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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룡회 자료 마지막....

작성자김병섭|작성시간11.09.14|조회수861 목록 댓글 13

요컨대, 우역(禺域)의 일, 문무(文武) 양도(兩道)를 가지고 방연(尨然)한 천하의 노
대국을 이루었는데, 그 문(文)을 가지고 다스린 것은 고유 한토(漢土)민족, 그 무(武)를
든 자는 기객(寄客)의 이적(夷狄)민족이다. 이적(夷狄)의 무(武)가 없었다면 한토(漢土)
의 문(文)이 있어도 어찌 오천년의 천명을 다할 수 있었겠는가. 한민족(漢民族)과 이적
민족(夷狄民族)은 쌍륜 쌍익처럼 서로 의지하고 서로 도와 동아의 건곤에 우뚝 서서 광
휘있는 문명의 역사를 금일에 전하야 하는 것이다. 한(漢)의 문(文)을 고구(考究)하려는
자 바로 이(夷)의 무(武)에 정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적(夷狄) 중에 북(北)이 있고 서(西)가 있다. 진(秦)부터 5대에 이르기까지는 서부
(역주 : 서융(西戎)을 의미하는 것으로 판단됨)의 힘을 사용한 것, 그 후 시대가 흘러 요
(遼), 원(元), 청(淸)에 이르기까지의 근대의 일은 북이(北夷)의 힘에 의한 바가 가장 많
다고 한다. 우역, 금일의 천하는 바로 그 영향에 의해 화(化)하고 그 여파에서 육(育)한
것이라야 해야 한다. 북이(北夷)의 청(淸), 북이(北夷)의 땅, 이어 더욱 연구할 필요가
있다. 북이(北夷)의 땅이란 어디인가. 현재 러시아에 점령된 만주(滿洲)이다.


(중략)


우리들이 금후에 만주(滿洲)의 필요를 느끼는 것은… (중략) ... 셋째, 무역상 혹은
전도(傳道)상 만주(滿洲) 개발을 부익하고 같은 민족인 토민(土民)에 대하여 우리의 인
의와 위신을 전파해 그들을 화육하고 그들과 교친하고 점차 우리 국민을 위한 제2의 향
국(鄕國)이게끔 하는 것이다. 그 외 조선(祖先)의 관계상 역사적 탐구, 인류학적 강구(講
究)도 역시 매우 필요하다고 하겠다.

 

(김경일․강창일. 2000. 「동아시아에서 아시아주의: 1870-1945년의 일본을 중심으로」 역사연구 제8호. 역사학연구소. 299-300쪽) [원문: (論談) 滿洲調査의 必要. 黑龍會會報 제1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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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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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김홍필 | 작성시간 11.09.14 일제(日帝)의 대동아(大東亞) 공영(共榮) 사상(思想)이 엿보이네요...
  • 작성자이순주 | 작성시간 11.09.14 탈아입구(脫亞入歐)를 외치던 일본이 갑자기 대동아 공영권(大東亞 共榮圈)으로 방향을 선회한 까닭은 무엇일까요?
    이미 탈아입구를 완성한 일본의 말장난이겠죠? 중국의 변방에 있던 일본이 이미 중국의 주인이 되었기 때문에 대동아공영권이란 립 서비스가 나왔다고 봅니다. 대동아 공영권이란 말은 현 일본열도와 한반도 대만 만주 따위를 차지하고선 내뱉을 수 있는 말이 아닐 것입니다. 명(復明=무굴)과 청(淸=puritan)을 전한과 新을 통일한 후한처럼 재통일 한 후에 내뱉은 축사 같은 것일 겁니다. 중.일전쟁은 일본의 통일에 반대한 원조 이슬람인 수피즘 세력의 일방적인 도피작전이고요. 국.공내전(國共內戰)은 이이제이였을 겁니다
  • 답댓글 작성자이순주 | 작성시간 11.09.14 오삼계가 명의 잔당들을 최후까지 쫓았던 것처럼 장개석은 모택동이를 그렇게 쫓았던 겁니다. 물론 청(淸=puritan=英日동맹)이 오삼계에게 명의 토벌전권을 주었듯이, 일본도 장개석에게 모택동의 토벌전권을 주었던 겁니다. 장개석이가 모택동을 쫒은 사건은 영.일동맹(英日同盟)의 파기이기도 하며,그렇게 때문에 모택동은 일본의 중심 세력권인 복건.강서의 핵우산을 떠나 영국의 세력권인 서남으로 국경선을 빙빙돌아 튀었다고 봅니다.
    장개석이는 일본의 견제와 지원을 동시에 받았던 까닭은 과거의 오삼계의 역할과 비슷했기 때문이라 봅니다.
    영일동맹시절 중공을 키우다가, 영일동맹을 깨자 중공을 버리고 장개석을 사냥개로 이용한.
  • 답댓글 작성자이순주 | 작성시간 11.09.15 어찌보면, 이성계의 조선(明)이 대동아 공영권을 위해서 일본에 의해 철저히 이용당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철저히 이용하고 나서 팽한 것에 대한 반감이 이나라의 반일감정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저는 반일감정도 자연적으로 발생한 것이 아닌, 역사교육에 의한 당연한 귀결이라고 봅니다. 우리가 복명(復明)의 혈통을 받지 않았더라도, 분명히 청(淸=puritan=개신교)이 아니라 홍무제(洪武帝)인 이성계의 명(明)의 역사를 기억하고 있다는 겁니다.
  • 작성자이순주 | 작성시간 11.09.15 영.일동맹이 청의 잔존군벌(원세개 사후)의 도움으로 복명(復明)을 견제하다가, 청(淸)을 완전히 접수하자 복명(復明)의 잔당인 사냥개 장개석을 통해 친영파이자 친소파인 중공(中共)을 몰아낸 사건이 대장정(大長征)이라 봅니다.
    흑룡회는 일본열도에 있던 자들이 아니라 대륙에서 활동하던 세력이라 봅니다. 그들의 이름을 일본식으로 바꿔 부르지만, 그렇게 따지면 안중근도 야쓰이(安) 아무개가 될 것입니다. 만주국을 만들기 위해 열도에서 상륙한 것이 아니라, 청(淸)의 최후영토인 만주를 만주국이란 칭호로 점령했다고 보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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