당(瓦當)이 한반도(韓半島) 평양(平壤)의 대동강(大同江) 유역(流域)에서 출토(出土)되었다고 하므로 그 가능성(可能性)은 있다고 보입니다.

 

[참고=http://blog.naver.com/pts9228?Redirect=Log&logNo=60020197837]

 

 

역사적(歷史的)으로 유태인(猶太人)들은 고대(古代) 수메르(Sumer) 지역(地域)과 관계(關係)가 있었고, 후대(後代)에 그들은 페르시아(Persia) 지역(地域)에서도 오랫동안 포로(捕虜) 생활(生活)을 하였습니다.

 

따라서, 그들이 일본열도(日本列島)로 이동(移動)하는 과정(過程)에서 여러 지역(地域)에 정착(定着)하였다면, 중근동(中近東)의 문화(文化)가 그곳에도 전래(傳來)되었을 것이라고 추정(推定)됩니다.

 

일본(日本)에서 황조신’(皇祖神) 또는 천황’(天皇)수메로기’(すめろぎ) 또는 수메라기’(すめらぎ)라고 훈독(訓讀)하는 것도 중근동(中近東)의 종교(宗敎) 문화(文化)와 관계(關係)가 있다고 추측(推測)됩니다.

 

설령(設令) 고대(古代)의 유태인(猶太人)들이 한반도(韓半島)와 일본열도(日本列島)로 이주(移住)하였더라도, 어디까지나 그들은 다수(多數)의 주류(主流)는 아니고 소수(小數)의 비주류(非主流)이었다고 보입니다.

 

그러므로 혈통적(血統的)으로 한국인(韓國人)들 모두가 유태인(猶太人)의 후손(後孫)이고, 일본인(日本人)들 전부(全部)가 유태인(猶太人)의 후예(後裔)라고 말하는 것은 무리(無理)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고대(古代) 유태인(猶太人) 문화(文化)의 일부(一部)가 관련(關聯) 지역(地域)에 남아 있을 수는 있습니다.

 

일유동조론(日猶同祖論)”은 지금(只今)도 일본(日本)의 기독교계(基督敎界)에서 지대(至大)한 관심(關心)을 가지고 연구(硏究)하고 있습니다.

 

한편, 정반대(正反對)일유동조론(日猶同祖論)”을 적극(積極) 부정(否定)하는 일본(日本) <음모론(陰謀論)> 연구자(硏究者)도 있습니다.

 

()를 들면, 일본(日本)의 문명비평가(文明批評家)이자 반유태주의자(反猶太主義者)-타 류-’(太田龍; おおた りゅう, 1930~2009)는 기독교(基督敎)라는 종교(宗敎)새빨간 거짓이라고 규정(規定)하였고, 사악(邪惡)한 기독교(基督敎) 세력(勢力)이 일본(日本)에 침투(浸透)한 것을 우려(憂慮)하였습니다.

그는 평소(平素)에 일본열도(日本列島) 고유(固有)-’(; じょうもん) 문명(文明)을 높게 평가(評價)한 인물(人物)입니다.

 

[참고=http://ja.wikipedia.org/wiki/%E5%A4%AA%E7%94%B0%E7%AB%9C]

 

 

이제 글을 마무리하며, 몇 가지 의문(疑問)을 제기(提起)하고 싶습니다.  

 

히브리(Hebrew) 문자(文字)가 새겨진 야타노카가미(八咫鏡; やたのかがみ)라는 구리거울은 곧 일본(日本)의 천황(天皇)을 상징(象徵)하는 매우 귀중(貴重)한 유물(遺物)이라고 하는데, 이는 고대(古代)로부터 비밀리(秘密裡)에 계승(繼承)되었던 것이 아니라, 메이지(明治) 시대(時代)에 비로소 신정(神政) 복고(復古)와 천황(天皇) 숭배(崇拜)를 위()하여 누군가가 의도적(意圖的)으로 만든 물건(物件)은 아닐까요?

 

유물(遺物)과 유적(遺跡)은 후대(後代)에 조작(造作)할 수 있으므로 아슈케나지(Ashkenazi) 세력(勢力)이 특정(特定)한 목적(目的)을 가지고 관련(關聯) 역사(歷史)까지도 날조(捏造)한 것은 아닐까요?

