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지사항>
저자: 에드워드 핼릿 카 Edward Hallett Carr/ 역자: 김택현 (성균관 대학교 인문학부 사학과 교수)
제목: 역사란 무엇인가(What Is History)
출판사: 까치 글방
년도: 1977년 8월 5일
초판 1쇄 발행일: 1997년 8월 30일 /30쇄 발행일: 2010년 1월 20일
<저자약력>
영국의 역사학자이자 국제정치학자이다. 1892년 런던에서 태어났다. 케임브리지대학 트리니티칼리지를 졸업하고, 1916년에서 36년까지 외교관으로 근무했다. 1947년까지 웨일스대학 국제정치학 교수로 있으면서 '타임스'지 논설위원을 겸했고 1948년 유엔세계인권선언 기초위원장을, 그 뒤 옥스퍼드대학 교수, 55년 이후 트리니티칼리지의 고급연구원을 지냈다.
외교관 시절의 저서는 <도스토예프스키> <낭만적 망명자들> <카를 마르크스> 등 사회와 혁명사상에 관한 것이 많다. <새로운 사회(1951)> <역사란 무엇인가(1961)>는 그의 실용주의적 역사관을 잘 보여준다. 일찍부터 러시아사에 깊은 관심을 가져 1950년에 제 1 권을 낸 <볼셰비키혁명>을 비롯한 <소비에트연방의 역사(8 권, 1950∼78)>는 필생사업으로 볼 수 있는 장대한 작품이다. 이 밖에 국제정치에 관한 저서로 <평화의 조건> <내셔널리즘의 발전> <서구세계에 대한 소비에트의 충격> <1·2차세계대전사이의 국제관계사> 등이 있다.
<목차>
1.들어가기
2.랑케에 대한 오해_ 랑케와 랑케 사관에 대한 보편적 인식의 오류
3.카 ‘현재와 과거의 끊임 없는 대화.대화.대화’_ 『역사란 무엇인가』요약과 감상
4.지식인의 역사_ 역사학의 역할
5.맺기
1.들어가기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 1단원에는 역사의 의미와 학습 목적이 2페이지에 걸쳐 짧게 소개되어 있다. 단순히 읽고 지나가기만 했던 이 부분을 요즘 역사학입문이라는 필수 과목으로 배우다보니 무척 생소하다. 단순히 국어사전식 정의만 외우던 ‘역사’가 진정 무엇인지 수없이 고민하던 수많은 역사학자들의 주장에 ‘나에게 역사는 무엇이지?’ 자문하게 된다. 모든 학자들의 이야기는 강한 부드러움으로 아직 ‘역사’를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못한 나를 굉장히 심적으로 이리저리 기울게 한다. 이쪽도 저쪽도 모두 좋은 말을 하고 있는 것 같아 혼란스럽고 이런 우유부단함이 한심하다. 많은 학자들이 역사의 의미뿐만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시각에서도 서로 다른 다양한 주장을 하였다만 역시 가장 익숙한 두 이름 , 랑케(Leopold von Ranke 1795~1886)와 카(Edward Hallett Carr 1892~1982). 이 두 사람의 생각을 알고 싶었다. 그래서 너무나도 익숙한,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다소 대범한 제목의 책을 읽게 되었다.
역사란 무엇인가? 우리가 일반적으로 어떤 사실을 배우고 공부할 때 가장 처음 하는 것이 그 것의 개념을 배우는 것이다. 고등학교 수업시간에 나는 역사가 사실로서의 역사(Geschichte)와 기록으로서의 역사(Historia)로 나뉜다고 들었다. 랑케로 대표되는 전자는 객관적 의미의 사실만을 탐구하는 역사이고 후자는 주관적인 재구성을 통해 전해진다는 E. H.카의 역사관-이라고 배웠다. 그런데 『역사란 무엇인가』를 읽으면서 이런 단순이분법이 정확히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또 다시 랑케에 대해 찾아봐야 했다.
