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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룡회의 역사인식에 답이 있을 수도....

작성자김병섭|작성시간11.09.12|조회수882 목록 댓글 9

원래 일본의 본토와 아세아 대륙과는 오늘날처럼 넓은 일본해라는 간격 없이 일본해
는 중국(中國), 사국(四國) 간의 뇌호내해(瀬戶內海)처럼 작은 배로 왕래할 수 있을 정
도였다고 생각한다. 무수의 섬들이 점점이 산재하여 있고, 또한 북해도와 사할린과는 육
지로 서로 접하고, 사할린과 연해주와도 육지로 접속한 땅이고, 오키나와 열도에서 팽호
열도, 대만, 남양에 이르기까지의 사이에도 큰 육지가 있어서 남방 지나 대륙과의 교통
은 쉬운 것이었다고 보인다.


또한 몽골의 사막은 발해만에서 들어왔던 바다로서 기후가 온난해서 인류의 발달에
는 적당한 토지였고, 또한 일본 본토와의 교통이 매우 편리한 것이었다고 단정되는 유물
이 지금도 남아 있다. …(중략)… 아시아의 지형이 현재의 상태가 된 것은, 천지이변 때
문에 일본 본토와 대륙과의 교통은 완전히 두절되기에 이르고 그 결과 아세아 대륙의
중앙에 위치하여 인류 진보의 선구가 되는 만주와 몽고에서 중앙아세아에 걸친 지대는
교통이 불편하게 되었을 뿐만이 아니라 기후도 한랭하게 되어 이에 세계적 민족의 대이
동이 시작되었다고 보인다.

 

그래서 우리 대화민족(大和民族)은 이때 그 본거지인 만몽
(滿蒙)의 추요(樞要) 지역을 파괴당하고 남하하여 황화를 중심으로 해서 발전하기에 이
르렀지만, 본토(일본)와의 연락교통이 완전히 두절되었기 때문에 홀로 대륙에 남아 일본
의 통치를 떠나 독립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후에는 결국 같은 대화민족(大和民族)이면
서도 역사풍속을 달리하고 언어도 통하지 않는 관계가 되었다.

 

(김경일 ․ 강창일. 2000. 「동아시아에서 아시아주의: 1870-1945년의 일본을 중심으로」 역사연구 제8호. 역사학연구소. 301-302쪽) [원문: 內田良平. 1932. 皇國史談: 日本의 亞細亞. 흑룡회출판부. 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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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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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김병섭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1.09.14 일본에서 오래 공부한 교수들이니... 이들이 실수로 오역을 하거나... 의도적 오역을 하지 않는 이상... 번역에는 이상이 없을 것입니다. 일본어 번역은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을 것이고요...
  • 답댓글 작성자김홍필 | 작성시간 11.09.14 쉬운 것이라도 번역하면서 "오해"하는 경우도 있어서요...
  • 답댓글 작성자김병섭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1.09.14 고문서를 번역한 것이 아니라 근대어를 번역한 것이기 때문에... 한자용어가 지금과 일치합니다. 그러니 용어를 오해하는 일은 적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 답댓글 작성자김홍필 | 작성시간 11.09.14 저는 문맥(文脈)이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 작성자김병섭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1.09.12 참고로 여기서 중국은 지나대륙이 아니라 일본열도의 돗토리현(鳥取県), 시마네현(島根県), 오카야마현(岡山県), 히로시마현(広島県), 야마구치현(山口県) 등을 일컫는 용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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