 

헝가리(Hungary) 출신(出身)의 유태인(猶太人) 가정(家庭)에서 태어나 성장(成長)한 미국인(美國人) 랍비(Rabbi) ‘마빈 토케이어’(Marvin Tokayer)아슈케나지(Ashkenazi) 유태인(猶太人) 자격(資格)으로 어떤 임무(任務)를 완수(完遂)한 것은 아닐까요?

 

일유동조론(日猶同祖論)”은 역사(歷史) 조작(造作)의 일환(一環)이 아닐까요?

 

1930년대(年代) 일본(日本)후구’(河豚; ふぐ) 계획(計劃) 곧 유태(猶太) 난민(難民)을 만주국(滿洲國)으로 이주(移住)시키는 계획(計劃)과도 어떤 관계(關係)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참고=http://ko.wikipedia.org/wiki/%EB%B3%B5%EC%96%B4_%EA%B3%84%ED%9A%8D]

 

 

이러한 문제(問題)는 조선(朝鮮) 역사(歷史)의 연구(硏究)와도 깊은 관계(關係)가 있으므로 철저(徹底)한 검증(檢證)이 필요(必要)하다고 봅니다.

 

 

[자료(資料)를 인용(引用)하는 편의상(便宜上), 천황(天皇) ()으로 일본(日本) ()의 표현(表現)을 필자(筆者)가 그대로 사용(使用)하였습니다. 부디 양해(諒解)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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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답댓글 작성자김재만 | 작성시간 11.04.05 이렇게 본다면, 동에서 서로 이동한 것이 서에서 동으로 이동한 셈이 되고, 그 반대도 역시 성립이 되죠...
  • 답댓글 작성자김재만 | 작성시간 11.04.05 저의 예측과 기타 재야의 일부의 주장도 역시 이것은 외부적 순간적 강한 타격에 의해서만 발생가능하며, 그것은 주기적으로 지구로 다가오는 별의 존재와 관련이 있었을 가능성이 높을 것 같습니다. 축구공을 공중에 전져놓은 후, 골프공을 빗대어 맞추면 순간적으로 공중에서 공의 회전 방향이 바뀌게 되죠...
  • 답댓글 작성자이호근 | 작성시간 11.04.15 토인비가 고조선시대때 살았던 사람도 아니고 그의 말도 오류가 있을 수 있겠죠. 중앙아시아를 세계 중심으로 본다면 문명을 서에서 동으로 동에서 서도 아닌 중앙아시아에서 사방으로 뻗어갔다고 봐야하지않을까요?
    이씨 조선의 터전도 중앙아시아 지역인 것으로 생각됩니다. 최두환 선생님의 하멜표류기나 여러가지 사료를 볼때도 그렇고요.
  • 작성자서종철1 | 작성시간 11.04.12 외람되오나 한말씀 저도 드리고 싶어 댓글 남깁니다. 개인적으로 박자우님 이 언급하신부분에 있어서 한민족과 단지파는 관련이 없다 저는 생각을 합니다. 학계의 혹자는 '욕단'(밸랙의 동생)이라고 하는데, 근거가 일리가 있어보입니다 성경창세기에 메사와 스바로 가는 길 동쪽산으로 가서 거주했다고 나옵니다. 시베리아로 가는길 동쪽산은 천산산맥지역이라고합니다.제가 가장 신뢰하는 설은 노아의 장남 셈의아들중에 첫째,둘째 엘람과 앗수르는 언급만 되었을뿐 후손이 안나옵니다. 셋째 아르박삿부터 해서 성경은 셀라 에벨 로 이어지는 족보 설명을 합니다. 대체 엘람과 앗수르는 어디로 갔을까요? 저는 이들이 동방으로향했다봅니다.
  • 작성자서종철1 | 작성시간 11.04.12 저는 성경의 바벨탑 사건 이후에 여러민족이 언어가 혼잡되면서 각지로 흩어졌다고 봅니다. 즉 셈을 머리로 하는 황인종들은 중동지역에서 극동으로 동방으로 이동해온 민족이라 생각합니다. 이설중에 예수도 백인종으로 현재 묘사되지만 사실은 황인종의 모습이었다는 설이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19세기말 20세기초 서세동점시기에 기존의 모든 역사가 조작변질되었다고 저는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세계사를 제대로 보면 민족 종교 역사 문화 지리 모두 통합적으로 봐야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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