2.랑케에 대한 오해
레오폴드 폰 랑케는 19세기 전반을 산 독일의 역사학자이다. 그는 이전의 사학과는 다른 새로운 연구방법과 '세미나'를 통한 교수법으로 서유럽의 역사 기술에 큰 영향을 미쳤다. 랑케는『라틴 및 게르만 제 민족의 역사 1494~1514』란 그의 저서를 통해 종교, 정치 권력서 벗어난 사실의 역사를 기술하는 것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랑케 이전의 원시 실증주의의 선구주자에는 역사의 아버지 헤로도토스(Herodotos, BC 484 ?~BC 425?)가 있다.『역사』를 저술하여 페르시아 전쟁사를 후대에 남긴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신의 이야기로 설명하던 역사의 무대를 인간사회로 옮겼다. 이 ‘역사의 아버지’ 덕분에 우리는 6.25 한국전쟁이 전쟁의 신 아레스의 심술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랑케 이후 그의 ‘역사의 과학적 기술’을 신봉하는 사람들도 생긴다. ‘완전한 역사’의 완성이 가능하다고 믿은 영국의 역사학자 액턴(1st Baron Acton of Aldenham, 1834~1902) 과 조지 클라크 경은 랑케의 실증주의를 계승한 사람들이다. 흔히 개미식 추론이라고 하는 영국 철학의 경험주의와 비슷한 행보를 하는 실증주의는 ‘주체와 객체의 완전한 분리’를 전제하는데 이러한 사학은 꽤 오랜 시간 그 지위를 굳건히 한다.
랑케는 ‘근대 역사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데, 이는 그가 헤로도토스에 이어 ‘제2의 역사독립’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랑케가 자아를 소거하고 객관적인 과거 사실의 절대성을 주장했던 이유는 순수한 학문으로서의 역사를 떼어내기 위함이었다. 과거 사실의 객관성과 독립성은 정치로부터 과거 사실의 독립이요, 신학으로부터 과거 사실의 독립이요, 철학으로부터 과거 사실의 독립이고 결국 역사학의 독립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랑케가 주장한 ‘사실의 개별성’혹은 사실의 ‘개체성’은 순수하게 역사를 위한 역사학의 시작의 전제가 된다.
학설에는 랑케가 생각했던 역사가의 의무는 ‘실제로 있는 그대로(wie es eigentlich gewesen)’를 알아내는 거라고 한다. 하지만 이 유명한 격언은 ‘그것이 진실로 어떠했는가’ 라고 번역하는 게 맞다. 내 생각에는 ‘역사학 독립’의 과정에서 랑케가 말한 역사의 객관성이 너무 강조된 것 같다. 더불어 랑케사학을 E. H.카의 반대 축으로 설정하고 나머진 편하게 잘라버려 결국 그의 과학적 역사주의만이 남아 어느새 랑케를 사료만을 맹신하는 깐깐한 노인으로 만들어 놓은 게 아닐까 싶다. 또한 구한말 지나치게 형이상학적이고 감성적인 민족주의 역사학이나 너무 강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있는 사회경제 사관에 대한 반발로 더욱 강력한 실증주의 사학(=랑케사학)이 남한에 지금까지도 주류로 남아 있는 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우리가 배운것과 달리 실제로 랑케는 실존적 사실과 더불어 본질적 사실도 중시하였다. 자료의 단순한 수집과 발견을 넘어서 역사를 이해하려고 했다는 것이다.『보편사의 이념』이라는 논문에서 랑케는 ‘역사는 과학이며 동시에 예술이다...역사는 수집하고 발견하고 탐구한다는 점에서 과학이지만, 발견한 것과 인식한 것을 재창조하고 서술한다는 점에서 예술이다. 다른 학문은 발견한 것을 단순히 기록하는데 만족하지만, 역사는 재창조하는 능력을 필요로 한다’라고 말한다 과학으로서 역사를 강조한 랑케는 랑케의 일부분에 불과했던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고등학교 때 배운 무조건적인 랑케 VS 카 식의 대결구도가 얼마나 피상적인 것인지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본문에서는 객관적 의미의 순수한 역사연구를 주장한 랑케는 ‘과학적’ 랑케로 따로 쓰기로 한다.
3. 카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대화.대화
너무나도 익숙한 이름, 에드워드 핼릿 카, 그는 영국의 정치학자로 오랜시간 외교관으로 활동하였다. 국제 관계와 국제 정치사를 연구하여 국제 정치학 교수로 강의한다. 1960년대 역사학과 사회전반에 혁명적인 역사 진보의 개념을 확립하였는데 특히 공산주의 사살가들의 전기와 같은 사상사 연구로 유명하다. 저서로는 『위기의 20년』, 『러시아 혁명사』따위가 있다. 그가 1961년에 내놓은 『역사란 무엇인가』는 캠브리지 대학의 강의 내용을 정리한 것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역사란 무엇인가』는 역사 이론서 이상의 의미로 전해진다. 이 책은 적극적 역사의식을 통해 왜곡된 현실을 타개하고 긍정적인 희망의 새날을 꿈꾸던 이들에게 사명감과 목표를 제시하였다. 군사 독재 하 암울한 시대에 당시 수많은 대학생들은 카의 강의내용을 소중히 읽었다고 한다.
대학의 역사학 교수가 아닌 러시아 전문가의 ‘역사’라 그런지 수업시가에 배운 다른 사관에 비해 좀더 현실적인 중용책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에서는 이를 실용적이며 도구적이라고 표현했는데 다른 사관들보다 더 사회에 유용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그렇게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카가 말하던 ‘대화’가 단순히 사실과 역사가의 대화뿐만 아니라 과학적 랑케와 그의 비판자들, 예를 들면 랑케의 사실 복원을 ‘고상한 꿈’이라고 조롱한 미국의 역사학자 찰스 비어드(Charles Austin Beard, 1874~1948)나 ‘역사는 사고의 한 형태’라고 단언한 영국의 로빈 콜링우드의 뒷짐 진 손을 풀어 이어주는 그런 ‘대화’일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5장에 걸쳐 진행되는 ‘대화’들은 기본적으로 ‘사실’에 대한 각 역사가들이 내린 정의를 구분에서 시작된다.
과거의 사실은 실존적으로 존재하는 경험 그 자체이다. 하지만 역사가의 선택으로 이 과거는 역사상의 사실로 전환된다. 과거에 대한 사실 안에 역사가가 개인의 기준으로 부분집합을 만든 것이다. 역사가가 사실에 부여한 중요성에 의해서만 역사상의 사실이 된다. 여기서 콜링우드는 역사가에 의해 간택된 사료 또한 이미 ‘오염’ 되었다고 단언한다. 그렇게 사료수집의 객관성을 주장하는 과학적 랑케의 주장은 역설이 되어버린다. 카가 예시로 언급했던 슈트레제만의 원사료 처럼 과거에 대한 모든 사실은 항상 오염되어 있고 그 부분집합인 역사상의 사실도 오염되었으며 선별된 사료는 역사가 자신의 가치관이 부여된 것이기 때문에 이중으로 오염되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콜링우드는 역사는 절대 우리에게 순수한 형태로 다가오지 않는다고 한다. 역사책을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과거에 대한 사실 뿐 아니라 역사가가 부여한 역사적 중요성, 그의 가치관을 읽는다는 뜻이다. 그래서 카는 ‘사실들의 연구를 시작하기 전에 역사가를 연구하라’는 말을 했다. 역사가의 성격과 환경에 따라 역사서술이 달라지는 예는 우리가 평소에도 많이 접할 수 있다. 1592 임진년에 일어난 같은 사건도 중국과 한국 그리고 일본은 각기 다른 곳을 바라보며 서술하였다. 경제적, 군사적 아니면 정치적으로 복잡한 이해관계를 생각하면서 이떤 사실에 중점을 두었는지 따져 볼 일이다. 마치 그릇 모양째라 어는 얼음의 물의 모양아 달라지듯이 같은 물, 즉 순수한 형태의 사실이 존재 한다고 가정하더라도 다른 얼음이 어는 것이다,
최근에 <라쇼몽>이라는 영화를 다시 보았다. 일본의 영화의 고전이라고 불린다고 해서 몇 년 전에 보다가 너무 지루해서 중간에 포기하였는데 요번엔 끝까지 다 볼 수 있었다. 사무라이 다케히로의 죽음을 둘러싸고 관계 인물들 신문이 진행되는데 아내 마사코, 도적 다조마루, 지나가던 나무꾼 심지어 죽은 다케히로 모두의 진술이 다르다. 나중에 다소 황당하던 결말에 비추어 봤을 때 모두들 각자의 이해를 부각시키는 진술을 하였던 것이다. 겁탈 당한 마사코는 끝까지 남편에게 순종적인 양처로 남길 바랬고 사형 될 것이 분명한 다조마루는 자신의 용맹성을 강조하고 싶어 한다. 역사도 이렇게 우리의 곁에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프란시스 베이컨이 말한 극장의 우상처럼 역사가 단지 두꺼운 책에 있는 기록이라는 이유로 순수한 사실로서 쉽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과학적 랑케가 주장하는 객관적 역사사실에 대한 하는 이렇게 일어 날수 있는 오류를 지적하는 콜링우드의 의견에 더해 카는 역사가는 자신이 연구하고 있는 사람의 마음, 그들 행위 배후에 있는 생각을 상상적으로 이해(Imaginative understanding)해야 한다고 한다. 왜냐면 역사가는 과거가 아닌 현재에 속해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게 고려하지 않고는 앞서 말한 ‘순수하지 않은 역사’의 바른 이해가 힘들기 때문이다. 카는 ‘역사가의 임무는 현재를 이해하기 위한 열소로서 과거에 정통하여 과거를 이해하는 것이다’라고 한다. 하지만 고등학교 교과서에 나온 것과 달리 카는 과학적 랑케의 정 반대편에 서서 그를 비판한 사람이 아니다. 기록으로서의 역사 즉 주관적으로 재구성한 역사로 역사학을 정리한 사람이 콜링우드 라면 카는 그 가운데 절충설을 표명한다. 콜링우드나 크로체와 같은 주관론에 가까운 절충이지만 확실히 카도 과학적 랑케의 비판자들에게 무조건 관대한 것은 아니다.
우선, 랑케는 콜링우드를 비롯한 과학적 랑케의 비판자들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끝까지 밀고 가면 모든 객관적인 역사를 배제하는 어리석음을 저지르게 된다고 한다. 역사가가 모든 역사를 만든다는 식의 ‘역사가 만능주의’는 쉽게 회의주의로 빠질 수 있다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한다. 어떤 것도 정(正) 오(誤)를 가릴 수 없다는 회의주의는 학문을 너무도 단순화하는 무서운 노곤함이라고 생각한다.
카는 모든 해석의 기준은 현재에 있을 수밖에 없다는 콜링우드의 주장에도 시비를 걸었다. 카는 역사는 현재의 눈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지만 ‘반드시’ 그렇게 봐야한다고 하지는 않는다. 사실 해석의 판단기준이 현재라면 ‘현재를 이해한다’라는 역사가의 의무와 기준이 같게 된다. 그렇게 되면 역사적 지식은 목적을 위한 실용성에 의해서만 판단되면서 미국의 실용주의자들과 같은 비판을 받게 된다. 20세기 미국의 실용주의자들이 받았던 비판을 그대로 똑같이 받게 된 것이다. 현재의 이해를 위해 탐구하는 역사, 그 역사의 기준이 다시 현재가 되는 회금문식 소용돌이로 빠지게 되어버린다.
카는 사실의 객관성을 부인했다는 점에서 과학적 랑케의 추종자는 아니었지만 역사가와 사실 간의 대화와 그 객관성을 신뢰했다는 점에서 과학적 랑케의 비판자들과는 또 달랐다. 다시 말하지만 그는 대화를 토해 둘을 마주보게 하고 싶었던 것이다. 카가 계속해서 양극단에 등 돌린 사람들의 옷깃을 끌어당긴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사실이 스스로 말하지도 않으며 말할 수 없다고 한다. 동시에 역사가가 멋대로 역사를 쓸 수 있는 것도 아니라고 한다. 카가 말했듯이 ‘역사가는 그의 사실들의 비천한 노예도 아니고 난폭한 지배자도 아니다. 역사가와 그의 사실의 관계는 평등한 관계, 주고받는 관계이다.둘 중 어느 한쪽을 우위에 두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가는 자신의 사실을 뿌리로 삼고 사실을 역사가로 꽃을 피운다. 과연 역사와 역사가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인 것이다.
카는 영웅과 반역자의 예를 들면서 이들이 아무리 역사를 혼자서 설명하는 것 같아 보여도 그들이 사회밖에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 어떤 영웅도 시대 밖에 초월적으로 존재한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없을 거란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위인은 탁월한 개인이므로 그/그녀의 행적은 사회적으로 현저히 중요한 현상이다. 위인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탁월한 개인으로서 이해해야하지만 동시에 그/그녀가 살았던 사회적 현실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이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호보완적인 관계는 이렇게 개인과 사회 뿐만 아니라 앞에 나왔듯 과거와 현재에도 적용이 가능하다. 양비론을 통한 단순한 중간이 아닌 중용의 적절함을 추구하는 카의 역사는 이렇게 양쪽을 모두 살피기에 인정을 받는 것이 아닐까.
또한 카는 역사학을 하나의 진보적인 학문으로 보았다. 현재는 단순히 현재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전망하고 미래를 실현하는 하나의 장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카는 5장에서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고 단순히 말하는 것보다 ‘과거의 사건들과 서서히 등장하고 있는 미래의 목적들 사이의 대화라고 말했어야 했을 것’ 이라고 토로한다.
4. 지식인의 역사
카는 『역사란 무엇인가』제 2판의 서문까지만 완성하고 죽었다. 완성되지 못한 2판의 서문에서 그는 당시 시대말의 허무와 절망의 풍조가 특권을 침식당하는, 그 사회의 엘리트 집단의 산물이라고 한다. 어수선한 사회적 분위기가 사회의 지배 집단의 이념을 전파하는 바로 그 엘리트들, 즉 지식인들에 의해 생겨났다는 것이다. 카는 자신은 지배집단의 안이함과 그들이 전파한 이념의 맹목성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한다 한다. 그는 자신을 도전하는 저항적 지식인(intellectual dissident)이라 명하면서 마지막에 이런 말로 2판 서문을 맺는다.
“나는 이 책에서...오늘날 이 나라 지식인들의 지배적인 경향으로부터 내 자신을 벗어나도록 하기 위해서, 그들이 어떻게 길을 잘못 들었는지를 그리고 왜 길을 잘못 들었다고 내가 생각하는지를 보여주기 위해서, 또한 비록 낙관적인 것은 아니더라도 어째든 미래에 대한 보다 건전하고 균형 잡힌 전망을 주장하기 위해서 노력할 것이다.”
나는 이 마지막 구절을 읽고『지식인을 위한 변명』에서 행동하는 참 지식인을 외쳤던 샤르트르가 생각났다. 그 인상적인 둥근 안경의 프랑스 철학자는 지식전문가가 자신의 전문분야서 얻은 진리를 인간사회 전체로 보편화시키려는 노력을 하면 지식인이 된다고 하였다. 이러한 지식인은 아무리 모순된 사회에서도 진리 탐구와 더불어 선도의 본능을 잃지 않는다. 카의 이러한 저항적 지식인은 끊임없이 현 이데올로기에 맹목적 종속을 경계해야 하는 샤르트르의 또 다른 지식인과 닮은 점이 있다.
카가 죽은 지 30여년. 여전히 세기 종말에 관한 예언들이 심심치 않게 인터넷뉴스에 올라오고 여전히 세상엔 핵전쟁의 위험이 남아있다. 물론 전쟁은 지금도 계속 이 순간에도 계속 일어나고 있다. 카의 말대로 9.11테러가 꽤 옛일이 되어버린 지금 ‘폭력과 테러리즈의 적의(敵意)로부터 자유로운 국가는 거의 없다’.
『역사란 무엇인가』제 2판은 과연 우리에게 무슨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을까. 랑케와 콜링우드의 사이좋은 대화로 역사를 인식한 그는 인식의 단계에서 넘어가 존재하는 유토피아를 그리려고 하지 않았을까 싶다. 더불어 카는 개인과 사회의, 역사와 과학의(인문학과 사회과학의) 그리고 과거와 현재의 대화를 끊임없이 종용한다.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의 일반적인 전제에 도전하는 일이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지금까지 나의 학습의 원동력은 단순한 지적호기심과 흥미였다. 나만의 역사인식을 통한 인류의 긍정적 미래로의 지표를 제시하겠다-라는 생각은 크게 해보지 못하였다. 굉장히 이기적이고 편한 이유로 인간의 학문을 계속 이으려고 했구나. 카는 ‘역사‘라는 단어를 사회 안에 있는 인간의 과거에 대한 연구 과정이라는 1차적 뜻으로 쓴다고 한다. 사회와 인간을 분리할 수 없는, 하지만 다른 존재로 보았다. 내가 이루는 사회와 사회를 이루는 나. 내가 역사를 공부하겠다 뜻을 세운 이상 단순히 나만을 위한 탐구는 옳지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 방법이나 목적을 찾는 것이 그렇게 막막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나는 나만의 ’역사란 무엇인가‘를 완성시키기 위해 여러 선배의 방법을 배우고 비판하면 될 것이다.
괴테는 시간은 세 가지의 걸음걸가 있다고 했다. 머뭇거리며 다가오는 미래. 화살처럼 날아가는 현재 그리고 살그머니 꼼짝 않고 서 있는 과거. E. H.카 그리고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을 외쳤던 많은 동양의 학자들의 말처럼 역사학자는 꼼짝 않는 과거를 깨워 다가올 미래와 악수를 시키는 현재의 조정자라고 믿는다.
참고)
역사학입문강의 '史觀이란?' 프린트 필기
『역사란 무엇인가』E. H.카 김택현 옮김. 까치 2001년
『역사의 진실을 찾아서, 랑케&카』조지형. 김영사 2006년
『지식인을 위한 변명』 장 폴 샤르트르 박정태 옮김 이학사 2007년
영화 <라쇼몽> 구로사와 아키라 195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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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05배준호 작성시간 10.04.12 책 본문 뿐만 아니라 관련 학자와 다른 서적까지 참고해서 쓰신 글 잘 보았습니다. 단순히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책에 국한되지 않고 역사에 대해 폭넓은 사색을 담아내서 저도 많은 것을 배워갑니다. 감상 후기에 쓰신 '그 동안의 좁은 시야에서 벗어나 인류에 기여하기 위해' 공부하겠다는 의견을 피력하셨는데요. 제 생각에 학문이란 무엇보다도 개인의 학문적 욕구가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언가에 있어서 일가를 이룰정도의 성과를 보이는 사람들은 또한 누구보다 그것을 좋아했으니까요. 공자님 말씀처럼 즐거이 공부하다보면 그 성과는 자신도 모르게 인류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커져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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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최은서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0.04.14 감사합니다. 저도 일단은 기본적으로 개인적 흥미가 주로 자리 잡아 있긴합니다. 단지 진보를 향해 나아가자!-끊없이 외치는 카의 말에도 동의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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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지연 작성시간 10.04.20 한 작품을 읽고, 궁금하고 이해가 되지 않은 부분을 다른 서적들을 통해 또 다시 탐구하고 사유하는 과정이 진짜 '역사학도'로서의 참 의미를 실현하고 있는 것 같아 보기가 좋고 부럽습니다...! 랑케에 대한 오해나 카가 언급하고 지적한 부분들에 대한 해석을 너무 잘 풀어서 알게 해 준것 같아 좋았습니다. 그런데 다 읽고 난 후에 잠시 의문이 들었습니다. 카의 서적에서 '대화'라는 측면 외에 다른 부분에서는 궁금한 것이 없었는지.. 또 랑케와 카에 대한 실상을 지적해 준 것 말고 본인이 생각하는 카의 논리의 비판점 같은 것이 없었는지.. 궁금합니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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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은서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0.04.22 솔직히 많은 부분에서 '역사학'에 대한 지식없이는 바로 이햐가 어렵더라고요. 특히 유럽 곳곳의 유명한 학자들의 이야기를 인용하며 자신의 생각을 풀어쓴 랑케의 글은 그래서 더 어려웠습니다.(항상 봐오던 일반 역사교양서적과 많이 다르기도 하고요) 전 수업시간에 나온 포스트모더니즘 역사학이 어떻게 랑케를 비판한 것인지. 그것이 궁금합니다.-기회가 되면 더 찾아 볼려고요. 그리고 아직까진 랑케의 주장에 크게 의아항것은 없지만, 마지막에 말한 '진보로서의 역사', 과연 역사는 진보하는가에 대해서는 앞으로 스스로 계속 생각해봐야할것 같습니다. '진보'의 개념정리도 아직 확실치가 않아서요. 누구의 역사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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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최은서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0.04.22 과연 무엇을 목표로 한다는것이 더 '나아진다'라고 할수 있을지. 아직은 결정을 하기가 어려워요. 아무튼 고마워요/